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2 (일)
지난 회에서 1930년대를 산 세 지식인, 영화감독 나운규, 정치학자 고권삼 그리고 ‘독립혁명가’(1984년 번역자가 규정한 표현) 김산의 아리랑관(觀)을 대비하였다. 나운규는 독립운동가이며 영화감독으로서 자신이 그리는 아리랑은 남성적이고 의협적(義俠的)이라고 했고, 고권삼은 일제의 본토에서 식민지 조선의 정치사를 입론하는 입장에서 아리랑은 비폭력적이고 순치(順治)된 이들의 노래라고 했다. 그리고 김산은 ‘고통 받는 민중들의 뜨거운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라고 했는데, 이는 1910년대로부터 30년대 격동의 조선이 겪는 파고를 몸으로 부대끼며 실천한 자가 아니면 토로할 수 없는 아리랑관이라고 규정하였다. 과연 김산의 이 같은 진술은 ‘Song of Arirang’ 속에 어떻게 구체화 되었고, 그 의미와 깊이는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Song of Ariran’의 님 웨일즈 서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한 문장 안에서 많은 열쇠말(K-word)를 담고 있다. ‘남자(김산)’, ‘연안(延安)’, ‘1937년’, ‘도서관’, ‘영문책자’, ‘명단’인데, 이 책 속의 아리랑을 맥락적인 이해를 돕는 키워드이다. 이 중에 1937년이란 시점은 매우 의미심장한데, 김산에게는 인생과 진술의 최종의 시한(時限)이고, 님 웨일즈에게는 1941년 초 인쇄에 넘기는 기간인 3년간이란 집필의 시작 시점이다. 맥락적 이해의 중요한 단서인 것이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연안에서였다. 그곳에 머물러 있던 1937년 초여름 어느날, 나는 루쉰(魯迅)도서관에서 영문 책자를 빌려간 사람들의 명단을 훑어보고 있었다.”
김산과의 우연한 만남, 국민당에 포위를 당한 중국공산당 본부가 있는 연안, 두 사람의 지식욕이 강하여 독서 범위가 넓은 상황을 알려주는 노신도서관, 영어 해독과 소통이 가능한 사이라는 점, 중국 속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많은 조선인들의 존재, 이런 정황 속에서 아리랑이 언급되었고, 이들 간의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보여 주는 것이다. 우선 책명으로부터 접근해 본다.
‘Song of Ariran’에는 표제(表題)로서, 노래 가사를 통해서, 노래의 역사와 기능에 대한 진술 부분에서 ‘아리랑’이 등장한다. 우선 책명을 ‘Song of Ariran’으로 한 점이 주목된다. ‘Ariran’이 노래라고 부연한 것과 표기의 문제이다. 이는 님웨일즈가 김산이 희곡 작품명이나 상호명 ‘아리랑’을 말한 것과 구분하여 표기한 결과이다. 그리고 표기에 있어서는 모두 일반적인 표기인 ‘아리랑(Arirang)’이 아닌 ‘아리란(Ariran)’으로 표기한 문제이다. 이는 당시 일본의 표기를 따른 것으로 본다. 일본은 ‘란(Ran)’을 ‘란’과 ‘랑’으로 함께 발음한다. 이 역시 님웨일즈가 표현한 것으로 본다. 아마도 당시 님 웨일즈가 중국, 필리핀, 미국에서 집필에 참고한 자료가 모두 일본 측의 것이거나 일본어 표기 자료였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님웨일즈를 만나고 그의 자료를 검토한 김연갑 선생이 "관련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코네티컷주립대 도서관에서 충분히 검토하지 못하여 단정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님 웨일즈는 여건 상 중국과 필리핀, 그리고 미국에서 관련 자료를 참고했을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결국 ‘Song of Ariran’이란 표현은 김산의 ‘공식 기억(Official Memory)’이 아닌, 이를 듣고 옮긴 님 웨일즈가 재해석한 표현인 것이다.
‘Song of Ariran’의 목차 앞에는 5절의 아리랑이 수록되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면에 길지 않은 글이나 경구가 담긴 경우는 주인공이나 독자에게 전하는 필자의 헌사(獻詞)일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이 책의 아리랑은 님 웨일즈가 김산과 한국인에게 보내는 헌사임이 분명하다. 이런 사실에서 이 별면 돌출은 님 웨일즈가 이 책의 이름을 ‘아리랑’으로 삼은 배경을 알 수 있게 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는 열 두 구비/ 마지막 고개를 넘어 간다
청천하늘엔 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수심도 많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아리랑 고개는 탄식의 고개/ 한번가면 다시는 못오는고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이천만 동포야 어데 있느냐/ 삼천리 강산만 살아있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지금은 압록강 건너는 유랑객/ 삼천리 강산만 잃었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a(Ariran)"로 시작하는 것들은 크게 발음하고 마지막 음절에 악센트를 붙여서 아-리-란(아-리-랑)으로 강하게 발음한다.)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s of Ariran
There are tweleve hills of Ariran/ And now I m clossing the last hill.
many stars in the deep sky/ Many crimes in the life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s of Ariran.
