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뉴스목록
-
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79<BR>국악의 날 지정을 위한 제언(6)-정간보와 오음악보국악의 전통 악보에 대한 내용이 어렵다고 하여, 지난 회에서는 ‘정간보’에 대한 설명을 자세하게 하였다. 이후 국악을 전공하시는 여러분의 선생님께서 댓글을 보내주셨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아무래도 어렵게 느껴졌던 내용들이 좀 더 설명이 쉬어지고 보완되었다고 생각하셨는지 격려의 댓글을 보내주신 것으로 보인다. 그 댓글의 내용 중 두 분의 것만 간단히 소개하겠다. 먼저, 단국대학교 국악과 명예교수이신 이상용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댓글을 소개하겠다. "박교수, 좋은 글 잘 읽고 공부도 많이 하고 있어, 박교수가 자랑스러워, 고마워요”라고 보내주셨다. 또 한분은, 전통가곡 분야의 무형문화재(인간문화재)이신 조순자 선생님이 보내주신 댓글이다. "(전략) ~~ 아마도 훈민정음 이해하기처럼 정간보도 지극히 간결하고 쉬운 우리 음악 표기 방법임을 먼저 기초부터 알려야 할 듯합니다. 힘내셔요.”라고 역사적 사실까지 언급하시면서 자세한 말씀을 해주셨다. 이상용 선생님은 필자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재학 중 전공악기인 대금 지도교수님이셨다. 국립국악고등학교의 교사를 거쳐서 단국대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하셨다. 학문적으로나 인품 또한 외유내강 형으로 모든 제자들이 흠모의 대상으로 삼으며 존경하는 국악계의 큰 어른이시다. 가곡 전수관 관장이신 조순자 선생님은 국가무형문화재 가곡 예능보유자이다. 우리 국악계에서 이와 같은 명칭을 갖게 되면 통상 ‘명인(名人)’이라는 존칭을 사용한다. ‘조순자 명인’이라고 부른다. 평생 전통가곡(歌曲)만 60여 년을 부르며 지켜온 조순자 명인은 화관문화훈장과 각종 상을 많이 받았고, 80세에 가까운 요즘에는 가곡 반주악보인 관현악 총보를 마무리하여 곧 세상에 발표할 것이라는 포부를 들려주셨다. 두 분 선생님의 지적과 격려에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더욱 자상하고 겸손한 집필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참고로, 전통가곡은 2010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었다. 한편, 전통가곡과 시조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묻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왜냐하면 가곡과 시조는 노래스타일이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일반인들은 그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그렇다면 가곡과 시조의 차이는 무엇일까? 잠깐 살펴보겠다. 시조는 초장, 중장, 종장의 3장 형식으로서 장고반주만으로 노래한다.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대중음악이다. 그러나 가곡은 5장 형식으로서 [대여음, 1장, 2장, 3장, 중여음, 4장, 5장, 대여음]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쉽게 표현하면, [전주, 1장, 2장, 3장, 간주, 4장, 5장, 후주]의 5장 형식으로 연주한다. 그리고 가곡은 피리, 대금, 가야금, 거문고, 해금 등의 관현악 반주에 맞추어 노래한다. 여기서 중여음과 대여음을 연주할 때는 노래는 쉬고 반주만 연주한다. 그리고 대여음은 5장 다음의 후주로 연주하지만 노래 시작하기 전에 전주로도 사용한다. 노래가사는 가곡과 시조 모두 동일한 노랫말을 사용하지만, 노래 선율은 가곡이 한층 예술성이 높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가곡은 전문가들의 음악이라고 한다. 한편, 현재 불려지는 전통가곡은 학설에 의하면 고려가요인 ‘정과정’이라는 곡이 효시라고 한다. ‘정과정’은 향가 계열의 고려가요로서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로 계승된 대표적인 노래이다. 원래 평민들에 의해 불려졌던 ‘정과정’과 같은 고려가요는 한글이 창제되고 악학궤범이 만들어지면서 궁중음악으로 편입하게 된다. 그러면서 세종이 창안한 정간보의 악보에 고려가요들이 실리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왕실 주관으로 악보를 만들게 된다. 여기에서, 정간보인 『시용향악보』와 ‘오음악보’와의 관계에 대해 좀 더 설명을 하겠다. (「한국음악의 구기보법(舊記譜法)」 장사훈 논문 참조) 세종이 창안한 ‘정간보’는 동양최초의 유량악보(有量樂譜)이다. 즉 서양악보인 오선보의 기능과 같이 ‘정간보’는 정(井)자 모양의 칸 안에 음이름을 적어 기보 하는데, 칸은 음의 길이, 음이름은 음의 높이를 나타내도록 창안하였다. 그리고, 정간보라는 악보 형식에 음의 높이와 음의 길이를 표기한 악보를 "오음약보(五音略譜)‘라고 부른다. ‘오음약보’는 주로 5음음계의 음악을 표기할 때 사용되었다. 기본음(으뜸음)을 중심으로 위 쪽의 음 높이는 上一, 上二, 上三, 上四, 上五, 아래쪽의 음높이는 下一, 下二, 下三, 下四, 下五의 방식으로 음의 높낮이를 표시했다. 그리고 그 음 옆에 가사를 적어 넣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악보가 바로 『시용향악보』인 것이다. 그런데, "시용향악보”는 ’오음악보‘로써 고려가요를 수록한 악보이지만, 성종 때(이동복 석사 논문, 참조) 만들어진 악보여서인지 세종 때보다는 좀 더 진화된 악보 표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음의 높이뿐만 아니라, 上一, 上二, 上三 ~ ~, 등의 음 옆에 ’음길이‘와 ’리듬‘도 가끔 보이고 ’가사‘도 씌어 있다. 그리고 장고 반주 악보까지 보인다. "시용향악보”의 고려가요 악보를 자세히 보면, 上一, 上二 등의 음정 옆에 장고반주인 고(鼓), 요(搖), 편(鞭), 쌍(雙)의 글씨가 세로로 보이고, 박(拍)이라는 글자도 보인다. 다음 회에 이 용어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겠다.
