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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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세중과 전위예술(8) <BR>巫世衆(2편)아- 천지여 개벽하라. 약삭빠르게 오늘과 내일의 수레바퀴 위에서 건너뛰지 못하는 우직하고 정직한 自由人 그의 독설과 직설은 가끔 사람의 폐부와 오간장(五肝腸)을 뒤흔들어 겁을 먹게 하고 구토를 자아내며 내일을 향해 오늘을 쏘는 그의 화살에 과녁을 맞출 자 그 누구이겠는가 세상을 느끼는 그의 감각은 껑충 산넘어 벌써 저 멀리 가 있기에 그의 前衛로 일컬어지는 포퍼먼스는 채 완성되기도 전에 숨가쁘게 300여 회를 넘어 오늘에 이르니 어느듯 인생은 갑자를 돌아 환갑이더라. 이제 인생의 반려자 이나미와 함께 세상을 재는 현실 의지와 창조의 활력으로 다시 예술을 완성하고자 시작하오니 天地神이여 조상의 우두머리인 단군이여 부디 그를 축복하소서, 완성하소서. 그의 솟아 오르는 샘 창작의 혼(魂)이 이제는 민족과 함께 대중과 함께 영원한 이해와 화해를 가능케 하소서. 넘어지며 엎어지며 찌르며 깨지며 부셔 버린 그의 반골 기질이 세상의 균형을 위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가 세상을 온통 두팔로 끌어 안고 그를 사회가 포용하여 받들게 하소서. 그의 존재가 역사 속에, 예술 속에 길이 빛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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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관의 ‘국악-신반’ <20>김화복 거문고 <The odyssey for rebirth>-처음으로- 한양대학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한 김화복 거문고 연주자의 2번째 음반이다. 연주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이수자로 여러 교육기관에 출강하고 있다. 2021년에 전통음악 음반 김화복 거문고산조 <현금현금(現今玄琴)>을 선보이고 이번에 창작곡 음반을 출반하였다. 음반에는 5곡(17트랙)이 수록되어 있다. 첫 곡(2악장)은 연주자 작곡으로 독주곡 ‘령초’이다. 도드리 가야금 선율의 위상수학적인 분석을 AI를 적용하여 만든 곡이라고 한다. 이경은 작곡의 4악장의 ‘9-to-5’는 끊임없이 물질적 성장과 발전을 추구하며 살아온 모습을 타악과 같이 그려내고 있고, 김명옥 작곡의 4악장 ‘빈,’은 아쟁과 2중주로, 이예진 작곡의 4악장 ‘이어짐’은 대금과 2중주로, 이상규 작곡의 3악장 ‘금향다원’은 처음으로 돌아가 지속 가능한 환경을 소중하게 지켜내겠다는 다짐을 대금 장구와 같이 표현하고 있다. 해설서에는 곡 설명이 한글과 영어로 수록되어 있고, 연주자, 작곡가, 협연 연주자 프로필이 잘 실려 있다. 연주자는 인간과 자연은 사랑하고 아껴야 하는 관계임을 인지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비워내고 있다. 정효성의 가야금 <줄 위에 머문 환상> 서울대학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정효성 가야금연주자의 첫 음반이다. 연주자는 가야금앙상블 ‘사계’, 가야금솔로이스츠 ‘jul’, 아시아금교류회 등의 활동을 통해 섬세하면서 창의적인 음악으로 꾸준한 활동을 해온 연주자이다. 음반에는 다양한 편성으로 5곡(11트랙)이 수록되어 있다. 25현금과 현악4중주의 ‘줄 위에 머문 환상’(작곡:백병동), 산조가야금과 25현금의 ‘농학’(작곡:백병동), 25현금 독주의 ‘깃털의 무게’(작곡:박순아), 2대의 25현금과 Bass가야금의 ‘아르키메데스의 법칙’(작곡:안진), 17현 가야금삼중주의 ‘17현금 3중주를 위한 달하노피곰’(작곡:황병기)이다. 서양음악을 전공한 작곡가의 작품과 가야금 연주자 겸 작곡가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연주자는 "가야금이 만들어내는 음악은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며 악기의 모습과 함께 점점 다양해져 왔다고 하면서 이제 전통과 창작이 공존하는 음악을 통해 연주자의 경험과 생각들이 깊이 배어나고, 오늘 안에서 함께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기를 원한다.”고 한다. 해설서에는 곡 설명이 잘 나와 있다. 유튜브에 음악이 트랙별로 일부가 올라가 있다. 고영열 <피아노병창 춘향> 한양대학교 국악과를 졸업한, ‘판소리계의 라이징스타'라고 부르는 고영열의 음반이다. 2020년 ’JTBC 팬텀싱어 3‘에 참가해 성악가, 뮤지컬 배우들과의 블렌딩 능력, 프로듀싱 능력 등 뛰어난 음악성을 보여주며 결승 12인에 진출했고 김바울, 존 노, 황건하와 함께 라비던스를 결성해서 준우승을 거뒀다. 최근에는 퓨전국악, 크로스오버 등 다양한 분야와 협연하며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크로스오버 음반이라는 피아노병창 <춘향>이다. 21트랙에 담은 <춘향>은 소리꾼의 새로운 해석과 작곡, 편곡으로 작업되었으며, 전통적인 북 반주가 아닌 서양악기 피아노에 전통소리를 얹어 부른다. 곡에 따라 플루트(이규재)이 첼로(김솔다니엘)가 합세하기도 한다. 전통으로 머물고 있는 ‘판소리 춘향가’가 아닌 지금도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 ’춘향‘을 저음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해설서에는 소리꾼의 여러 사진과 가사가 수록되어 있다. "녹음을 하는 매 순간 춘향의 이름처럼, 봄날의 향기가 느껴졌습니다. 이 음반을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사시사철 춘향과 같은 향기로만 가득하시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소리들을 선물합니다.” 소리꾼의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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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139)<br> 정형에 얽매이지 않는 '허튼 가락' 산조산조(散調)란 무엇인가 가장 근접 기원설 중 하나 시나위 악기들이 각자 마음 내키는 대로 연주하는 듯하지만 절묘한 화성 바탕이나 기원은 무속음악 확실 김창조가 재구성 초기 형태 심방곡 산조 발생 시점으로 견해가 대표적 우리 음악을 크게 궁중음악과 민속음악으로 나눈다면, 민속음악은 다시 성악과 기악으로 나눌 수 있다. 성악(聲樂)은 사람의 음성으로 하는 음악을 말한다. 악곡의 종류에 따라서 판소리 등의 창가, 민요, 가요, 가곡, 기타 따위로 구분한다. 연주 형태에 따라서는 독창, 중창, 합창, 제창, 기타 등으로 나누고 기능에 따라서는, 일하면서 부르는 노래, 놀면서 부르는 노래, 종교적인 제의에서 사용하는 노래, 기타 등으로 구분한다. 이 땅에 존재하는 어떤 악기보다 사람의 목소리를 이용한 음악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기악(器樂)은 악기를 사용하여 연주하는 형태를 말한다. 연주자의 수에 따라 독주, 중주, 합주 등으로 나누고 표현 형식에 따라 교향곡, 협주곡, 소나타, 실내악곡 등으로 나눈다. 우리 민요의 가창 방식 즉, 혼자 부르는 노래, 여럿이 부르는 노래, 돌려가며 부르는 노래, 주고받으며 부르는 노래 등에 대입해보면, 악기 연주 또한 유사한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산조(散調)란 기악 독주곡을 말한다. 악기 하나를 가지고 연주하는 형태라는 뜻이다. 삼남지방(충청, 전라, 경상)에서 발달하였다 하고, 가야금, 거문고, 대금, 해금, 아쟁의 순서로 발생하였다 했다. 또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으로 배열된 3~6개 장단 구성의 악장으로 구분되며 반드시 장구 반주가 따른다고 했다. 하지만 다양한 산조의 기원설을 전제하거나, 판소리 소리북으로 장단을 맞추는 예들을 보면 '반드시'라는 수식으로 완성되는 장르나 개념은 아니다. 대개 그렇게 발생했고 그렇게 연주되니 그러한 것을 표본으로 삼는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산조(散調)의 우리말은 '허튼가락'이다. 산조의 기원을 시나위니 봉장취니 판소리의 선율을 악기로 표현한 것이느니 하는 얘기들이 여기서 나왔다. '허튼가락', 산조(散調)는 어디서 왔을까? '허튼가락'의 문자적 함의는 '정형적이지 않은', '흩어져 있는', '자유분방한', '율격에 얽매이지 않는'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누군가가 이 장르에 산조라는 이름을 붙이기 전에 정형적이지 않고 흩어져 있는 어떤 음악의 형태가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산조라는 용어에 가장 근접한 기원설 중 하나가 시나위이다. 악기들이 어울려 서로 연주하는데, 각자 마음 내키는 대로 연주하는 듯하지만 절묘한 화성을 이룬다 해서 여러 기원설을 들어 설명하곤 한다. 그 바탕이나 기원이 무속음악인 점은 분명해 보인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정악에 상대하는 향악(俗樂) 혹은 굿거리, 살풀이 따위의 무속음악이라고 풀이하기 때문이다. 경기도 남부, 충청도 서부, 전라도, 경상도 서남부 등지의 무가 반주 음악에서 나왔다는 설명이 붙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시나위 자체가 육자배기 특징으로 된 산조의 기악곡을 말하기 때문에, 민요의 사례에 견주어 말한다면 육자배기토리로 권역화된 전라도지역의 무속음악, 다른 말로 하면 남도씻김굿 등이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산조라는 음악의 기원이 시나위로 대표되는 남도 무속음악에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심방곡(心方曲) 혹은 신방곡(神房曲)기원설을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방곡(신방곡)은 무속음악의 반주 음악과 다르다. 1610년 거문고 악보인 <양금신보>에 만대엽, 중대엽, 삭대엽 중의 중대엽에 속칭 '심방곡'이 나온다. 일반인들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진 '오나리 오나리소서 뫼일에 오나리소서/ 졈그디도 새디도 마르시고....'라는 가사가 그것이다. 또 안민영의 '금옥총부'(1885)에 '창원 기녀에게 가야금 신방곡을 청해 들었다'는 기록과 '퉁소 신방곡'이 언급되고 있다. 무속음악과는 상당히 다른 음악으로부터 산조가 발생했다는 증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유력하게 대두되었던 것이 판소리 기악화론이다. 