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리뷰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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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지휘자 이든 "지휘봉 들면 성악가도 되고 연주자도 되죠"오페라는 클래식 공연 가운데서도 성악, 관현악, 연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종합예술로 꼽힌다. 막이 오르면 공연을 진두지휘하는 건 무대 아래 깊이 파인 공간인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지휘봉을 든 지휘자다. 객석에서는 뒤통수만 빼꼼히 보이는 오페라 지휘자는 화려한 의상을 입고 무대를 누비는 성악가와 오케스트라의 호흡을 순간순간 상황에 맞춰 촘촘하게 조율해야 한다. 일찍이 '오페라 지휘자'로 커리어를 굳힌 이든(36)은 이런 오페라 지휘 체계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에서 만난 이든은 "감사하게도 제 지휘가 편하다고들 해주신다"며 웃었다. 이든은 오는 22∼25일 국립극장에서 국립오페라단이 공연하는 로시니의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으로 국내 전막 오페라 데뷔 무대를 치른다. 021년 프랑스 브장송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입상하며 이름을 알린 이든은 지휘에 앞서 성악과 피아노를 전공했다. 중학교 진학 시기에 "음악을 하고 싶다"며 훌쩍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면서 음악 인생이 시작됐다.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성악을 전공했고, 2012년 미국으로 건너가 매네스 음대에서 성악을 공부했다. 테너로 뉴욕 카네기홀에서 독창회도 가졌지만, 음악가로서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종착지는 지휘자였다고 했다. 미국에서 유스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지휘자로 발을 내디뎠고, 다시 베르디 음악원으로 돌아가 지휘 석사과정을 밟았다. 이든은 "성악가가 되고 싶었던 때도 있었지만, 슬럼프가 왔고 '이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때 지휘를 제대로 공부했는데, 공부할 게 너무 많은데도 마냥 좋았다"고 회상했다. 지금까지 15개 안팎의 오페라 전막을 지휘한 이든은 지난해에는 불가리아 플로브디프 오페라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역량을 증명했다. 오페라를 지휘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지휘를 지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소프라노가 노래할 때는 저도 소프라노가 된 것 같고, 합창할 때는 합창단 단원이 된 것 같아요.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때는 그 악기 중 하나가 된 것 같고요. 매일매일 같은 작품을 해도 흥미롭고, 새로운 걸 발견할 수 있었어요." 이든은 오페라 지휘자로서 자신의 강점이 뭐냐는 질문엔 "과거 무대 위에 섰던 사람으로서 성악가들이 어떤 고충을 겪는지 안다"고 답했다. 그는 "공연마다 성악가의 호흡과 프레이징(음악의 흐름을 유기적인 의미나 내용을 갖는 악구로 구분하는 일)이 다르다"라며 "이런 부분을 공연 때 바로바로 캐치하고 지휘에 반영하다 보니 제 지휘가 편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며 쑥스러운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페라에서 성악가들은 연기를 하면서 노래하다 보니 리허설 때와는 달리 실제 무대에서 호흡이 딸리거나 프레이징이 짧아질 때가 있다. 반대로 공연 날 컨디션이 좋아 고음을 더 오래 끌 때도 있다. 이런 현장 상황을 무시하고 미리 계산해 놓은 대로 지휘하면 '노래 따로, 오케스트라 따로'가 된다는 것이다. "간혹 오케스트라와 무대 위가 맞지 않는 공연이 있어요. 예를 들면 무대에서 성악가가 턴을 다 못했는데 '이 부분은 5초로 연습했어'라며 바로 다음으로 넘어가 버리는 식이죠. 그래서 공연 때는 오케스트라도 성악가도 서로 편의를 봐줘야 해요. 이걸 조율하는 게 지휘자고요." 지휘자라고 하면 백발의 나이 지긋한 모습이 먼저 떠오르는 클래식계에서 이든은 30대 지휘자로도 주목받는다. 평생 공부하는 삶을 살아가는 음악가로서 지금도 1년에 한 번은 스승인 핀란드의 거장 지휘자 요르마 파눌라를 찾아가 점검받는다. 이든은 나이에 대한 생각을 묻자 "30대 중반을 젊은 지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나이가 많다고 경험이 많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그(경력이 많은)분들보다 뭘 더 해야 할지 생각하면 짧은 시간 동안 더 많은 것을 일궈나가야 해요. 그만큼 더 많이 공부하고 있어요." 포디움에 설 때면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는 이든이 향해가고 있는 지휘자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흉내 내지 않는 지휘자"라고 답했다. "남을 따라 하는 지휘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젊은 지휘자 중에서는 종종 누군가의 지휘를 흉내 내는 경우가 있어요. 또래 지휘자들끼리 모이면 그런 이야기를 하곤 해요. '너 그 선생님처럼 하더라?', '오늘은 (전설적인 지휘자) 아바도?'라면서요. 그러면서 고쳐나가기도 하죠. 저만의 지휘를 하고 싶어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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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창작 경험 없었기에 획기적 안무 만들어낼 수 있었죠""'노트르담 드 파리'의 안무는 단순히 무대를 장식하거나 채우는 요소가 아닙니다. 강렬한 감정을 끌어내 공연을 뒷받침하는 기능을 하죠." 집시의 자유로운 영혼을 표현하는 현대무용부터 무대에 매달린 거대한 종을 흔드는 곡예,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브레이킹 댄서들의 헤드스핀까지. 1998년 초연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가 오랜 시간 관객의 사랑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발레, 현대무용, 브레이킹 등 여러 장르로 이루어진 안무다. 장면 분위기에 맞게 등장하는 다채로운 춤은 관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시적인 가사를 전달하는 역할까지 한다. 초연부터 작품의 안무가를 맡고 있는 마르티노 뮐러는 작품에 등장하는 춤이 관객과의 소통에서 핵심적인 기능을 담당한다고 말한다. 뮐러는 9일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춤은 작품과 관객이 글자 없이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수단"이라며 "현대무용을 기반으로 한 안무는 이야기를 설명하고, 지탱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흉측한 외모를 지닌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와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의 사랑을 중심으로 인간의 욕망과 위선 등을 드러낸 작품이다. 15세기 파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현대무용과 브레이킹 등 시대를 뛰어넘은 동작으로 안무를 구성한 점이 특징이다. 뮐러는 더욱 다양한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현대무용 기반의 안무를 구상했다고 한다. 