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2 (일)
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
하늘이 내린 천품이란 인간의 한계 밖인지라 어쩔 도리가 없다. 여기 천품대로 바람 따라 물결 따라 천하를 기인처럼 주유하며 살다 간 한 시대의 풍류객이 있다. 연정燕亭 임윤수林允洙 선생이 바로 그분이다.
그분의 정체를 제대로 표현할 어휘가 없어서 풍류객이라는 말을 붙여 봤지만, 이 역시 정확한 낱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만큼 연정 선생의 실체는 가변적이며 변화무쌍이다. 붉다 싶으면 붉게 보이고 푸르다 싶으면 푸르게 보인다. 국악계에 남긴 업적을 보면 국악인이고, 사시사철 전국의 사찰을 내 집처럼 드나들며 기거하던 행적을 보면 영락없는 재가승에 분명했다.
연정 선생은 십 대 후반에 경주 율방에서 당시 신은휴申恩休 사범에게 거문고 풍류를 배웠다고 한다. 이미 감수성이 예민한 십 대 때 국악의 속멋을 몸과 가슴으로 익힌 셈이다. 이것이 하나의 문화적 DNA가 되어 평생을 국악계와 인연을 맺으며 즐비한 업적들을 후세에 남기게 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분의 업적 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1981년 충남 대전에 대전시립연정국악연구원을 설립한 일이라고 하겠다. 국악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중부지방에 어엿한 시립국악단을 창설한 것이다. 연정 선생의 업적이나 위상이 여간하지 않고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더더구나 공공적인 시립기관에 본인의 호인 연정燕亭을 앞세워 단체명을 정할 정도로 당시 그분의 위치는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연정 선생을 자주 뵙고 오랜 기간 인연을 이어왔다. 특히 문화예술계에 몸담고 있던 그분의 아드님 임동지 씨와 자별하게 교유해 오던 덕택이기도 하다. 아무튼 연정 선생 역시 내 또래 동년배들과는 달리 나를 각별히 배려하며 챙겨 주셨다.
80년대 초였다. 연정 선생이 이끌던 대전연정국악단이 일본 도쿄 공연을 떠났다. 당시 지방의 신생 연주단이 감히 해외 연주를 도모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는데, 연정 선생은 그것을 결행했다. 그때 선생은 단원도 아닌 나를 특별히 초청하여 일본 공연에 동행시켰다. 지금도 기억에 새로운 것은, 공연 때 단장으로서 집박을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연정 선생은 단원들의 연주가 시답잖다 싶었는지 느닷없이 프로그램에도 없는 시조 한 수를 무대에 나가서 여봐란듯이 불러제꼈다.
이처럼 선생은 원효대사의 무애가無碍歌를 실천하듯 세상사에 구애받는 것을 싫어했고 매사를 훨훨 털며 구름처럼 바람처럼 소요하며 살았다. 법정 스님에 앞서 무소유를 실천한 분도 선생이지 싶다. 서예건 그림이건 들어오는 족족 남에게 주어 버리며 평생을 공수래공수거로 일관했다. 그리고 공자가 칠십에 깨달았다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의 경지처럼 천지만물과 교유하며 마음 가는 대로 풍류랑風流郞처럼 한 세상을 일관했다.
여기 그분의 기질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재미있는 인사법을 하나 소개한다. 거침없고 활달한 성품 그대로 연정 선생은 반가운 이들을 만나면 그것부터 움켜잡는다. 여기 ‘그것’이란 남자의 그 소중한 물건을 말한다. 이 같은 인사는 물론 잘 알고 신임해 오는 후학들에게만 한다. 그분 특유의 너털웃음과 함께 "그동안 잘 있었는지 어디 한 번 만져 보자꾸나”라며 이쪽의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날렵하게 그곳을 잡으며 자별한 답례를 보낸다. 교수건 이름난 연주가건 내 또래의 연배 중에서 그분에게 ‘그곳’을 잡혀 보지 않은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연정에게 그곳을 잡혀 봐야 비로소 국악계의 괜찮은 인물로 인정받는 격이 되는 셈이다. 요즘 말로 하면 일종의 인증 샷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연정 선생에게 한 번도 그곳을 잡혀 보지 못했다. 아예 깜냥이 안 된다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어찌하랴. 아무리 깜냥을 키워 본들 고인이 되신 연정 선생께 ‘인증 샷’을 받기는 다 틀린 일이니 말이다.
(본 연재는 이지출판사 출간 '한악계의 별들'에서 발췌하여 게재한다. 이를 허락해주신 출판사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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