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3 (월)
1908년 6월 25일 광학서포 발행 윤치호 역술 재판 ‘찬미가’는 문제적 출판물이다. 이 같은 서지사항 외에 한글 활자로 인쇄된 출판물이란 점에서 주목이 된다. 이 시기 한글 문헌 자료는 중층적으로 융합되어있는 여러 문화적 요소의 분석방법인 문화중층론(文化中層論)에 의한다면 민중을 독자로 하였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애국가집이며 기독교 찬송가집이며, 근대사를 반영한 교육용 출판물이라는 사실에서다.
이 책에 수록된 한글 표기 15편 중 제10장은 14장과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이 확인 된다. 1907년 작사된 제14장은 이 제10장의 후렴과 곡조를 전승하였다. 그리고 기독교계 학교를 통해 애국가로 확산되고, 3.1운동 기간 민중들에 의해 대표적인 애국가로 위상을 획득함으로서 오늘의 현 애국가가 되었다. 이런 사실에서 두 작품은 초기 애국계몽가라는 문화 자원으로서의 중요성은 물론 다양한 측면의 분석 대상이기도 하다.
우선 제10장 가사의 전승 실상, 즉 시대적 변이 과정을 살피고, 작사 배경 등을 검토하기로 한다. ‘찬미가’의 제10장 곡명은 ‘Patriotic Hymn’(애국적 찬미가)이다. 그러나 이 노래가 처음 불려진 1897년 7월 13일 조선개국 505주년 기념식에서 발표될 당시는 ‘무궁화 노래’(National Flower)였다. 이후 한자식 ‘무궁화가’로 바뀌는데, ‘노래’는 독립신문이 한글 쓰기를 의식한 표기로서 본 서에서는 시기별 고유 곡명대로 사용하기로 한다.
1) 1897년 8월 13일자 독립신문 ‘무궁화’(National Flower)
우리 나라 우리님군 황텬이 도으샤
님군과 백셩이 한가지로
만만셰를 길거야 태평 독립 하여 보셰
1897년 8월 13일 독립관에서 개최한 ‘대조선개국 505회기원절 경축식’을 보도한 기사에 수록된 일부 가사이다. 이는 이후 기록에서 확인 되는 ‘무궁화가’나 ‘찬미가 제10장의 제4절이다. 의미상으로는 같지만 자구상으로는 다소 차이가 있다. 기사화 하는 과정에서 "군민공락(君民同樂)”을 "님군과 백셩이 한가지로”라고 풀이한 듯하다. 찬미가 제10장 제4절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우리님군 황천이 도으사
군민공락 만만세에 태평독립하세”
2) 1898년 1월 필사 추정 ‘協成會 無窮花’
필사 자료이지만 1898년 1월쯤에 부른 노래로 추정하는 ‘協成會 無窮花’이다. 협성회 제3대 회장을 역임한 이익채(李益菜·1873~1937)가 러시아 공사관 시절의 기행가사 작품인 수덕가(樹德歌) 등 영문 기록과 함께 남긴 자료에 수록되었다. 한문투의 전 4절 가사는 다음과 같다.
協成會 無窮花
一
聖子神孫五百年은
우리 皇室이요
山高水麗 東半島는
우리 本國일세
後斂
無窮花三千里
華麗江山
大韓사람 大韓으로
길히 保全하세
二
忠君하는 一片丹心
北岳가치 놉고
愛國하는 熱心意氣
東海가치깁헤
三
千萬人 오직 한마음
나라사랑하야
士農工商 歸賤업시
職分만 다하세
四
우리나라 우리 皇帝
上天이 도으사
君民共樂 萬歲에
太平富强하세(회원 일동 偶吟)
3) 1899년 6월 29일자 배재학당 방학예식 기사 ‘무궁화노’
다음은 ‘독립신문’ 1899년 6월 29일자 배재학당 방학예식을 보도한 ‘독립신문’ 잡보란 기사에 수록된 가사이다. "모든 學員이 무궁화노를 할 것”으로 제시 한 전 4절 가사이다.
무궁화노
一 셩ᄌᆞ신손 오년은 우리 황실이요 산고슈려 동반도 우리 본국일셰
(후렴) 무궁화 삼쳔리 화려강산 대한사 대한으로 길히 보젼셰
二. 국렬 심의긔 북악치 놉고 츙군 일편단심 동 치 깁허
三. 쳔만인 오직 나라 랑야 롱공샹 귀쳔업시 직분 다셰
四. 우리나라 우리 황뎨 황텬이 도으샤 군민공락 만만셰에 태평독립셰
4) 1905~1907년 추정 ‘도산소장 창가집’ 수록 ‘십ᄉᆞ편 무궁화가’
다음은 1905~1907년 발행된 것으로 추정하는 가칭 ‘도산소장 창가집’에 수록된 ‘십ᄉᆞ편 무궁화가’ 전 4절이다.