그는 "현대무용을 기반으로 모든 관객이 이해할 수 있는 동작을 창작하는 것이 과제였다"며 "그러면서도 (무언가를 따라 하는 듯한) 키치한 인상을 피하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뮐러는 여기에 무용수들의 연속 회전과 공중제비를 비롯한 곡예를 더해 작품의 에너지를 극대화했다. 콰지모도가 성당의 종을 울리며 에스메랄다를 향한 마음을 표현하는 노래 '성당의 종들'은 곡예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무용수들은 무대에 매달린 대형 종을 좌우로 크게 흔드는 곡예를 선보이며 주인공의 감정을 뒷받침한다. "거대한 종을 흔드는 곡예 동작은 자유를 상징하고, 무용수들의 독특한 움직임은 콰지모도의 순수한 영혼을 표현해줍니다. '성당의 종들'은 주인공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합니다." 스위스 출신인 뮐러는 발레와 현대무용 분야를 중심으로 활동한 무용수이자 안무가였다. 그는 1992년 본격적인 안무가 활동을 시작해 프랑스 리옹 오페라 발레단,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 등과 작업해왔다. 뮤지컬과 접점이 없었던 그는 26년 전 '노트르담 드 파리'로 난생처음 뮤지컬 안무 제작에 도전했다. 작품의 프로듀서인 샤를 타라의 섭외 제안이 들어왔을 때 순수한 호기심만으로 뮤지컬 창작에 뛰어들었다. 당시를 회상한 뮐러는 자신이 뮤지컬에 도전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기존 작품과 차별화된 안무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뮐러는 "뮤지컬 안무 제작은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일이었다"며 "그렇기 때문에 현대무용을 바탕으로 획기적인 안무 스타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공연이 25년 넘게 이어지며 작품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라고 돌아봤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무용수들이 가수들처럼 큰 박수와 환호를 받을 때 뮐러는 안무가로서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그는 "실력 있는 무용수, 곡예사와 브레이커가 무대에서 쏟아내는 예술성과 헌신은 공연에 생명을 불어넣는 요소"라며 "그들의 퍼포먼스는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 공연을 관람할 때면 무용수들의 뛰어난 퍼포먼스와 배우들의 독보적인 가창력에 감명받는다고 한다. 이번 시즌도 뛰어난 배우들과 함께할 수 있어 기쁘다는 그는 한국 팬들의 응원을 부탁했다. "작품을 향한 한국 팬들의 열정을 영광스럽게 생각해요. 팬들의 관심과 사랑은 모든 공연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입니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다음 달 24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계속된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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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희 "클래식 기타의 소박한 매력 알아주는 사람 많아지길""연주 때마다 손톱을 정리해줘야 해요. 소리와 직결되거든요." 지난 30일 서울 동작구 뮤직앤아트컴퍼니 스튜디오에서 만난 클래식 기타 연주자 박규희(39)는 손톱을 사포에 문지르며 이같이 말했다. 기타리스트에게 손톱 손질은 인터뷰에 앞서 짧은 연주를 들려줄 때조차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박규희는 다음 달 2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연주회에 협연자로 무대에 서게 됐다. 원래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기타리스트 밀로시 카라다글리치의 협연이 예정된 공연이지만, 밀로시가 낙상사고로 다치면서 협연자가 급하게 교체됐다. 공연을 닷새 앞둔 지난 28일 협연 요청을 받았다는 박규희는 "사실 1년 전쯤에도 제안받았던 공연"이라며 "이후 소식이 없다가 다시 저에게 돌아온 공연이어서 인연을 느꼈다"고 웃었다. 협연 작품은 스페인 작곡가 로드리고의 '아랑후에스 기타 협주곡'이다. 기타 협주곡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스페인의 청량함과 딸을 유산으로 잃었던 작곡가의 생사에 대한 감정 등이 담겨있는 곡이라고 박규희는 설명했다. 박규희는 "마침 지난해 11월에 일본에서 이 곡을 공연한 적이 있어 협연을 할 수 있다고 했다"며 "그래도 단 며칠 만에 (곡에 대한 감을) 끌어올려야 해서 밤낮으로 급하게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립심포니의 풍부한 사운드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고, 소리가 작은 악기인 기타가 이를 뚫고 나올 수 있을지 염려되면서도 기대된다"고 공연에 대한 설렘을 내비쳤다. 박규희는 최근 일본 공연을 포함해 지금까지 30번 정도 이 곡을 공연장에서 연주했지만, 과거 연주를 망쳤던 트라우마로 무대에 서기 전 진정제를 먹는다고 했다. 그는 "제 커리어에서 최악의 순간과 영광의 순간을 같이 한 곡"이라고 했다. 박규희는 "최악의 순간은 2011년 일본 교토교향악단 데뷔 무대"라며 "당시에는 곡에 대한 경험이 없다 보니 너무 많이 긴장했고, 혼자 연습할 때와 오케스트라와 합을 맞출 때가 달라 연주를 망쳤다"고 떠올렸다. "제가 나오고 들어가야 할 타이밍도 어긋나고, 템포도 감을 못 잡았죠. 교토에 큰 강이 있었는데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어요." 박규희는 영광의 순간으로는 교토교향악단 공연 이후 일본에서 가진 도쿄메트로폴리탄심포니, NHK교향악단과의 협연 무대를 꼽았다. "워낙 유명한 곡이지만, 기교적으로 어려워서 기타리스트들이 벌벌 떠는 곡이에요. 한 선배는 이 곡을 연주할 때마다 새벽기도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연주를 하면 어려운 부분이 다가올 때마다 여전히 긴장해요." 박규희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비주류'로 여겨지는 클래식 기타의 매력을 전파해온 연주자기도 하다. 기타를 취미로 배우던 엄마를 따라다니면서 세 살 때 처음 기타를 잡았고, 다섯 살부터 10여년간 국어 교사 출신인 기타리스트 리여석의 집에 살다시피 하며 한글과 기타를 함께 배웠다. 어린 시절부터 기타와 함께 성장한 만큼 기타리스트가 되는 걸 당연하다고 여겼다고 한다. 일본 도쿄 음대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를 거친 박규희는 2008년 벨기에 프렝탕 기타 콩쿠르에서 여성 최초, 아시아인 최초 우승자로 국제 무대의 주목을 받았고, 2012년 스페인 알람브라 기타 콩쿠르에서 1위와 청중상을 석권하며 실력을 입증했다. 현재는 한국과 일본, 유럽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박규희는 "클래식 기타를 가요의 반주 악기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 서러움이 있다"며 "기타를 메고 택시를 타면 '저도 옛날에 밴드 했어요'라고 통기타로 생각하시거나, '노래하세요?'라며 싱어송라이터로 여기는 분들이 많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클래식 기타는 르네상스에는 '류트'라는 악기로 있었고, 모양만 바뀌었을 뿐 항상 존재해 왔다"며 "클래식 기타를 아는 분들이 많아져서 '기타'라고 했을 때 클래식 기타를 떠올려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박규희는 클래식 기타의 매력으로 '소박함'을 꼽았다. 쇠줄을 쓰는 통기타와 달리 나일론 줄을 쓰는 클래식 기타는 가까이에서는 소리가 작게 들리지만, 멀리까지 소리가 뻗어나가는 특징이 있다고 했다. 