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3 (월)
흙의 소리
이 동 희
피리 소리<4>
호랑이 설화는 하늘과 땅을 감동시킨 이야기들이다. 박연의 효행은 여러 말로 설명할 필요없이 그가 25세 때 태종(2년, 1402년)의 명命으로 정려를 받은 이름난 효자였다. 효자 집안이었다. 4촌 동생인 국당菊堂 박흥생朴興生 이요당二樂堂 박흥거朴興居와 함께 박연의 효자각이 심천 고당리에 세워져 있다. 삼효각三孝閣이다.
박연은 조상들의 가르침대로 행하였지만 향교에 나가며 가례家禮를 몸소 실천하였던 것이다. 중국 송나라 때 가례에 대한 주자朱子의 학설을 모아서 편찬한 것으로 가정에서 지켜야 할 예의범절 특히 관혼상제에 대하여 세세하게 기록해 놓은 책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정통을 삼았고 무엇보다 예학禮學을 중시하여 온 사림들은 물론 모든 선비들의 실천 덕목이었다. 선비들뿐 아니라 꿈을 가진 이 땅의 젊은이들,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기본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끝이 없고 한이 없는 것이 효이며 성이었다. 어머니 경주김씨의 3년 상을 여막에서 보내고 다시 어릴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시묘살이를 3년 더 하였던 효성은 호랑이의 심성도 움직인 것이다.
효는 백행의 근본이라고 말한다. 박연은 천성이 곧고 바르며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이 해야 할 바를 한 치도 건너 뛰지 않았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며 그의 성정이었다. 아홉 마리 소의 한 터럭만큼도 거짓된 마음을 갖지 않으며 마음에 없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거리낌이 있으면 되돌아보고 되물어보고 되짚어보고 하였다. 집안 어른들 마을의 어른들에게 물어보고 향교의 훈장이나 서생들에게 물어보았다. 아니 누구에게 물어보기 전에 스스로 터득하였고 하는 일마다 그르침이 없었다. 적어도 유소년기 그의 언행은 그랬다. 도무지 아이 같지 않았다. 그것이 마냥 장점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줄곧 그런 삶은 지속되었다. 효행은 그중의 하나였다. 충신어효자지문忠臣於孝子之門, 충신은 효도하는 집안에서 나온다는 말인가. 생원生員으로 급제하여 문과에 초임되어 예문관 대제학大提學의 관직에 있는 동안 그가 충신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충직하고 성실하게 임하였고 거기에 열정을 다 쏟아부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였다. 생을 바치었다.
그러나 호랑이를 움직인 것은 그의 효행이나 충직하고 열정적인 그 어떤 것만은 아니었다. 신묘한 경지에 도달한 음악적 소양이라고 할까, 천부의 재능이 발휘되어서인가, 그의 손놀림과 입바람을 타고 물무늬처럼 영롱하게 울려 퍼지는 가락은 하늘과 땅을 감동시켰던 것이다. 청솔가지를 흔들며 새들이 다투어 노래 부르고 짐승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음악의 감화력은 금수에까지 미치었던 것이다.
선인들이 음악으로써 백성의 정서를 순화함을 정치의 요체로 삼았던 까닭도 여기에 있었던 것이고 박연의 일생일대의 사명도 거기에 있었던 것이지만 그 이야기는 다시 하기로 하고, 피리 소리의 근원을 더듬어 올라가 보자.
소년 시절이었다. 무슨 일로였던지 한양에 며칠 동안 다녀온 적이 있었다. 세 살 때 떠난 아버지 대신 담대하고 늠름한 소년 박연이 며칠 동안을 여관에 머물러 있으면서 객수客愁에 젖어 있을 때였다.
깊은 밤 어디선가 아련한 가락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필닐니리……
필닐닐 필닐니리……
멀리서 아련히 가느다랗게 들려오는 그리운 소리, 간장을 녹이는 가냘픈 피리 소리였다.
귀를 기울여 듣고 있던 소년은 왠지 슬픔에 젖기도 하고 한없는 아쉬움에 휩싸이기도 하며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피리 소리가 끊어진 다음에도 계속되는 여운을 느끼었다.
뜻밖의 난데없는 피리 소리의 간절한 여운에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렇게 아름다운 음곡은 처음 들어보았다. 애절하고 간절하고 그리움과 아쉬움에 부대끼게 하고 도무지 처음 느껴보는 감동이었다.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메어질 것만 같았다.
이튿날 소년은 수소문하여 피리 소리가 났던 곳을 찾아가 보았다. 그곳은 장악원掌樂院이었다고 한다. 전국의 음률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던 관청이었다.
"세상에 세상에 그런 곳이 다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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