2024.05.18 (토)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보유자 이춘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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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보유자 이춘목

작성일 2007-12-03
작성자 문화재청

  • 편집부
  • 등록 2020.06.14 23:45
  • 조회수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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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려서부터 국악을 배웠습니다. 그때는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거나 배우고 싶어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내 평생 직업이라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20대에 들어 우연히 배운 ‘소리’는 제 삶을 서서히 지배해 나갔습니다. 사실 저는 소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그저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한 걸음, 두 걸음 소리에 다가가며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35년간 서도소리를 업으로 살아 온 인생, 지금 돌아보면 참으로 행복합니다. 김정연 선생님께서 걸어오신 그 외롭고 힘들었던 길, 선생님께서 작고하실 때까지 불태웠던 예술혼을, 미약하지만 제자로서 그 맥을 잇고 싶었습니다.”

 

이춘목 선생은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 있던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 양성소(현재 국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국립국악원의 단원으로 있던 21살 때 김정연 선생의 전수자로 서도소리에 입문하게 되었다.

 

"당시 김정연 선생님께서 저희 국악원에 오시게 되어 처음 만나 뵈었어요. 저는 당시 피리, 가야금, 민요, 판소리, 무용 등 다방면에서 국악 공부를 계속 해왔기 때문에 처음 선생님으로부터 서도 소리를 배웠을 때 그리 낯설지는 않았어요. 당시 선생님께 맨 처음 배운 서도소리가 ‘초목이’였는데, 제 이름인 ‘춘목이’와 비슷해서 선생님을 비롯한 주변에서들 저를 ‘초목이’라고 불렀어요. 그렇게 운명처럼 서도소리와 맺게 된 인연이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춘목 선생은 1972년부터 서도소리 예능 보유자였던 김정연 선생님께 전수를 받기 시작해 수년간의 이수 과정을 거쳤으며, 전수 조교의 직분까지 맡으며 서도소리의 맥을 이어갔다. 그리고 2001년 11월, 그는 스승인 김정연 선생님에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이는 서도소리로, 우리 전통 소리의 발전과 보급에 희망을 주는 또 다른 계기가 되었다.



평안도·황해도 등 관서 지방의 향토 가요인 ‘서도소리’의 맥 이어


서도소리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서도민요인 ‘수심가’와 시창인 ‘관산융마’, 그리고 ‘배뱅이굿’ 등이 그 지정 종목이다. 장학선과 김정연·오복녀 등 제1세대 보유자들은 모두 작고하였고, 현재 이춘목 선생을 비롯해 이은관·김광숙 이 3명이 서도소리 보유자로 지정되어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서도민요란, 황해도와 평안도 지방의 민요를 말한다. 5도 위에 3도를 쌓은 음으로 남도민요에 비해 청이 높고, 중간 음에서 격렬하게 떨면서 숨 가쁘게 몰아치다가 하강하는 창법이 특징이다. 이 창법은 길게 떨리는 소리로 이어지면서, 마치 한이 서려있는 듯한 색다른 여운을 준다. 그래서 서도민요는 미묘한 꾸밈음이나 서도민요 특유의 조름목 등을 악기로 나타내기 어려워, 노래를 할 때에는 기악 반주가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대체로 서도민요의 특징은 콧소리로 얕게 탈탈거리며 떠는 소리, 큰소리로 길게 뽑다가 갑자기 콧소리로 변해 조용히 떠는 소리 등 장식음에 있으며, 기악 반주가 곁든 것이 적고, 채보된 곡이 드물다. 서도소리를 들어 본 사람들은 "서도소리는 옥구슬이 구르듯 맑고 청아하면서도 인간의 한과 서글픔이 담긴 듯 애절함이 느껴지는 소리”라고 말하고들 한다.



