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8 (화)
흙의 소리
이 동 희
빈 터 <2>
"왜 다른 사람 다 듣게 그래유. 어서 들어가세유.”
아내는 남편을 부축하여 마루로 방으로 끌어들이며 오히려 송구하다는 듯 얼굴을 붉히는 것이었다.
억지로 방에 들어서자 또 저녁상의 상보를 벗기어 그의 앞에 밀어놓고 부엌으로 나가 뚝배기 토장을 데워 가지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박연은 아무 소리 못하고 밥상 앞에 앉았다. 책걸이를 하느라고 술도 먹고 떡도 먹고 이것 저것 입을 다셔 밥생각이 없었지만 아내의 성의를 생각하면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고 숟갈을 들어야 했다.
"같이 들어요.”
"예 알았어유.”
아내는 겸상에 마주 앉긴 했지만 밥그릇은 방바닥에 내려놓고 있었다. 그리고 숭늉을 가지고 와 상 위에 올려놓고야 술을 뜨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늘 있는 일이었던 것이지만 이날따라 너무 미안하고 안쓰럽게 생각이 되었다. 그런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하였다.
"밥을 상 위에 올려놓으시오.”
"아니 오늘 갑자기 왜 그러세유.”
아내는 몸 둘 바를 모르며 남편을 올려다 보는 것이었다.
"어서 내 말을 들으시오.”
그는 이번에는 아주 근엄하게 큰 소리로 말하였다.
그러자 하는 수 없이 아내는 밥그릇을 상 위로 올려 놓긴 하였지만 술을 뜨지는 않았다.
"어서 드시오. 정말 나라는 사람은 나밖에 모르고 산 것 같소. 수신만 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소. 용서하시오.”
그러며 다시 눈물을 보이고 사죄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었다. 아내가 술을 뜰 때까지 강권하는 것이었다.
아내는 남편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하며 뼈 있는 말을 토로하는 것이었다.
시키는 대로 할 터이니 절대로 눈물을 보이지 말고 미안해 하지 말고 늘 하던 대로 하라고 주문을 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사정을 하고 애원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내의 말이 너무도 고맙고 갸륵하였다. 그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고 아내도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였다.
아내에게 다시 한 번 진 것 같았다. 같은 것이 아니고 정말 그랬다. 그러나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아내는 다시 아녀자에게 지면 되느냐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내 대장부가 소소한 일에 얽매이면 쓰느냐는 것이다. 아내는 그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가지라는 것이 아닐까. 근심하지 아니하고 미혹되지 아니하고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용기 말이다. 항상 되뇌이고 있는 어록이다.
세상에서 가장 넓은 집(仁)에 살고 천하에서 가장 바른 자리(義)에 올라 앉으며 세상에서 가장 큰 길(道)을 걷는다. 인의의 길이다. 남이 알아서 써 주면 백성들과 함께 그 길을 걷고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홀로 그 길을 간다. 부귀도 그의 뜻을 어지럽히지 못하고 빈천도 그의 뜻을 움직이지 못하며 총칼도 그의 뜻을 굴복시키지 못한다.
맹자의 대장부상像이다.
박연은 아내의 간절한 눈빛에서 그런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그날 밤 늦은 저녁상은 한없이 길어졌다. 그는 뒤란에 묻어 두었던 호리병을 파내어 가지고 들어와 두 사람의 밥그릇에 따루었다. 봄에 진달래 꽃잎으로 담은 술이었다. 아내는 세숫대야를 들고 와서 손을 씻으라고 하고 수건도 대령하는 것이었다. 어느 사이 술도 예쁜 잔에 따루어져 있었다.
"햐 참, 당신!”
"술은 술잔에 드셔야지유.”
"그러게 말이오.”
아까와는 달리 파안대소를 하며 술잔을 기울이고 아내에게도 따루어 주었다.
아내도 얌전히 잔을 받고 반배를 하였다.
나누지 못했던 합환주合歡酒였다. 효도다 시묘다 늘 근엄하기만 했다.
가을 밤 환한 달빛이 들창으로 넘어 들어왔다.
그는 혀가 말을 듣지 않는 대로 일생일대 중대한 발표를 하였다.
"그동안 닦아온 학문을 이제 시험을 한번 해 보리다. 아직 부족한 것이 많지만 용기를 내 보겠오. 떨어지더라도 너무 실망은 하지 마시오. 계속 도전할 생각을 하고 있으니께 말이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아내가 울고 있었다. 너무 황공하였던 것이다. 슬퍼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너무 기뻐서 그런다고 하였다.
그날 밤 합환은 거칠고 끝이 없었다.
깊은 가을밤은 달이 질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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