-
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140)<br>장단은 리듬의 패턴… 시간 흐름 따라 직조된 씨줄장단(長短)이란 무엇인가 '긴 것'과 '긴 것'이나 '짧은 것' '짧은 것'의 반복은 장단이 아니다 음'과 '양'이요 '남자'와 '여자'요 대삼'과 '소삼'이어야 장단이다 판소리도 장단과 더불어 재구성 장르 이를 허투루 여기거나 귀찮아하거나 혹은 업신여겨 말살하는 것은 뿌리와 근본을 버리자는 말과 같다 일군의 농악대가 한 집에 이르렀다. 집주인은 안쪽에서 맞이하고 농악대는 바깥쪽에서 연주한다. 4/3박자 리듬이다. 구음보(口音譜)로 적어보니 '깽매 깽매 구갱깽/ 구갱매 깽매 구갱깽'이다. 연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농악대원들 모두 합창하여 부르는 소리를 들으니 '쥔 쥔 문여소/ 어서어서 문여소'라 한다. 주인장에게 문을 열어달라는 요청임을 알 수 있다. 꽹과리와 더불어 울리는 악기의 리듬 패턴이 이 요청의 말과 합일하여 공명(共鳴)한다. 이를 '문굿'이라 한다. 마당에 들어선 농악대가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샘이다. 문굿 보다는 더 느린 템포로 연주한다. 구음보로 적어보니 '깽매 깽매 구갱깽/ 구갱매 깽매 구갱깽'이다. 마찬가지로 합창하여 노래한다. '어따 그샘물 잘난다/ 얼떡벌떡 잡수쇼/ 아들낳고 딸낳고/ 미역국에 밥한술!'. 샘물 잘 나라는 기원의 말을 꽹과리며 장구며 북 등의 악기로 리듬을 맞추는 것이다. 리듬 패턴의 첫머리에는 징을 쳐서 단위를 구분한다. 징 치는 개수를 따져 일채, 이채, 삼채, 오채 등으로 부른다. '채'는 한자말 '차(次)'에서 온 말이다. 일정한 순서(차례)라는 함의가 있다. 그렇다면 이 리듬 패턴들이 모두 사람의 말이나 노래에 따라 규율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주문의 말과 몸짓과 절차와 혹은 오랜 역사 동안 체화되어 온 생래적 리듬이며 강박적 이데올로기들이 다층적으로 생성되거나 소멸되고 재구성된 결과들이다. 통칭하여 장단(長短)이라 한다.장단과 선율, 씨줄과 날줄의 직조농악에만 장단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음악은 모두 이 장단이라는 리듬 단위로 설명할 수 있다. 궁중음악에서부터 무속음악, 춤음악은 물론 노래와 몸짓 혹은 호흡과 절차의 층위들이 포괄된다. 지역별, 기능별, 형태별, 소요 악기별 등 천차만별의 구분법이 있다. 이 단위들을 분리하거나 중첩시켜 생성하는 것이 음악이다. 선율과 장단이 그 중심이다. 선율은 소리의 높낮이를 말하고 장단은 리듬의 패턴을 말한다. 선율은 위에서 아래로 혹은 아래서 위로 직조된 날줄이고 장단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직조된 씨줄이다. 의문이 든다.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일정한 리듬 패턴을 장단(長短)이라는 이름으로 의미화시키는 이유 말이다. 우리의 전통음악에서 리듬적 특징을 지시하는 용어 중 장단만큼 중요한 게 없다. 하지만 개념 정의나 형식의 분석이 명료하지 않다. 수백명의 학자 혹은 활동가들이 장단에 대해 연구했고 수천개의 결과물들이 있는데도 말이다. 학자들이 쓸데없는 연구를 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만큼 장단 생성과 파생의 경로가 다양하다는 뜻이다. 아쉬운 것은 각양의 음악 장단 연구 중 어의적 의미를 톺아본 연구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선율적 특성의 연구에 비하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그럴까? 우리 음악의 특성이 장단에 있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장단이라는 이름의 이데올로기 혹은 철학적 의미망에 대해 천착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우리 전통음악의 장단체계를 비교적 내밀하게 분석했던 이보형은, 리듬 문제가 선율의 문제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선입견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는 장단 자체의 난삽하고 애매한 특성에 기인한 것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기원의 말과 노래와 몸짓과 혹은 그 어떤 음악적 행위들을 일정한 리듬 패턴으로 묶는 것이 선율의 문제란 말인가? 왜 일정한 리듬 패턴을 장단(長短)이라는 이름으로 범주화시켰을까? 남도무속음악의 대가였던 박병천은 굿거리 장단을 설명할 때 늘 '애기어깨걸이'를 강조한다. 구음보로 말하면, '덩기덕 궁 더러러/ 기덕덕기덕 궁 더러러'이다.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것을 '장단이 물린다'고 한다. 장단이 아니라는 뜻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앞의 4/3박자는 강하게 뒤의 4/3박자는 약하게 구성하여 조화를 이루는 것이 남도굿거리 장단의 기본이다. 이 구성을 가능하게 하는 연결 리듬을 '애기어깨걸이'라 한다. 음양(陰陽)이니 대삼소삼(大三小三)이니 혹은 고저장단(高低長短)이니 쌍편고요(雙鞭鼓搖)니 하는 따위가 다 같은 말들이다. 이것을 확장해 말하면 판소리의 어단성장(語短聲長)으로 연결된다. 말은 짧게 하고 소리(노래)는 길게 하라는 뜻이다. 