또 피크를 쓰는 통기타와 달리 오로지 손톱과 살로 연주해야 해서 연주자마다 소리가 달라진다고 한다. "클래식 기타는 소박하고 따뜻해요. 꾸며내는 소리가 아니죠. 옆에서 치고 있어도 대화에 방해가 안 될 정도로 공기 같기도 하고요. 아직도 개발되지 않는 주법들도 많아서 무한한 가능성도 있어요. 최근에는 아이유를 비롯해 대중가수들도 클래식 기타를 반주로 쓰고 싶어 한다고 들었어요." 박규희는 한국에서 클래식 기타 연주자들이 많아졌으면 한다는 희망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팬데믹 기간에는 온라인 플랫폼에 기타를 잡는 자세같이 기본적인 클래식 기타 연주법을 설명한 강의 영상을 30강 정도 올리기도 했다. 박규희는 "아직 한국에서는 클래식 기타 교육 체계가 깊지 않아 시행착오를 많이 겪는다"며 "죽기 전에 클래식 기타 교본을 만들어서 어떻게 해야 손에 병이 안 나고 좋은 연주자가 될 수 있는지 알리고 싶다"고 야심 찬 포부를 밝혔다. "기타의 역사처럼 '가늘고 길게' 가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빵' 뜨지 않아도 '박규희는 항상 어디선가 좋은 연주를 하고 있구나'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좋겠어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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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창극 도전부터 조선시대 여성들의 연대 담은 뮤지컬까지남자 배우들로만 무대를 채우는 남성 창극과 고전소설 '박씨전'을 모티브로 한 뮤지컬 등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들이 무대에 오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2023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3차 기자간담회를 열고 다음 달부터 선보이는 작품 5편을 소개했다. 이날 소개된 작품 가운데 다음 달 2∼4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남성 창극 '살로메'는 남자 배우들로만 창극을 이끌고 간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김시화 연출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다"며 "패션, 메이크업 등 많은 부분에서 성의 경계 허물어진 것처럼 전통공연 안에서도 이런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시도가 창작의 가능성을 넓히고, (전통공연의) 대중화를 실현할 수 있는 콘텐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오페라로도 유명한 '살로메'는 오스카 와일드의 동명 희곡이 원작으로 세례자 요한을 사랑한 공주 살로메와 이를 둘러싼 헤로데 왕가의 뒤틀린 욕망을 그린다. 극본을 맡은 작가이자 연출가인 고선웅이 각색을 통해 극단적인 결말로 재탄생시켰다. 김 연출은 "극 중 인물들은 욕망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하고, 죽음을 맞이한다"며 "이런 집착이 결국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는 허망함과 공허함을 느낄 수 있는 공연"이라고 설명했다. '살로메'는 화려한 제작진과 출연진으로도 주목받는다. 오늘날 창극의 인기를 이끈 고선웅과 뮤지컬계 스타 안무가 신선호,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이 작품에 참여했고, '판소리계 아이돌'로 불리는 김준수, 유태평양, 김수인 등이 출연한다. 다음 달 7일 대학로 플러스씨어터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여기, 피화당'은 조선시대 여성들의 연대를 보여준다. 작자 미상으로 알려진 '박씨전'의 작가가 누구일까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작품으로 병자호란 때 청으로 끌려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정절을 잃었다는 이유로 버림받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극중극 형식으로 풀어낸다. 이윤희 연출은 "3명의 여인이 동굴 속에 숨어 살다가 생계를 위해 소설을 쓰는 내용"이라며 "비참한 현실 속에 있지만, 무너지지 않고 곁에 있는 사람들과 연대하며 현실을 마주하고 빛을 향해 나아가는 따뜻한 감동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한솔 작가는 "극에서 여성들이 동굴에서 나올 수 있는 서로가 있기 때문"이라며 "연대와 희망이라는 힘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전통에 기반한 음악 실험극도 무대에 오른다. 다음 달 2·3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밤쩌: 사라져가는 것에 대하여 파트2'는 공연단체 불세출의 신작으로 민속문화인 굿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을 관객들에게 소개한다. 배정찬 불세출 대표는 "동해안의 오구굿을 중심으로 한 작품"이라며 "오구굿은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하는 굿으로 요즘은 이런 문화가 사라져서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에 기획한 공연"이라고 말했다. 이어 "산 자와 죽은 자를 동시에 위로하는 게 굿이라고 생각한다"며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겪는 죽음을 통해 삶을 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 작품 외에도 다음 달 2∼4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는 커다란 사회 안에서 자기 존재의 분실을 다룬 무용 '어 다크 룸'(a dark room)이, 같은 기간 마포구 틸라그라운드에서는 소리가 발생할 때 생기는 진동과 노이즈를 새로운 감각과 감동을 전달하는 음악 공연 '언/리더블 사운드'(UN/Readable Sound)가 공연된다.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은 공연 예술 전 장르에 걸쳐 제작·유통 등을 지원해 우수한 신작을 발굴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사업이다. 올해는 총 27개 작품이 선정됐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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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성 "저는 뮤지컬에 미친 사람…군대 휴가 나와 오디션 봤죠"(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저는 뮤지컬에 미쳐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뮤지컬로 시작해서 뮤지컬로 끝나죠. '몬테크리스토'를 너무 좋아해서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와 오디션을 보기도 했습니다."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에 출연 중인 배우 고은성(34)이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EMK뮤지컬컴퍼니 사옥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작품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고백했다. 그는 "'몬테크리스토'는 20대 초반부터 좋아한 작품이라 언젠가 배역을 맡을 것이라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며 "작품을 오래 준비했기에 이야기와 매력을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작품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14년간 감옥에 갇혔던 선원 에드몬드의 복수와 용서를 그린다. 