십ᄉᆞ편 무궁화가
一 셩ᄌᆞ신손 五百년은 우리 황실이오 산고수려 동반도 우리 본국일셰
(후렴) 무궁화아 삼쳔리 화려강산 대한사 대한으로 길이 보죤셰
二. 국 열심의긔 북악갓치 놉고 츙군 일편단심 동치 깁헤
三. 쳔만인오직 ᄆᆞᆷ 나라랑야 롱공상 귀쳔업시 직분만다셰
四. 우리나라 우리황뎨 황텬이 도으샤 군민공락 만만셰에 태평독립셰
5) 1908년 3월 11일자 ‘공립신보’ 수록 ‘애국가’
1908년 3월 11일자 순종 탄신을 기리는 ‘공립신보’ 건원절(建元節) 경축 기사에 수록된 애국가 4절 가사다. 이 신문은 1905년 창간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한 민족운동단체 공립협회(共立協會)의 기관지이다.
애국가
一 셩자신손 오년은 우리 황실이오 산고슈려 동반도 우리 본국일셰
(후렴) 무궁화 三千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젼셰
二. 튱군 열셩의긔 북악갓치 놉고 애국 일편단심 동갓치 깁허
三. 쳔만인의 오직 맘 나라사랑야 사롱공샹 귀쳔업시 직분만 다셰
四. 우리나라 우리황실 황텬이 도으샤 만민동락 만만셰에 태평독립셰
가사 일부 어사가 바뀌고 변이가 되었다. ‘츙군 일편단심’→ ‘튱군 열셩의긔’로, ‘국 열심의긔’→ ‘애국 일편단심’으로 바뀌었고, 4절 ‘국민동락’이 ‘만민동락’으로 변이 되었다. 해외에서의 전이 현상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변이 폭이라고 보게 된다.
6) 1908년 5월 26일자 「해조신문」 수록 ‘애국가’
다음은 러시아 우라디보스토크에서 발행된 「해조신문」 1908년 5월 26일자에 수록된 ‘애국가’란 곡명의 4절 가사이다.
一 셩ᄌᆞ신숀 오년은 우리 황실이오 산고수려 동반도 우리 본국일셰
(후렴) 무궁화 삼쳔리 화려강산 대한사 대한으로 길이 보젼셰
二. 츙군 열셩의긔 북악치 놉고 국 일편단심 동치 깁허
三. 쳔만인의 오직 ᄆᆞᆷ 나라랑야 농공샹귀쳔업시 직분만다셰
四. 우리나라 우리황실 황텬이 도으샤 만민공락 만만셰에 태평독립셰
7) 1908년 6월 25일 재판 ‘찬미가’ 수록 ‘Patriotic Hymn’
‘무궁화 노래’가 1897년 8월에 기록화 된지 11년 후 1908년 발행된 단행본 ‘찬미가’ 에 수록된 제10장 ‘Patriotic Hymn’이다. 곡명 밑에 ‘No[1]’이란 표기를 했고, 곡조를 ‘AULD LANG SIGN’으로 지시했다. 특히 이 책에서부터 가사가 현대 철자법으로 수록되었다.
Patriotic Hymn No[1] 뎨十
TUNE: AULD LANG SIGN
一 승장신손 천만년은 우리황실이오
산고수려 동반도난 우리 본국일세
(후렴)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二 충군하는 일편단심 북악같이 높고
애국하는 열심의기 동해같이 깊어
三 이천만인 오직한마음 나라 사랑하여
사농공상 귀천없이 직분만 다하세
四 우리나라 우리님군 황천이 도으사
국민동락 만만세에 태평독립하세
이상을 통해 1897년 8월에 ‘무궁화’로 기록이 된지 11년 후, 1908년 6월 발행된 단행본 「찬미가」 에 수록된 제10장 ‘Patriotic Hymn’ 까지의 가사 변화 과정을 제시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 네 가지로 요약이 된다.
첫째, 출현은 1897년 8월 조선개국 505주년 독립관에서의 기념식에서 처음 불려, 독립신문에 가사 일전이 ‘무궁화’로 수록되면서 부터이다. 1908년 광학서포에서 윤치호 역술로 발행 된 ‘찬미가’에 수록되기까지는 11년 후이다. 이로서 곡명과 가사의 변이가 있었다.
둘째, 곡명의 변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897년 8월 13일자 독립신문-‘무궁화’(National Flower)
1898년 1월 필사 추정-‘協成會 無窮花’
1899년 6월 29일자 배재학당 방학예식 기사-‘무궁화노’
1905~1907년 추정 ‘도산소장 창가집’ 수록-‘십ᄉᆞ편 무궁화가’
1908년 3월 11일자 ‘공립신보’ 수록-‘애국가’
1908년 5월 26일자 「해조신문」 수록-‘국가’
1908년 6월 25일 재판 ‘찬미가’ 수록-‘Patriotic Hymn’
이런 변화 추이에서 알 수 있는 것은 1907년에 와서야 ‘애국가’라는 곡명이 나타난다. 이는 ‘Patriotic Hymn’의 번역어로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찬미가’ 초판이 영향을 미친 결과로 보게 된다.
셋째, 현 애국가가 후렴을 전승하고 있어 모자관계에 있어 중요하다. 역사성과 이념에서 맥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전승은 국내와 미주지역에서 주로 신문 매체를 통해서 기록, 전파되었다. 국내에서는 주로 기독교계어서, 미주와 러시아에서는 민족운동단체에서 전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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