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3 (월)
이규진(편고재 주인)
충청남도 공주군과 연기군 경계 부근에는 분청사기 도요지가 여러 곳 있다 .그 중에서도 공주 쪽의 가산리와 중흥리는 특이한 이력 때문에 관심이 많이 가는 곳이다. 칠십년 대에 있었던 일이라고 하던가. 마을 사람들이 도요지를 파헤쳐 도편을 수습했다. 그 것들을 사겠다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일은 성사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수습한 도편들의 처리가 문제였다. 따라서 가마떼기로 모아 두었던 도편들은 도요지와는 전혀 무관한 곳에 버려지게 되었다. 이런 저간의 사정이 있다 보니 도요지와는 상관없이 엉뚱하게도 도편들이 무더기를 이룬 곳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관심 있는 사람들이 드나들다보니 지금은 흔적이 많이 없어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도요지에 관심이 좀 있던 오래 전 나도 이 곳들을 답사한 적이 있었다. 도로를 중심으로 좌측을 올라가 가산리고 우측으로 올라가면 중흥리인데 가산리는 민가들 뒤쪽의 산등성이를 넘는 고갯길 부근이 버려진 곳이고 중흥리는 외딴 민가 앞 논에 면한 동산 기슭이 도편들이 버려진 현장이다. 이곳에서는 명문편도 발견이 된 모양이지만 나는 이런 것들과는 인연이 없다. 이곳에서 내가 관심이 갔던 것은 그런 것들보다도 물고기 문양이 들어간 도편들이었는데 증흥리 나름의 특색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흥리 분청에서 보이는 물고기의 특색이라면 다른 도요지에서는 주로 박지나 조화가 보이는데 반해 이들과는 달리 상감과 인화기법이 함께 시문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입과 아가미와 지느러미는 흑백의 상감이고 몸체에는 인화가 들어 있는 형식이다. 거기에 물고기 사이사이에도 흑백상각을 삽입해 전체적으로 꽉 찬 느낌에다 물고기의 문양이 선명히 부각되고 있다. 물고기는 중앙의 꽃무늬를 중심으로 두 마리가 마주보고 있는 형식인데 머리가 서로 상대의 꼬리를 향하고 있다. 물고기 문양 주변으로는 연판문이 보이고 있어 시기적으로는 15세기의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전체적으로 중흥리 분청의 물고기는 정제된 느낌은 들지만 자유분방하고 활달한 맛은 상대적으로 비교적 적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물고기에 대한 관심이 많아 이에 대한 도편들을 구입 여러 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하면 왜 도자기, 그중에서도 분청에서 물고기 문양이 많이 보이는 것일까. 물고기는 잠을 잘 때도 눈을 뜨고 잔다. 따라서 잡귀를 감시하거나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가 있다. 물고기는 또 많은 알을 낳는다. 이 또한 다산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민간에서 널리 이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벽사와 다산, 꼭 그런 의미가 아니더라도 분청에서 보이는 다양한 모습의 물고기 문양은 얼마나 아름답고 현대적인지 감탄을 금치 못할 때가 많다.
전에는 가산리나 중흥리를 가려면 서울에서 시외버스를 이용 공주를 거쳐야 했다. 공주에서는 또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고속버스가 없던 시절의 이야기인데 한 번은 시외버스를 타고 공주를 가다 고개를 마주쳤는데 공사 중이어서 외길뿐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앞에서 오는 트럭과 버스 운전사 사이에 서로 양보 문제로 다툼이 생겼다. 나이가 지긋한 버스 운전사가 젊은 트럭 운전사를 만나더니 뺨을 후려쳤다. 그러자 동행으로 뒤를 따르던 트럭에서 운전사들이 쇠뭉치를 들고 달려 나왔다. 이에 겁이 난 버스 운전사가 도망을 해버리고 말았다. 운전사가 없는 버스라니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한 시간여가 지나서야 해결이 되어 다시 공주를 향할 수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절로 미소가 머금어지고는 한다.
도편 이야기를 하면서 두 점의 사진을 함께 올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반반씩 두 마리가 있는 것은 전체적인 모습이 아쉽고 온전한 한 마리를 올리자니 서로 마주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두 점을 함께 올리기로 한 것이다. 중흥리의 도편 무더기는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직도 흔적은 남아 있을까. 그런가 하면 밥을 얻어먹기도 했던 도편 무더기 옆 외딴집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지금도 건재하실까. 올해도 벌써 어느 듯 한 해가 저물고 있는데 옛 추억을 더듬어 마음으로나마 중흥리를 다시 찾다보니 세월이 참으로 빠르다는 느낌에 마음이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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