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4 (화)

전통예술 사진작가 정수미의 부고를 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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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뉴스

전통예술 사진작가 정수미의 부고를 접하고..

  • 김지연
  • 등록 2004.11.13 21:54
  • 조회수 1,513
일요일 자정이 넘은 시간 많은 예술인들이 장례식장으로 속속 도착했다. 당일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끝내고 오신 장사익선생과 통영공연을 마치고 올라오던 처용팀 들, 박간영 사진작가 선생님과 많은 작가들, 정말 많은 이들이 찾아들고 있었다. 그중에 분명 오늘 음악 감독으로 통영에서 공연을 하고 계실 남해안 별신굿 인간문화재이신 정영만 선생님 일행이 도착하셨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정영만 선생님의 주관으로 ‘덜채 굿’이 진행된다, 그냥 무심하게 앉아 있으려고 노력해 보지만 망자를 부르는 대목에서는 어쩔 수없이 그 장소에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정수미. 그를 위해 많은 국악인과 예술인들이 모여서 지금 축원하고 있는 것이다. 마흔 나이에, 한참 일할 나이에 가버린 그는 무엇이 그리 급해서 가버린 것일까? 그동안 그녀는 참 열심히 일했다. 사진과 다시 인연을 맺고, 그녀가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고 전통예술계에 깊이 파고들게 된 것이 내가 기억하기로는 밀양백중놀이 오북 춤을 가지고 대상을 받으면서 전통예술에 더욱더 심취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 다음 가는 곳 곳 마다 그녀는 카메라를 들고 어김없이 그 장소에 있었고, 정성을 다해서 예술세계를 담아갔다. 사진하는 사람들이 사진은 카메라로 찍는 게 아니고 발로 찍는다고 항상 이야기 한다. 그것은 항상 그 현장에 있어야만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것을 가장 잘 보여준 사람이 그녀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굿이 열리고 판이 열린다면 전국 어느 곳이든 조그만 프라이드 승용차를 가지고 밤새 달려가 그 현장을 지키고 그들과 호흡하고는 했다. 그리고 사진은 기술로 찍는 게 아니고 사랑과 정성으로 찍는다는 게 나의 생각이고 다른 많은 사람들의 생각인데, 아마 그것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 그녀일 것이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해서인지 많은 나이에 신구전문대 사진과를 입학하여 다시 사진을 공부했다, 그게 무슨 뜻일 까 많은 의아심을 가지고 지켜보는데,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서울에서 그 먼 안동대 민속학과를 다시 편입하여 공부와, 그 방대한 서울의 마을 굿을 연구하며 사진작업을 병행하였고. 서울의 마을 굿에 관한 책도 발간했고, 학교도 몇 년 전 졸업한 걸로 알고 있다. 만일 그녀가 사진으로 명성이나 갖고 돈이나 벌면서 살아가려 했다면, 개인전과 많은 수상실적, 그리고 그녀의 이름으로 발간한 많은 책들을 통하여 충분한 실력과 지식을 검증받고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굳이 마흔이 오는 나이에 학교로 돌아가서 그 긴 시간동안 공부와 일을 겸하게 만든 것은 이 전통예술 판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그녀를 더 깊이 파고 들어가 알고픈 갈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여자에게 마흔이라는 나이, 그리고 결혼하지 않고 사진작가라는 일과 같이 살아갔던 여자, 더군다나 전통예술 판에 예술인들의 몸짓과 신명을 찍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데 그 일이 자기의 천직이라고 묵묵히 헤쳐 나갔던 당찬 여자, 내 자신도 전통예술이 좋아서 쭉 작업을 하고 있는데 내가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고 부끄러워 말 할 수 없게 만든 이로 나는 정수미를 기억한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질리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아마 전통예술에 대한 애정에서 내가 넘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았으리라. 이제는 그녀는 갔다. 1년여를 넘게 암에 시달리다 왔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 고통 속에서도 항상 미소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그녀였는데, 이제는 다시 돌아간 그곳에서는 좀 편안해졌으리라,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항상 그녀는 우리 주위에 남아있다. 음악을 들으려고 시디를 보면 그녀가 찍은 사진이 자켓 사진으로 남아있고, 필요한 자료를 찾다보면 어김없이 그 곳에는 그녀가 찍은 사진이 먼저 다가온다. 그녀는 자기가 이리 일찍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결혼하는 시간까지 아까워서 그리 욕심 많게 많은 작업을 하고 간 것일까? 고인의 글을 부탁받고 내가 글 작업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무척 망설이고, 내가 그녀가 해온 일들을 다 이야기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 고인이 남기고 간 많은 일들을 작게 만든 건 아닌지 이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고인에게 무척 미안한 마음이다. 하지만 국악과 전통예술, 판이 좋아서 남아 있는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것은 조그마한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던 그녀였지만, 고인이 남기고간 전통예술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정성일 것이라는 것은 모두가 공감할 것이라는 마음으로 글을 맺는다. 임춘섭 (www.dijoo.com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