이번 시즌은 알렉상드르 뒤마의 원작 소설에 가깝게 설정을 바꾸고, 인물의 다층적인 면이 더 드러나도록 복수에서 용서로 이어지는 감정선을 보강했다. 고은성은 "복수하고, 용서하고, 끝나는 단순한 이야기라 생각할 수 있지만 과정이 복잡하다"며 "캐릭터를 연기할 때도 복수를 하다 어느 순간 용서를 깨닫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했다. 복수에 미쳐서 남을 용서하기 싫어하는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작품과 에드몬드라는 인물에 관한 자신만의 해석도 함께 들려줬다. "'몬테크리스토'는 에드몬드라는 선원이 인간이라는 파도를 만나 항해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바다 위에서는 내비게이션이 있는 것처럼 능숙한 사람이지만, 인간에 의해 억울하게 누명을 쓴 뒤 어려움을 다시 극복하는 이야기입니다." 고은성은 지난해 11월 충무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여섯 번째 시즌에 주인공 에드몬드 역으로 합류했다. 2010년 초연한 '몬테크리스토'는 이번 시즌 고은성을 비롯해 새로운 배우에게 주인공 역을 맡겼고, 작품의 줄거리와 넘버 등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군 복무 중 10주년 기념 공연의 오디션을 보러 갈 정도로 익숙하고 애정을 품은 작품을 새로운 환경에서 준비하는 일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고은성은 완전히 새롭게 작품을 만드는 일이 오히려 즐거웠다고 돌아봤다. 그는 "출연했던 배우가 없어서 오히려 좋았다"며 "새로운 캐릭터를 분석하고, 캐릭터의 의도를 바탕으로 다양하게 움직임을 만들며 최선을 찾아갔다"고 설명했다. 작품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14년간 감옥에 갇혔던 선원 에드몬드의 복수와 용서를 그린다. 이번 시즌은 알렉상드르 뒤마의 원작 소설에 가깝게 설정을 바꾸고, 인물의 다층적인 면이 더 드러나도록 복수에서 용서로 이어지는 감정선을 보강했다. 고은성은 "복수하고, 용서하고, 끝나는 단순한 이야기라 생각할 수 있지만 과정이 복잡하다"며 "캐릭터를 연기할 때도 복수를 하다 어느 순간 용서를 깨닫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했다. 복수에 미쳐서 남을 용서하기 싫어하는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작품과 에드몬드라는 인물에 관한 자신만의 해석도 함께 들려줬다. "'몬테크리스토'는 에드몬드라는 선원이 인간이라는 파도를 만나 항해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바다 위에서는 내비게이션이 있는 것처럼 능숙한 사람이지만, 인간에 의해 억울하게 누명을 쓴 뒤 어려움을 다시 극복하는 이야기입니다." 고은성은 2011년 데뷔한 이래 조연을 거쳐 '헤드윅', '데스노트' 등 대극장 작품에서 주연을 맡는 배우로 성장했다. 18살 때 아무런 기대 없이 억지로 끌려가 감상했던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고, 그 후로 고은성은 오로지 뮤지컬 배우라는 꿈을 향해 정진하고 있다. 그는 "저는 뮤지컬의 간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며 "극적인 상황과 뮤지컬 특유의 감수성이 저를 뮤지컬에 미치게 만든다. 뮤지컬이 저를 늘 긍정적으로 살 수 있게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뮤지컬에 미쳐있는' 그는 무대의 본질에 벗어난 것들에 흔들리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뮤지컬에 출연하며 이겨낸 뒤로는 어떤 일이 닥쳐도 무너지지 않는 에너지까지 갖추게 됐다. 고은성은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맡은 캐릭터를 잘 보여주는 것이고, 하루하루 공연을 잘 풀어내는 것"이라며 "관객의 함성도 내가 본질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관객이 주는 감사함을 알되, 감사를 위해 살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올해 목표 역시 흥행과 관계없이 좋은 공연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과거에 출연한 작품이 있으니 지금이 있고, 지금이 있어서 또 다른 작품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보러 와주시는 관객들에게 좋은 공연을 보여준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활동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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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정자 "나는 항상 현재 진행형…언제나 죽기살기로 연기"(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저는 연극배우로 활동하면서 제가 항상 '현재 진행형'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과거의 인물로 남는 순간은 숨을 거두는 날이죠." 60년 넘게 연극 무대를 지킨 배우 박정자(82)는 1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광화문문화예술상 시상식을 앞두고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관객과 배우가 무대에서 라이브로 만나는 것이 연극의 힘이고, 그 힘 덕분에 현재 진행형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정자는 이날 광화문문화포럼으로부터 제5회 광화문문화예술상을 받았다. 광화문문화포럼은 60년 넘게 연극 무대를 이끌어 온 배우이자, 연극인 복지와 지역 문화 발전에 기여한 박정자를 올해 수상자로 선정했다. 박정자는 "아직 이 상을 받을 차례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느덧 나이가 팔십하고도 둘이 되었으니 어영부영 순서가 된 게 아닌가 싶다"며 "배우의 삶이 끝나는 날까지 진행형으로 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저는 디지털 스크린이나 액자 속에 갇힌 배우가 아니라 아날로그 연극 무대에 선 배우다. 제가 만약 액자 속에 갇혀 있다면 언제든 저를 액자에서 꺼내달라"고 웃으며 말했다. 박정자는 멈추지 않는 활동으로 관객에게 영감을 주는 배우다. 이화여자대학교에 재학하던 1962년 '페드라'로 연극 무대에 데뷔한 뒤 지금까지 총 160여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왕성한 활동 덕에 많은 수의 대표작을 남겼다. 1966년부터 극단 자유의 창단 멤버로 활동하며 '따라지의 향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등에 출연했다. '신의 아그네스', '햄릿' 또한 대표작으로 불린다. 1970년 연극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으로 백상예술대상을 받았고, 김기영 감독의 영화 '충녀'와 '육체의 약속'에서 활약하며 영화계에도 족적을 남겼다. 그는 "지금까지 제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한해도 쉬지 않고 활동했다는 사실뿐"이라며 "저는 제 일이 운동선수와 똑같다고 생각한다. 단 한 번도 연기를 쉬면서 취미로 한 적이 없고 죽기 살기로 임했다"고 말했다. 물리적인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박정자는 여든이 넘긴 지금도 공연을 매진시키는 스타 배우다. 2021년 연극 '해롤드와 모드'에서는 80세의 등장인물을 연기해 화제를 모았다. 현재 인기리에 공연 중인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가 끝나면 또 다른 연극과 뮤지컬 출연이 예정되어 있다. 