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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칼럼] (35) ‘2005’의 아리랑 원형(原型)에서 전형(典型)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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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칼럼] (35)
‘2005’의 아리랑<9> 원형(原型)에서 전형(典型)으로

기찬숙/아리랑학회 연구이사

  • 특집부
  • 등록 2021.05.02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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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문화재청이 전국을 대상으로 아리랑의 실태를 조사하여 보고서를 냈다이 조사는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눴다서울 경기지역강원지역충청지역전라지역경상지역제주지역이다현실적인 사정으로 북한을 제외했으나현재의 전국이 아리랑을 전승하고 있음을 실증하였다이 보고서에는 아리랑의 역사어원후렴곡조와 사설의 변이전승 실상과 범위 등의 논점을 담아냈다이 중 4회에 걸쳐 강원지역 아리랑을 살피고 있다이번 회에서는 원형’ 문제를 제기한 대목을 살피기로 한다.

    

화면 캡처 2021-05-02 153959.jpg
경복궁 근정전 (景福宮勤政殿), 경복궁 안에 있는 정전(正殿). 조선 시대에 임금의 즉위식이나 대례 따위를 거행하던 곳으로,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고종 4년(1867)에 대원군이 다시 지은 것이다. 국보 제223호.

  

"경기 긴아리랑이 통속민요 아리랑의 시대를 연 뒤, 그 인기에 힘입어 여러 아리랑들이 거듭 뒤를 이어 나왔다. 우선 경기 긴아리랑의 뒤를 이어 나온 것이 경기 자진아리랑이다. 경기 자진아리랑은 강원도 향토민요 자진아리랑을 원형으로 삼아 변형을 가한 노래로 보인다. 그런데 이 노래의 인기는 19세기 말에는 이미 긴아리랑을 능가한 것으로 판단된다. 19세기말에 아리랑 자료로 기록된 사설과 후렴, 악보 등도 실은 모두 경기 자진아리랑의 것이다. 따라서 이미 말한 대로 19세기 말에 아리랑의 대중적 호응이 널리 있었고, 또 궁중 토목 공사의 노무자를 위로하기 위한 연희의 대표적 노래로 꼽혔던 아리랑은 모두 경기 지진아리랑으로 보아야 한다.”

 

인용 부분은 경복궁 중수 공사 현장에서 불린 아리랑은 어떤 것이며, 이와 경기지역에서 출현한 아리랑과는 어떤 관계인가라는 문제를 담고 있다. 이를 세분하면 이렇다.

하나는 지난 회에서도 살폈지만 궁중 토목 공사의 노무자를 위로하기 위한 연희의 대표적인 노래가 아리랑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 아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제시하지 않았다. 예컨대 강원지역 아리랑인지, 아니면 경기지역 아리랑인지를 특정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 아리랑을 필자는 지난 회에서 김연갑과 최현 등의 주장을 들어 문경새재소리(문경아라리)라고 하였다.

 

둘은 경기지역의 아리랑은 긴아리랑이 먼저 출현했고, 이를 이어 자진아리랑이 형성되었다고 하였다. 이 문제도 역시 지난 회에서 답습한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1883년 대 유행을 한 아리랑을 경기 자진아리랑이란 사실은 H.B.헐버트 채록 악보와 일치하여 이미 확인되었는데, 긴아리랑이 먼저 형성된 것이라고 하는 것은 선행연구(이보형)의 주장을 답습한 결과일 뿐이다. 왜냐하면 긴아리랑은 좌창계열 전문가의 작창으로 형성된 것으로 대중적 호응을 얻었다는 증거도 없고, 더욱이 중건 공사장에서 불릴 성격의 노래도 아니라는 점에서다. 정리하면 중건 공사장에서 문경새재소리가 불리며. 이의 변이형으로 경기 자진아리랑이 형성되었고, 이에 자극을 받은 전문가들에 의해 긴아리랑을 출현시켰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자진아리랑은 대중성이 강하고, 긴아리랑은 예술성이 담기게 된 것이다.

 

셋은 경기지역 자진아리랑은 "강원지역 토속민요 아리랑을 원형으로 삼아 변형~”한 것이라고 하였다. 원형이란 표현은 매우 논쟁적인 대목이어서 부연할 필요가 있다. 무형문화에서 원형이란 술어를 쓸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선정에서부터 오랜 동아 논의되어왔다. 그리고 2003년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에 가입하게 되면서 논의 되다 1962년의 문화재보호법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무형문화재법)로 개정하면서 이 술어를 페기 하였다. 무형문화재의 범위를 확대하고, 세대 간 전승과정의 변화와 특성을 고려하여 기존의 원형(原型)유지에 대응하는 전형(典型)유지원칙을 도입하였다. 2012년 까지 과거 고착형인 원형을 유지해오다 이를 폐기하고, 현재적 전승형인 전형을 수용한 것이니, 50년만에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무형문화재 관리체계를 마련한 것이다.

 

이는 1962년 당시로서도 원형유지 원칙보다는 전형 유지 원칙이 더 합리적인 논리이고 정책이었다. 그러므로 2005년 보고서 중의 표현도 합리적이지 못하다. 또한 같은 논리로 "일찍이 한반도의 중앙부에 위치한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발생된 아리랑은 한반도의 중동부에 위치한 강원도 정선지역을 중심으로 점차 확산~”라는 문화재청 기록의 단정적 표현도 적절하지 못하다. 이런 배경에서 2009년 문화재청은 정선아리랑만을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 신청을 하여 제외 당하는 오류를 범하였다.(물론 정선아리랑을 제외시킨 이유는 또 있으나 다른 회에서 상술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아직 민요학계 일부와 문화재 분야 일부에서 이의 합리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무형문화유산 전승 활성화에 결정적인 논리임에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