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4 (화)
영천시청 청사에서는 퇴근 5분 전에 영천아리랑이 울려 퍼지고 있다. 지난 10월 1일 제9회 ‘아리랑의 날’부터 지역을 상징하는 노래 영천아리랑이 방송되기 시작한 것이다. 공직사회가 지역 전통문화의 중요성을 생활화 하여 결속력을 높이는데 앞장 선 것이다.
많은 지자체가 축제 및 경연대회와 관련 사업을 해 오면서도 전체 공직자가 지역 아리랑 계승과 전형화에 함께하는 경우는 없었다. 이런 사실에서 영천 시청의 이번 결행은 32개 아리랑 관련 단체는 물론 타 지역 공직사회에도 신선한 충격으로 전해질 것으로 본다.
그동안 전국 지자체에서 아리랑 전승 활성화를 위한, 또는 창조적 계승을 위한 사업은 다양하게 펼쳐져 왔다. 초기 사업 형태로는 음원(LP레코드, 1972/2000년 이후 CD) 제작과 사설집 발간(1972), 배포이다. 다음이 노래비(기념비) 건립이다. 형태는 비 전후면에 사설과 유래를 세긴 경우와 ‘지역명+아리랑’이란 단순한 글을 새긴 표석 형태이다. 정선아리랑의 경우 1977년 비봉산에 건립한 노래비를 비롯하여 4곳에 세워져 있고, 밀양 (3 지역), 문경(2 지역)과 정읍(1 지역)과 진도(1 지역) 등에 건립되어 있다. 다음은 축제와 경연대회를 정례화 하는 경우이다.
이 형태는 대다수 지자체가 시행하고 있다. 상주시의 경우 축제는 7년 전부터 시행해오다 경연대회는 금년 11월 말 처음으로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개최 시작은 정선군이 1976년 군민체육대회 형태로 처음 시작하였고, 이어 밀양, 진도 순으로 정착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2003년 세계유니버시아드 대회 개최를 기념하여 대구에서 대구아리랑제가 시작되었고, 이어 문경, 영천, 춘천, 경산, 부산, 제주 등지로 확대, 개편이 이뤄져 오는 실정이다. 예외적으로 ‘사할린아리랑제’가 코로나 정국 이전까지 4회 정례화 되어 오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은 대개 외지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일면에서는 일회적이고, 관성적이고, 치적사업으로 이뤄지기도 하였다. 이에 대한 평가는 다양한 측면에서 다를 수 있지만 지자체장의 결정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치적 사업으로 의심을 받는 경우도 있어 진정성 있는 아리랑 전승 사업으로는 의심의 여지가 있기도 하다. 이런 평가는 전 지자체 공직 구성원 모두가 공감하는 사업이 아니라 특정 부서의 사업으로 이뤄진다는 한계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사실에서 전 구성원의 진정성이 반영된, 또는 그런 상황을 조성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아리랑을 송출하는 영천시청의 사례를 주목하게 된다. 지역 아리랑에 대한 특정 부서만의 관심이 아니라 전 공직자가 관심과 이해를 갖고, 또는 갖기 위해 시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를 주목하는 이유는 이를 권고하는 목소리가 이미 20년 전부터 있어 왔다는 사실 때문이다. 학계와 전승 단체가 지역 아리랑 활성화 방안의 하나로 공직자들의 전반적인 이해와 애정 없이는 지속적인 전승 활성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동안 학술 모임에서나 언론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해 온 터이다. 이의 결과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현재 두 지자체 청사 내부 화장실에 아리랑을 내보내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는 시행 목적 자체가 외부인 또는 관광객에 대한 제한적인 서비스 차원이지 공직 구성원 전체가 아리랑 이해를 위한 활동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문제는 성과와 이의 평가가 문제이다. 객관적이고 심층적인 면접 조사 등에 의해 평가되어 성과가 확인이 되면 이 사례는 전 지자체에 보급될 여지가 있다. 그래서 영천시청의 이번 단행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결코 한 지자체의 이벤트가 아닌 긍정적 문화운동의 한 모범 사례로 기록되기를 기대하는 이유이다.
최기문 영천시장은 8일 오후 2시 시민회관에서 개최된 제9회 영천아리랑대축제 축사에서 이 사실을 밝혀서 외지 공연자들로부터 큰 환호를 받았다. 특히 이를 의미화하기 위해 이번 영천아리랑대축제에 북한 출신 무용가 최신아를 특별 초청, 최초로 북한의 민성창법에 의한 영천아리랑을 시민들에게 전하는 기회를 갖기도 하였다. 이 역시 매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할만하다. 왜냐하면 영천아리랑의 귀향 이면의 서사(스토리텔링)를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기 때문인데, 우리 근대사를 축약적으로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타향살이에서 영천아리랑의 기능이 어떠했는지를 전하는 계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907년 정미의병의 패퇴(敗退)로 많은 의병들이 ‘의로운 거병 정신을 지키기 위해(去之守舊)’ 연해주와 만주로 넘어갔고, 이들이 바로 해외 항일민족투쟁 중심세력인 독립군으로 변신했다. 그런데 이들이 군가로 때로는 사향가(思鄕歌)로 부른 노래인 ‘독립군아리랑’에 놀라운 사실이 담겨 있었다. 이 독립군아리랑의 곡조가 영천아리랑 곡조와 같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문경지역과 춘천지역 의병 관련 아리랑 사설의 발굴로 ‘의병아리랑’으로 명명하여 주목해 왔는데, 그 곡조를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한 상태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단서를 영천아리랑의 귀향으로 추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영천아리랑 귀향의 역정(歷程)은 절절하다.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들의 노래 곡조로 기능을 하였고, 이를 중국 동포사회가 본래의 곡명 영천아리랑으로 불러(Naming) 주었다. 그러다 해방이 되고 한국전쟁기 항미원조 조선전쟁에 참전한 중국 동포들이 이를 북한에 전해주었다. 이를 의미 있게 받아들인 북한은 1954년 "대구 인근의 사과가 많이 나는 영천의 민요”로 기록하며 널리 불렀을 뿐만 아니라 정책가요 ‘랭산모판 큰애기’라는 곡명의 노래도 재형상하여 불렀다. 그리고 다시 일본 조총련 사회와 동구권 국가 동포들에게 이를 확산시켰다. 새 세기 2000년을 맞아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우리 방송에 영천아리랑이 여러 차례 송출되면서 비로소 고향 영천으로 귀향을 하게 되었다. 이런 영천아리랑의 역동적인 행로를 이번 시청 청사 방송과 북한 가수의 영천아리랑 공연으로 되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기회였다.
영천시의 이 같은 활동이 내년 제10회 영천아리랑대축제와 아리랑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10주년 기념, 아리랑의 날 10주기 기념, 그리고 영천시가 개최하는 의병제에 더욱 크게 보일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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