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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55)
이매방 명인의 '살풀이춤' 춤사위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1987), 제97호 살풀이춤(1990) 명예보유자
살풀이춤
살煞 또는 액厄을 예방하거나 풀기 위한 무속에서 나온 제의적 성격의 춤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한말 신분제의 폐지로 무인(巫人)들이 무업(巫業)을 버리고 그중 일부가 기방(妓房)에 모여들면서 감상을 위한 예술춤으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살풀이춤은 무속춤으로 출발해 재인이나 기생 등 예인에 의해 기방예술로 자리 잡았으며, 근대 이후에 무대화를 거치며 장르화 된다. 살풀이춤에 내재된 심성은 깊은 한(恨)이지만, 단순히 슬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환희와 신명의 세계로 승화시키는 이중 구조의 인간적 감정을 표현한다. 따라서 한의 감정은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풀어내는 과정을 통해 승화의 길로 접어드는데, 맺고, 삭히고, 움켜 안는 등의 소극적인 정서와 포용하고, 풀어내고, 떨쳐내는 적극적 정서가 서로 교차하며 발전해 간다.
이매방 명인은 한국 전통춤의 거목이자 승무, 살풀이춤의 명예보유자이다. 전라남도 목포의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대까지 무(舞)업을 이어왔으며 광대 출신으로 권번 기생을 가르쳤던 할아버지 이대조에게 7살 때부터 6년간 검무, 승무, 법무 등을 배웠다. 이후 박영구에게 승무와 북을, 이창조로부터 검무를 사사했다. 목포공고 졸업 후에는 군산 영화동, 서울 창신동, 아현동 등에 무용 연구소를 개관하고 1940년대부터 전승 활동을 시작해 수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1950년 6ㆍ25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73년 전통춤 학원인 이매방무용연구소를 열고 춤을 가르쳤다. 1980년대에는 다시 서울로 올라와 활동을 이어나갔다.
80년 넘게 전통춤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명인은 생전 입춤, 검무 등 19종류의 춤을 선보였다. 특히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1987), 제97호 살풀이춤(1990)의 명예보유자로 두 가지 명예를 보유한 사람은 이매방 명인이 유일하다. 생전 일본, 미국, 프랑스 등에서 공연을 하며 한국 춤의 우수성을 알렸다.
전라남도 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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