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신문TV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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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재인청의 맥을 이은 조선의 마지막 춤꾼, 이동안 명인운학(雲鶴) 이동안(1906~1995)은 경기도 화성이 낳은 재인청의 춤꾼이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인이다.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하고 전통문화의 기틀을 세우는데 기여했다. 열네 살 어린 나이에 화성 재인청의 최고 자리인 도대방에 올랐던 그는 광무대(光武薹)에서 공연 생활을 하게 되면서 경기재인청 출신인 춤과 장단의 명인 김인호, 줄타기의 명인 김관보, 발탈과 재담의 명인 박춘재, 남도소리의 명인 조진영, 대금 피리 해금의 명인 장점보, 태평소의 명인 방태진 등으로부터 각종 기예를 익혔다. 당대 최고의 명인들로부터 배운 기예는 이후 이동안이 경기재인청 춤의 전승자로, 줄타기 명인, 발탈 보유자로서 탁월한 예능인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일제에 의해 화성재인청이 1922년 폐지되면서 이동안 선생은 마지막 도대방으로 기록된다. 이동안의 가계는 대대로 무업(巫業)을 주업으로 하던 경기재인청의 재인(才人)들이었다. 이동안은 1906년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송곡리 137번지에서 아버지 이재학과 어머니 해주 오씨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은 해금 전문가, 조부 이하실은 단가와 피리의 명인이었다. 작은 할아버지 이창실은 줄타기 명인으로, 친가와 외가 모두 최고의 재인들이라 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재인의 피를 물려받고 민속예술의 환경에서 자라났다. 재인청춤전승보존회 정주미 회장은 "한성준이 승무의 한영숙과 태평무의 강선영이라는 인간문화재 제자를 배출하면서 문화예술계의 주목과 인정을 받는 반면, 전통춤의 원형을 간직한 재인청 춤의 대가인 이동안은 무형문화재 중심으로 춤이 주목받고 평가되는 세태 속에서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춤이 아닌 발탈로 보유자가 된 이동안이 "내가 안하면 끊긴다고 해서 무형문화재로 지정을 받았지만 사실 나는 춤꾼이지 발탈 재주꾼은 아니다”라고 한탄했다. 이동안에 대한 올바른 재평가는 그가 태어난 화성시에서부터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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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판 '백중놀이'의 초창기 모습, 병신춤기회송림에서 촬영된 밀양백중놀이 1982년판 백중놀이의 초창기 모습이 그대로 담긴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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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백중놀이(오북춤)' 의 대가 김상용김상용 옹(金尙龍,1916~2004)은 경남 밀양에서 출생하였으며 1935년부터 밀양보본계 원으로 활동하였다. 1970년에 밀양국악협회 부 회장이 되었고, 1980년 밀양민속예술보존협회 창립회원의 한 사람으로 부회장을 거쳐 1982년 에 회장이 되었다. 그리고 1986년에는 밀양백중 놀이 보유단체가 인정되면서 밀양백중놀이보존 회의 회장이 되었다. 1982년에 전수교육을 위한 악사로 선정되었고 1986년에 이수조치 되었으며 1987년에 오북춤과 농요 로 기·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1983년에는 경남 무형문화재 제7호 감내게줄당기기의 동부줄도감 기·예능보유자로 인정되기도 하였 다. 1977년에 경남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병신춤으로 개인상을 수상하였 고, 1981년에는 개천예술제 민요경창부문 특별상을 수상하였으며, 1986 년에는 마산시민의 날 민요·판소리 경창대회에서 입상하였다. 1935. 01 ~ 밀양백중놀이보존회 전신인 ‘밀양보본계’ 회원으로서 故 하보경 선생께 '병신춤' 등 '밀양백중놀이' 전수1970.01.01 한국국악협회 밀양시지부 지부장(17대) 역임1981.10. 01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전수교육조교 선정1987.07. 01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보유자(오북춤)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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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정오 조계사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관불의식 입재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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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과 고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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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승 삭발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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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춤'과 '화관무' 창시자 김백봉'부채춤'과 '화관무' 창시자로 한국 무용계를 이끌었던 김백봉 원로 무용가가 97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한 평생 춤과 함께 해온 고인은 근·현대 한국무용 역사의 산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인은 '화관무', '부채춤', '산조', 만다라', 무용극 '심청', '춘향전' 등 평생 600여 편이 넘는 창작춤을 만들며 한국 신무용의 형태와 기틀을 다졌다.1927년 평양에서 출생한 고인은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의 수제자이자 동서였다. 