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6 (목)
지은이는 정은미(아동문학가), 펴낸곳은 이지출판사, 펴낸날은 지난해 12월 25일이다.
표제시 ‘신문지가 만난 진짜 세상’
말, 말, 말만 가득한
신문이 말을 내려놓고
신문지가 되었다.
넘치는 김치통의 국물을 받아 주고
고구마, 감자 몸이 시들지 않게 싸 주고
깎아 낸 손발톱을 받아 주고
신발 속 고린내를 잡아 주고
깨지기 쉬운 것들을 보호하고
잠든 노숙자 얼굴을 덮어 주고
그리고
자신을 태워 누군가의 언 손을 녹여 주었다.
이 책은 정은미 작가가 세 번째 펴낸 어른과 함께 읽는 (동)시집이다. 한 편 한 편 오래 발효시켜 완성도를 높인 61편의 작품에는 좋은 시 한 편이 누군가의 삶에 작은 촛불 하나 얹어 놓는 일이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겨 있다.
작가는 그림을 직접 그린 그림책과 동시집을 내는 꿈을 이루기 위해 SI그림책학교와 그림책상상 그림책학교를 다니면서 그림을 배웠다. 이번 동시집 '신문지가 만난 진짜 세상'에 직접 그림을 그림으로써 그 꿈은 이루었다.
‘신문’은 세상일을 전하는데 참 시끄럽다.
좋은 일보다 전쟁, 마약, 살인, 성폭행, 기후변화, 환경오염 등 마치 부정적 사건 사고만 전하는 것이 신문의 역할인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물활론적인 사유를 통해 신문의 역할을 재조명하여 시로 빚어냈다. 신문지의 쓰임에 대한 진술이지만 그 속엔 숨겨 둔 세상의 따뜻함이 들어있다. 신문지가 만난 진짜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온갖 시끄러운 말들을 내려놓은 신문이 신문지가 되어 접히고 구겨지고 뭉치고 찢어지면서 말이 아닌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동심을 통해 사유하게 한다.
‘안개’로 인해 막대그래프로 보여지는 아파트. 그래프가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 ‘눈꺼풀 문’을 통해 우리가 봐야 하는 것과 보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눈에 보이는 ‘초승달’ 속엔 무엇이 감추어져 있는지, 단단한 ‘검정콩’ 하나를 나누려면 어떤 마음이 필요한 것인지, 생각이 머물게 한다.
작가는 동심과 유머로 아이들의 생활을 활기차게 표현하고 있다.
엄마를 잔소리쟁이, 마녀 등으로 표현하던 아이들이 막상 편지에는 ‘엄마, 많이많이 사랑해요’라고 쓴 아이들의 진짜 마음은 어떤 것일까? ‘회장’이라면 모범을 보여줘야 하는데 자꾸 왜 시키기만 하고 대장 노릇만 하느냐는 항의를 받기도 한다. 팔다리가 짧은 하마 별명을 가진 명희가 ‘어떻게 저렇게’ 빨리 달릴 수 있는지, 밥 먹을 때는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묻는 1학년 인호의 배꼽 빠지는 대답 등에 웃음이 빵, 터진다.
작가는 무거운 주제인 죽음도 동심으로 진지하게 풀어내고 있다.
아빠의 죽음, 별똥별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함께 위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누구나 시간 열차를 타고 내려야 하는 존재로 삶엔 늘 죽음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음을 동심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어린이라고 늘 가볍고 재미만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때론 가볍고 때론 재밌고 때론 그들의 유행을 따라가야 하지만, 때론 진지한 질문을 통해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넓혀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의 신념을 『신문지가 만난 진짜 세상』에 꾹꾹 담아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따라서 일상의 모든 것들이 우리 곁에서 어떻게 머물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린이 눈높이에서 궁금해하는 것들을 질문하고 생각하고, 철학하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 정은미는 1999년 ‘아동문학세상’. 2000년 ‘아동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오늘의 동시문학상’, ‘청소년문화상’, ‘열린아동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신문지가 만난 진짜 세상’으로 2023년 아르코창작기금 발간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
지은 책으로 동시집 ‘마르지 않는 꽃향기’(2009), ‘호수처럼’(2015), ‘신문지가 만난 진짜 세상’(2023) 등이 있으며, ‘심술쟁이 악어 삐죽이’, ‘냉장고 속이 시끌시끌’ 등 많은 그림책에 글을 썼다.
오랫동안 도서관에서 독서모임을 강의하며 독서 보급에 힘써온 것을 계기로 2019년 ‘독서문화 진흥발전공로’로 국무총리 표창장을 받았다. 이외에 SI그림책학교와 그림책상상 그림책학교에서 그림을 배웠으며, ‘신문지가 만난 진짜 세상’에 본인의 시와 그림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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