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0 (월)
"정승집 개가 죽었을 땐 문상객이 줄을 잇고 막상 정승이 죽으니 발길조차 뜸하더라는 옛말을 떠올립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이 ‘현직’일 때뿐이라는 각박한 세태를 떠올리면 가슴 속에서 불덩어리가 치솟기도 하고······.”
이 시대 한국 무용의 대가로서 부채춤의 창무자인 김백봉(金白峰ㆍ경희대 명예 교수) 씨는 손바닥 뒤집듯 쉽게 변하는 세상 인심에 몹시 섭섭해 한다.
그 동안 가르쳐 놓은 제자들의 근황을 물으니 대답하고 싶지 않다고 그는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동아대와 한양대를 거쳐 1964년부터 경희대 무용과 교수로 재직해 오는 동안 수천 명의 문하생들을 양성해 냈지만 막판에는 ‘황량한 들판에 홀로 서 있는 기분’ 이라고도 표현한다.
최근들어 김씨는 큰딸(안병수ㆍ33, 덕성여대 출강)의 한국 무용 이론과 막내딸(안병헌ㆍ31, 경희대 출강)의 무용 실기를 더욱 북돋워 주기 위해 남은 정열을 쏟아 붓고 있다. 여기에다 한국 무용을 전공하는 큰손녀(귀호ㆍ21, 경희대 무용과)와 둘째 손녀(혜진ㆍ16, 서울예고 2년)를 보면 새로운 용기와 힘이 솟구친다.
"내가 저 애들을 다시 싸잡아 가르쳐 그 최승희(崔承喜) 선생의 춤맥을 확실하게 이어 놓아야지······.” 김씨의 이런 결심은 모두가 1992년 3월 경희대 무용과 교수를 정년 퇴임한 후에 생긴 마음이다.
무대 예술 인생을 소원했던 지망생치고 한 번쯤 ‘김백봉 문하생’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안 가져 본 사람이 있을까. 특히 그가 추어 내는 창작 화관무와 양손에 부채를 든 부채춤은 가히 환상적이다. 절도있는 각(꺾음)으로 수없는 변화를 연출해 내면서도 잎 피기 전 수양버들 가지가 한들대듯 끝간 데 없이 유연한 김씨의 춤집은 완벽에 가까운 육체 언어이다. 여기에다 빼어난 미모와 고혹적인 몸매까지 어우러져 젊은 시절의 그는 ‘군중의 우상’이었다.
여자 나이 70을 눈앞에 두고도 샘솟는 정열과 젊음을 간직하고 있는 김백봉 명예 교수. 한평생을 오로지 춤으로만 살아 온 그의 발자취는 근ㆍ현대 한국 무용사와 맥락이 통해 무용사 정리에 커다란 의미를 갖게 된다.
1927년 평안남도 기양에서 출생(2월 12일)한 김씨는 ‘전설적 무용가’ 최승희와 동서간이며 그의 수제자이기도 하다. 김백봉 씨의 춤 일생은 요행과 풍상, 파란만장과 우여곡절이 겹친 가시밭길이었으며 때로는 목숨을 건 도박의 순간도 있었다고 한다.김씨의 무용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절세의 무용가 최승희를 알아야 한다. 1920년대 사회주의 문학을 이끌던 안막(安萬, 본명 안필승) 씨의 부인으로 광복 이후에는 월북해 북한 당국으로부터 ‘영웅’ 칭호까지 받은 ‘사상 무용가’이다.
최승희는 1926년 일본 현대 무용의 창시자인 이시이바쿠의 한국 공연을 보고 무용가가 되기로 결심했으며, 찬사와 비난을 함께 받아 왔다.
"키가 175cm나 되었고 15세에 두 번이나 월반으로 숙명여고를 졸업했습니다. 사람을 뇌살시키는 뛰어난 미모에다 하루 16시간씩 연습하는 타고난 춤꾼이었지요.”
김백봉씨의 남편 안제승(安濟承ㆍ72, 전 경희대 무용과 교수) 씨의 증언이다. 최승희 남편인 안필승 씨는 안제승 씨의 둘째 형이며 이래서 최승희와 김백봉은 동서간이 된다. 안제승 씨는 3형제이며 큰형 안보승(安輔承ㆍ87) 씨도 현재 서울 서대문구 역촌동에 생존해 있다.
안필승ㆍ최승희 부부는 북한에서 ‘최고 예우’시절을 보내다 70년대 중반을 넘기지 못하고 숙청당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안제승 씨는 "70년대 초반 인민숙소(시민아파트)를 배당 받았다고 들은 바 있으며 도주하다가 사망했다는 설도 있다.”고 말한다.
