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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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업무 범위문화체육관광부 문화, 예술, 체육, 관광, 종교, 미디어, 국정 홍보 업무를 담당하는 정부 부처다. 2008년 문화관광부와 국정홍보처, 정보통신부의 디지털콘텐츠 기능을 통합해 문화체육관광부로 개편했다. 1차관이 기획조정실, 종무실, 문화콘텐츠산업실, 문화정책국, 예술국, 관광국, 도서관박물관정책기획단을 관할하며, 2차관이 국민소통실, 체육국, 미디어정책국, 아시아문화중심추진단을 맡고 있다. 소속 기관으로 문화재청, 대한민국예술원, 한국예술종합학교,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국어원, 국립중앙도서관, 국립극장, 국립현대미술관, 국립국악원, 국립민속박술관, 한국영상자료원, 해외문화홍보원, 한국정책방송(KTV) 등을 두고 있다.언론연락처: 문화체육관광부 홍보대행 옥토컴퍼니 기획관리본부 조병선 본부장 02-6949-4350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정책과 권재오 사무관 044-203-2532 세종학당재단 교육지원부 최윤정 부장 02-3276-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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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춤북을 치면서 추는 춤. 북은 수렵할 때나 전투·제의(祭儀)에서 신악기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북춤의 유래는 북을 연주하며 춤을 추는 데서 찾아야 한다. 요즘에는 모내기를 할 때 흥을 돋우기 위하여 농악의 편성에서 북놀이춤을 추는가 하면, 불교의식에서도 법고춤이라 하여 북을 치면서 춤을 춘다. 그러나 본격적인 북춤은 역시 농악에서 볼 수 있다. 농악에서의 북춤은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발달하였는데, 경상도형의 북춤은 철저하게 원박에 맞춘 집단무용적 성격을 갖고 있으며, 전라도형 북춤은 북 치는 가락이 섬세하고 다양하며 맺고 얼렀다 푸는 묘사가 뚜렷이 나타난 개인무용적 성격을 띠고 있다. 북춤의 기본은 가락을 연주하는 것과 가락 사이에 춤을 추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유형은 외북채로 치면서 추는 춤과 쌍북채로 치는 춤이 있다. 외북채로 치는 경우 북을 몸 앞에 받치고 치는 것과 북끈을 손에 말아서 얼굴 앞으로 올려서 치는 것이 있으며, 쌍북채로 치는 경우 북을 몸 앞에 받치고 양손으로 친다. 북춤으로 유명한 밀양지방의 외북채의 북춤과 쌍북채로 추는 진도북춤을 예로 북춤의 춤사위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외북채로 추는 북춤은 삼진삼퇴(三進三退), 1박에 두 발 들기, 제자리 회전, 연풍대, 까치걸음, 발 벌리고 북치기, 한 발에 북을 받치고 춤추기, 두루걸이, 덧보기춤 등이, 쌍북채로 추는 북춤은 어깨춤, 빠른 걸음으로 회전, 제자리뛰기, 연풍대, 자반뛰기, 옆으로 다리들기, 북치고 양손 옆으로 들기, 갈짓자뛰기 등이 있다. 북춤의 멋은 북의 복판과 북 굴레인 궁편을 원박에 치거나 장단 사이에 번갈아치는 데 있고, 또한 한 장단을 먹고 긴춤을 추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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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 강원도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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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 노래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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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 강강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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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예능 보유자. 