판소리의 선율이나 장단을 모사하여 악기로 연주했다는 뜻이다. 판소리의 역사가 산조의 역사보다는 훨씬 오래되었으니 시대의 예술로 급성장했던 판소리를 모본 삼아 악기로 연주했다는 가설은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봉장취 기원설도 있다. 봉장취는 유랑예인들이었던 풍각쟁이들이 봉황 혹은 기러기 등의 새 한 쌍을 주제로 하여 음악을 곁들여 연행하는 일종의 재담 연주 혹은 그로부터 파생된 새소리를 주제로 하는 기악곡을 말한다. 봉장취는 '봉장추', '봉작취', '봉황곡' 등으로 불렸다. 판소리 <변강쇠가>에 '봉장추'가 가장 먼저 등장한다. 중국 한나라 이후 전해진 음악이라는데, '봉이 새끼를 거느린다'는 뜻이라고 한다. 신재효의 <변강쇠가>에 따르면, 눈먼 '봉사'들이 구걸을 위해 연주하던 곡이었고 이것이 풍각쟁이들의 음악으로 정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오로지' 혹은 '반드시'라는 수식을 충족하지는 못한다. 연구자들에 따라서는 봉장취나 산조가 제각기 다른 역할을 하면서 병행 발전해왔다고 주장한다. 또한 계보론이나 지역론 특정 계파론 만으로는 산조의 기원이나 발생설을 충분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그럼에도 영암사람 김창조가 재구성한 초기 형태의 심방곡을 산조의 발생 시점으로 보는 견해는 아래 팁에 소개하는 것처럼 그 시대의 대표격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마치 판소리의 기원설을 여러 가지로 말하지만 일정한 텍스트나 인물을 거론하고 예컨대 영산강의 시원을 말하는데 황룡강, 극락강, 지석강의 여러 물줄기 중 담양 용소로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가야금산조 발생과 영암사람 악성(樂聖) 김창조 함화진(咸和鎭, 1884~1948, 일제강점기 아악사)의 <조선음악통론>(1948)에 보면, "신방초는 화초사거리를 창작하고 김창조는 심방곡을 변작(變作)하여 산조를 창작할새, 우조와 계면조로 분류하여 각종 악기에 탄주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김창조가 가야금으로 현재의 산조라는 음악을 재구성했음을 확인해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 시기까지의 형태는 지금의 산조형식을 갖추었다기보다는 자유분방한 초기 형태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가야금산조가 19세기 중반 무렵에 심방곡으로 시작되었음을 확인해주는 자료는 안민영의 <금옥총부>(1885)가 대표적이다. 권도희의 연구에 의하면, 당시 심방곡의 명인이 경상도 마산포에 살던 최치학이었다. 첫 세대라고 할 수 있는 이들로 전남의 김창조, 한숙구, 유성천, 전북의 박한용, 이영채, 박한순, 충청의 박팔괘와 심정순 등을 거론한다. 이들이 동시대의 음악 형식을 정형화하는데 충분히 기여했다는 점이 여러 연구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후 김창조의 제자 한성기, 안기옥, 정남희, 강태홍, 최옥삼 등과 한숙구의 제자 한수동, 정남옥 등, 유성천의 제가 유대봉 등, 박한용의 제자 김삼태, 이영채의 제자 신관용, 박학순의 제자 신쾌동, 심정순의 제자 심상건 등과 더불어 김해선, 김운선, 함동정월 등 여성 산조 연주자들이 등장한다. 산조의 발생과 정형화에는 이같은 맥락들이 있기 때문에 '오로지' 김창조만이 산조를 재구성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김창조를 내세우는 것은 문헌들이 전하는 바를 전거하는 것이요, 시대적 수요에 부응했던 초기 기여자들의 대표격으로 거론하는 것이라는 점 부기해둔다. 김창조(1856~1919)의 출생설이 두 가지다. 1865년과 1856년설인데 여러 가지 맥락상 후자가 사실에 더 근접하다. 세습율객집안 출신으로 영암읍 회문리에서 출생했다. 1915년 경에 광주로 이주하여 활동하였고 1916년부터 전주로 옮겨 군산, 나주, 정읍, 대구 등지에서 활동한다. 64세 되던 1919년 인후염에 걸려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광주 북문안 어느 집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다. ※ 외부인사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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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970년 출시 ‘아리랑 라면’아리랑은 최초, 최고, 진근, 한국을 표현 또는 상징한다. 첫 위성이 ‘아리랑호’이고, 첫 필터 담배가 ‘아리랑’이었다. 해외 이민 초기 현지에 개업한 첫 한국식당 상호는 대부분 ‘아리랑’이었다. 친근함을 표현한 경우는 ‘아리랑노래방’ 동네 ‘아리랑이발관’ 같은 상호가 그렇다 1970년 출시된 라면 중에 ‘아리랑라면’도 친근감을 활용한 상품명이다. 우리 나라 ‘라면’의 역사는 1963년 9월 15일 출시된 ‘삼양라면’으로부터다. 이후 ‘아리랑라면’도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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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춤협회, 한국전통춤협회, "전통춤문화제 수건춤 100년사" 성료사단법인 한국전통춤협회(이사장 한혜경)가 한국 전통춤 큰잔치 ‘2024년 대한민국 전통춤문화제-수건춤 100년’을 오는 23-24일 2일 동안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개최했다. 학계에서는 이번 수건춤 100년사 재현은 학술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는 평을 받았다. 첫째날 해설을 맡은 원로 전통춤연구가 이병옥 교수는 수건춤은 교방춤, 재인청춤, 무속계열춤으로 나누어지는데, 이번에 다 보여주는 판이 벌어진 것은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전했다. 둘째날 해설을 맡은은 양종승 박사는 수건춤 100년의 역사적 전개 양상과 우리 전통춤 뿌리를 알게 하고 전승 유파의 다양성을 알게 하는 귀한 무대이었다. 전통민속예술 수건춤의 지속과 변용을 보여준 학계의 평가다. 이 행사장에서 한혜경 이사장을 만나게 되었다. Q. 한국전통춤협회 언제 창립되었나요. A. 한국전통춤협회 창립을 위해 2012년 7월 7일 창립추진위원회(위원장 채상묵, 위원 김정녀, 한혜경, 양종승, 김은희, 진유림 등 7명)가 결성되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2017년 4월 6일 정부로부터 공식 사단법인이 인가되었다. Q.설립 취지는. A. 한국 전통춤은 한민족 역사와 함께 탄생하여 발전되어 온 우리 고유 민족예술의 모체이자 시원이며 한민족 영혼과 사상을 담고 있는 역사이며 철학이다. 따라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민족춤 계승과 발전을 위해 그 역할을 확대해 나가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임회원 모두는 시대적 사명감을 안고 전통춤의 무궁한 창성을 위해 전통춤의 체계적 보존전승은 물론 사회교육, 홍보진흥, 학술연구, 인재양성, 공연기획, 국제교류, 대외협력, 춤 콩쿠르 등을 위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Q. 한국전통춤협회는 어떤 단체인가요? A. 한국전통춤창립추진위원회가 2012년 발족되고 위원장으로 채상묵 교수를 모셨다. 한민족예술의 정수, '한국전통춤'을 널리 알리고자 각 장르별 전통춤보존회로 구성되어 창립된 국내 유일한 협회이다. Q. 한국전통춤협회 창립 취지는? A. 전통은 한민족 역사와 함께 탄생하여 발전되어 온 우리 고유 민족예술의 모체이자 시원이며, 한민족 영혼과 사상을 담고 있는 역사이며 철학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민족춤 계승과 발전을 위해 그 역할을 확대해 나가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취지를 펼치고자 전국 전통춤을 전승하고 있는 보존단체가 협력 관계로 뭉쳤다. 2012년 초부터 민족춤의 체계적 보존전승은 물론 사회교육, 홍보진흥, 학술연구, 인재양성, 공연기획, 국제교류를 위해 회합을 갖고 범 전통춤 관련자 모임을 추진하여 왔다. 이러한 결실을 맺고자 우리는 한국전통춤협회 창립과 더불어 시대적 사명감을 안고 전통춤의 무궁한 창성을 위해 더욱 분발하고자 한다. Q. 초대 위원에는 어떤 분이 동참하셨는지요? A. 채상묵교수를 위원장으로 모시고 김정녀(예능), 한혜경(예능), 양종승(연구), 김은희(예능), 진유림(예능)으로 출범했다. Q. 한국전통춤협회은 초대 이사장은 A. 초대 이사장 채상묵, 2대 이사장 이길주에 이어 3대 이사장은 제가 맡고 있습니다. Q.지난 해 얻은 성과는 A. 주요 사업으로 <대한민국전통춤문화제>, <한국춤 차세대전>, <한국춤 학술세미나>, <전통춤 학술총서 발간>, <한국춤 대경연>, <한국전통춤 보물전 해외 공연>, <전통춤 연수회>, <한국춤 전국지부공연>, <대한민국전통춤 예술대상 시상식>, <대한민국전통춤 4대 명무상 시상식> 등이 있다. 전통춤 발전과 보급을 위해 제1회전통춤대경연대회를 개최했다. 참가 부분은 학생부, 일반부, 명인부, 신인부로 나누었고. 김숙자 명인상, 이매방 명인상, 한영숙 명인상을 제정했다. 장르는 전통춤에서 타악춤, 창작무용까지 확장했다. 공정한 심사를 위해 심사규정을 엄수하고 진행은 투명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Q.올해 역점 사업은 A. 한국 전통춤 큰잔치 ‘2024년 대한민국 전통춤문화제-수건춤 100년’을 오는 23-24일 2일 동안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개최했다. 첫째날에는 이병옥 교수의 해설과 함께, 최지원의 군무 동초수건춤, 박은하의 살풀이춤, 이지은의 도살풀이춤, 고재현의 군무 교방입춤, 이정애의 쌍수건춤, 김진원의 살풀이춤, 이미숙의 군무 경기수건춤이 펼쳐졌고, 둘째날에는 양종승 박사의 해설과 함께, 윤미라의 달구벌입춤, 채향순의 살풀이춤, 권영심의 교방살풀이춤, 임현선의 즉흥무, 문숙경의 군무 살풀이춤, 김경란의 논개별곡, 이정희의 군무 도살풀이춤이 열렸다. 올해에도 제2회전통춤대경연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한국전통춤협회는 해외 지부를 거점으로 미국 및 유럽과도 연결하여 한국의 전통춤 보급과 전수 활동을 펼치려는 계획하고 있다. Q.국악계에 하고 싶은 말씀은 A.유구한 역사속에서 우리선조들의 피눈물나는 질곡의 삶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보존및 계승ㆍ발전이라는 사명감에 오늘 날 찬란한 국악발전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작금의 국악계는 온전한 계승의 문제점을 안고있다고 보고있다. 