일종의 개념 정의다. 판소리가 아니리(창을 하는 중간중간에 가락을 붙이지 않고 이야기하듯이 엮어나가는 사설)와 소리(唱)라는 기본 구성을 갖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모든 리듬 패턴의 중심에 장단(長短)이라는 어의(語義)가 있다. 본래의 말뜻은 '길고 짧다'는 것이다. '긴 것'과 '짧은 것'이라는 함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긴 것'과 '긴 것'이나 '짧은 것'과 '짧은 것'의 반복은 장단이 아니다. '음'과 '양'이요 '남자'와 '여자'요 '대삼'과 '소삼'이어야 장단이다. 서로 다른 것을 같은 의미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가장 적절한 예가 '엇모리 장단'이다. 서양음악의 어법으로 말하면 2박과 3박을 뒤섞어 10박을 만드는 리듬 패턴이다. 2박과 3박은 분명히 길이가 다른데 동일한 음가(音價)로 받아들인다. 궁중음악뿐 아니라 농악과 정악의 수많은 혼소박 장단들이 이런 구성을 취한다. 그래서 이보형이 정리한 바에 따라 우리 음악의 특성을 분박(음을 쪼개는 방식)이 아니라 소박(음을 쌓아올리는 방식)이라고들 한다. 왜 다른 것을 같다고 이해하는 것일까?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장단에 남은 이데올로기의 결과들은 소멸의 경로를 밟을 것이다. 주역에서는 대대성이라 하고 인류학에서는 대칭성이라 한다. 이를 율려의 철학으로 풀이했던 이가 근자에 명을 달리한 시인 김지하다. 율려(律呂)는 전통음악의 육률(六律)과 육려(六呂)에서 차용한 개념이긴 하지만, 판소리의 '흰그늘론' 등으로 확장한 의미망이기도 하다. 선율도 중요하지만 우리 음악의 큰 장점은 장단(長短)에 있다. 판소리도 장단의 발전과 더불어 재구성된 장르다. 이를 허투루 여기거나 귀찮아하거나 혹은 업신여겨 말살하는 것은 뿌리와 근본을 버리자는 말과 같다.교과서에서 국악을 없앤다는 소문에 대하여지게장단이란 말이 있다. 지겟작대기로 지게 동발을 치면서 맞추는 장단이다. 쪼빡장단이란 말이 있다. 옹기(물동이)에 물을 절반쯤 채운 후 바가지를 엎어놓고 리듬을 맞추는 것이다. 물허벅장단이라 한다. 너무 지역적이고 촌스러운 이름이어서 부끄럽게 여겨지는가? 여기에서 남도소리의 뿌리 중 하나인 '둥당애타령'이 나왔는데도 말이다. 남도의 흥그레타령에서 여섯박자 육자배기 장단이 나왔고 판소리의 진양조 장단으로 발전했다. 무수한 장단의 이름들이 있다. 서로 다르니 불규칙적이라 한다. 너무 많으니 혼란스럽다 한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서로 다른 것을 같다고 여기는 철학적 함의 말이다. 궁중음악이 그렇고 농악이 그러하며 세계적으로 지평을 넓힌 사물놀이가 그렇다. 우리 음악의 힘은 이 다종다양한 생성의 경로와 파생의 길 위에서 형성된 것이다. 우리 고유의 장단이나 국악을 어떤 규칙 예컨대 국제표준이나 서양음악에 맞춰 통일시키려 하는 발상은 큰 문제가 있다. 이용식의 주장처럼 연주자의 내관적(emic)인식과 학자들의 외관적(etic) 인식의 구별짓기를 해체할 필요는 있지만, 장단을 비롯한 국악을 통째로 무시하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이름으로 고향말 없애고 표준말만 쓰거나, 한국말 없애고 영어를 사용하자는 주장과 같기 때문이다.
-
도자의 여로(139)<br>분청귀얄잔편정겨운 대화라도 나누어 보고만 싶어지는 이규진(편고재 주인) 도자기 용어 중 킨츠기란 것이 있다. 일본말이다. 금이 가거나 깨지거나 파손된 부분을 옻으로 붙이고 수리된 곳을 금색 은색 붉은색 등으로 장식하는 수리 기법을 말한다. 요비츠기란 말도 있다. 이 것은 깨지거나 훼손된 부분을 아예 다른 도자기 파편을 붙여 수리하는 방법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남쪽 일부에서 킨츠기란 용어를 쓰고 있고 실물도 더러 볼 수 있다. 훼손된 부분을 같은 종류의 도편을 이용해 접합해 수리한 것들인데, 진해 두동리 다완이나 분청덤벙에서 그런 예를 더러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킨츠기보다는 요비츠기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요비츠기의 경우 백자에 청자를 대입시킨다던가 해서 전혀 색다른 이질감 속의 새로운 맛을 느끼게 하는 방법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여기 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여하튼 킨츠기건 요비츠기건 손상된 기물을 천대시 하지 않고 새로운 미감을 찾아내려는 노력이야말로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근래 구입한 분청귀얄잔편은 킨츠기일까 요비츠기일까. 같은 종류의 분청으로 수리를 했으니 킨츠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기물을 붙인 것이니 요비츠기라고 해도 무리는 없을 듯 싶다. 분청귀얄잔편은 고흥 운대리 산이다. 굽은 5Cm고 입지름은 넓은 쪽이 13.5에 좁은 쪽이 11Cm로 깔때기 같은 일그러진 모습이다. 굽은 내화토빚음받침에 주변은 암갈색이다. 분은 일차적으로 엷게 칠한 후 그 위 입술 부위에 다시 두터운 귀얄을 한 듯 백토가 흘러내린 부분도 보인다. 안쪽도 같은 구조다. 암갈색의 내저에는 내화토빚음받침의 흔적이 보이며 귀얄을 엷게 칠한 부분과 짙게 칠한 부분이 겹쳐 보인다. 손상을 입은 입술 부위는 다른 분청편을 붙여 옻으로 수리를 해놓고 있다. 