강선영(姜善泳무용가. 경기도 안성 출생. 본명 강춘자(姜春子). 안성여자고보 출신으로 한성준(韓成俊)에게 사사했다. 1943년 제1회 무용발표회(부민관)를 출발로 8ㆍ15광복이 될 때까지 만주·일본 등지에서 무용공연을 했다. 광복 후에는 '강선영무용연구소'를 개설하는 한편 여러 차례의 신작 무용발표회를 했다. 1953년 <태평무(太平舞)>를 공연한 이래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아울러 1950~1970년대 국립무용단에서 여러 안무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1960년에 파리 국제민속예술제, 1962년과 1964년엔 일본에서, 1968년엔 중화민국에서 공연, 1972년엔 뮌헨 올림픽 한국 민속예술단 지도위원으로 세계 각지를 순회공연했다. 1965년 서울특별시 문화상(<장희빈>), 1965년 아시아 문화예술제 문화 부문 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무용협회 부회장, 강선영무용단의 단장 등 역임. 민주자유당 비례대표로 대한민국 제14대 국회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안성 태평무 전수관(安城 太平舞 傳授館)】 소재지 주소경기도 안성시 사곡동. 태평무전수관은 평생을 전통무용에 몸담아 온 강선영(중요뮨화재 제92호 태평무보유자) 선생에 의해 전통문화를 올바로 전승 보존하고, 재능 있는 춤꾼들을 발굴양성하며 개방화된 무대를 제공하기 위해 그의 고향인 안성에 사재를 들어 완성한 문화공간이다. 400여 명의관람 및 연습이 가능한 130평 규모의 대공연장, 세계풍물 과 태평무 관련 자료를 전시한 박물관, 연습실, 숙식시설 등을 갖추고 각종 무대공연과 세미나 등에 이용되고 있다. 무용예술의 저변확대와 전통예술의 올바른 교육을 위해 분기별로 전국무용인들을 대상으로 태평무강습회와, 매주 한 번씩 토요 전통무용 상설무대를 통하여 관광객들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전통예술의 대중화를 꾀하고 있으며, 매년 우리 고유의 춤사위를 보존하고 우수한 인재 발굴을 위한 전통무용 경연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학력】 1931 양성보통학교 입소 1936 양성보통학교 졸업 1937 한성준(韓成俊)에게 사사(師事) 1941 안성여자고등보통학교 1991 단국대 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수료 1994 연세대 행정대학원 고위정책과정 수료 【경력】 ▶1954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중앙위원 ▶1962 한국무용협회 이사, 국립무용단 안무자 ▶1981 한국예술단체총연합회 이사, 한국무용협회 부이사장 ▶1983 민정당 중앙위원회 영성분과위원회 부위원장 ▶1985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1987 한국예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 ▶1988 88서울올림픽 홍보사절단 일본 순회공연. ▶1988 88서울올림픽 폐막식 공연 ▶1988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보유자 지정 ▶1990 한국예술단체총연합회 회장(∼1992) ▶1990 93대전엑스포 문화자문위원장 선임 ▶1992 제14대 국회의원 문화체육 공보위원(∼1996) ▶1992 국회여성특별위원회 회원, 국회문공부위원회 상임위원, ▶1992 안중근의사 사업추진위원회 고문 ▶1993 민자당 당무위원, 민자당 여성문제연구위원장, 서울예술단 후원회 부회장 ▶1994 국회문화체육여성특별위원회 위원 ▶1994 한국문화예술위원 이사 ▶1995 신한국당 국회의원 ▶1995 제11회 인구개발 아시아회의 한국대표 ▶1996 신한국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1996 제12회 인구 개발 아시아 회의 한국대표 참가. 신한국당 상임고문 ▶1997 한나라당 상임고문 ▶1997 세종대학교 사회교육원 무용원 강사 ▶1998 한양대 무용과 강사 ▶1998 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전수관 신축 개관 ▶1998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1998 태평무전수관(안성) 개관 ▶1999 경기도 도민회 부회장 및 영성위원회 위원장 ▶1999 안성 포도100주년 추진위원회 위원장 ▶2000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및 전통예술원 강사(∼2008) ▶2001 세종대 강사(∼2002) ▶2001 한성준 춤비 제막 ▶2003 