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3 (월)
책을 모으다 보면 시리즈로 발행된 책들도 갖추기 마련이다. 시리즈란 여러 권이 한 책을 이루는 것이라 간혹 이가 빠진 것처럼 다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금방 찾아 그 빈틈을 메우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책 수집가는 초조한 마음으로 시리즈의 빠진 권호가 나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운이 좋아 책을 구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시간이 지날수록 이 빠진 자리는 커 보이게 된다. 그 빈틈을 채워 넣으려는 마음 역시 점점 커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다 보면 오매불망 그 빠진 책을 기다리게 되고 어디서 우연하게라도 만날 수 있을까 두리번거리게 된다. 어쩌다 누군가 내가 필요한 권호를 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구멍이 뻥 뚫린 것처럼 그 빈자리가 더욱 휑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귀한 책의 시리즈 전체를 온전히 가지고 있는 경우는 행운이라 말할 수 있다.
내가 가진 책 중에도 시리즈로 나온 책들이 더러 있지만 대부분 이가 빠진 것들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이면 진작 구해 넣었을 테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기에 대부분은 체념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틈을 꼭 채워 시리즈를 온전히 갖추고 싶은 욕심이 드는 책도 없지 않다. 1931년부터 1935년 동안 매년 1권씩 총 5권이 발행된 '숫자 조선 연구' 가 바로 그 책이다. 나는 1권을 제외한 나머지 4권을 갖고 있는데, 1권은 쉽게 보이지 않아 아직 시리즈 전체를 수집하지 못한 상황이다.
식민통치를 시작한 이래 일제는 조선이 일본의 지배 하에서 얼마나 자본주의 체제의 일원으로 성장해 갔는지를 대내외적으로 알리려 했다. 주로 생산량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보여주는 식의, 다시 말해 숫자가 얼마나 늘어났는지 혹은 줄어들었는지를 통계로 보여주는 이런 식의 계량화를 통해 일제는 조선통치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또한 일제의 조선 지배의 정당성을 보다 체계적이고 학문적인 성과로 만들기 위해 '조선경제연구소'와 같은 관변 단체들을 조직하고 식민통치를 옹호하는 자료들을 만들어 배포했다. 하지만 증가된 숫자가 알려주지 않은 발전과 무관한 조선인들의 피폐한 삶과 자본주의의 과실과는 상관없는 조선인의 주변화는 통계가 무시하고 있는 실체적 사실이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만들어진 책이 전 5권으로 발행된 '숫자 조선 연구'다.
이 책을 함께 쓴 이여성과 김세용은 일제가 이야기하는 식민지의 발전이 기실 식민지의 수탈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며 제국 일본을 살찌우는데 활용되었음을 증명하는 또 다른 데이터와 통계를 가지고 식민지 조선인들의 삶을 재구했다. 처남, 매부 사이인 저자들은 일제에 의해 조선이 식민지가 되어가던 1900년대 초반에 학문을 배우며 민족의식을 깨우쳤으며 3·1 운동의 한가운데서 민족의식을 확인했다. 1920년대를 언론기관에 종사하며 일제가 만들어낸 각종 식민지 통계의 허구성을 목도한 후 일제가 만들어낸 자료들을 역이용하여 일제의 조선 지배의 그늘을 각종 도표를 이용하여 시각적으로 묘사했다. 시각화야 말로 문제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만드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여성이 그림에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이런 독특한 책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라 말할 수 있다.
내가 이 빠진 다른 시리즈의 책들보다 이 책을 온전히 갖추고 싶은 것도 세련된 표지를 비롯해 도표를 적절히 활용한 이 책만이 가진 독특한 가치 때문에 그렇다. 이여성은 그 유명한 화가 이쾌대의 가형으로 이쾌대의 미술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그 스스로도 미술가, 미술사가로도 활동했던 인물이다.
지금도 식민지 근대화론을 넘어 식민지 수혜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하게 된다. 이들 대부분이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관변 자료를 토대로 식민지 기간 조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그 근거로 삼는다. 이들이 말하는 증거란 이미 당대의 지식인들에 의해 그 허구성이 폭로되었음을 '숫자 조선 연구'는 우리에게 똑똑히 알려주고 있다.
▲한상언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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