분청귀얄잔편은 앞서도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일그러진 모습이다. 따라서 흡사 음료를 따르기 위해 일부러 한 쪽을 찌그러지게 만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하지만 암갈색의 바탕과 귀얄이 엷은 곳과 짙은 부분이 어울려 경색이 뛰어나다. 따라서 향기로운 차라도 한 잔 이곳에다 마시다 보면 그야말로 맛과 멋과 향기가 어우러진 환상적인 찻자리가 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불량품에 불과한 손상 입은 기명에 다른 기물을 붙여 정성스럽게 수리를 한 것도 그런 찻잔으로서의 역할과 쓰임을 염두에 두고 배려를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청자든 분청이든 백자든 완전한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오랜 세월의 무게를 견딘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그 것은 그 것대로 존중해주어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많은 세월에 걸쳐 부대끼다 보면 다소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것들조차도 보듬어 안고 아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조금만 손상이 있어도 기피 현상이 너무도 심한 것이 오늘의 추세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도 이제 킨츠기나 요지츠기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보아야 할 때가 된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분청귀얄잔편을 다시 한 번 선입감 없이 바라보자.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노라면 분청귀얄잔편은 너무도 경색이 아름답지 않은가. 이 잔에 향내 나는 차라도 한 잔 따라 마시며 그 누군가와 정겨운 대화라도 나누어 보고만 싶어지는 그런 아쉽고 그리운 시간들이다. *
-
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87)춘천아 봉의산아 너 잘 있거라 신연강 뱃머리가 하직일세 싸리재 아흔 아홉구비 우리 복병 삼악산아 우리 군대를 보호해다오 동녘에 비친 달아 우리 군대 명랑하게 비추어 다오 잊지 말라 명예도 지위도 버리고 이 강산 굳게 지켜 싸워다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춘천의병아리랑을 쓰니 때는 갑진춘사월이라 한얼이종선 감상 의병(義兵)이란 나라가 외세의 침입으로 위험에 처하고 관군이 무력할 때 자발적으로 일어나서 적과 싸운 민병(民兵)을 말한다. 당연히 국가의 군대가 강건하면 의병은 생겨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의병은 삼국시대 이후부터 있었지만, 특히 조선조 말에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을 수많은 외침을 겪으며 의병이 일어났다. 농사를 짓던 백성들이 의병에 참여하여 목숨을 바쳤다는 눈물 나는 역사는 국가가 얼마나 허술하게 운영되었느냐는 반증이기도 하다. 남이 나를 칠 때는 그만한 빌미를 스스로 제공했기 때문이다. 만만하니까 쳐들어 온 것 아닌가. ‘맹자’에 이런 구절이 있다. 人必自侮然後 人侮之 (인필자모연후 인모지) 家必自毁以後 人毁之 (가필자훼이후 인훼지) 國必自伐以後 人伐之 (국필자벌이후 인벌지) 스스로를 업신여긴 뒤에 남이 그를 업신여기고 집안도 스스로 헐뜯은 뒤에 남이 그 집을 훼손하며 나라는 안에서 무너진 후에 다른 나라가 그 나라를 치는 것이다. 국가의 허술한 경영이 백성들의 부질없는 피와 눈물을 부른다. 개인이나 국가나 자강불식(自强不息)할 일이다. 의병 나가는 자식의 안전을 삼악산과 밝은 달에 하염없이 빈다. 끝내 나라를 지켜내고 부디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어미의 간절한 심정을 처연한 마음으로 옮겼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
무세중과 전위예술(8) <BR>巫世衆(2편)아- 천지여 개벽하라. 약삭빠르게 오늘과 내일의 수레바퀴 위에서 건너뛰지 못하는 우직하고 정직한 自由人 그의 독설과 직설은 가끔 사람의 폐부와 오간장(五肝腸)을 뒤흔들어 겁을 먹게 하고 구토를 자아내며 내일을 향해 오늘을 쏘는 그의 화살에 과녁을 맞출 자 그 누구이겠는가 세상을 느끼는 그의 감각은 껑충 산넘어 벌써 저 멀리 가 있기에 그의 前衛로 일컬어지는 포퍼먼스는 채 완성되기도 전에 숨가쁘게 300여 회를 넘어 오늘에 이르니 어느듯 인생은 갑자를 돌아 환갑이더라. 이제 인생의 반려자 이나미와 함께 세상을 재는 현실 의지와 창조의 활력으로 다시 예술을 완성하고자 시작하오니 天地神이여 조상의 우두머리인 단군이여 부디 그를 축복하소서, 완성하소서. 그의 솟아 오르는 샘 창작의 혼(魂)이 이제는 민족과 함께 대중과 함께 영원한 이해와 화해를 가능케 하소서. 넘어지며 엎어지며 찌르며 깨지며 부셔 버린 그의 반골 기질이 세상의 균형을 위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가 세상을 온통 두팔로 끌어 안고 그를 사회가 포용하여 받들게 하소서. 그의 존재가 역사 속에, 예술 속에 길이 빛나게 하소서.