찬란히 빛나야 할 우리의 국악발전은 염두에 있지아니하고 이권 다툼과 계파싸움이 팽배해 있다고 보여진다. 우리의 후학들과 후손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남겨줄수 있을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부분이라고 생각한다.문화유산은 먼저 올곧은 정신세계를 바탕으로 습득하고 터득된 예술세계를 물려줌이 마땅하다고 본다. 서로 일보양보하고 화합하여 개인의 영리보다는 국악계의 발전을 꾀해야 할것이다. 우리의 아름다운 국악유산이 후대에 이르기까지 무궁한 보존 및 계승 발전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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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의 여로 (138)<br> 청자돈편완형의 청자돈을 보여 주어도 이규진(편고재 주인) 의자 생활이 오래 된지 오래다. 사무실의 책상과 의자는 어느새 현대인들에게는 필수불가결의 요소가 되어 버린 것이다. 어찌 사무실뿐이랴. 살림집(아파트 포함)의 식탁과 의자는 물론이거니와 따지고 보면 소파도 걸터앉는다는 점에서는 의자와 마찬 가지인 것이다. 이처럼 의자는 이제 우리 생활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친근한 기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고려시대에도 이러한 의자생활이 일상적이었다는 점에서는 흥미로운 바가 없지 않아 있다. 물론 하층민들이야 방바닥 생활이 주를 이루었겠지만 황실이나 귀족들에게는 의자 생활이 보편화 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실일까. 물론이다. 그 증거가 청자에서 보이는 의자 즉 청자돈이다. 청자돈은 둥근 형태에 속은 비어 있고 윗면은 막혀 있다. 윗면에는 무문이거나 음각의 문양이 들어가며 옆면은 투각으로 조각을 한다. 그런데 사람이 앉아야 하는 일정한 높이가 있다보니 기물은 구조적으로 대형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소성의 지난함 때문인지 보관의 어려움 때문인지 완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지극히 드물며 대개는 손상을 입고 있거나 도편으로 남아 있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근래 구입한 청자돈편도 마찬 가지다. 윗면 일부와 옆 부분이 남아 있는데 워낙 큰 기물이다 보니 도편의 크기만 해도 만만치가 않은 대형이다. 청자돈편의 윗부분은 음각의 문양이 들어 있는데 종류는 알수가 없다. 옆은 단을 이룬 위쪽에는 투각으로 당초문을 새겨넣고 있다. 두 줄의 양각으로 구분을 한 아래는 문양을 교차시켜 조각하고 있는데 중간을 보면 대나무 같은데 위는 고사리 같은 모양이기도 하다. 남은 것은 이것 뿐이지만 통상의 예로 보아 없어진 아래로는 연판문을 새긴 밑부분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청자돈편을 보면 좌우의 것은 색감이 약간 달라 소성 과정의 반대편 불 탓인지 아니면 서로 다른 기물의 것인지는 조금 더 살펴 볼 필요가 있을 듯 싶은 것이기도 하다. 고려 시대를 다룬 사극을 보다보니 의자 생활의 모습이 보여 반가운 느낌이었다. 아쉬운 것은 청자돈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사실 일반인에게 완형의 청자돈을 보여 주어도 이 것이 고려인들이 사용했던 의자였음을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청자돈을 보며 우리는 고려인들의 의자생활을 알 수 있거니와 그곳에 표현된 미감을 통해 시대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을 공유해 볼 수도 있으니 이 또한 부수적인 이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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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연희춤협회 문진수 회장,<br> "각 지부 지회 연희춤 공연에 집중한다"2022년에 대한민국 연희춤협회(한국 연희춤협회)가 창립되었다. 전국 20여 개 지역에 지부와 지회가 개설되었고, 얼마 전 캐나다에도 지회가 만들어졌다. 연희춤을 바탕으로 연희춤꾼이 펼치는 꾼들이 모여서 각 지역 연희춤을 전승하고 있는 대한민국 연희춤협회 문진수 회장을 지난 2월 '대한민국 전통춤문화제'가 개최되는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만나게 되었다. Q. 지난해 대한민국연희춤협회 전승 활동은 A. 2023년은 전통예술과 연희를 새롭게 해석하며 품격있는 춤과 융합하여 독립적이고 예술적인 가치로 재창조하고 연희춤의 지경을 더욱 확장하여, 다양한 시도를 통해 무한한 가능성을 선보이며 위상을 높이는 시간이었습니다. 2023년 한 해동안 대한민국연희춤협회의 국, 내외 각 지부, 지회에서도 활발한 공연과 전승활동을 통하여 연희춤의 예술적, 독보적 가치를 선보이고 이를 통하여 전통예술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연희춤의 가능성을 보여준 몇 개의 연희춤 공연과 전통춤의 깊은 경지를 다시 한번 실감하였던 몇 개의 공연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와 기억에 남습니다. 먼저 아시아 1인극 축제에서 선보인 검사 위의 백사(뫼비우스)는 12발 상모춤의 전통적인 해석을 바탕으로, 시대정신과 민중 저항성을 반영한 스토리텔링과 전통춤의 아름다움, 역동적인 12발의 기예를 융합하여 하나의 독립적인 공연 예술작품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으로, 민중의 소리를 듣고 예술을 통한 관객과의 소통, 공감을 의도한 작품입니다. 또한 계룡산 국제춤축제에서 초연한 산왕대신기는 뫼비우스의 스토리텔링에 이어 12발상모로 대변되는 두 마리 용과 계룡산의 산왕대신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12발 상모 연희, 신칼대신무 등의 춤, 전통 비나리, 재담을 통해 극적, 예술적으로 풀어가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희적 스토리와 함께 관객과 소통하면서 부정한 것을 정화하며, 인간의 삶과 희망을 대변하여 하늘로 전하고 기원하는 진정한 제(祭)와 굿의 의미를 실연(實演)하여 자연과 삶 속에 녹여내고자 하는 의도를 담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작품입니다. 전통춤으로는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소리꾼 김보라 선생님과의 콜라보 공연이였던 소고 입춤과 발탈 보유자이신 박정임 선생님의 구음과 함께했던 국립국악원 기획공연 [일이관지_조선춤방] 이동안류 기본무와 팔박수건춤이 있었습니다. 소고 입춤은 소고 연희의 전통적인 고증과 연구를 바탕으로 재해석한 소고춤과 문진수류의 입춤을 엮어 재해석, 재창작한 작품으로 다른 류의 소고춤에서는 볼 수 없는 연희춤의 차별성과 품격을 춤과 소고연희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였습니다. 또한 박정임선생님과의 국립국악원 공연 일이관지(一以貫之)를 통해서 故 이동안 선생님과 박정임 선생님의 깊은 예술 세계에 경탄하며, 창작과 재창조를 위해서는 전통에 대한 끊임없는 정진을 통한 깊은 고민의 과정을 토대로 해야 함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연희 분야를 현대적 수용을 위해 재해석으로 시대를 앞서가는 무대를 보여주고 있는 문진수 회장은 남사당·승무·발탈·영광우도농악까지 4개의 무형문화재 이수자이며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 악기장(북, 장구) 전수자다. 그는 30여 년간 전통예술을 연마하면서 무용학 박사까지 마쳤고, 최우수 박사학위 논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Q. 지난 해 문진수 회장님 개인적 전승활동은 A. 작년에는 코로나도 주춤해서인지 여기 저기 무대에 서는 날이 많아지더군요. 2023.01.27. 코리아그라피 우리소리 추어지다 (서울남산국악당)_ 전통을 복원한 소고춤, 전통입춤, 전통구음의 현대적 해석과 콜라보 2023.03.22 인천 서구립풍물단 심사(인천 서구립)_ 풍물단원 심사 2023.05.03. 전문직업인에게 듣는 진로이야기(의령문화원)_전통연희 진로와 방향 2023.05.11. 2023 정읍무형문화재 합동발표회(동학농민혁명기념제 황토현 특설무대)_ 정읍무형문화재 17호 악기장 전수자 2023.05.20. 통영오광대 정기공연_문진수류 12발 상모춤 초청공연 2023.06.05. 대한민국연희춤협회 정기모임 및 지부, 지회장 임명장(추가) 수여식 2023.06.08. 찾아가는 문화재 발탈 공연(오산)_채상설장구 초청공연 2023.06.10. 김복희교수 대안적 현대박물관학 네트워킹 파티_ 문진수류 설장구춤 초청공연 2023.06.14. 홍주향교 달빛타기_ 문진수류 12발 상모춤 초청공연 2023.06.18. 연희춤꾼 더 문진수의 소고춤 연수회_대한민국연희춤협회 2023.06.24.~6.25. ASIA 1인극제 거창 2023_ 검사위에 백사, 채상설장구 초청공연 2023.06.30. 찾아가는 문화재 공연 발탈(수원)_채상설장구 초청공연 2023.07.15.~16. 대한민국연희춤협회 하계연수회 2023.8.12. 자계예술촌 제20회 산골공연 예술잔치_ 문진수류 12발상모춤 초청공연 2023.08.19. 2023년 국가무형문화제 제3호 남사당놀이 공개행사(운현궁) 2023.08.27. 진해 전국국악대전 풍물심사(진해문화예술회관) 2023.09.15. ART FAIR HONGJU(아리랑뮤직)_문진수류 12발상모춤, 처용무 초청공연 2023.09.16. 대전상설공연(우암사적공원)_ 문진수류 버나놀이(춤), 문진수류 12발상모춤공연 2023.09.17. 2023 세계무형유산 VIRTUOSO_ 문진수류 버나놀이(춤) 2023.09.23. 대전상설공연(대청댐)_ 문진수류 버나놀이(춤), 문진수류 12발상모춤공연 2023.09.23. 아리랑뮤직 음악회_ 문진수류 설장구춤 초청공연 2023.09.24. 2023 대한민국농악축제(강원감영)_ 문진수류 12발상모춤 초청공연 2023.09.26 광양시 농악경연대회 심사 및 축하공연(광양시청)_채상설장구춤 공연 2023.10.09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한글날 경축행사(국립세계문자박물관)_남사당 덧뵈기, 열두발상모춤, 버나놀이 공연 2023.10.11. 아리랑뮤직 음악회(홍성)_채상설장구춤 초청공연 2023.10.14 오대산 문화축전_한강생명시원제(월정사)_신칼대신무, 버나놀이 초청공연 2023.10.19 사)한국국악협회 서울특별시 광진구지부 정기공연(광진나루 아트센터 대극장)_열두발상모춤 초청공연 2023.10.25. 