서도의 정서가 담긴 소리, 말을 길게 질러내는 ‘수심가’가 대표적


"서도 소리는 나름대로 상당한 멋과 매력이 있어요. 관서 지방(황해도·평안도)의 소리다 보니, 흔히 듣는 소리도 아니며 소리 자체에 한이 들어 있는 듯 떨리는 음이 많고 깊은 울림이 느껴집니다. 북쪽 지방은 아무래도 산이 많고 바다가 많아서 사람들의 기질이 다소 억세고 과부가 많았다 합니다. 또 북방 이민족의 결탁으로 벼슬을 못 받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죠. 따라서 이런 서러움과 한이 섞여 있는 소리가 바로 서도소리죠. 또한 ‘서도소리는 대동강 물을 먹어 보고 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려운 소리로 꼽힙니다.”

 

흔히 소리를 이야기할 때 ‘남南의 육자배기, 북北의 수심가’라 한다. 육자배기가 남도민요를 대표하는 것처럼 수심가愁心歌는 서도민요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서도민요뿐 아니라 ‘공명가’, ‘영변가’와 같은 서도 잡가까지도 끝을 여밀 때는 반드시 수심가조로 끝나는 공통점이 있다. 서도소리는 짧은 장절형식章節形式으로 된 민요와, 좀 긴 통절형식通節形式으로 된 잡가, 길게 뻗으며 한시漢詩를 읊는 시창詩唱 등이 있으며, 민요는 평안도민요와 황해도민요로 나뉜다. 서도소리의 선율은 흔히 ‘수심가토리’라 하여 위의 음은 흘러내리고, 가운데 음은 심하게 떨며, 아래 음은 곧게 뻗는 특이한 가락으로 되어 있는데, 느리게 부르면 구슬픈 느낌을 준다. 평안도민요에는 ‘수심가’·‘엮음수심가’·‘긴아리’·‘안주애원성’ 등이 있는데, 이 중 서도의 정서가 담긴 소리말을 매우 길게 질러내는 ‘수심가’가 대표적이다. 황해도민요에는 ‘긴난봉가’·‘산염불’·‘자진염불’·‘몽금포타령’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정情의 노래’라는 뜻의 ‘난봉가’와 ‘산염불’이 특히 유명하다. 잡가에는 ‘공명가’·‘사설공명가’·‘적벽부’·‘초한가’·‘관동팔경’·‘추풍감별곡’·‘관산융마關山戎馬’ 등 앉아서 부르는 좌창坐唱이 있는데, 이 중에서 ‘공명가’가 가장 유명하다. 시창으로도 분류되는 ‘관상융마’는 조선 정조 때 신광수가 지은 한시를 시창 비슷하게 읊는 것으로, 매우 유창하고 꿋꿋한 느낌을 준다.



공연, 제자 양성 등 서도소리 보존과 전승에 전력 다할 것


국내에서 활동 중인 예능 보유자가 단 3명으로, 전통 소리 가운데 가장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분야가 바로 서도소리이다. 예전에 관서 지방에서 활발하게 전승되던 서도소리는 해방 후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피난 온 소리 명창들이 낯선 타지에서 그 맥을 어렵게 전수하며 우리 고유의 전통을 조심스레 지켜 오고 있다.

"서도소리는 본 거지인 황해도와 평안도 등 북한에서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된 소리입니다. 현재 서도소리는, 서도소리보존회를 중심으로 일부 소리 명창들에 의해 겨우 유지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전통문화이며 아름다운 소리인 서도소리가 후세에 맥을 잇기 위해서라도 정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어느 새 소리 인생 35년을 맞은 이춘목 선생.

 

그는 끝으로 "요즘 소리를 하려는 젊은 사람들이 거의 없고, 더구나 서도소리는 비인기 분야이지만 그만큼 희소가치가 있는 소리”라고 하면서, "앞으로 중요무형문화재라는 책임감과 자부심을 갖고 제자들을 열심히 가르치며, 서도소리를 원형 그대로 잘 보존하고 계승하여 세계적인 문화재로 만들 수 있길 기대한다.”며 청아한 목소리로 힘주어 말을 맺었다.


▶글 : 허주희

▶사진 : 정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