박정자는 "주변 사람들이 나를 연극배우로 대해주고 내게 관심을 보내주는 것이 활동의 원동력"이라며 "스타 배우라는 타이틀이 부담될 때도 있지만, 에너지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극배우라는 평가에도 그는 만족하는 법이 없다. 그는 연극 무대에서 늘 부족함을 채워간다고 말한다. 박정자는 "순간순간 만족은 있을 수 있어도 전체적으로 보면 늘 부족한 점이 보인다"며 "만족은 절대로 없다. 2%라도, 단 0.2%라도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채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자는 연기 인생을 돌아보면 연극배우라는 직업을 택한 것이 인생 최고의 선택이라고 한다. 특히 그는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는 현재에도 '영원한 아날로그'인 연극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박정자는 "디지털 세상이 와도 AI가 배우 박정자나 연극을 대신할 수는 없다"며 "AI가 대체할 수 없는 직업을 고른 선택이 탁월했다. 매일매일 인간답게 살아가며 무대에 설 수 있어 행복하다"고 밝혔다. 무대에서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는 박정자는 자신을 기억하는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다고 말한다. 단지 연극배우로 남고 싶다는 그의 말은 짧지만 큰 울림을 남긴다. "어떠한 수식어도 필요 없고, 어떤 수식어도 거부해요. 그냥 '연극배우' 박정자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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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준 스님의 ‘명상음악’(국악신문) 김한나 기자=마음이 상하고 우울한 자를 위해 명상음악으로 위로와 용기를 담아 고요한 에너지를 전달하고픈 범준 스님의 음악세계를 직접 들어봤다. Q: "명상음악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A: "한 스님의 권유로 포교를 하려던 차에 코로나 시기와 맞닥뜨리게 되었고 영상포교로 방향을 돌리면서 명상음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승가대학 공부를 마친 뒤 해외를 오가며 명상음악을 배웠고, 한국에 정착하면서 명상음악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지요. 사람들의 마음에 부담 없이 다가 갈 수 있는 것이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바쁜 일상과 각박한 현실로 사람들의 인정은 점점 메말라 가는 것만 같아 안타까운데요, 그래서 상처 입고 우울한 사람들이 명상음악을 통해 작게나마 위로 받고 용기를 얻어 갈 수 있다면 좋겠어요.” Q: "스님이 추구하는 명상음악의 방향과 가치는 무엇이며 대상은 누구인가?” A: "명상음악은 따분하고 지루하게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 지루하지 않으면서 듣기에 편안하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음악을 바탕으로 해요. 상한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회복되고 치유가 될 수 있도록 고요한 에너지를 전달 하고자 하는데 중점을 둡니다. 현재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의 부제가 ‘마음 치유’입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명상음악을 통해 위로와 용기를 얻고, 나아가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대상은 스님이나 수행자들로 한정하지 않습니다. 나를 찾는 강연장에 가면 대부분이 일반 대중들입니다. 어린아이들과 수험생도 찾아오고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까지 연령대도 다양합니다. 나이구분 없이 누구나 접할 수 있는 폭넓은 음악을 들려드리는데 신경을 쓰고 있지요.” Q: "명상음악 연구는 어떻게 하나요?” A: "대부분의 음악은 프랑스 플럼빌리지(Plum Village) 음악에서 가져 온 곡들입니다. 플럼빌리지는 명상을 하기 위해 모인 스님 공동체와 일반인들, 그리고 음악을 하는 팀이 구성돼 있습니다.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등 악기를 연주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스님들이 많고 서로 새로운 곡을 만들기도 해요. 노래가 있는 가사는 주로 틱낫한 스님이 쓴 글을 바탕으로 합니다. 틱낫한(Thich Nhat Hanh) 스님이 쓴 저서가 100권이 넘는데 글이 참 아름다워요. 아이들이 들어도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이기 편안한 동화 같은 느낌이 있는 글들입니다. 플럼빌리지 음악이 불교음악이지만 대중들이 호흡명상을 하기에 좋은 가사가 시처럼 잘 표현되어 있어요. 플럼빌리지의 곡들 중에 멜로디가 제게 와 닿고 명상음악에 쓰면 좋겠다 싶은 곡을 선정합니다. 대부분의 곡들은 틱낫한 스님이 쓴 글과 시를 제가 번역해서 불렀지요. 번역은 직역을 하면 어색하고 음에 맞게 작업하는 것이 어려운 점이 있지만 완성하고 나면 많은 분들이 좋아해줘서 저도 기쁘고 보람을 느껴요.” Q: "연주 구성과 편곡은 어떻게 하나요? A: "명상음악의 특성상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기에 많은 악기를 동원하지 않아요. 기타와 피아노, 바이올린 한 가지 악기 반주로 노래를 해요. 노래는 처음부터 직접 할 생각이 없었는데 주어진 재정 한계와 플럼빌리지의 곡을 많이 알리고 싶기도 해서 부족하지만 직접 노래를 부르게 됐습니다. 명상음악이라서 노래를 할 때 많은 기교가 필요 없어요. 있는 그대로의 목소리로 노래를 합니다. 만들고 나니 주변의 반응도 좋고, 이것이 나의 운명이구 했지요. 편곡은 악기 담당자와 상의를 하면서 원곡을 많이 벗어나지 않되 한 가지 악기 구성과 저와 어울릴 수 있게 만들어요. 명상음악에 나레이션도 있어요. ‘감사의 힘’, ‘우울증 벗어나기’는 수행하면서 느낀 점들을 정리해서 나레이션으로 풀어 놓은 것입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요?” A: "명상음악에서 불렀던 플럼빌리지의 곡들을 하나의 음반에 담고 싶어요. 몇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기획사마다 추구하는 음악적 색깔이 달라서 무산됐어요. 첫 번째는 플럼빌리지의 곡을 잘 살려낼 수 있는 기획사를 만나서 음반을 내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홀로아리랑을 불러보고 싶습니다. 얼마 전 일본 핵오염수 해양방출이 있기 전 반대 서명 운동으로 아리랑을 불렀어요. 그것은 단순히 쓰레기 하나 버리는 수준이 아니라 물의 순환을 생각하면 방사능 방류는 심각한 문제지요. 안타깝게 결국 바다에 버려졌지만요. 개인과 개인의 문제가 아닌 나라의 일이라 무슨 노래를 할까 고민 하다가 아리랑이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곡이라 아리랑을 불렀지요. 아리랑을 부르고나니 이제 홀로아리랑도 불러보고 싶어졌어요. 세 번째는 그동안 플럼빌리지에서 만든 곡으로 노래했지만 앞으로는 나만의 곡을 만들어서 새로운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어요. 제가 작사나 작곡을 할 수 있고 주변분들 또는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로부터 주시는 곡들도 다 괜찮아요. 이런 계획들이 명상음악을 접하는 상한 심령들의 마음에 치유가 일어나고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범준 스님은 동학사 승가 대학에서 공부를 마친 뒤 미얀마 쉐우민 센터와 캄보디아 국제구호단체 지구촌 공생회, 태국, 프랑스 플럼빌리지에서 수행을 하며 명상음악을 배웠다. 