-
정창관의 ‘국악-신반’ <20>김화복 거문고 <The odyssey for rebirth>-처음으로- 한양대학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한 김화복 거문고 연주자의 2번째 음반이다. 연주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이수자로 여러 교육기관에 출강하고 있다. 2021년에 전통음악 음반 김화복 거문고산조 <현금현금(現今玄琴)>을 선보이고 이번에 창작곡 음반을 출반하였다. 음반에는 5곡(17트랙)이 수록되어 있다. 첫 곡(2악장)은 연주자 작곡으로 독주곡 ‘령초’이다. 도드리 가야금 선율의 위상수학적인 분석을 AI를 적용하여 만든 곡이라고 한다. 이경은 작곡의 4악장의 ‘9-to-5’는 끊임없이 물질적 성장과 발전을 추구하며 살아온 모습을 타악과 같이 그려내고 있고, 김명옥 작곡의 4악장 ‘빈,’은 아쟁과 2중주로, 이예진 작곡의 4악장 ‘이어짐’은 대금과 2중주로, 이상규 작곡의 3악장 ‘금향다원’은 처음으로 돌아가 지속 가능한 환경을 소중하게 지켜내겠다는 다짐을 대금 장구와 같이 표현하고 있다. 해설서에는 곡 설명이 한글과 영어로 수록되어 있고, 연주자, 작곡가, 협연 연주자 프로필이 잘 실려 있다. 연주자는 인간과 자연은 사랑하고 아껴야 하는 관계임을 인지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비워내고 있다. 정효성의 가야금 <줄 위에 머문 환상> 서울대학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정효성 가야금연주자의 첫 음반이다. 연주자는 가야금앙상블 ‘사계’, 가야금솔로이스츠 ‘jul’, 아시아금교류회 등의 활동을 통해 섬세하면서 창의적인 음악으로 꾸준한 활동을 해온 연주자이다. 음반에는 다양한 편성으로 5곡(11트랙)이 수록되어 있다. 25현금과 현악4중주의 ‘줄 위에 머문 환상’(작곡:백병동), 산조가야금과 25현금의 ‘농학’(작곡:백병동), 25현금 독주의 ‘깃털의 무게’(작곡:박순아), 2대의 25현금과 Bass가야금의 ‘아르키메데스의 법칙’(작곡:안진), 17현 가야금삼중주의 ‘17현금 3중주를 위한 달하노피곰’(작곡:황병기)이다. 서양음악을 전공한 작곡가의 작품과 가야금 연주자 겸 작곡가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연주자는 "가야금이 만들어내는 음악은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며 악기의 모습과 함께 점점 다양해져 왔다고 하면서 이제 전통과 창작이 공존하는 음악을 통해 연주자의 경험과 생각들이 깊이 배어나고, 오늘 안에서 함께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기를 원한다.”고 한다. 해설서에는 곡 설명이 잘 나와 있다. 유튜브에 음악이 트랙별로 일부가 올라가 있다. 고영열 <피아노병창 춘향> 한양대학교 국악과를 졸업한, ‘판소리계의 라이징스타'라고 부르는 고영열의 음반이다. 2020년 ’JTBC 팬텀싱어 3‘에 참가해 성악가, 뮤지컬 배우들과의 블렌딩 능력, 프로듀싱 능력 등 뛰어난 음악성을 보여주며 결승 12인에 진출했고 김바울, 존 노, 황건하와 함께 라비던스를 결성해서 준우승을 거뒀다. 최근에는 퓨전국악, 크로스오버 등 다양한 분야와 협연하며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크로스오버 음반이라는 피아노병창 <춘향>이다. 21트랙에 담은 <춘향>은 소리꾼의 새로운 해석과 작곡, 편곡으로 작업되었으며, 전통적인 북 반주가 아닌 서양악기 피아노에 전통소리를 얹어 부른다. 곡에 따라 플루트(이규재)이 첼로(김솔다니엘)가 합세하기도 한다. 전통으로 머물고 있는 ‘판소리 춘향가’가 아닌 지금도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 ’춘향‘을 저음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해설서에는 소리꾼의 여러 사진과 가사가 수록되어 있다. "녹음을 하는 매 순간 춘향의 이름처럼, 봄날의 향기가 느껴졌습니다. 이 음반을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사시사철 춘향과 같은 향기로만 가득하시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소리들을 선물합니다.” 소리꾼의 바램입니다.
-
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139)<br> 정형에 얽매이지 않는 '허튼 가락' 산조산조(散調)란 무엇인가 가장 근접 기원설 중 하나 시나위 악기들이 각자 마음 내키는 대로 연주하는 듯하지만 절묘한 화성 바탕이나 기원은 무속음악 확실 김창조가 재구성 초기 형태 심방곡 산조 발생 시점으로 견해가 대표적 우리 음악을 크게 궁중음악과 민속음악으로 나눈다면, 민속음악은 다시 성악과 기악으로 나눌 수 있다. 성악(聲樂)은 사람의 음성으로 하는 음악을 말한다. 악곡의 종류에 따라서 판소리 등의 창가, 민요, 가요, 가곡, 기타 따위로 구분한다. 연주 형태에 따라서는 독창, 중창, 합창, 제창, 기타 등으로 나누고 기능에 따라서는, 일하면서 부르는 노래, 놀면서 부르는 노래, 종교적인 제의에서 사용하는 노래, 기타 등으로 구분한다. 이 땅에 존재하는 어떤 악기보다 사람의 목소리를 이용한 음악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기악(器樂)은 악기를 사용하여 연주하는 형태를 말한다. 연주자의 수에 따라 독주, 중주, 합주 등으로 나누고 표현 형식에 따라 교향곡, 협주곡, 소나타, 실내악곡 등으로 나눈다. 우리 민요의 가창 방식 즉, 혼자 부르는 노래, 여럿이 부르는 노래, 돌려가며 부르는 노래, 주고받으며 부르는 노래 등에 대입해보면, 악기 연주 또한 유사한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산조(散調)란 기악 독주곡을 말한다. 악기 하나를 가지고 연주하는 형태라는 뜻이다. 