일이관지 조선춤방(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_이동안류 기본무, 팔박수건춤(박정임 구음) 2023.10.21.~10.22. 제28회 계룡산국제춤축제 산왕대신기_문진수류 덧뵈기춤, 소리, 신칼대신무, 12발상모춤, 버나놀이 공연 2023.10.28. 국가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 공개행사_문진수류 채상설장구 2023.10.29. 한국베트남 전통문화예술축제(인천시청)_ 이동안류 신칼대신무 초청공연 2023.11.04. 개천사 비자나무숲 음악회(개천사)_버나놀이 2023.11.15. 배꼽마을 치유 축제(청성 장연리)_버나놀이 2023.11.18. 남사당놀이보유자 考박용태선생님 2주기 추모공연(대전 예맥아트홀)_ 남사당 덧뵈기 전과장 시연 및 이동안류 신칼대신무 공연 2023.11.25. 대전1인극 축제_ 화엄무변(문진수류 버나놀이(춤)), 문진수류 12발상모춤 초청공연 2023.12.12. 제44회 정명자 춤의 세계(한국문화재단 민속극장 풍류)_광대소고춤, 열두발상모춤 공연 2023.12.24 .오늘도 X-MAS는 춤춘다(고래문화재단)_버나놀이와 열두발 상모춤 공연 2023.12.27. 남사당과 함께하는 덩쿵~ 흥겨운 버나 놀이_버나놀이와 재담 공연 Q. 대한민국연희춤협회 소개해주세요. A. 2022년 대한민국연희춤협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연희춤에 뜻을 같이하는 국내 및 해외 회원과 함께 2023년 협회창립모임을 통해 국내 및 해외 지부지회를 공식 출범하고 활발한 전승과 보전을 위한 공식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각 지부, 지회는 가(歌), 무(舞), 악(樂), 기예(技藝) 등 다양한 전통연희를 전승하고 활발한 공연과 교육활동을 벌이고 있는 전통연희 전수자, 이수자, 무용가, 문화운동가 등 전통연희와 예술 분야의 재원으로 풍부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현재 회장 문진수, 사무국장 이지원을 비롯하여 국내외 20여 개의 지부, 지회로 활동의 범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Q. 지난해 성과는 A. 연희춤을 통한 새로운 시도를 위해 연구한 작품들이 감사하게도 평단과 관객의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연희를 보시는 관객과 진정으로 소통하고 전통연희를 연구하는 석학과 문화운동가들에게 연희춤의 훌륭한 가능성과 가치를 선보이며 받았던 좋은 에너지를 바탕으로 전통의 재해석 재창조한 새로운 작품으로 다시 환원하는 예술가로서의 본연의 작업에 정진할 수 있었던 뜻깊은 한해였습니다. 이러한 연희춤을 통해 전통연희를 재해석하고 창조하는 데 뜻을 모으며, 이를 구체적인 전승 활동으로 구현하기 위해 2023년에 연희지도사 및 무형문화유산 지도사 등 문화예술 교육 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Q. 올해 역점 사업은 A. 연희지도사 및 무형문화유산 지도사에 적합한 최적의 교육과정을 구현하기 위한 전승교육과 전승지도사의 육성에 초점을 맞추어 운영하며, 각 지부 지회의 연희춤 공연과 전승 활동에 적극적으로 힘을 보탤 예정입니다. 또한 개인적인 전승 활동과 연희춤에 끊임없이 정진하며, 새로운 시도를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관객과 만나고 소통하며 연희춤의 무변(無邊)하고 아름다운 가치를 또 한번 새롭게 조명하는 2024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Q. 국악계에 하고 싶은 말 A.문화의 힘이 곧 국력이자 국가의 100년 자산이 되는 글로벌문화 시대입니다, 전통문화의 흥과 멋, 예술적인 가치와 정신적인 철학을 토대로 현대적 삶에 이를 새롭게 녹여내어 이상적인 가치로 풀어내는 예술가이자 문화운동가로서의 의식있는 연희꾼들의 뜨거운 실천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연희꾼 스스로의 예술적 정진, 창조적인 도전과 더불어 전통예술에 대한 관심과 관리, 전승 교육을 위한 시스템과 재정적 지원 등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전통예술에 대한 지원을 통해 예술로서 창조하고 관객과 소통하는 상생 에너지가 재생산되어 다시 새로운 창조로 이어지며, 예술을 매개로한 정신적 부흥으로 흥과 멋, 정이 흐드러지는 모든 공동체의 기운생동(起運生動), 상생(相生)의 문화부흥 시대를 기대합니다. 문진수 -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 이수자 - 국가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 이수자 -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5호 승무 이수자 -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7호 영광우도농악 이수자 -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 악기장(북, 장구) 전수자 - 한양대학교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 - 사단법인 광양버꾸놀이보존협회 부이사장 - 사단법인 국가무형문화재 남사당놀이보존회 이사 - 사단법인 남사당 대전지회 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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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86)우리의 서울은 왕십리래요. 아리랑 고개를 서로 함께 넘어요. 서울의 왕십리 우리 사는 곳. 개나리 화창한 꽃동산이래요. 사랑과 희망이 넘쳐흐르는 서울의 서울은 우리 왕십리래요. 감상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닷새 왓으면 죠치. 여드래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로 朔望이면 간다고 햇지. 가도 가도 往十里 비가 오네. 소월의 시 ‘왕십리’의 앞 구절이다. 이 시로 왕십리는 모든 이에게 친근해 졌고, 한 번도 가 본적 없는 시골사람들도 다녀라도 온 듯 왕십리를 마음속에서 그린다. 한국 사람에게 '서울의 서울'은 왕십리인 것이다. ‘개나리 꽃동산’을 도드라지게 하여 가운데 놓고 노랫말을 상단에 에둘러 배치하였다. 하단은 여백으로 남겨 지평의 느낌을 살렸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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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78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한류문화 컬럼니스트) ‘박상진의 한류 이야기’는, 한류의 원형을 쫓아 그 때로 돌아가서 나를 체험하는 것이자, 끊임 없이 변해가는 나의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고정불변의 과거가 아니라 창조라는 키워드로써 아직도 팔딱거리는 생각들에 대한 꿈틀대는 현재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다. 이 글은 우리 국민이 갖고 있는 창조력의 비밀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 여정의 글은 내 주장을 강조하는 계몽적인 글이 아니다. 흑과 백이 공존해야 하고, 선과 악이 서로의 주장으로 의견이 팽배했으면 좋겠다. 필자는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듣고 싶다. 내 얘기에 공감도 하고 비판도 하면서 자기만의 논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한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대로 고유의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은 소중하다고 본다. 그 생각의 행위는 곧 각자의 아이덴티티가 되고 그것이 주위에 확산되어 문화가 되며 시간이 흐르면 전통문화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지난 회의 글이 일반 사람들에게는 낯선 내용과 생소한 용어들이 많아 다소 어려웠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그 의견들 중 두어 가지를 소개하면서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먼저, 따끔한 회초리와 같은 의견을 소개한다. 노원문화재단 이사장을 역임하고 현재 전통문화콘텐츠연구원의 김승국 원장께서 보내주신 의견이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훌륭한 글입니다. 그런데 일반 독자는 물론, 국악을 전공했다고 하더라도 실기자들이 읽기에는 좀 어렵습니다. 난이도를 좀 낮춰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캐나다 토론토에 거주하는 김병년 사장에게서 댓글을 보내왔다. 그 내용은, "‘고려가요’를 분석한 결과, …(중략)… 글 중에 나오는 ‘시용향악보’와 ‘오음약보’, ‘정간보’ 그리고 ‘하강종지’ 등의 생소한 단어들을 보며 학문의 길이 쉽지 않음을 실감합니다. 황무지를 개간하는 마음으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에 헌신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김승국 원장께서는 오래전에 현재의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교감을 역임하셨다. 그러니 제자 사랑하는 마음으로 위와 같이 염려하면서 지적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내용이라도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써야 하는데 필자의 부족한 탓임을 고백한다. 캐나다 토론토의 김병년 사장은 필자와는 ROTC 동기인데, 개인사업과 토론토 중앙일보 오피니언 리더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평소 K컬처와 한류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친구이다.우선, 위에서 지적한 ‘시용향악보’와 ‘정간보’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설명해 보겠다. 지난 회의 내용 중 표지 사진이 『시용향악보』인데, ‘정간보’형식을 갖춘 악보이다. 