또한 일본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방출이 있기 전 반대 서명 운동으로 ‘아리랑과 고래의 꿈’에서 아리랑을 불렀으며, 얼마 후에는 춘천 중도유적지에서 문화재 보호를 위해 미공개 된 ‘작은별’ 노래로 뮤직비디오 촬영을 할 예정이다. 현재 유튜브 채널 담마테라피 운영과 동국대평생교육원에서 자비명상 강의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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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춤에 현대 옷 입힌 박수정·홍연지 "새로움 찾는 도전"(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전통춤은 지루하고 고루하다는 편견, 신나게 흥 끌어올린 춤판에서 깨고 싶었죠."(박수정 서울시무용단 수석) "새로운 시도는 늘 두렵죠. 그래도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홍연지 서울시무용단 부수석) 한국 창작 춤의 산실 역할을 해 온 서울시무용단의 두 단원이 전통춤에 현대 옷을 입힌 신작 안무 두편을 선보인다. 15∼17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하는 안무가 프로젝트 '에이플러스'를 통해서다. 에이플러스'는 전통무용과 다른 예술 장르의 결합을 통해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무대를 선보였던 '더 토핑'을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이번 무대는 '전통의 재해석을 통한 현대화'를 주제로 했다. 박수정(38) 수석은 무용수들의 움직임에서 흥 넘치는 전통 춤사위를 발견할 수 있는 '별이 빛나는 밤(bomb)에', 홍연지(49) 부수석단원은 처용무를 재해석한 '써-클'(cir-cle)을 무대에 올린다. 공연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두 사람은 막바지 준비로 분주해 보였다. 서울시무용단 정기 공연을 소화하며 새 작품을 구상하고 안무를 완성하기까지 2∼3주의 시간을 쪼개 썼다고 했다. 빽빽한 일정 속에서도 '에이플러스'에 참여한 것은 새로운 시도에 대한 갈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수정은 "저는 춤을 추는 사람이니, 춤으로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며 "요즘 사람들이 K팝,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열광하는데, 우리 춤도 이렇게 만들고 싶다는 작은 포부도 있었다"고 '에이플러스'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홍연지는 "올해가 서울시무용단에 입단한 지 27년 차"라며 "처음에는 배우고 받아들이는 데 열정을 쏟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싶고, 밖에서(하던 것 외에) 무언가를 찾고 싶다는 마음이 꿈틀거렸다"고 말했다. 박수정이 안무한 '별이 빛나는 밤(bomb)에'는 '걷다', '뛰다', '날다' 등 과거와 현재, 미래에도 통용되는 움직임에서 구상을 시작했다. 박수정은 이런 움직임이 무용과 다르지 않으며, '흥의 DNA'가 묻어있다고 했다. "사람이 태어나면 기어 다니다 걸음마를 하고, 뛰어다니다 기뻐서 펄쩍 날아오르잖아요. 옛날 선비들의 걸음이나 전통춤의 잔걸음, 요즘 친구들이 하는 '슬릭백'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과거와 현재, 세대와 계급을 넘어 남녀노소가 하나 되는 춤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작품에서는 현대적인 무용과 진주검무, 무당춤, 동래학춤, 강강술래 등 전통춤이 어우러진다. 박수정은 전통춤은 원형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안무가들의 동작에서 유추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펄쩍펄쩍 뛰는 동작을 보면서 아이들이 신나서 뛰는 건지, 동래학춤의 한 동작인지 유추하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작품 제목에 폭탄을 뜻하며 '밤'으로 발음되는 영어 단어 'bomb'을 중의적으로 쓴 데는 공연에서 흥의 DNA를 폭탄처럼 터트리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관객들이 객석에서 일어나 들썩이며 춤을 췄으면 한다는 바람이다. 음악도 빠른 박자감의 EDM(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을 바탕으로 했다. 공연 막바지에는 트로트 가수 영기가 특별출연한다. 박수정은 "무용수들이 숨이 차 죽을 것 같다고 할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내달린다"며 "'이런 게 무용이에요'라고 설명하기보다는 관객들이 공연을 보면서 춤을 쉽게 느낄 수 있었으면 했다"고 말했다. 홍연지가 안무한 '써-클'은 원래 악귀를 몰아내고 평온을 기원하고자 음력 섣달그믐날 악귀를 쫓는 의식에서 복을 기원하는 춤인 '처용무'를 바탕으로 한다. 홍연지는 전통춤을 재해석한다는 점에서 부담도 있었지만,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에서부터 작품을 시작하고 싶었다고 했다. 1997년 서울시무용단에 입단해 전통무용에 정진해온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 이수자다. 홍연지는 "처용 설화에 담긴 부부의 인연에서 작품의 모티브로 시작했다"며 "부부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주고받았을 반지의 원형에서 '환'(鐶)이라는 주제 의식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작품은 총 4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에서는 본래 '처용무'의 대형에 현대적인 안무를 입힌 '신처용무'를 보여준다. 2장에서는 5명의 악귀가 등장하며, 3장 퇴마 의식을 거쳐 4장에서 '윤회'라는 주제 의식을 드러낸다. 홍연지는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 것을 반복하고, 그 안에 선과 악, 기쁨과 고통 등이 담겨있다"며 "이 모든 것이 다 순회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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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김준수 "10년 이어온 빨간색 머리는 이번이 마지막"뮤지컬 '드라큘라' 김준수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처음에는 빨간색 머리로 한두 번 공연해보고 반응이 별로면 바꾸려 했는데, 그렇게 10년을 공연했네요. 빨간색 머리는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국내 뮤지컬 팬들에게 흡혈귀 드라큘라 백작은 피를 연상시키는 빨간색 머리의 소유자로 여겨진다. 가수 겸 배우 김준수(37)가 2014년 뮤지컬 '드라큘라' 초연부터 10년째 머리를 빨갛게 물들인 드라큘라로 무대를 누비기 때문이다. 정작 김준수는 머리색을 유지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껴 매 시즌 변화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12일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하는 10주년 공연을 마지막으로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 머리와 작별한다.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한 그는 "5일마다 머리를 새로 염색해야 해서 머리색을 유지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며 "베갯잇도 다 바꾸고 수건도 한 번 쓰고 나면 물들어서 버려야 할 정도"라고 남모를 고충을 털어놨다. 