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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코로나 팬데믹으로 1년 넘게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은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대유행하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세계보건기구(WHO)의 전염병 경보단계 중 최고 위험 등급에 해당한다. 인류 최대 사망자를 기록한 전염병은 중세 유럽에서 유행한 흑사병(페스트)으로 최악의 바이러스로 손꼽힌다. 코로나19는 이 흑사병보다 훨씬 많은 희생자를 낳았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는 언제쯤 진정될 것인가? 전문가들마다 의견이 다양하다. 대체로 2~3년, 아니면 평생 코로나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참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같은 세상이라고 할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세상에 내던져진 미아가 된 느낌이다.
이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낯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 잊고 있던 ‘거리’를 체감하기 시작했다. 나와 너의 거리, 나와 집단과의 거리,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와의 거리, 삶과 죽음의 거리 등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동안 살아왔던 나 자신의 방식과 성향도 돌아보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며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왔던 것 같다. 그러다가 혼자가 되었다. 타인만을 바라보며 살던 나는 심한 고독감과 우울증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두려움과 죽음도 느낀다. 노인과 어린아이, 환자와 건강한 사람,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전 세계 사람들은 코로나에 전염될까 봐 걱정하는 것 같다. 이것은 위험한 게임인 러시안룰렛을 연상케 한다. 회전식 연발 권총에는 6개의 총알을 장전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단 한발의 총알뿐이다. 총알의 위치는 알 수 없어 방아쇠가 당겨질 때마다 조마조마해 할 수밖에 없다. 탄창이 돌아가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코로나의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게는 이것이 슬픔으로 다가온다. 그러다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런 불안과 슬픔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킬 수는 없을까?
제2차 세계대전 때 안네 프랑크(Anne Frank)는 나치 독일을 피해 가족과 은신처에서 숨어 지냈다. 안네는 13세 때 생일선물로 받은 일기장에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 훗날 출간된 <안네의 일기(Het Achterhuis)>는 안네가 본 시대 상황과 내면의 고백, 나치의 만행이 기록되어 있다. 일기장에는 "종이는 인간보다 더 잘 참고 견딘다”라고 적혀있다. 16세에 생을 마감했지만 그녀의 표현처럼 종이는 참고 견뎠고, 세계 각국의 언어로 출간되어 오늘날까지 읽히고 있다. <안네의 일기>는 갇혀 지낸 슬픔과 한이 원동력이 되어 새로운 창작물이 된 것은 아닐까.
안네가 겪었던 슬픔과 한은 일제 강점기 때와도 닮은 점이 있다. 그 암울한 시대에는 누이와 형님들이 한글 교육은 고사하고 이름조차 갖지 못했다. 갓난이나, 언년이, 돌쇠 등으로 불리었다. 우리말을 제대로 익힐 기회가 없던 조상들은 글을 읽고 쓰는 대신 민요와 판소리를 가까이했다. 또한 일제 강점기의 한을 품은 ‘트로트’도 작곡되어, 대중들로 하여금 불려지게 되었다.
슬픔을 달래고 위로와 희망을 준 우리 소리와 트로트야말로 잘 참고 견뎌낸 또 하나의 예술로 남은 것이다. 바로 우리 내면에 가지고 있던 내적 자유, 프라이버시와 같은 소중한 가치를 대중예술을 통해 발현하였기 때문이다.
'박상진의 한류 이야기'는 끊임없는 내면의 갈등과 싸우면서 자유롭게 풀어가고자 한다. 여러분의 애정 어린 관심을 부탁드린다.
편집자 주: 박상진은 교육자, 철학자, 지휘자, 예술행정가이다. 서울대 음악대학 국악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와 전)한국동양예술학회 회장, 전 서울시 국악관현악단 단장을 역임했다. 현재 학교법인 국악학원 이사장, 한국예술문화콘텐츠연구원 원장, 이북5도청 무형문화재 위원을 맡고 있다.
한편 영국 케임브리지 세계인명사전(IBC: International Biographical Centre) 21세기 탁월한 지식인 선정 및 등재 (2010), 미국 세계인명사전(ABI: American Biographical Institute) 21세기 탁월한 지성 선정 및 등재(2011) 된 바 있다. <박상진의 한류 이야기>는 매주 화요일 독자들과 함께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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