정간보(井間譜)는, 가로줄과 세로줄을 그어서 네모 모양으로 만든 악보가 ‘우물 정자(井字)’ 같다고 해서 정(井)이라는 명칭이 붙여졌고, 그 정(井)자가 사이(間) 사이에 이어져 칸을 만들고 있다고 해서 ‘정간(井間)’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악보가 ‘정간보’인 것이다. ‘정간보’라는 명칭은 1948년에 서울대학교의 이혜구 박사가 발표한 논문 「한국의 구기보법(舊記譜法)」에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그 이후로 줄곧 통용되었다. 그러니까 세종대왕이 소위 정간보와 같은 악보를 창안하여 여러 곡을 작곡하였으나, ‘정간보’라는 명칭을 교육적인 용어로 공식 사용한 것은 불과 70년 정도인 것이다. 구한말, 서양음악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특별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도 ‘정간보’와 같은 악보는 그냥 ‘우리 악보’로 쓰였는데, 서양음악의 ‘오선보(五線譜)’라는 형식이 유입되면서 상대적으로 전통음악 악보에 고유의 명칭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악보의 명칭이 ‘정간보’인 것이다. 다음 회에서 『시용향악보』와 ‘오음약보’의 관계, 그리고 ‘하강종지’에 대한 설명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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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세중과 전위예술(7) <BR>巫世衆(1편)없는 길을 만드는 자 개척자요 구도자라. 불의(不義)를 용납할 수 없어 늘 외롭고 허허로우나 六十을 넘어 다시 그 자리에 돌아오니 어느덧 환갑이라. 耳順의 그 나이에 이제 비로소 그는 완전히 벗을 줄 알게 되었나니 가난함이 바로 부유함의 번거로움을 벗어버린 진정 순수와의 만남이요 알몸의 가벼움이 바로 비상(飛上)의 목전이라. 김世衆이란 세속의 겉옷을 벗어 홀홀 던져 버리고 한날, 한시도, 한짬도 쉬지않고 세상과 마주하고 대중(大衆)과 어울리고져 한판 한 민족역사의 소용돌이 가운데 서서 진실을 외치며 불의를 용납할 수 없어 큰 눈 부릅뜨고 입은 꽉 다문채 단호한 표정으로 역역히 서 있는 그의 모습 이제 비로서 그는 환갑의 이 나이에 한알의 곡식이 익듯 과일이 익어 그 단맛을 세상에 선사하듯 그 동안 거듭 쌓아온 도전과 정성 지랄과 허풍. 과일이 제철되어 눈, 비, 바람 모질게 맞고 햇빛, 이슬 머금은 채 알알이 익어 성숙하여 그 맛을 세상에 선물하느니 - 이제 巫世眾 그대는 대중과 세상 한 가운데 서서 억압받은 자 핏박받는 자 어둠속에 버려진 자 쥐도 새도 모르게 세상에서 살아진 자 한(恨)맺힌 그 넋을 달래며 한판 굿을 벌리는데 이는 아름다움과 가식의 웃음에 길들여진 세상 사람들의 눈먼 감각에 지진을 일으켜 새로운 강산을 낳고자 함이니, 그의 영원한 반항의 기질은 그를 바로 영원한 예술가로 만드는 원동력. 그는 달려도 달려도 지칠 줄 모른다. 그는 또한 많이도 방황하였다. 그러면서 찾은 나의 자리, 우리의 자리 그 자리매김을 위하여 나는 무엇을 할것이며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연극을 할것인가? 연극 중에서도 전위(前衛), 그는 아무리 앞을 서서 달려도 심이 풀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는 아예 남이 안하는 다른 짓거리로 세상의 가식을 오늘의 허상을 찢어 버리기로 한다. 「쐬굿」, 「유리굿」,道劇, 육중한 현실의 무거움과 사악한 문명의 날카로움을 비켜 보려 그는 지구를 많이도 쫓아 돌고 돌았다 독일로, 유럽으로, 캐나다로, 미국으로, 다시 일본으로 그렇게 세상과 만나며 헤메고 다녔건만 이제 六十을 갓 넘은 그의 나이 오늘에 이르러 세상에 <나> 있음에 우리가 있고 우리가 있음에 그대 있어. 그의 영원한 반려자 이나미와 함께 그는 오늘도 내일도 한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反연극, 전위극 쐬소리, 유리깨지는 소리, 집어던지는 소리, 밟아버리는 소리(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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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138)이윤선/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 "기계 문명의 발전이 절정인 오늘날 문명 상황에서 무형유산은 인간의 삶과 더불어 호흡하고, 이 시대를 기록하고 발언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형유산 정신의 회복이지 않겠는가" 6년 전 무형문화재에 대한 논쟁을 이 지면에 다룬 적이 있다(2018. 8. 24). 원형과 전형 논쟁에 관한 것이었다. 오늘 그것을 다시 환기하는 이유는 그 이름이 명을 다해서라고나 할까. 규정한 법률에 의하면 세시풍속은 물론이거니와 기후 인식이나 갖은 관념들까지 문화재라는 이름으로 담아내려고 한다.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한 1962년으로부터 지금까지 겪어 온 세월의 변화에 대한 반영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겠다.대개 원형(原型)과 원형(原形)은 일반인들이 전혀 구분하지 않고 쓴 용어다. 법률이든 관념이든 모두 의식의 본바탕 혹은 무의식의 근본이라는 의미로 범용하였기 때문이다. 통틀어 아키타이프(Archetype)라 했다. 인류가 공유하는 공통 경험의 집단 무의식이라는 뜻이다. 아키타입은 고정 불변하는 원형질이라는 의미이므로 이전에도 변하지 않았고 이후로도 변하지 않을 것을 이르는 말이다.무형문화재법으로 돌아가 생각해본다. 원형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한다는 규정은 잘못된 것이었음을 이미 법률이 증명했다. 아니 문화재라는 이름 자체가 그렇다.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무형문화유산의 특질은 생성하고 변화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다만 문화재라는 이름으로 강제하여 그 형식과 내용을 붙잡아두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 대상을 이렇게 규정해왔다.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은 특정한 시기의 형식, 형태나 내용에 대해 보존의 가치가 있다고 당대의 사회와 여러 전문가가 합의하여 그 형식과 내용을 붙잡아두는 것일 뿐이다." 물론 여기에는 전통과 전승을 기반 삼는 제 규정과 규칙들이 전제되어 있다. 2016년 3월 28일 무형문화재법(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을 따로 제정하면서 원형(原型)을 폐기하고 전형(典型)을 법률용어로 채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무형문화재법의 효용 상실과 문화분권시대의 과제어느 특정한 시기에 완성된(문화재보호법 제2조,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되어 온 것) 형식과 형태 및 내용(典型)을 사회적 합의(전문가들의 심사)에 의해 국가와 지자체가 강제하여 보존하는 것이 무형문화재였다. 이 형식(혹은 형태)과 내용을 전형(典型)이라는 법률용어로 갈무리한 것이 문형문화재법의 분리 제정이다. 이로써 일정한 시기의 양식을 마치 고정불변의 원형처럼 오해하는 논쟁이 일단락되었다. 문화재라는 이름으로 생성, 변화, 발전되는 무형문화유산의 특질에 제동을 걸어서도 안 되고, 마치 원형만을, 혹은 전형만을 국가가 강제하여 보호, 보존한다는 셈법도 변해왔다고 볼 수 있다. 기왕의 문화재는 문화재대로 보호, 보존, 계승하고, 전통에 기반한 제 문화유산들은 자유롭게 현대의 문화와 버무려질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다시 내 논의를 인용해둔다. 진짜민속(Folklore 혹은 Real Folklore)/가짜민속(Fake lore)논쟁이 한때 민속학계를 달군 적이 있다. 하지만 현 단계 페이크로어를 얘기하는 학자들은 많지 않다. 원형/전형 논쟁처럼 시의성도 없고 논점도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면 포크로어는 프로토타입(典型)에 해당되고 페이크로어는 포메이션 타입(造型) 혹은 게임 용어의 키노타입(Keno type)에 해당된다. 무형문화재법이 독립되고 전형이라는 용어를 법률화시키면서 원형/전형 논쟁 및 포크로어/페이크로어 논쟁은 일단락되었다고 봐야 한다. 다시 쟁점 삼으려면 내가 제시한 논의들을 반박하거나 새로운 개념, 새로운 해석을 들고나와야 가능하다. 내가 오래전부터 정리한 것은, 무형문화유산은 끊임없이 변해왔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특정하여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것들이 전형(오리지널한 특질)의 지위를 갖게 되었고, 지정시기에 특정한(인정받은) 형식과 내용을 보존하는 것일 뿐이다. 무형문화재 제도의 국제적 배경과 제정 근거에 대해서는 본지의 지난 칼럼(2018. 11. 15)에 자세하게 소개해두었으니 참조 가능하다.문화융성에서 문화공명으로다시 명토 박아 둔다. 원형에서 전형으로 법률용어를 바꾼 지 오래다. 이 시점에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할 것은 문화분권이다. 이제는 큰 그림 이른바 빅픽쳐를 그릴 때다. 무형문화유산이 우리 문화의 토대를 어떻게 구축하고, 남북의 문화적 통일 혹은 상생의 문제를 포함해 동아시아의 상생과 평화를 위해 어떤 비전으로 기능하는지를 끊임없이 되묻고 이 시대를 견인해가야 한다. "어제에 묻고 내일에 답하다". 수묵비엔날레 김상철 교수가 쓴 기획의 글을 무형유산에 적용해 풀어본 적이 있다. "무형문화유산은 인간의 삶은 물론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회, 인간과 시대에 대한 성찰의 내용을 담고 있는 일종의 '정신'이다. 그러나 무형유산은 형식주의의 양식으로 전락하여 전형(典刑)을 답습하는 고루한 전통주의에 함몰됨으로써 본연의 가치를 망실하고 말았다. 그 결과 근대 이후 점차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으며, 급기야는 오늘의 침체와 부진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본연의 '정신'을 잃어버린 결과라 할 것이다. 기계문명의 발전이 절정에 이른 오늘날 문명 상황에서 무형유산은 여하히 인간의 삶과 더불어 호흡하고, 이 시대를 기록하고 발언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형유산 정신의 회복이지 않겠는가." 문화유산과 문화융성에서 문화창의로문화재라는 개념에서 문화유산으로 개념이 확대되었다. 문화재의 활용은 문화콘텐츠라는 이름으로 호명해왔다. 