중앙대 겸임교수 ▶2004 진주강씨 종친회 부회장 ▶2005 상명대 강사(∼2006) 【수상】 ▶1965 서울시 문화상 수상 ▶1965 제12회 아시아영화제 무용 부문 작품상 수상〈초혼〉 ▶1973 국민훈장 목련장 수훈 ▶1976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연예(무용) 부문 수상 ▶1984 엑스포 공로상 ▶1990 바웬사특별상(국제문화협회) ▶2003 제4회 예술무용학회 예술상 수상(대한무용학회 주최) ▶2005 한국예술발전협의회 주최 제4회 예술발전 공로상 수상 【개인발표회】 ▶1953 제1회 신작발표회 <법열>(명동 시공관) ▶1955 제2회 신작발표회 <목란장군>(시공관, 동양극장) ▶1957 제3회 발표회 무용극 <농부와 선녀> ▶1959 제4회 발표회 <수선화> ▶1982 세종문화회관 명무전 <태평무> 공연 ▶1993 강선영 무용 55주년 기념 공연 <나의 인생, 우리의 춤>(국립극장 대극장) ▶2000 ‘한성준 선생 그 춤의 재현’(2월 문예회관 추모 공연) ▶2003 중요무형문화재 <태평무> 발표(문화재청 주최) ▶2005 팔순 기념 공연(국립극장 해오름 극장) ▶2005 강선영 불멸의 춤-70주년 기념 공연 ▶2006 뉴욕 링컨센터 공연/뉴욕 링컨센터"전통의 유산” 인간문화재 강선영 기념 공연 【국내 공연】 ▶1940 한성준무용단 부민관 공연 ▶1940 지방 순회공연(대전, 전주, 광주, 목포, 여수, 부산, 통영 등) ▶1954 미국 닉슨 부통령 환영 공연 <태평무> ▶1960 파리 국제 민속예술제 참가(프랑스, 스위스) ▶1963 국립무용단 정기 공연 <열두무녀도> 안무 출연 ▶1982 세종문화회관 명무전 <태평무> 공연 ▶1987 <대한민국무용제> 전야제 초정 공연(한국무용협회) ▶1987 부천시립회관 개관 공연에서 <태평무> 공연 ▶1993 대전엑스포 민속무용 공연/한국무용협회 ▶1995 국립민속박물관 우리 민속한마당 공연(국립중앙박물관) ▶1995 KBS 국악관현악단 정기 공연 ‘춤과의 만남’ ▶1996 청소년 예술제 참가(중앙국립극장) ▶1996 한중일 불교문화대제전 초청공연 ▶1999 제1회 전국전통무용경연대회 개최 ▶2000 제2회 전국전통무용경연대회 개최(안성시민회관에서 전통무용 대공연) ▶2001 한성준 춤비 제막 ▶2001 정동극장 명무전국악원 개원 50주년 기념 공연 ▶2001 제3회 전국전통무용경연대회 개최(안성시 전통무용대축제. 안성시민회관) ▶2001 문화재청 주최 제32회 무형문화재 발표회 ▶2001 서울시립무용단 정기 공연 <태평무>와 <무당춤> 안무 ▶2002 한국 명작무 <태평무> 공연(문예회관) ▶2002 제4회 전국전통무용경연대회 개최 <우리춤, 우리 향기]>(안성시민회관) ▶2003 제5회 전국전통무용경연대회 개최 ▶2004 <여무(女舞)> 허공에 그린 세월(국립국악원 공연) ▶2005 개천예술제 명무전 출연 ▶2005 대한민국국악제 "명인에게 길을 묻다” 출연 ▶2006 서울무형문화재 축제 <태평무> 공연 ▶2006 무용, 무대예술 80년사(서울시립무용단 정기 공연) 【국외 공연】 ▶1940 한성준무용단 일본 도쿄, 오사카, 나고야, 교토 순회공연 ▶1940 북선(개성, 원단, 북청, 신의주), 만주 공연 ▶1960 파리 국제민속예술제 참가(프랑스, 스위스) ▶1961 아시아문화협회 초청 일본 순회공연 ▶1961 도쿄 국제여학사회 초청 동남아 무용제 공연 ▶1961 파리 국제민속예술제 <무당춤> ▶1963 PATA(태평양지역여행협회) 일본 공연(한국관광공사) ▶1977 영국 등 유럽 11개 지역 순회공연(한국관광공사) ▶1978 중남미 아프리카 중동24개국 공연 ▶1980 시드니 민속무용축제 ▶1980 토론토 민속무용제 참가 ▶1980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공연(10월 외무부) ▶1981 무용극 <황진이> 안무 출연(미국 녹스빌 엑스포 한국관) ▶1981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바레인 공연(외무부) ▶1983 한국국제문화협회 파견 일본민속무용제 참가 ▶1983 중동지역(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순회 민속무용 공연 ▶1984 뉴올리언스 엑스포 한국관 공연 ▶1985 한국국제문화협회 파견, 일본 쓰쿠바 과학박물관 공연 ▶1986 밴쿠버 엑스포 한국관 공연 ▶1986 CIOFF 세계민속예술축제 ▶1986 이탈리아 세계민속대회 참가(국제문화협회) ▶1987 한국국제문화협회 파견 세계민속대회 참가 ▶1987 CIOFF 프랑스 대회 참가(국제문화협회) ▶1988 브리즈번 엑스포 한국관 공연 ▶1988 CIOFF 영국 대회 참가(국제문화협회) ▶1989 포르투갈, 폴란드, 영국, 벨기에 등 6개국 순회공연 ▶1989 일본 요카토피아 엑스포 참가(국제문화협회) ▶1989 중국 광둥성 초청 민속 공연(한국무용협회) ▶1990 오사카 엑스포 한국관 공연(∼1992) ▶1990 