삼남지방(충청, 전라, 경상)에서 발달하였다 하고, 가야금, 거문고, 대금, 해금, 아쟁의 순서로 발생하였다 했다. 또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으로 배열된 3~6개 장단 구성의 악장으로 구분되며 반드시 장구 반주가 따른다고 했다. 하지만 다양한 산조의 기원설을 전제하거나, 판소리 소리북으로 장단을 맞추는 예들을 보면 '반드시'라는 수식으로 완성되는 장르나 개념은 아니다. 대개 그렇게 발생했고 그렇게 연주되니 그러한 것을 표본으로 삼는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산조(散調)의 우리말은 '허튼가락'이다. 산조의 기원을 시나위니 봉장취니 판소리의 선율을 악기로 표현한 것이느니 하는 얘기들이 여기서 나왔다. '허튼가락', 산조(散調)는 어디서 왔을까? '허튼가락'의 문자적 함의는 '정형적이지 않은', '흩어져 있는', '자유분방한', '율격에 얽매이지 않는'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누군가가 이 장르에 산조라는 이름을 붙이기 전에 정형적이지 않고 흩어져 있는 어떤 음악의 형태가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산조라는 용어에 가장 근접한 기원설 중 하나가 시나위이다. 악기들이 어울려 서로 연주하는데, 각자 마음 내키는 대로 연주하는 듯하지만 절묘한 화성을 이룬다 해서 여러 기원설을 들어 설명하곤 한다. 그 바탕이나 기원이 무속음악인 점은 분명해 보인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정악에 상대하는 향악(俗樂) 혹은 굿거리, 살풀이 따위의 무속음악이라고 풀이하기 때문이다. 경기도 남부, 충청도 서부, 전라도, 경상도 서남부 등지의 무가 반주 음악에서 나왔다는 설명이 붙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시나위 자체가 육자배기 특징으로 된 산조의 기악곡을 말하기 때문에, 민요의 사례에 견주어 말한다면 육자배기토리로 권역화된 전라도지역의 무속음악, 다른 말로 하면 남도씻김굿 등이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산조라는 음악의 기원이 시나위로 대표되는 남도 무속음악에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심방곡(心方曲) 혹은 신방곡(神房曲)기원설을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방곡(신방곡)은 무속음악의 반주 음악과 다르다. 1610년 거문고 악보인 <양금신보>에 만대엽, 중대엽, 삭대엽 중의 중대엽에 속칭 '심방곡'이 나온다. 일반인들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진 '오나리 오나리소서 뫼일에 오나리소서/ 졈그디도 새디도 마르시고....'라는 가사가 그것이다. 또 안민영의 '금옥총부'(1885)에 '창원 기녀에게 가야금 신방곡을 청해 들었다'는 기록과 '퉁소 신방곡'이 언급되고 있다. 무속음악과는 상당히 다른 음악으로부터 산조가 발생했다는 증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유력하게 대두되었던 것이 판소리 기악화론이다. 판소리의 선율이나 장단을 모사하여 악기로 연주했다는 뜻이다. 판소리의 역사가 산조의 역사보다는 훨씬 오래되었으니 시대의 예술로 급성장했던 판소리를 모본 삼아 악기로 연주했다는 가설은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봉장취 기원설도 있다. 봉장취는 유랑예인들이었던 풍각쟁이들이 봉황 혹은 기러기 등의 새 한 쌍을 주제로 하여 음악을 곁들여 연행하는 일종의 재담 연주 혹은 그로부터 파생된 새소리를 주제로 하는 기악곡을 말한다. 봉장취는 '봉장추', '봉작취', '봉황곡' 등으로 불렸다. 판소리 <변강쇠가>에 '봉장추'가 가장 먼저 등장한다. 중국 한나라 이후 전해진 음악이라는데, '봉이 새끼를 거느린다'는 뜻이라고 한다. 신재효의 <변강쇠가>에 따르면, 눈먼 '봉사'들이 구걸을 위해 연주하던 곡이었고 이것이 풍각쟁이들의 음악으로 정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오로지' 혹은 '반드시'라는 수식을 충족하지는 못한다. 연구자들에 따라서는 봉장취나 산조가 제각기 다른 역할을 하면서 병행 발전해왔다고 주장한다. 또한 계보론이나 지역론 특정 계파론 만으로는 산조의 기원이나 발생설을 충분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그럼에도 영암사람 김창조가 재구성한 초기 형태의 심방곡을 산조의 발생 시점으로 보는 견해는 아래 팁에 소개하는 것처럼 그 시대의 대표격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마치 판소리의 기원설을 여러 가지로 말하지만 일정한 텍스트나 인물을 거론하고 예컨대 영산강의 시원을 말하는데 황룡강, 극락강, 지석강의 여러 물줄기 중 담양 용소로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가야금산조 발생과 영암사람 악성(樂聖) 김창조 함화진(咸和鎭, 1884~1948, 일제강점기 아악사)의 <조선음악통론>(1948)에 보면, "신방초는 화초사거리를 창작하고 김창조는 심방곡을 변작(變作)하여 산조를 창작할새, 우조와 계면조로 분류하여 각종 악기에 탄주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김창조가 가야금으로 현재의 산조라는 음악을 재구성했음을 확인해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 시기까지의 형태는 지금의 산조형식을 갖추었다기보다는 자유분방한 초기 형태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가야금산조가 19세기 중반 무렵에 심방곡으로 시작되었음을 확인해주는 자료는 안민영의 <금옥총부>(1885)가 대표적이다. 