고인은 13세 때 아버지 손을 잡고 최승희의 공연을 본 후 감동해 최승희의 제자 되기를 간청했다. 14살에 홀로 일본 도쿄로 건너가 ‘최승희무용연구소’ 문하생이 된 그는 1942년 도쿄에서 첫 공연을 했다. 해방 후 최승희와 함께 고향인 북으로 가 평양에 정착, 최승희무용단 제1무용수 겸 상임안무가로 활동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남편과 함께 월남한 뒤 1953년 서울에 '김백봉무용연구소'를 설립했다. 남편 안제승(1922~1998)은 최승희 남편의 동생이다. 이후 고인은 1954년 신무용 계열의 창작춤인 부채춤을 처음 발표했으며,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부채춤을 처음으로 선보여 전 세계에 한국 춤의 미를 알렸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는 2000명의 무용수가 참여한 대형 군무 ‘화관무’를 선보이기도 했다. 고인은 1965년부터 1992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경희대학교 무용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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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농악 상쇠 라모녀(羅摸女)부안농악 예능보유자 라모녀(羅模女, 1941~2018)는 1941년 전남 강진에서 출생하여 7세에 광주로 이사하여 대성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임춘앵 창극단 공연을 보고 반해 버린 그녀는 17세 때 집을 떠나 남원국악원에서 판소리를 배우고 농악에 입문하였다. 남원에서 꽹과리에 능한 50대의 김제옥(작고, 전남출신)에게 자질을 인정받아 쇠가락을 배웠고, 21세 때까지 남원여성농악단과 춘향여성농악단에 소속하여 전국 공연을 다녔다. 21세에 전주로 시집을 왔다. 1961년에는 전주 사는 장금동(張錦東)과 결혼하면서 생활근거지를 전주로 옮겼다. 그리고 김동준(金東俊)에게 심청가를, 홍정탁(洪正鐸)에게 수궁가를 사사받았으며 다시 아리랑여성농악단 상쇠로 활동했다. 25세 때는 아리랑여성농악단의 상쇠로 활동했고 38세까지 이순태, 장금동, 이방근 등이 운영하는 전주여성농악단과 이수복이 이끄는 호남여성농악단, 권일상이 만든 정읍여성농악단 및 이정법이 창단한 한미여성농악단에서 상쇠를 담당했다. 부안농악의 쇠가락에는 삼채, 굿거리, 두마치, 오채질가락, 오방진가락, 호호굿가락, 도둑잡이가락 및 개인놀이가락이 있다. '상쇠' 예능보유자 라모녀 선생의 쇠가락과 부포놀이를 바탕으로 한 상쇠춤은 짜임새가 다양하고 기교가 넘쳐 달관한 경지를 보이며, 부안농악가락은 호남우도농악 가운데서도 잽이들이 기준 장단 안에서 제각기 기량을 발휘하기 때문에 더욱 섬세하고 멋스러운 농악이라는 평을 듣는다. 1987년 12월 31일에는 부안농악이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되면서, 라모녀는 부안농악단의 상쇠로 활동했기 때문에 ‘부안농악 상쇠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았다. 2001년까지 전북도립국악원 교수로 제자들을 양성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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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북놀이' 의 명인 이희춘이희춘 1960년 진도출생 전라남도지사상 표창 문화예술부문 (2001) 한국예술문화대상 (풍물지도자 부문) (2001) 진도군립민속예술단 연출단장.예술감독 역임 (2010) 제58회 전라남도 문화상 수상 (2014) 전남 무형문화재 제18호 '진도북놀이' 예능보유자 (2015) (사)한국국악협회 한국국악대상 수상 (2019) (사)한국국악협회 진도군 지부 지부장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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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얏고의 대가 황병기황병기(黃秉冀,1936.5.31. ~ 2018.1.31.)는 고교 시절 전국 국악 콩쿠르에서 수상하면서 가야금에 두각을 나타냈던 황병기 선생. 그는 1959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대 음악대학 강의, 정악과 산조를 함께 공부한 그는 1952~59년 국악원에서 가야금을 연구하였다. 1961년 한국 최초로 서양 오케스트라와 가야금을 협주, 1965년 하와이 '20세기 음악 예술제'에서 연주하였으며 미국 주요 도시에서 가야금 독주회를 가졌다. 1962년 현대 가야금 곡인 '숲'을 발표했다. 1974년부터 이화여대 한국음악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에만 매달렸던 황병기 선생은 현대 국악을 개척하면서 민족적 경계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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