근대문화재니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니 혹은 자연유산, 세계유산, 축제유산 등의 다종다양한 이름과 개념들이 등장하였다. 기왕의 문화재라는 이름으로 이를 다 담아내기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국가행정, 지방행정 모두 부처 간 이견이나 갈등으로 이를 풀어내지 못한다. 내가 시간 날 때마다 주장하는 얘기다. 우리나라 민속 문화 기반 의례음악의 연행을 '울린다'고 표현한다. 무엇을 울린다는 것일까? 마당을 밟으니 땅을 울리는 것이요 북장고와 꽹과리, 징으로 울리니 공중을 울리는 것이다. 곧 하늘을 울리는 것이므로 공중을 나는 새와 들짐승까지도 울림의 영역에 포함된다. 울림의 파장들은 상하좌우를 가리지 않고 침윤하여 본디 가진 메시지들을 전한다. 이들 의례음악을 굳이 '울린다'라고 표현한 이유가 무엇일까? 울림이 공명(共鳴)이기 때문이다. 한자말 공명(共鳴)은 우리말 '울림'의 다른 말이다. 의례음악의 울리는 기능이 공명의 세계를 도모하는 데 있다는 뜻이다. 이미 BTS가 세계의 음악을 흔들고 있다. 하지만 경제와 문화 전반이 세계적 위상에 오르고 있는데도 정작 우리는 그만한 권위를 주장하거나 해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따위의 자족이 아니라 적어도 동아시아, 아니 세계 무대에 우리 문화의 오리지널한 특장과 의미를 설명해줄 필요가 있는데 말이다. 지난 칼럼에서 문화재청을 문화창의청 아니 문화창의부로 승격시키고 도래하는 문화융성의 시대를 대비하자고 주장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뿌리 없는 나무가 어디 있고 가지 없는 열매가 어디 있겠는가. 용비어천가 들머리를 다시 생각해본다. 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할 새 꽃 많이 피고 열매가 많이 맺을 것이니. 그렇다. 저기 저만치 우리의 문화유산에 기반한 문화융성, 문화공명의 시대가 온다. 이를 창발할 준비가 필요하다. ※ 외부인사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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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한시 아리랑 ‘阿郞曲’1917년 정사년 신해음사 발간 시집 소재 ‘阿郞曲’. 시속의 아리랑을 한시화 한 작품이다. 阿郞曲 아랑요 (俗阿那郞謠)(속 아나랑 노래) 蕙山 柳興韶 阿郞阿郞復阿郞 아리따운 낭군, 아리따운 낭군, 돌아와요 아리따운 낭군, 阿郞本是有情郞 아리따운 낭군은 본래 유정한 사내라 一朝結髮隨君去 하루아침 쪽을 지고 그댈 따리 갔지요, 阿郞百年我家郞 아리따운 낭군 백년토록 우리 집 낭군이지요 阿郞阿郞復阿郞 아리따운 낭군, 아리따운 낭군, 돌아와요 아리따운 낭군, 阿郞自是薄情郞 아리따운 낭군은 본래 박정한 사내인가 一朝白馬出門去 하루아침 백마 타고 문을 나가더니 阿郞今夜誰家郞 아리따운 낭군이여 오늘밤엔 누구 집 낭군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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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의 여로 (137) <br>분청덤벙준편덤벙의 경우는 삼벌구이를 이규진(편고재 주인) 초기 청자나 하품의 도자기가 아니면 초벌구이는 흔치 않다. 테토를 빚어 성형을 해 초벌구이를 한 후 유약을 입혀 재벌구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도자기 소성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벌구이와 재벌구이를 한 후 한 번 더 소성을 한 삼벌구이가 있다고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더구나 외국의 경우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그런 도자기가 있다고 한다면 궁금증은 더욱 높아진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를 주장하고 있는 사람이 일반인이 아니라 보성에서 분청덤벙 재현을 위해 도자기를 직접 제작하고 있는 도예가의 주장이라고 하면 한 번쯤 귀 기울여 볼 필요는 있는 것이 아닐까. 방법은 이렇다고 한다. 즉 성형을 한 기물을 초벌구이를 한데다 덩벙질을 한 후 재벌구이를 한다. 그런 후에는 유약을 입혀 다시 삼벌구이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중국에도 유례가 없고 우리나라에서도 알려져 있지 않은 이러한 소성방법은 왜 필요한 것일까. 그에 대한 설명은 또 이렇다. 초벌구이를 한 후 덩벙질을 하고 유약을 입혀 재벌구이를 할 경우 삼투압에 의한 기물의 주저앉음 현상이 생기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재벌구이만을 할 경우 덤벙이 아닌 반덤벙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덤벙의 경우는 삼벌구이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그 요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삼벌구이는 비용과 시간과 노력이 배가되다보니 보성 도촌리와 고흥 운대리의 분청덤벙은 그 제작기간이 30여년에 불과한 일시적인 제작방법으로 보여진다는 주장도 하고 있어 주목된다. 분청덤벙의 이와 같은 삼벌구이의 주장에 대해 나는 아직 어떠한 결론도 갖고 있지를 못하다. 오래 전 도촌리와 운대리를 답사한 적이 있고 두 가마터에서 출토된 비교할만한 분청덤벙편도 조금은 갖고 있지만 상기 주장에 대해 나로서는 판단을 내릴 그 어떤 자료도 근거도 갖고 있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벌구이라는 새로운 주장 때문이었을까. 자료를 찾다보니 다시 꺼내 들게 된 것이 분청덤벙준편이다. 분청덥벙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보성의 도촌리와 고흥의 운대리를 떠올리게 된다. 보성이야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일본인들에 의해 널리 알려져 왔지만 고흥은 근래 들어 가마터 조사와 발굴이 이루어지면서 이제는 오히려 그 평판이 보성을 능가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충청도와 전라도 장흥 등지에서 분청덤벙이 발견되고 있는 모양이지만 아직까지는 미미한 형편이어서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 같다. 그런데 보성 도촌리와 고흥 운대리의 분청덤벙을 비교해 보면 전자가 비교적 백분이 곱게 입혀지는데 반해 후자 쪽은 조금 거친 느낌이 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분청덤벙준편은 다리 부분만 남은 것으로 상준이나 희준인 것만은 분명한데 어느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남은 것이 다리 한쪽이다 보니 머리가 없는 상태에서 상준과 희준의 구별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핸디캡을 제하고 나면 남은 도편만으로도 대단한 기물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남은 몸체 일부를 떠받치고 있는 지름 5.5Cm의 우람한 다리 형태를 보고 있노라면 얼마나 큰 기물이었는지 짐작 자체가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 큰 기물 전체에 덤벙을 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덥벙은 피부 자체가 거칠어 고흥 운대리 보다는 보성 도촌리 것으로 보이는데 여하튼 크기며 덤벙이며 모두가 흔하게 볼 수 없는 것이어서 비록 다리 한 쪽만 남은 불구의 몸이기는 하지만 감탄과 놀라움을 금할 수 없게 만들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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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85)어데예 아니라예 핑계만 찾지 말고 좋으면 좋다고 눈만 껌뻑 하이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나는 넘어가네. 감상 "가가 가가?” ‘그 사람이 아까 그 사람이었어?’라는 뜻의 경상도 말이다. 사투리를 다른 지방 사람들이 대뜸 알아듣기는 쉽지 않다. 서울 남자와 대구 아가씨가 데이트 중이다. 남자: 나는 아가씨가 좋은데 그 쪽도 나를 좋아해요? 여자: 어데예 (자기도 ‘그렇다’는 뜻이다.) 부정으로 표현하는 예도 있다. 남자: 우리 나중에 다시 볼까요....? 여자: 언제예(언지예)...? (거절하며 튕기는 말이다.) 남자: (날짜를 정하라는 말로 알아듣고는) 다음 주 토요일에 봅시다. 여자: 어데예...?(이건 진짜 싫다는 뜻) 이 쯤 되면 소통이 먹통이다. ‘아니라예~’도 ‘괜찮다’는 뜻의 긍정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부정과 긍정이 혼용되기 때문에 전체 분위기와 문맥을 이해하지 않고는 알아듣기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수줍은 아가씨의 감정표현은 더욱 난해하다. 차라리 눈을 껌뻑하는 것이 훨씬 빠르다. 사투리는 이해의 차원을 넘어 듣는 것만으로도 정겨움으로 미소가 인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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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137)이윤선/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 덤벙분청'에 대한 변명||"이 지역 정치인들은 밖으로만 광주정신과 ||시대정신을 모방할 뿐 안으로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라의 안위를 위해 ||표를 보여준 것이 아니다. 다시 역사를 ||상고해보라. 남도사람들이 어디 단 한번||이라도 불의와 타협하거나 표를 몰아준 일이 있는가" 얼른 생각하기에는 신분도 높고 지혜도 뛰어난 오키의 도공들이 만든 품위 있는 다기가 훨씬 뛰어나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조선의 잡기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역시 결과만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낳게 한 원인과 과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데서 오는 패배일 것이다. 즉 밖으로만 모방할 뿐 안으로부터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은 것이다.