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1 (토)
아리랑의 힘으로 ‘코로나’ 고개를 넘다
안상윤 /편집위원
문경새재는 조선시대에 ‘과거 길’로 부르던 곳이었다. 영남의 수재들이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길목이었다. 새재(鳥嶺)를 넘어 충청북도를 거쳐 경기도 이천으로 들어갔다. 당시 사람들은 삼삼오오 패를 이뤄 하루에 30km 정도 걸었다고 전한다. 부지런히 걸으면 한양까지는 대략 경남에서 20일, 경북에서는 보름 정도 걸렸을 것으로 계산된다.
과거에 합격한 사람의 희소식은 사람이 도착하기 전에 소문이 먼저 전해졌다. 그래서 지명이 ‘경사를 듣는다’는 의미로 ‘문경(聞慶)’이라 정해졌다. ‘문경새재’는 기쁨 외에 슬픔과 고난의 의미도 지닌다. 민요 ‘아리랑’에 등장하면서부터이다.
아리랑의 노랫말,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는 ‘고난을 극복한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고개를 넘어가는 힘든 과정이 고생을 견디며 마침내 이겨내는 모습과 닮은 까닭일 것이다. 아리랑 민요에서 ‘고개’는 수난을 상징하고 그것은 어김없이 극복의 대상이 된다. 그런 연유로 모든 아리랑 노래의 후렴에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가 붙는다. 아리랑은 노래 그 이상의 역할을 해 왔음을 알게 한다. 실제로 1930년 대에 천연두가 온 나라를 덮쳤을 때, 민중은 아리랑 가사에 "종두(種痘)를 맞고 천연두를 이겨내자.”는 내용을 담아 전파한 선례가 있다.
‘아리랑 고개’는 문경새재를 일컫는다.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 "할미성 꼭대기 진을 치고/ 왜병졍 오기를 기다린다.” 등의 기록에서 보듯, 아리랑의 역사를 다룬 문헌에 문경새재가 언급되면서 문경새재가 아리랑의 실지(實地)임을 확인한다.
아리랑의 시초는 경복궁과 관련이 있다. 1865년 고종의 생부(生父)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98)이 풍양 조씨, 안동 김씨 등 세도가문들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상징적 조치로 경복궁 중건에 나선다. 국가 재정이 어렵던 시절 대원군은 7,225칸 규모의 왕궁을 지으면서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 "땡전(當錢) 한 푼 없다.”는 유행어를 야기한 ‘당백전當百錢’을 주조해 실질가치보다 백 배나 높은 명목가치를 지니게 만들어 그 차액으로 부족한 재원을 확보하려는 계산에서였다. 이 시기 문경 새재의 박달나무들이 있는대로 베어져 경복궁으로 공출된다. 공사장 각종 도구의 자루로 쓰였기 때문이다.
또한 반강제적으로 부역인들도 동원되었다. 이들이 모두 1017m 높이의 조령산(鳥嶺山)과 1106m 높이의 주흘산(主屹山) 사이에 난 새재를 넘어갔다. 조령산은 ‘새도 쉬어갈’ 정도로 높고, 주흘산은 ‘중악(中嶽)’이라는 별칭답게 나라의 기둥이 되는 산'이다. 이 새재를 넘어 충청북도와 경기도를 거쳐 한양으로 향하면서 ‘문경아리랑’이 만들어졌다. 경복궁 공사에 동원된 삼남 출신들이 고단함을 덜기 위해 부른 이 노동요 성격의 ‘문경아리랑’이 일꾼들 사이에 퍼지면서 전국으로 파급되었다. ‘아리랑고개’는 경복궁 중건을 매개로 문경새재에서 연유한 시어(詩語)인 것이다.
1896년 고종의 외무 특사이던 H. B.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1863~1949) 박사는 서양 악보에 가사를 채록해 알파벳으로 남겼다. "문경새재 물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가네.”라는 노랫말이었다. 이후 새로운 아리랑들이 생겨나 나라 전체로 파급시켰다. 정든 조국땅을 떠나 이역만리를 헤매야 했던 디아스포라(Diaspora)들도 ‘광복군 아리랑’, ‘북간도 아리랑’, ‘치르치크 아리랑’ 등 자신들의 처지에 맞게 노랫말을 지어 아리랑을 불렀다. 아리랑은 민족으로 하여금 고난을 견디고 이겨내게 해준 힘이었다.
아리랑은 2012년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문경시가 수집한 국내외 아리랑 노랫말은 10,068 수에 이른다. 최근 문경시는 단산에 아리랑기념관을 지어 아리랑의 모든 역사를 보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마다 아리랑 축제가 전국 곳곳에서 개최된다. ‘문경새재아리랑제’도 2008년부터 열리고 있다. 2020년에는 코로나 상황임을 감안해 아리랑의 힘으로 역병을 이겨내자는 취지로 6월 13일에 축제 행사를 가짐으로써 다른 축제들과 차별화를 보였다. 새재도립공원에 마련한 야외공연장에서 고구려 부여 동예 등이 하늘에 지내던 ‘동맹영고무천(東盟迎鼓舞天)’ 유습(遺習)을 빌려 쑥을 피운 채 춤추고 노래하고 땅을 밟으며 힘을 구하는 의식이었다. 2020년을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 19’ 고난을 다시 아리랑 정신에 기대 이겨내자는 몸부림이었다. 한민족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집단 정서를 가동해 상생의 기운을 얻어온 저력의 중심에는 늘 아리랑이 있었음을 반영한 기획이었다. 지금 추세로라면 조만간 90년 전 ‘종두선전(種痘宣傳) 아리랑’의 경우처럼 ‘코로나 극복 아리랑’이 등장할 수도 있어 보인다.
아리랑은 옛것이면서 오늘의 것이고, 하나이면서 여럿이다. 상황에 맞게 자기 복제를 계속하는 프랙탈Practal 이론의 전형에 속한다. 앞이 뒤를 끌어주고 뒤가 앞을 밀어주는 모양새다. 아리랑은 노래 그 이상이다. 한국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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