그는 "처음에는 강렬한 인상을 주고 싶어 머리 염색을 택했지만 이제는 변화를 주려 한다"며 "그동안의 역사를 총정리하는 10주년 공연을 마치고 변화를 주면 팬들도 갑작스럽게 느끼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품이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로는 압도적인 무대를 꼽았다. 드라큘라의 성을 구현한 세트와 4단 회전무대를 활용한 연출은 관객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요소로 꼽힌다. 김준수는 "'드라큘라' 세트는 10년 전에 만들었지만 지금 봐도 최상급"이라며 "그때부터 관객에게 센세이셔널하게 다가갔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랑받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준수는 '드라큘라'가 자신을 '시키는 것만 하던 배우'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배우'로 만들어줬다고 돌아봤다. 자신이 낸 의견이 작품 곳곳에 반영되면서 작품에 출연하는 남다른 의미도 갖게 됐다. 드라큘라가 자신의 과거를 설명하는 넘버 '그녀'(She)가 대표적인 예다. 김준수는 곡과 별도로 존재하던 드라큘라의 긴 대사를 곡의 일부로 삽입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내 지금의 넘버를 완성했다. 그는 이 넘버에 대해 "드라큘라가 지루하게 과거를 설명하는 대신 노래로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받아들여졌다"며 "제가 작품을 연출한 것은 아니지만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 덩달아 뿌듯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2003년 그룹 동방신기로 출발해 그룹 JYJ와 솔로 활동을 두루 경험한 김준수는 어느덧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2010년 '모차르트!'로 뮤지컬 무대에 진출한 뒤 '엘리자벳', '데스노트' 등의 대표작을 남기며 정상급 배우로 활약하고 있다. 매년 뮤지컬과 콘서트 등으로 쉴 새 없이 팬들을 만나는 그는 자신의 활동이 늘 기적처럼 여겨진다고 했다. 지난 9월에는 소속사 뮤지컬 배우들과 갈라 콘서트를 열고 싶다는 소원도 이뤘다. "그룹 활동 이후로도 매년 콘서트를 열고 있으니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대중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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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 유지숙, “서도소리는 나의 운명”알록달록한 색으로 갈아입고 있는 가을의 한복판,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 유지숙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의 민속악단을 향한 마음, 소리 인생, 작업 방향과 염원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다양하게 나누어 보았다. 물들어 가는 가을의 풍경과 잘 어울리던 따뜻하고 유쾌한 그 이야기를 지금 만나보자. 정-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다시 한번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A. 감독으로 취임하자마자 바로 민속악단 정기연주회가 있었어요. "꽃신신고 훨훨”이라는 제목으로 삶과 끝에서 마주하는 평안이라는 주제의 공연을 준비하느라 바빴습니다. 또 그 후 지방공연, 기획공연, 상설공연 등의 모든 공연과 단의 살림을 살피느라 아주 바쁜 나날을 보냈어요. 정-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 취임으로 인해 예술적으로든, 삶적으로든 변화된 부분이 있으신가요? A. 우선 감독직을 수행하다 보니 민속악단을 살펴야 할 일이 많아 외부 활동을 자제하게 되며 개인적으로 많은 변화를 갖게 되었어요. 제자를 양성하는 일, 외부 개인 공연, 심사, 강의 등 여러 스케줄이 엉켜 처음엔 혼란스러웠어요. 하지만 이런 저런 일들을 정리하며, 오히려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모든 것을 다 떠안고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내려놓는 일이 자연스러워졌죠. 그리고 그런 일들은 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 이전 생활의 패턴과 달라진 것이 아쉽지는 않으세요? A. 아뇨. 생각을 해보니, 전 음악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끝도 없이 달려온 것 같아요. 소리를 하고, 새로운 걸 만들어 내거나, 공연하는 등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해내는 것이 늘 즐거웠어요. 그렇게 하는 일들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고, 일은 점점 늘어났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체력적인 한계가 느껴지더군요. 그게 처음엔 속상하기도 하고 아쉬웠지만, 어느 순간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며 지금 이 시기에 내가 해야 할 일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죠. 저는 늘 제게 있어 삶과 행복은 소리와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에서 온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의무감과 사명감으로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제가 겪은 모든 삶과 경험을 다음 세대에게 나누어 주고, 소리의 길을 제시하며 안내, 독려해 주는 스승의 역할을 더욱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정- 개인적으로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을 어떤 방향으로 운영해 나갈 예정이신가요? 선생님께서 만들어 나가고 싶은, 그려내고 싶은 민속악단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요? A. 우리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은 각자의 기량이 굉장히 뛰어난 분들로 이루어진 단체입니다. 이분들이, 최고의 악단에서 개인의 기량을 최고로 뽐낼 수 있도록, 자부심을 갖고 음악을 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 주고 싶어요. 저도 민속악단에서 30여 년을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 내가 무언가를 해준다기보다는, 같이 고민하고, 같이 나누고, 같이 살피며 함께 동행하는 모습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힘든 일이 오더라도 늘 편안할 수 있는 단체, 그리고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정- 사실 전 이 질문을 드리며 민속악단이 대중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이면 좋을지 이야기해 주실 거로 생각했는데, 그것보다는 단원들을 가장 먼저 마음 깊이 생각하시는 모습에 보이는 것만 생각했던 제가 조금 부끄러워집니다. 선생님의 민속악단을 향한 애정이 느껴지네요. 다음으로는 선생님께서 오랜 시간 해 오신 서도소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어요. 사실 ‘서도소리’ 하면 우리 갈 수 없는 지방의 민요이기에, 무언가 아득하고 애절한 느낌이 들다가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정겨움이 듭니다. ‘서도소리’하면 어떤 감정, 느낌이 드시나요? A. 그냥, 제 운명 같아요. 