1920년대만 해도 ‘신식 기술’이었던 트럭운전사의 딸로 태어난 김백봉 씨. 어릴 적 이름이 충실이었던 김씨는 거꾸로 태어나 ‘거꾸리 참외’로 불렸다고 한다. 평양의 명륜여학교에 다니던 시절, 당시 거리에 나붙은 최승희 무용 공연 포스터를 보고 무조건 무용가가 되고 싶어졌단다.
아버지 손을 잡고 함께 진남포의 최승희 무용 공연장을 찾아간 것이 13세 때였다. 공연이 끝나고 분장실로 찾아가 "선생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울면서 매달렸다.
"그 때 최선생님은 쾌히 승낙하셨어요. 후리후리한 키에 꿈결같은 눈매, 날아갈 듯하며 잡힐 듯하던 몸매를 지금도 못 잊습니다. ‘형님’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지만 아무튼 그 분은 무용을 위해 전생부터 준비된 몸이었나 봐요.”
그 해(13세) 6월 18일. 어린 김충실은 최승희를 찾아 일본 도쿄로 갔다. 당시 돈 300원을 허리춤에 끼워 주며 혼자 떠나는 어린 딸을 어머니 아버지는 울면서 보냈다. 그 때 아버지는 "일은 자기가 찾아서 하는 것.”이라며 굳은 의지를 심어 주었다고 회고한다. 김씨는 자신이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열 세 살의 소녀가 평양에서 일본 도쿄까지 갔는지를 모르겠다고 한다. 도쿄 최승희 무용소를 찾아간 김씨는 1년여를 빨래ㆍ청소하며 ‘하녀 생활’을 했다.
여기서 만난 사람이 바로 현재의 남편 안제승 씨. 당시 안씨는 형수(최승희)와 함께 있으면서 주인집 가정 교사 생활을 했다. ‘선녀’ 같은 소녀 ‘김충실’에 반한 안씨는 이 때부터 사랑이 싹텄나 보다고 회고한다. 이렇게 해서 김백봉 씨는 최승희의 춤맥을 잇게 되고, 17세 때 첫 무대와 함께 이어지는 안제승 씨와의 결혼으로 최씨와의 관계가 더욱 확실해진다. 학도병에 끌려 가면서 김씨와 결혼한 안씨. 이들 부부의 사랑 얘기는 들을수록 애절하며 ‘안제승ㆍ김백봉 부부’가 지켜 온 한국 무용 반세기 또한 누구도 부인 못 할 큼직한 한국 무용사의 한 획을 긋게 된다.
해방, 그리고 이와 더불어 밀어닥친 안씨 일가에 대한 국민들의 오해. 안필승ㆍ최승희, 안제승ㆍ김백봉 부부는 1946년 6월 월북했다.
"굳이 여러 말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곳에서의 환대와 감시 그리고 숙청 직전의 탈출 등을 생각하면 내 인생이 왜 이래야 하는지를 고뇌하게 됩니다. 더욱 중요한 건 최승희 선생과의 예술적 마찰입니다. 최선생의 천부적 예술에다 나 자신의 타고난 ‘끼’를 보태고 싶었던 거지요.”
우여곡절 끝에 서울에 온 이들은 다시 ‘요시찰 인물’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 사상적 행적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순수한 무대 예술이었다. 이 와중에서도 박기홍 씨를 만나 승무를 전수받고 이동안(李東安) 씨를 만나서는 태평무와 승무를 떼받았다.
화관무, 부채춤, 차일춤은 물론 무용극 ‘심청전’, ‘우리 마을 이야기’, ‘물긷는 처녀’ 등 2백여 편의 발표작 모두가 한국인은 물론 세계인들을 감동시켰다.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 축제서는 물론 그 이전에도 김백봉의 한국 무용은 세계인의 가슴 속에 한국의 예술혼을 뚜렷하게 심고 다녔다. ‘무용시’에 이르기까지 그의 조형적인 무대ㆍ육체 언어는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대학 강단과 김백봉 무용연구소를 통해 배출된 후학들만도 수천 명을 헤아린다. 김씨는 자신이 제자들에게 가졌던 열정을 생각하면 세상 인심이 왜 이래야 하는지를 모르겠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행간’에 묻어 둬야 할 사연 들이 무수하다면서 노염을 다시 한 번 불태우겠다는 각오다.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그의 자택에는 보관문화훈장(1981년)과 함께 각국 에서 받은 훈장들이 거실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화려했던 지난날과 ‘현직’을 떠난 ‘거인’의 현실. 김씨는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는 것이라면 처음부터 다시 살고 싶다.”고 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전통 예인 백사람, 초판 1995., 4쇄 2006., 이규원, 정범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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