새삼스럽게 조선인처럼 가난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고 또한 잡기를 만들 필요도 없다. 그러나 맛에 사로잡힌 부자유한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참된 것은 태어나지 않는다. 아직은 조작이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애의 상태에서는 더더구나 거리가 멀다. 조선인의 장점을 이은 선어(禪語)를 빌려 말한다면, 지미(只縻)의 경지에서 만들었다는 점에 있으며, 맛에 매달려 궁색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이것이 미묘한 갈림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야나기무네요시(柳宗悅)가 '조선과 그 예술'에서 말한 내용 일부다. 졸저 '무안만에서 처음 시작된 것들'(다할미디어, 2022)의 한 챕터에서 이를 베껴둔 것은, 우리의 분청사기를 가장 적절하게 설명 혹은 해명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과감한 생략과 절제, 무욕과 해탈, 여백의 미를 톺아내는 것이 달마도의 회화며 분청의 세계가 어찌 다를 것인가. 작위적인 기교가 없으니 도교적 세계관과 통하는 것이요, 무욕의 심미안을 표상했으니 불교적 맥락과 통하는 것이라 했다.불교의 공(空), 도교 자유의지의 표현 말이다. 이 심미관이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한 양식으로 분청에 표현되었으니 그 웅숭깊음을 헤아리기 어렵다. 오래전 내가 야나기무네요시 생가를 꾸며 만든 민예박물관을 찾았을 때 놀란 이유이기도 하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가면 현관 가운데 딱 한 개의 옹기만 놔두었다. 남도 도처에서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질그릇, 그것도 약간 비대칭인 투박한 항아리 말이다. 무안분청(광주,전남을 포괄하는 호명 방식)의 기능을 배태한 무안만(내가 새롭게 구상한 영산강과 인근 바다의 다른 이름) 유역의 흙과 불과 땔감과 무엇보다 이 예술적 미감을 표현해낸 남도 사람들을 상고해보면, 양반예술과 대비되는 서민예술의 그윽함을 추적해볼 수 있다. 이것은 무안만 사람들의 생태적이고 호방한 세계관과 지향 속에서 생성된 것들이다. 내 식으로 말하면 남도 풍류와 남도 미학의 발흥이다. 영암의 도기와 해남의 초기청자, 강진의 자기에서 무안만의 분청까지, 남도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옹관까지 거슬러 오르는 장대한 줄기, 그 속에서 발현되는 자유분방하고 호방한 정신 말이다.덤벙분청의 세계분청사기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학자들이 미시마(三島)라고 부르던 용어를 번역한 것이다. 고유섭(1905~1944)이 잡지 '조광(朝光)' 1941년 10월호에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라고 언급하며 분청이라는 이름이 사용되기 시작한다. 분청의 기법은 화장토(clay slip)를 도자기에 바른 후에 장식하는 기법이다. 6세기 중국의 월주요(越州窯)에서 시작됐을 것으로 추정된다.세종 이후에는 국가에 진상하는 공납용으로 제작된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전국에 자기소 139개, 도기소 185개에서 대부분 분청사기를 생산했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에 이해 분청의 기술이 일본에 소개된다. 16세기 이후 야마노우에 소지(山上宗二)가 조선의 분청다완(찻그릇)을 천하제일이라고 평한 것은, 이전 칼럼에서 소개한 바와 같다. 분청의 기법은 상감, 인화, 박지, 철화, 조화, 덤벙, 귀얄 등이다. 이중 무안만에서 가장 선호했던 기법이 덤벙과 귀얄문이다. 지면상 고(古)덤벙에 대해서만 간략히 소개해둔다. 더 자세한 얘기는 졸저를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덤벙 채식(彩飾)은 도자기 장식에서 백색이나 색깔이 있는 흙물에 도자기를 덤벙 담갔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물에 어떤 무거운 물건이 떨어지며 내는 소리다. 텀벙, 덤버덩, 덤벙, 덤벙덤벙, 덤버덩덤버덩, 담방 등의 용례가 있다. 하지만 들뜬 행동으로 아무 일에나 자꾸 함부로 서둘러 뛰어든다는 뉘앙스의 '덤벙'이란 의미로 읽는 것은 단견이다. 담방담방이나 담방은 작고 가벼운 물건이 물에 떨어져 잠기는 소리를 말한다.둥덩둥덩이나 동당동당과 같은 말이다. 남도민요 둥덩애타령이란 호명이 여기서 나왔다. 옹기 옴박지에 물을 절반쯤 채우고 박으로 만든 바가지를 엎어 손으로 두드리면 동당동당 혹은 둥덩둥덩 하는 타악기 소리가 난다. 이를 '옴박지 장단'이라고 하고 특히 여인네들이 유희놀음을 할 때 이를 악기 삼아 노래했기에 '둥덩애타령'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덤벙은 '연못'의 방언이기도 하다. '웅덩이'를 '둠벙'이라고 하는 것도 이와 같다. 둠벙과 덤벙의 어원이 같다. 따라서 덤벙채색이라는 이름은, 사람들이 덤벙댄다는 뜻이 아니라, 보다 생태적이고 고풍스런 뉘앙스다. 예컨대 '덤벙주초'는 돌을 다듬지 않고 건물의 기둥 밑에 두는 주춧돌을 말한다. 다듬지 않아서 거칠지만 그 질감이 주는 친자연적인 미감에 의미를 두는 시선이다. 야마다가 무안의 분청을 황실의 국보로 찬양하고 야나기가 조선의 옹기와 도자기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귄대가리의 정체지난 칼럼에서 나는 거시기 연대기를 말하며 귄의 정체를 해명했다. 남도사람들의 압도적인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대선 결과가 다른 것을 변명하고자 함이 아니다. 이 지역에서 인문학이라는 이름을 걸고 글을 쓰는 땔나무꾼으로서, 적어도 누군가는 이 흐름에 대한 해명을 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일종의 팬덤이었나? 생각 없이 덤벙대는 우둔한 자들이어서인가? 잘못된 행위를 극구 우김질하자는 게 아니다. 역사이래 거시기를 공유해온 사람들의 더불어 울림(共鳴)을 어떻게 해명할 수 있을까? 지난 수 세기 동안 죽음의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남도로 또 남도로 향했는가를, 또한 남도사람들이 어떻게 그들을 수용하며 슬픔을 삭여냈는가를 말이다. 그래서다. 오늘 분청의 사례를 들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역시 결과만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낳게 한 원인과 과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데서 오는 패배감에 대한 것이다. 두렵고 화가 나는 것은, 현 집권당 특히 남도지역 정치인들의 반성 없는 태도와 안이한 처신이다. 남도사람들의 압도적인 지지율을 당파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다. 나라의 안위를 위해 표를 준 것이지 당신들의 안위를 위해 표를 준 것이 아니다. 이 지역 정치인들은 밖으로만 광주정신과 시대정신을 모방할 뿐 안으로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시 역사를 상고해보라. 남도사람들이 어디 단 한 번이라도 불의와 타협하거나 표를 몰아준 일이 있는가. 일본인들처럼 맛에 매달려 궁색하게 만들지도 않고 헛되이 치장하지도 않는다. 단 한 표 차로 졌어도 진 것은 진 것이다. 이것이 게임의 원칙이다. 나중 호모루덴스 곧 놀이하는 인간을 소개할 예정이지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는 것이 옳다. 요한호이징하는 그래서 종교와 전쟁도 놀이라고 했을 것이다. 경기에서 졌으면 '졌잘싸'로 변명하지 말고 협력하는 것이 정도다. 지금은 그것이 나라의 안위를 위해 할 일이다. 야나기에 비유컨대 여기가 미묘한 갈림길일까? 남도의 일당 정치인들에게 경고해둔다. 거시기의 연대를 몰상식하게 폄훼하면 나부터라도 가만있지 않겠다. 나는 여전히 믿는다. 나라의 의를 위해 떨쳐 일어나고 시대정신을 견인해 나온 남도사람들의 시대정신과 귄진 감각을. ※ 외부인사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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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북한 최성환 작 ‘관현악아리랑’ 관련 자료.아리랑 관현악 작품 중 대표작으로 꼽히는 북한 최성환 작 ‘관현악아리랑’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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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의 여로 (136)<br> 백자철화제기보편쓸쓸한 가을 풀을 연상시켜 이규진(편고재 주인) 할고대라고도 불리는 쪽굽에 돋을무늬 같기도 한 연주문 등이 있는 등 전형적인 17C 관요산 제기의 일종인 백자철화제기보편이다. 보는 곡식을 담아 놓는 제기로 둥근 형태에 귀가 달리고 주로 동으로 만들지만 백자도 있다. 백자에서는 고전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17C로 와 개선되기 시작한 전형적인 제기 중의 하나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도편은 일찍이 지인에게서 양도를 받은 것으로 경기도 광주시 상림리 백자 가마터에서 출토된 것이다. 쪽굽에 양각의 연주문과 그리고 음각의 초화문 등은 상림리 외에도 선동리 등 17C 관요에서 더러 보이는 백자보의 특징이다. 내게는 이러한 도편이 여러 점 있다. 그러면서도 지인을 통해 이 도편을 입수한 것은 철화무늬 때문이다. 17C 백자에서 철화란 흔히 볼 수 있는 장식기법이다. 임란 후 도자기 산업의 급격한 몰락과 구입의 어려움에 따른 청화의 소멸은 대용품으로 철화의 등장을 강요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자철화제기보편에 대한 내 지극한 관심은 단순히 철화가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백자철화제기보편에서 보이는 철화는 세로로 붙어 있는 연주문을 중심에 두고 좌우로 들어 있는데 초화문의 정확한 종류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를 자세히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추초문 같은 느낌이 들고는 한다. 추초문이라고 하면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 있지 않은가. 