이런 표현이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너무 좋다. 눈물이 나도록 좋다는 표현밖에는 할 수가 없네요. 서도소리는 제 삶 그 자체에요. 정- 학부 시절, 서도풍류를 듣고 너무 좋아 연주하고 싶어 몇 없는 음원을 모으고, 악보를 직접 채보해 가며 공부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서도 음악은 남도나 경기제처럼 익숙하지 않고 공부하기 더 어려운 환경인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데요. 서도 소리의 길을 오래 걸어오신 선생님도 이런 부분에서 외로우셨으리라 감히 생각해 봅니다. 돌이켜 보았을 때 서도 소리를 하며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A. 기악의 경우 자료가 많지 않고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아 어려운 점이 아무래도 더 많았을 것 같네요. 서도소리는 황해도와 평안도의 노래인데, 여긴 그 지역이 아니고, 우리는 배운 대로, 익힌 대로 노래하고 전승해야 하므로 진짜 그 원형을 찾기 위해 더욱 고민해야 합니다. 소리의 경우 어려운 점은, 서도소리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고, 소리가 일반적이지 않으며, 어렵다는 거예요. 특히 가장 어려운 게 ‘요성’입니다. 모든 국악의 기본 바탕은 ‘요성’인데, 서도소리의 요성은 잘게 떨면서도 깊어야 해요. 잘못 떨면 발발성 요성이 되고, 너무 깊이 들어가면 소리의 맛이 이상해지죠. 또 음을 곡선처럼 흘러내리는 특징이 있는데, 배우는 사람 입장에선 그게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걸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 특히 고민이 많이 되어요. 그런데 전 이렇게 생각해요. 구전심수라고 하죠. 배우는 사람이 선생님의 소리와 혼과 마음까지 모두 받아들여야 하는 그 방법으로 소리가 전승되고 있잖아요. 가장 원시적이지만 가장 정확한, 올곧은 교육, 그리고 마음이 있기에 이 소리가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정- 선생님께서는 제자 양성에도 꾸준히 힘을 쏟고 계시죠. 교육자로서 학생들이 어떤 소리꾼이 되었으면 하시나요? 또 무얼 가장 강조하시나요? A. 예전에는, 제자들이 많은 게 참 좋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서도소리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만큼 소리의 본연을 가지고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길입니다. 하지만 쉽지 않은 길인만큼, 진정한 소리꾼이 되기 위해 온 마음으로 노력하는 학생이 있다면, 내 모든 걸 주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아요. 가르칠 때 기술적으로는, 서도소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특징적인 떠는 요성, 흘러내리는 곡선의 맛, 시김새 등을 기본적으로 많이 가르치죠. 그리고 그 외에 제가 강조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음악을 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면 안 돼요. 우리는 대중 앞에 서서 노래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인데, 거짓이 몸에 배어있다면, 그 음악이 과연 진실할 수 있을까요? 항상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음악을 대하고 삶을 대하길 바라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정- 선생님께서는 맥이 끊어졌던 토속민요를 발굴하여 다듬고, 전승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 작업을 계속하고 계시는지, 또한 앞으로도 하실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A. 그럼요. 토속민요는 보물이에요. 토속민요 작업은 정말 재미있습니다. 우리가 기존에 모르던 소리를 들으면 참 신기하고, 좋고, 모르던 맛을 배우게 되어 너무나도 행복하죠. 토속민요는 같은 노래인데도 여러 형태로 나뉘어져 있는 경우가 있어요. 그중 가장 잘 부르신 분의 음악을 기준으로 하여 소리를 다듬고, 만들어 나가는 작업을 하죠.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이 정형화되어 사람들에게 불리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소리를 오래 하다 보니, 악보만 보아도 꺾거나 흘리는 구간이 어느 순간 바로 알아차려질 때가 있어요. 그걸 바탕으로 토속민요 작업을 했을 때 서도소리가 딱 만들어지면, 마치 죽어있는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어 꽃을 피운 것 같은 느낌이 들죠. 정-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토속민요 작업은 어렵지만, 그만큼 참 가치 있고 귀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연주와 작곡을 통해 토속민요 작업을 늘 해 보고 싶었지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소리의 길을 잘 알지 못해 어려웠던 경험이 있는데요, 이렇게 소리꾼들이 소리의 길과 결을 찾아내고, 음악가들이 힘을 모아 토속민요 발전을 도모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으로, 계획 중이신 개인 발표나 음반 계획이 따로 있으신가요? A. 네, 음반의 경우 이달 말에 발매될 예정입니다. 또 앞서 이야기했지만, 기존에 불리던 소리뿐 아닌 안 불리던 소리, 토속민요 작업을 계속 해 나갈 생각이에요. 이젠 제자들도 많이 이어받아서 해 주고 있어 참 기쁩니다. 그리고 무대에서 제 소리만 하기보다는, 자라나는 소리꾼들이 장을 펼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내년에는 ‘서도예인전’이라 하여 소리꾼들을 선발하고, 기량을 뽐낼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나갈 예정입니다. 정- 곧 있을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연주회에 관해 이야기 해주세요. A. 이번에 있을 공연은 ‘생생풍류’라는 이름의 기획공연이에요. 100년이 지나도 한결같이 어렵고, 근본이 되는 민속악 ‘대풍류’, ‘시나위’를 중심으로 구성하여 깊게 감상해 볼 수 있도록 무대를 기획해 보았습니다. 추가로 경기소리풍류, 서도소리풍류도 함께 연주하기에 다양한 우리의 민속음악을 들어볼 좋은 기회가 될 거로 생각합니다. 단원들이 아주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정- 선생님은 어떤 소리꾼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A. 늘 마음으로 염원해요. 소리를 참 잘하는 소리꾼이 되고 싶다고요. 사람들이 평가하는 제가 아닌, 저 자신이 평가하는 제가요. 내가 내 소리에 취하고, 자유자재로 소리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사실 그 생각도 해요. 내가 정말 소리를 잘하게 될 땐, 목이 안 나오겠구나. 그래도, 소리가 잘 안 나오더라도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소리꾼. 그런 소리꾼이 되고 싶어요. 서도소리에 대해 어떻게 느끼시냐고 물었을 때 망설임 없이 대답하셨던 ‘운명’이라는 단어가 인터뷰 내내 마음을 휘감고 떠다녔다. 어쩜 이렇게 소리를 사랑하실 수 있을까. 계절을 맘껏 즐기고, 행복한 삶을 살며 가장 사랑하는 소리를 꾸준히 해 나가고 싶다는, 모든 일에 평안히 마음을 쏟고 싶다는 유지숙 선생님. 따뜻하게 채워진 그 마음과 열정은 앞으로도 우리 곁에 오래도록 아름다운 소리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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