Ariran is he mountain of sorrow/ And the path to Ariran has no returning.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s of Ariran.
Oh, twenty million countrymen/ where are you now?
Alive are only three thound li/ of mountains and rivers.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s of Ariran.
Now I am an exile crossing the Yalu Rive/ And the mountains and rivers of three thounsand li are also lost.
Ariran, Ariran, Arari O!/ Crossing the hills of Ariran.
(pronounced with broad "a's" and accented on the last syllabe, thus, A-ree-ran)
이 책에서 아리랑 가사를 독립적으로 표기한 것은 이 자료가 유일하다. 그러나 다음 회에서 살피게 된 ‘아리랑2’에서는 두 편이 더 있다. ‘아리랑옥중가’와 ‘아리랑연가’가 그것이다. 이를 연관 지어 볼 때 김산이 님 웨일즈에게 아리랑을 진지하게 불러 주었고, 이에 대한 설명이 충분히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필자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올린 "김산이 부른 아리랑-Song of Ariran 속의 아리랑에 관한 진술(2005년 자료집)”에서 제시했듯이 다양한 내용의 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5절 형태의 아리랑을 한 편으로 볼 때 1930년대 당대 잡가집이나 창가집이나 민요조사 자료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다. 이는 많은 아리랑 가사에서 나름의 주제대로 재정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사항에서 확인이 된다.
하나는 후렴의 위치와 형태이다. 후렴을 먼저 부르고 사설을 부르는 방식은 본조아리랑의 전형이다. 또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라는 2행 3음보 가사도 1926년 개봉 영화‘아리랑’ 주제가의 후렴이다. 이는 1930년을 전후하여 정형화된 것이다.
둘은 총 5절의 가사 배치 문제이다. 제2절 "청천하늘엔 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수심도 많다”는 주제가‘아리랑’에 있는 것이다. 나머지는 주제가 이후에 첨부된 것들이다. 그러므로 이 5절은 주제의 서사를 염두에 두고 재구성 한 것이다. 즉, 1절 "아리랑 고개는 열 두 구비/ 마지막 고개를 넘어 간다”라고 한 것과 마지막 5절 "지금은 압록강 건너는 유랑객/ 삼천리 강산만 잃었구나”라는 데서 조국 산천을 떠나 압록강 건너 중국으로 왔다는 처지를 제시하고, 그 ‘마지막 고개’에는 잃어버린 삼천리 땅을 두고 왔다는 분통을 표현한 것이다.
비극적이지만 이는 현실이고, 김산은 이를 분명히 직시하고 아리랑을 부르는 이유를 제시하였다. 님 웨일즈는 이 아리랑을 통해 조국을 되찾기 위해 투혼을 불사르는 조선의 한 청년을 거대한 중국혁명 대열에서 발견하고 주목한 것이다.
마지막은 노래에 대한 두 곳의 부연(敷衍) 부분이다. 이 부분은 필자가 처음으로 주목하고 번역한 부분인데, 곡명 밑의 것과 5절 마지막 문장이다. 전자는 "망명과 투옥과 국가적 굴욕을 담은 한국의 전래민요”라는 부분이다. 이는 이 노래의 성격과 기능을 표현한 것이다. 김산이 처음으로 일제에 넘겨져 투옥된 1930년 11월 20일 이후의 경험을 통해 구성된 것임을 알려 주고, 김산이 아리랑을 부르는 이유를 알린 것이다.
후자는 "a(Ariran)"로 시작하는 것들은 크게 발음하고 마지막 음절에 악센트를 붙여서 아-리-란(아-리-랑)으로 발음한다.강하게”라고 설명한 부분이다. 이는 진술자와 기록자가 매우 진지하게 묻고 답한 결과이다. 이 시기 아리랑 가창에 대한 주(註)를 부친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이상에서 검토에서 ‘Song of Ariran’ 속의 아리랑 진술은 진술자 김산과 기록자 님 웨일즈 간의 진지하고 긴밀한 관계에서 이뤄진 결과임을 확인하였다. 또한 정연한 진술이었든, 아니면 정연하게 정리한 것이든 그 결과는 분명 주옥같이 빛나는 ‘아리랑’ 한 편인 것이다. 참고: 김산, 그리고 아리랑(www.arirangna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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