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1 (토)
여덟 살까지 서당 다니며 얄궂게 살아 온 박씨는 외가가 있는 대전으로 이사하게 된다. 꿔다 논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않는다는 처가살이를 아버지가 하게 된 것이다. 회덕의 송씨 씨족 마을에서 천대받고 설움당하며 산 일은 아직도 못 잊는다고 한다. 소학교(5년)를 월반해 3년에 마치고 대전중학에 들어가면서 사연은 벌어진다. 대전극장에 진을 친 협률사 공연에서 이화중선(李花中仙)ㆍ중선(中仙)자매, 장판개(張判介), 조기옥 명창 들을 만난 것. 그들이 누구인가.
"사람인가 선녀인가 했소. 저들도 밥 먹고 똥싸는가 싶을 정도로 눈깔이 홀랑 뒤집힌 거야······. 내 저 짓을 꼭 배워 악마구리떼 같은 가난을 짓이겨 버리겠다고 작심한 거요.”
다짜고짜 장판개(1885~1937, 전남 곡성 옥과 태생으로 적벽가에 능했음) 명창을 찾아가 소리꾼이 되겠다니 "별 희한한 놈 다 보겠다.”며 충남 청양군 정산면 백곡리에 사는 손병두(孫炳斗) 씨를 소개해 주더라는 것.
"그 때 형편으로 두루마기 몇 벌과 버선 몇 죽, 용채돈이라도 다소 있었으면 저승문까지라도 데리고 다녔을 겁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소리를 배우겠다니 아버지는 "비록 없이 살아도 뼈대있는 집 자식이 천인광대를 하다니 웬 변고나.”며 절연을 선언해 버렸다. 이 때가 팔팔한 나이 열 여덟. 박옹은 오늘날까지도 "다시 집에 와 살겠지······.”하고 나선 길이 홀로서기의 시작이 될 줄 몰랐다고 회고한다.
1년 반 동안을 상머슴 살며 만고강산 춘하추동 등 토막소리를 배웠다. 손씨는 충서 지역을 주름잡던 상쇠꾼(꽹과리)으로 토막잡가를 잘했던 지방 명창이었다. 더 큰 선생을 만나겠다고 새경 없는 머슴살이를 청산, 대전으로 걸어오다 유성에서 난장을 만났다. 공주 갑부 김갑순(金甲淳)이 세 과시를 위해 튼 난장판이었다. 여기서 자청한 토막소리가 4~5창을 받으며 김천 진양옥(선술집) 여주인의 눈에 띈다. 동가식 서가숙하던 처지에 무조건 따라나서 술집 기생들에게 소리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허허 참 기맥힌 일이지······. 학생이 선생 노룻 헌 거여. 여기서 한 3년 있다 대구성악연구회로 갔지. 거기서 박지홍(朴枝洪) 선생을 만나 흥부가를 배웠어요.”
28세에는 경주 권번에 가 소리 선생 노릇하며 유성준 선생을 만나 수궁가를 떼받고 최윤(崔潤) 씨한테는 거문고를 배웠다. 예기였던 조계향(曹桂香, 남원 출신)한테는 북 장단을 배우고, 이 시절 조학진(曹學珍)ㆍ김창진(金昌鎭) 씨를 만나 적벽가ㆍ흥부가를 전수받았다. 당대 명창 정정열 선생한테 춘향가를 배운 건 서울 조선성악연구회서다.
"젊은 놈이 기생 선생 하자니 말도 많았어요. 한시인들 그냥 놔 둬야 말이지······. 대구 고등계 형사 주임(다카마쓰) 조카딸 유키코(당시 와세다 대학생)와의 사랑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 아파요. 권력과 위세에 꺾인 사랑이었어······. 그놈이 나를 개패듯 하면서 대구를 떠나도록 각서까지 쓰게 했으니까.”
해방 후 잠시 조선가무단에도 몸담지만 별 재미 못 보고 62년 국립국악원(4급 을류)에 시험쳐 들어오는 집념을 보인다. 1968년 9월 30일 남산 국악고등학교 강당은 웅성거렸다. ‘시덥잖은 명창 박동진’이 흥부가를 쉬지 않고 5시간 동안 완창한대서였다. 그러나 박옹은 거뜬히 해냈다. 이것은 우리 현대 국악사의 획기적인 사건으로 이후 완창 판소리 붐이 일기 시작한다.
이 당시 고수들은 이정업(李正業), 한일섭(韓一燮), 김명환(金明煥), 김득수(金得洙), 김동준(金東俊) 씨 등 5인의 명고수. 이후에도 박옹은 춘향가(8시간 40분), 심청가(7시간), 적벽가(8시간), 변강쇠타령(5시간), 숙영낭자전(5시간), 배비장타령(6시간), 옹고집타령(4시간), 장끼타령(3시간), 무수리타령(5시간) 등을 연속 열창해 내 판소리계를 경악시키고 그의 건재를 확인시키고 있다.
1973년 인간문화재 5호(적벽가)로 지정된 박옹의 기능은 강정자(姜貞子, 국립창극단 단원), 박종엽(朴鍾燁, 극단 ‘미추’ 동인), 이정(李正), 허정임(許貞妊, 추계예대), 정영재(鄭榮宰, 경북대 국악과 2년), 여창선(呂昌善, 경북대 국악과2년) 씨 등이 잇고 있다. 은관문화훈장(1981년), 전국국악대상(1982년), 서울시문화상(1983년)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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