즉 금사리 시기 몇 줄의 선을 청화로 그려 넣어 쓸쓸한 가을 풀을 연상시켜 도자기 애호가들을 매료시키는 그 추초문 말이다. 그런데 백자철화제기보편의 철화무늬가 바로 이를 연상시키고 있는 것이다. 안료는 달라도 이러한 17C 철화무늬가 18C 청화무늬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면 이 얼마나 흥미롭고도 귀중한 자료이겠는가. 경기도 광주시 상림리 백자 가마터는 광주시 일원에 흩어져 있는 그 많은 가마터 중에서도 비교적 서쪽에 위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도를 벗어나 마차 길로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드문드문 민가가 있는 곳이 바로 상림리인데 이곳에도 백자 가마터가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 굽 안에서 보이는 간지로는 신미(辛未,1631) 계유(癸酉,1633) 등이 출토되고 있어 17C 관요 중에서는 탄벌리 다음으로 이른 시기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가마터에서는 청화는 물론 없고 철화가 보이지만 이 또한 흔치는 않다. 더구나 백자철화제기보편에서 보이는 철화무늬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어서 여간 귀한 자료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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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 (85)<br> 임수정 명무의 '진도북춤' 춤사위(박병천 류)진도북춤 진도북춤은 전남 진도 지역에서 양손에 채를 쥐고 추는 춤으로, ‘진도북놀이’라고도 일컫는다. 북은 몸에 밀착시켜 어깨끈을 메고, 허리끈으로 조여 묶는다. 양손에 채를 쥐고 양쪽 모두 연주한다는 뜻에서 양북이라고도 하고, 채를 쌍으로 들고 춘다고 해서 쌍북이라고도 한다. 진도씻김굿 예능보유자 박병천은 북춤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서울의 집(코리아하우스) 악장 시절에 진도의 기교적 춤사위를 곁들인 진도북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인정받았다. 박병천은 서울의 집 때부터 안무하고 재창조한 북춤을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대불대학교에서 가르쳤다. 전통무용가 임수정은 진도 북춤의 명인이며 진도씻김굿 예능보유자 박병천 선생으로부터 개인이수패와 금으로 만든 정주를 하사 받은 단 한사람이다. 해마다 춤판의 테마를 달리하며 전통춤판을 펼칠 때마다 화제를 모아왔다. 한국무용가로서는 드물게 악(樂),가(歌),무(舞)를 두루 섭렵한 임수정(국립경상대학교 민속무용학과 교수)은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승무), 제97호(살풀이춤)의 이수자이다. 전통춤에 내재된 예혼(藝魂)과 기운생동한 예술세계를 선보이기 위해 오랜 세월 전통춤에 천착하며 여러 대가의 춤을 섬기면서도 그 원형을 잘 전승한 춤꾼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한국 전통춤의 진흥을 위해 다양한 공연과 학술활동, 대중화에 앞장서 왔다. 국내외 초청공연 및 전통춤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통춤에 매진한 활동을 인정받고 있다. 임수정 경상국립대학교 인문대학 민속무용학과 교수 한국전통춤예술원 대표, 박병천류 전통춤보존회 회장, 무용역사기록학회 부회장, 한국전통춤협회 이사,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승무)와 제97호(살풀이춤)의 이수자 제15회 한밭국악전국대회 명무부 대통령상 수상. 2018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전통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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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84)어떤 잡놈이 임 좋다 했냐 알고 보면은 큰 원수로고나 아리아리랑 서리서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감상 처음 만나 정이 살가울 때는 웬만한 서운함도 봄눈 녹듯 하지만 정이 식어 버리고 나면 하는 짓, 보이는 것 마다 못마땅하다. 땜장이를 시켜서라도 떨어진 정을 때우고 싶은 것은 남은 정이라도 있으니 그나마 낫다. 하고 한 날 술주정에 밥 먹듯 외도라도 할라치면 ‘웬수’도 이런 ‘웬수’가 없는 것이다. 불 같이 일어난 화는 엉뚱한 사람에게 퍼 부어지고, 사랑 노래 부르는 사람은 이내 쳐 죽일 ‘잡놈’이 되고 만다. 막무가내로 꼬여 버린 심사를 민체로 가로 써서 표현했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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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77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한류문화 컬럼니스트) 지난 회에서 삼국시대의 음악 문화적 배경과 그 안에서 만들어진 ‘어사용 토리(조)’와 ‘메나리 토리(조)’의 음악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어사용 토리’에서 진화(進化)한 ‘메나리 토리’의 음악언어는 우리나라의 각 지방에 분포되어 있는 현재의 민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메나리 토리’의 음악적 특징은 민요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판소리, 무가, 범패에 이르기까지 소위 민속악이라 불리는 모든 장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음악들은 고려시대로 넘어가면서 어떤 모습으로 진화하였을까? 궁금해진다. (『신라향가음악』 박상진 지음, 참조) 『고려사』를 보면, 삼국의 속악이 고려조에 사용되었고 또 그것들은 조선조 초기까지도 시용(時用)되었다. 일부 고려가요 중에는 향가의 잔형으로 보이는 작품들이 고악보인 정간보에 실려 함께 전하기도 한다. 주지하다시피 <정읍사>와 같이, 조선조의 많은 음악들은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에서 계승되었던 것들이다. 고려조의 음악들이 삼국시대 음악을 계승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보해주는 기록이 『고려사』에 실려 있다. ‘박상진의 한류 이야기 74회’에서 간단히 언급했는데, 전문을 소개한다. "신라, 백제, 고구려의 음악은 고려조에 악보를 편성하여 함께 사용되었다. 그래서 여기에 부기한다. 가사는 모두 우리말이다. (新羅百濟高句麗之樂 高麗竝用之編之樂譜 故附著于此 詞皆俚語)” 『고려사』지 권 제25 악2 삼국속악조(三國俗樂條)에 실려 있는 글이다. 위의 기록은 왕조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음악은 계속 전승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그것은 전승예술에 비해 창작능력이나 활동이 그리 활발하지 못하던 시대적 정황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보면, 향가음악이 고려가요에 자연스럽게 유전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예술적 구조는 문법과 같은 무의식적 지식이어서 쉽사리 바뀌거나 완전히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향가의 음악적 구조를 알기 위하여 고려의 음악, 즉 고려의 가요가 수록되어 있는 고악보(古樂譜)를 통하여 관련 악곡들의 음악적 구조를 분석해 보았다. 이러한 시도는 바로 향가가 고려시대까지 불렸다는 사실에서 착안하였으며, 시대적으로 가장 근린한 고악보를 통하여 향가의 편린(片鱗)을 찾아보고자 한 것이다. 그 고악보는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이다. 『시용향악보』를 선택한 이유는, 연대가 가장 오랜 『세종실록악보』나, 그 직후에 이루어진 『세조실록악보』와 함께 조선 전기에 속하는 고악보에 해당하며, 오음약보(五音略譜)와 정간보를 이용하여 기보된 점에서 악보의 해독이 용이하다는 이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시용향악보』라는 서명(書名)이 갖는 뜻은 "현재(고려시대부터 조선조 성종까지 추정) 사용하고 있는 ‘향악을 모은 악보’”라는 뜻이다. 『시용향악보』는 매 1행 16정간으로 이루어진 정간보이며, 고려가요가 수록된 악보로서는 가장 오래된 정간보(이동복 글 참조)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향가의 편린을 찾는 분석 작업이 이루어졌는가? 『시용향악보』에는 총 20곡의 악보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 <사모곡> <귀호곡(가시리)> <서경별곡> <유구곡> <청산별곡> <풍입송> <정석가> 등 7곡이 고려가요에 속한다. 이 중 국악학계와 국문학계에서 똑같이 고려가요로 인정하고 있는 <사모곡> <귀호곡(가시리)> <서경별곡> <유구곡> <청산별곡> 등 5곡의 고악보를 분석하였다. 이 고려가요의 5곡에 대한 분석 작업을 위해, 제일 먼저 『시용향악보』의 정간보를 현재에 사용하는 오선보(五線譜)로 바꿔 기보하는 역보(譯譜)를 하였다. 그 이유는 오선보는 음악의 높낮이와 음길이, 그리고 조성(調性)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사모곡> <유구곡> <귀호곡(가시리)> <서경별곡> <청산별곡> 등의 5곡 모두 3부형식이다. (2) 5곡 모두 하강종지를 한다. (3) <귀호곡(가시리)> <서경별곡> <청산별곡> 등은 동일한 선율에 여러 절을 얹어 부르는 유절형식으로서 오늘날의 민요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4) <서경별곡> <청산별곡>은 ‘위두렁셩 두어렁셩 다린디러리’이나 ‘얄리 얄리 얄라성 얄라리 얄라’라는 입타령이 반복되는 후렴을 보인다. (5) <사모곡>의 감탄사(차사) ‘아소 님하’는 10구체 향가의 감탄사와 시조의 감탄사와 연결된다. ‘고려가요’를 분석한 결과, 현대의 노래 형식인 3부형식, 메나리 토리 형식인 하강종지, 민요에서 보이는 유절형식과 시조 형식, 향가의 잔형으로 보이는 10구체 향가 등이 나타나 있다. 다음 회에 계속 이어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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