권도희의 연구에 의하면, 당시 심방곡의 명인이 경상도 마산포에 살던 최치학이었다. 첫 세대라고 할 수 있는 이들로 전남의 김창조, 한숙구, 유성천, 전북의 박한용, 이영채, 박한순, 충청의 박팔괘와 심정순 등을 거론한다. 이들이 동시대의 음악 형식을 정형화하는데 충분히 기여했다는 점이 여러 연구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후 김창조의 제자 한성기, 안기옥, 정남희, 강태홍, 최옥삼 등과 한숙구의 제자 한수동, 정남옥 등, 유성천의 제가 유대봉 등, 박한용의 제자 김삼태, 이영채의 제자 신관용, 박학순의 제자 신쾌동, 심정순의 제자 심상건 등과 더불어 김해선, 김운선, 함동정월 등 여성 산조 연주자들이 등장한다. 산조의 발생과 정형화에는 이같은 맥락들이 있기 때문에 '오로지' 김창조만이 산조를 재구성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김창조를 내세우는 것은 문헌들이 전하는 바를 전거하는 것이요, 시대적 수요에 부응했던 초기 기여자들의 대표격으로 거론하는 것이라는 점 부기해둔다. 김창조(1856~1919)의 출생설이 두 가지다. 1865년과 1856년설인데 여러 가지 맥락상 후자가 사실에 더 근접하다. 세습율객집안 출신으로 영암읍 회문리에서 출생했다. 1915년 경에 광주로 이주하여 활동하였고 1916년부터 전주로 옮겨 군산, 나주, 정읍, 대구 등지에서 활동한다. 64세 되던 1919년 인후염에 걸려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광주 북문안 어느 집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다. ※ 외부인사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40)1970년 출시 ‘아리랑 라면’아리랑은 최초, 최고, 진근, 한국을 표현 또는 상징한다. 첫 위성이 ‘아리랑호’이고, 첫 필터 담배가 ‘아리랑’이었다. 해외 이민 초기 현지에 개업한 첫 한국식당 상호는 대부분 ‘아리랑’이었다. 친근함을 표현한 경우는 ‘아리랑노래방’ 동네 ‘아리랑이발관’ 같은 상호가 그렇다 1970년 출시된 라면 중에 ‘아리랑라면’도 친근감을 활용한 상품명이다. 우리 나라 ‘라면’의 역사는 1963년 9월 15일 출시된 ‘삼양라면’으로부터다. 이후 ‘아리랑라면’도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
한국전통춤협회, 한국전통춤협회, "전통춤문화제 수건춤 100년사" 성료사단법인 한국전통춤협회(이사장 한혜경)가 한국 전통춤 큰잔치 ‘2024년 대한민국 전통춤문화제-수건춤 100년’을 오는 23-24일 2일 동안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개최했다. 학계에서는 이번 수건춤 100년사 재현은 학술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는 평을 받았다. 첫째날 해설을 맡은 원로 전통춤연구가 이병옥 교수는 수건춤은 교방춤, 재인청춤, 무속계열춤으로 나누어지는데, 이번에 다 보여주는 판이 벌어진 것은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전했다. 둘째날 해설을 맡은은 양종승 박사는 수건춤 100년의 역사적 전개 양상과 우리 전통춤 뿌리를 알게 하고 전승 유파의 다양성을 알게 하는 귀한 무대이었다. 전통민속예술 수건춤의 지속과 변용을 보여준 학계의 평가다. 이 행사장에서 한혜경 이사장을 만나게 되었다. Q. 한국전통춤협회 언제 창립되었나요. A. 한국전통춤협회 창립을 위해 2012년 7월 7일 창립추진위원회(위원장 채상묵, 위원 김정녀, 한혜경, 양종승, 김은희, 진유림 등 7명)가 결성되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2017년 4월 6일 정부로부터 공식 사단법인이 인가되었다. Q.설립 취지는. A. 한국 전통춤은 한민족 역사와 함께 탄생하여 발전되어 온 우리 고유 민족예술의 모체이자 시원이며 한민족 영혼과 사상을 담고 있는 역사이며 철학이다. 따라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민족춤 계승과 발전을 위해 그 역할을 확대해 나가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임회원 모두는 시대적 사명감을 안고 전통춤의 무궁한 창성을 위해 전통춤의 체계적 보존전승은 물론 사회교육, 홍보진흥, 학술연구, 인재양성, 공연기획, 국제교류, 대외협력, 춤 콩쿠르 등을 위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Q. 한국전통춤협회는 어떤 단체인가요? A. 한국전통춤창립추진위원회가 2012년 발족되고 위원장으로 채상묵 교수를 모셨다. 한민족예술의 정수, '한국전통춤'을 널리 알리고자 각 장르별 전통춤보존회로 구성되어 창립된 국내 유일한 협회이다. Q. 한국전통춤협회 창립 취지는? A. 전통은 한민족 역사와 함께 탄생하여 발전되어 온 우리 고유 민족예술의 모체이자 시원이며, 한민족 영혼과 사상을 담고 있는 역사이며 철학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민족춤 계승과 발전을 위해 그 역할을 확대해 나가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취지를 펼치고자 전국 전통춤을 전승하고 있는 보존단체가 협력 관계로 뭉쳤다. 2012년 초부터 민족춤의 체계적 보존전승은 물론 사회교육, 홍보진흥, 학술연구, 인재양성, 공연기획, 국제교류를 위해 회합을 갖고 범 전통춤 관련자 모임을 추진하여 왔다. 이러한 결실을 맺고자 우리는 한국전통춤협회 창립과 더불어 시대적 사명감을 안고 전통춤의 무궁한 창성을 위해 더욱 분발하고자 한다. Q. 초대 위원에는 어떤 분이 동참하셨는지요? A. 채상묵교수를 위원장으로 모시고 김정녀(예능), 한혜경(예능), 양종승(연구), 김은희(예능), 진유림(예능)으로 출범했다. Q. 한국전통춤협회은 초대 이사장은 A. 초대 이사장 채상묵, 2대 이사장 이길주에 이어 3대 이사장은 제가 맡고 있습니다. Q.