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9 (목)

한악계 별들 30: 고소한 해학이 일품인 鏡中藝人 이상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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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악계 별들 30: 고소한 해학이 일품인 鏡中藝人 이상규 교수

  • 특집부
  • 등록 2021.04.1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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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  

 

이상규1.jpg
이상규 교수 (1944 2010), 경기 포천 생, 1999~2001 제8대 서울시국악관현악단 단장, 상임지휘자. 1993 중요무형문화재 대금정악 전수교육조교

 

다른 이는 몰라도 이상규 교수가 회갑이라는 사실은 얼른 실감이 가지 않는다. 흔히 선배들의 나이 드심은 쉽게 눈에 띄어도, 후학들의 깊어지는 연륜은 의외란 듯 좀해서 믿겨지지 않는 인지상정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교수의 회갑에 대한 나의 의외성은 이와는 성격이 좀 다르다. 그는 팔팔한 장년 시절부터 머리는 은발이었다. 따라서 안면은 청년에 머리는 은발이라는 이미지가 곧 이 교수의 초상화처럼 나의 뇌리에 늘 각인되어 있었으니, 머리가 여전히 은발인 한 내 머릿속의 이 교수는 아직도 싱싱한 불혹의 연재年載쯤으로 감쪽같이 속고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대바람 소리.jpg
[국악신문]1974년 국립국악원이 주최한 '제1회 한국음악창작발표회 포스터 일부 캡쳐.'1985년부터 동아국악콩쿠르 자문위원, 1978년 대한민국 작곡상 대통령상, 1994년 KBS국악대상, 2007년 백남학술상 수상.


 여하간 이 교수의 은발은 적어도 은발을 선호하는 내게는 여간 인상적이질 않았다. 그와 관련된 내 머릿속 사진 중에는 우선 은발의 장면이 전면에 떠오른다. 하얀 두루마기에 은발을 휘날리며 멋지게 지휘를 하는 장면이 곧 그것이다.


은발에 부서지는 은은한 조명과 학창의 같은 흰 두루마기 자락에 단아하게 흐르는 지휘의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관중은 어느새 무대 배경으로 드리워진 산수화 속의 신선이라도 된 양, 마냥 그윽한 상념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기 예사다


그러고 보면 이 교수의 흰 두루마기 은발의 지휘 장면은 중생을 피안의 예술세계로 이끄는 통과의례적 마력魔力이자, 본인의 음악적 본령本領을 극명하게 압축하는 생생한 징표임에 분명타고 하겠다.


한편 이 교수의 창작곡 중에는 잘 알려진 대바람 소리가 있다. 이 작품은 대바람 소리/들리더니/소소한 대바람 소리/창을 흔들더니로 시작되는 시구를 모체로 하고 있지만, 나는 이 곡의 표제가 이 교수의 타고난 심성을 음악적으로 구현시킨 좋은 표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이상규 교수의 총체적 인상은 예부터 상찬돼 오는 대죽을 닮은 데가 있다. 우선 야무진 듯 단정한 풍모가 그렇고, 깔끔하고 사리가 분명한 천성이 그러하다.


일찍이 서울지방 사람들의 품성을 일러 경중미인鏡中美人이라고 했는데, 포천이 본관인 이 교수 역시 경중미인적 정갈함과 명료함이 유난히 드러난다


여기에 더해 재치있는 익살이 일품이다. 대나무 절조節操에 은은한 인간미를 조화시킨 성품이다. 그러고 보면 이 교수의 이미지나 작품 세계를 시각적으로 환치하면, 그것은 영락없이 엄동설한을 버텨 서 있는 고죽苦竹이라기보다는 따뜻한 남녘땅 초가 지붕 마당가에 올곧게 둘러쳐진 청순한 청죽靑竹임에 분명타고 하겠다.

 

(본 연재는 이지출판사 출간 '한악계의 별들'에서 발췌하여 게재한다. 이를 허락해주신 출판사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