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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
강정숙의 음악은 흐르는 물과 같다. 그만큼 유연하고 자연스럽다. 기교가 없는 바 아니나 드러나지 않고, 장인적 내공이 없을 리 없으나 나타나질 않는다. 음악이 완전히 체화되어 하나로 흐르니 마음과 음악 간에 경계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음악은 대교약졸大巧若拙의 경지처럼 편안하게 다가오고 간이하게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이 현란한 재간을 앞세워 음악을 한다. 재간이 앞서가면 가슴속에 뿌리를 둔 감성의 끈이 끊어진다. 심금心琴이 끊어지니 드러나는 소리인들 오죽하겠는가. 우리가 통상 경험하듯 메마르기 짝이 없고, 공허하기 그지없다.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말은 역시 고금의 진리가 아닐 수 없다. 깨끗한 흰 바탕에 그림을 그려야 색깔이며 형상이 제대로 각인되지 않겠는가. 매사가 매한가지다. 음악 또한 바탕이 문제다. 바탕은 닦지 않고, 그 위에 재주로만 수繡를 놓으려 하는 세태다. 마음속 정서의 텃밭에 눈길 한 번 주어 보지도 않은 채, 의례적인 관행처럼 손가락 연습에 발성 훈련부터 서두른다.
강정숙 명인의 음악은 이 같은 세간의 풍조와는 격이 다르고 차원이 다르다. 한마디로 신체 일부의 노련한 훈련으로 쌓아올린 음악이 아니다. 기교 훈련에 앞서 배양된 감성적 마음 바탕이 있다. 그 마음 바탕은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질일 수도 있고, 어려서부터 갈고 닦은 공력의 덕일 수도 있으며, 아니면 남도지방 특유의 지역적 서정이 배태시킨 필연적 인과因果랄 수도 있다.
아무튼 그녀의 음악 속에는 여느 음악에서는 좀해서 감지되지 않는 세미한 악흥이 있다. 더없이 부드럽고 따듯하면서도, 그리움이 자욱한 보랏빛 연무煙霧 같은 미감이 있다. 그가 병창을 하건 가야고를 타건 판소리를 부르건 한결같이 저변에 맥맥이 흘러가는 그녀만의 예술적 태깔이다.
드디어 강정숙 명인이 자신의 음악적 색조 위에, ‘만경벌 두레살이 걸죽한 육담肉談 남도길 굽이굽이 서린 정한情恨들’까지 입혀서 서공철류 가야금 산조 음반을 발간했다. 크게 경하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본 연재는 이지출판사 출간 '한악계의 별들'에서 발췌하여 게재한다. 이를 허락해주신 출판사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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