지난 해 얻은 성과는 A. 주요 사업으로 <대한민국전통춤문화제>, <한국춤 차세대전>, <한국춤 학술세미나>, <전통춤 학술총서 발간>, <한국춤 대경연>, <한국전통춤 보물전 해외 공연>, <전통춤 연수회>, <한국춤 전국지부공연>, <대한민국전통춤 예술대상 시상식>, <대한민국전통춤 4대 명무상 시상식> 등이 있다. 전통춤 발전과 보급을 위해 제1회전통춤대경연대회를 개최했다. 참가 부분은 학생부, 일반부, 명인부, 신인부로 나누었고. 김숙자 명인상, 이매방 명인상, 한영숙 명인상을 제정했다. 장르는 전통춤에서 타악춤, 창작무용까지 확장했다. 공정한 심사를 위해 심사규정을 엄수하고 진행은 투명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Q.올해 역점 사업은 A. 한국 전통춤 큰잔치 ‘2024년 대한민국 전통춤문화제-수건춤 100년’을 오는 23-24일 2일 동안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개최했다. 첫째날에는 이병옥 교수의 해설과 함께, 최지원의 군무 동초수건춤, 박은하의 살풀이춤, 이지은의 도살풀이춤, 고재현의 군무 교방입춤, 이정애의 쌍수건춤, 김진원의 살풀이춤, 이미숙의 군무 경기수건춤이 펼쳐졌고, 둘째날에는 양종승 박사의 해설과 함께, 윤미라의 달구벌입춤, 채향순의 살풀이춤, 권영심의 교방살풀이춤, 임현선의 즉흥무, 문숙경의 군무 살풀이춤, 김경란의 논개별곡, 이정희의 군무 도살풀이춤이 열렸다. 올해에도 제2회전통춤대경연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한국전통춤협회는 해외 지부를 거점으로 미국 및 유럽과도 연결하여 한국의 전통춤 보급과 전수 활동을 펼치려는 계획하고 있다. Q.국악계에 하고 싶은 말씀은 A.유구한 역사속에서 우리선조들의 피눈물나는 질곡의 삶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보존및 계승ㆍ발전이라는 사명감에 오늘 날 찬란한 국악발전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작금의 국악계는 온전한 계승의 문제점을 안고있다고 보고있다. 찬란히 빛나야 할 우리의 국악발전은 염두에 있지아니하고 이권 다툼과 계파싸움이 팽배해 있다고 보여진다. 우리의 후학들과 후손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남겨줄수 있을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부분이라고 생각한다.문화유산은 먼저 올곧은 정신세계를 바탕으로 습득하고 터득된 예술세계를 물려줌이 마땅하다고 본다. 서로 일보양보하고 화합하여 개인의 영리보다는 국악계의 발전을 꾀해야 할것이다. 우리의 아름다운 국악유산이 후대에 이르기까지 무궁한 보존 및 계승 발전되기를 기원한다.
-
도자의 여로 (138)<br> 청자돈편완형의 청자돈을 보여 주어도 이규진(편고재 주인) 의자 생활이 오래 된지 오래다. 사무실의 책상과 의자는 어느새 현대인들에게는 필수불가결의 요소가 되어 버린 것이다. 어찌 사무실뿐이랴. 살림집(아파트 포함)의 식탁과 의자는 물론이거니와 따지고 보면 소파도 걸터앉는다는 점에서는 의자와 마찬 가지인 것이다. 이처럼 의자는 이제 우리 생활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친근한 기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고려시대에도 이러한 의자생활이 일상적이었다는 점에서는 흥미로운 바가 없지 않아 있다. 물론 하층민들이야 방바닥 생활이 주를 이루었겠지만 황실이나 귀족들에게는 의자 생활이 보편화 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실일까. 물론이다. 그 증거가 청자에서 보이는 의자 즉 청자돈이다. 청자돈은 둥근 형태에 속은 비어 있고 윗면은 막혀 있다. 윗면에는 무문이거나 음각의 문양이 들어가며 옆면은 투각으로 조각을 한다. 그런데 사람이 앉아야 하는 일정한 높이가 있다보니 기물은 구조적으로 대형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소성의 지난함 때문인지 보관의 어려움 때문인지 완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지극히 드물며 대개는 손상을 입고 있거나 도편으로 남아 있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근래 구입한 청자돈편도 마찬 가지다. 윗면 일부와 옆 부분이 남아 있는데 워낙 큰 기물이다 보니 도편의 크기만 해도 만만치가 않은 대형이다. 청자돈편의 윗부분은 음각의 문양이 들어 있는데 종류는 알수가 없다. 옆은 단을 이룬 위쪽에는 투각으로 당초문을 새겨넣고 있다. 두 줄의 양각으로 구분을 한 아래는 문양을 교차시켜 조각하고 있는데 중간을 보면 대나무 같은데 위는 고사리 같은 모양이기도 하다. 남은 것은 이것 뿐이지만 통상의 예로 보아 없어진 아래로는 연판문을 새긴 밑부분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청자돈편을 보면 좌우의 것은 색감이 약간 달라 소성 과정의 반대편 불 탓인지 아니면 서로 다른 기물의 것인지는 조금 더 살펴 볼 필요가 있을 듯 싶은 것이기도 하다. 고려 시대를 다룬 사극을 보다보니 의자 생활의 모습이 보여 반가운 느낌이었다. 아쉬운 것은 청자돈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사실 일반인에게 완형의 청자돈을 보여 주어도 이 것이 고려인들이 사용했던 의자였음을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청자돈을 보며 우리는 고려인들의 의자생활을 알 수 있거니와 그곳에 표현된 미감을 통해 시대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을 공유해 볼 수도 있으니 이 또한 부수적인 이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