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1 (토)
수화의 화실에 놓여 있는
이규진(편고재 주인)
널리 알려진 수화 김환기 화백의 화실 사진은 55년 작가가 직접 찍은 것이라고 한다. 이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부러운 것이 한 가지 있다. 화실이니 당연히 그림들이 있기 마련이고 수화의 작품이야 현재 메이저 경매에서 최고가를 경신하는 기록 중이니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그런 그림들보다도 화실 구석구석에 놓여 있는 백자들이다. 그런데 그 많은 백자들을 사면서 수화는 한 번도 값을 깍지 않았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63년에 쓴 '항아리'라는 글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나는 항아리 값을 깍아서 사본 적이 없다. 장사꾼이 부르는 값이란 내가 좋아하는 그 항아리 값보다 훨씬 싸기만 했다. 부르는 대로 주고 사고 난 내 심경은 항상 횡재한 생각뿐이었다` 생각한 것보다 값이 싼데 어떻게 값을 깍느냐는 것이 그 이유였으니 재미있는 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수화가 백자들을 사들일 때만해도 그림이 팔리거나 잘 거래되던 시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화가들이 책 표지화나 삽화 등을 그려 용돈을 벌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수화가 55년에 쓴 '그림 안 파는 이야기'라는 글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나는 그림을 안 팔기로 했다. 팔리지가 않으니까 안 팔기로 했을지도 모르나 안 팔기로 작정를 했다.` 값이 안 나가 안 팔기로 했다니 당시만 해도 그림의 거래가 신통치 않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백자들이 얼마나 대우를 못 받고 저렴했으면 수화가 그 많은 것들을 수집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고미술품 특히 도자기들은 현재도 그 가치에 비해 너무도 대접을 못 받고 헐값이어서 안타깝다. 국보나 보물급 도자기들이 현대화 가격에도 못 미치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불공정한 기현상이 아닐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나와 같은 빈생(貧生)의 입장에서 보면 또 결코 싸다고만 할 수도 없는 일이니 그야말로 이율배반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여하튼 이유를 불문하고 싼값에 백자에 묻혀 살 수 있었던 수화와 그 시대가 몹시도 부러워지는 것만은 어쩔 수 없다. 아, 수화여. 백자항아리들이여! 나오느니 아쉽고 그리워지는 탄식밖에 없다.
18세기 전반 이른 바 금사리 시기로 오면 도자문화에서 새로운 양상이 나타난다. 특히 임란 후 17세기에 생산이 부진했던 백자청화가 다시 제작되어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하며 이에 힘입어 사대부 취향의 산수문이나 초화문을 그린 그릇들이 다수 제작된다. 특히 이 시기의 특징적인 기형으로는 달항아리와 떡메병이 새롭게 만들어진다. 중국적 자기의 특징인 각을 친 기형들이 등장하는 것도 이 시기에 와서 보이고 있는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백자청화각병지석편은 18세기 전반의 금사리 시기 것으로 보인다. 굽은 흡사 달항아리를 떠받치고 있는 것처럼 튼실한데 불을 제대로 받지 못해 붉은색을 띠고 있으며 군데군데 터진 흔적도 보인다. 검은모래가 섞인 모래굽이며 벌어졌던 몸체는 바로 9개의 각을 쳐 뽑아 올리고 있는데 각 면에는 청화로 글씨를 써넣고 있다. 상반부가 손실되어 전체적인 기형은 알 수가 없으나 내면의 불규칙한 유약의 흐름 등으로 보아 합이나 사발 등이 아닌 병인 것만은 분명해 보이다. 문제는 각 면마다 청화로 써 넣은 글자들이다. 청화의 발색이 선명치를 않아 글자의 해독이 쉽지 않은 것이다. 다만 숫자들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시문 등이 들어간 것은 아니고 지석이 분명한 것 같다.
손상을 입어 하반부만 남은 것도 그렇지만 청화의 발색이 좋지 않아 글자의 해독이 어려운 것을 감안할 때 이 백자청화각병지석편은 실제 사용된 망자의 무덤에서 나온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 듯싶다. 아마도 가마터에서 일찍이 불량품임을 인정하고 폐기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렇다고는 해도 당당한 크기며 각을 친 우람한 모습이 남은 형태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듬직한 중량감이 느껴진다. 거기에 알 듯 모를 듯한 청화 글씨들 또한 매력을 더한다고 볼 때 불량품이라고는 해도 이 백자청화각병지석편은 수화의 화실에 놓여 있는 백자들에 섞여 있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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