CIOFF 폴란드 대회 참가 ▶1991 중국(북경, 연변) 백두산 공연(한국무용협회) ▶1991 몽골 독립 70주년 기념 초청공연(몽골 정부) ▶1991 중국 조선족 무용세미나 개최 ▶1992 스페인 엑스포 한국관 공연(∼1996) ▶1992 캐나다 토론토 캐러밴페스티벌 공연 ▶1993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카자흐스탄 순회공연 ▶1993 LA 한인회관 건립 초청공연/LA예총지부 ▶1995 우즈베키스탄 친선문화교류 공연 ▶1995 CIOFF 일본 대회 참가 ▶1998 헝가리 민속무용축제 한국 대표 참가 ▶1998 일본 오이타현 무용 축제 참가 ▶1999 CIOFF 일본 대회 참가 ▶2000 미국 LA 한국의 날 기념행사 참가 ▶2000 CIOFF 일본 대회 참가 ▶2000 안성시민회관에서 전퉁무용 대공연 ▶2003 중국 국제도자기축제 한국 대표 초청 ▶2004 CIOFF 내몽골 대회 참가 ▶2006 LA 미주 예총 창립 20주년 기념-한국무용예술의 어제와 오늘(공연 및 강의) ▶2006 뉴욕링컨센터 전통의 유산 ‘인간문화재 강선영 기념 공연’ ▶2006 프랑스 몽펠리에 ‘한국의 살아있는 보석’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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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 소개역대단체장 박범훈 (재임기간 : 1995.01.01 ~ 1999.12.31)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음악과 졸업 일본 동경 무사시노 음악대학 작곡과 졸업 일본 동경 무사시노 음악대학원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예술철학 박사 산동대학교 교육학 명예박사중앙국악관현악단 초대단장 겸 상임지휘자오케스트라 아시아 상임 지휘자 겸 한국대표국립국악관현악단 초대단장중앙대학교 음악대학 한국음악과 교수중앙대학교 부총장, 총장 한국음악협회 이사86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위원88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2002 한일월드컵 조직위원회 위원대한민국 건국 60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교육분야 위원장한아세안 전통음악위원회 위원장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현)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음악원장 동국대학교 석좌교수 상훈 국민훈장 석류장대한민국 무용제 작곡상대한민국 작곡상 최우수상KBS 국악대상 작곡상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음악부문서울특별시 문화상 국악부문박헌봉 국악상 주요작품 및 예술활동 [작품]신모듬, 신내림, 백두산 신곡, 붓다, 춘무 등[저서] <피리산조연구> <작곡.편곡을 위한 국악기 이해> <박범훈의 추임새><소리 연><한국불교음악사연구> 한상일 (재임기간 : 2000.01.01 ~ 2003.12.31) 추계예술대학교 국악과 졸업 중앙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예악학 박사국립국악원 민속반 입단 국립창극단 지휘자 국립국악관현악단 2대 단장초대 성남시립국악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교수사단법인 전통예술학회 이사신라고취대 예술감독 현)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아시아전통예술오케스트라 예술감독 사단법인 아시아민족음악교류협회 이사장 상훈 국무총리 공로표창대통령 공로표창 주요작품 및 예술활동 [작품]울산아가씨 주제에 의한 관현악, 창극(박씨전, 광대가 등), 무용(강강술래 등)[저서] 피리산조 선율의 리듬형에 관한 연구 최상화 (재임기간 : 2004.01.01 ~ 2005.12.31)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음악과 졸업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악과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 박사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단원전북도립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 국립국악관현악단 3대 예술감독경기도립국악단 예술단장아시아전통예술오케스트라 예술감독 중앙대, 전남대, 백제예대 강사 미국 UCLA 교환 교수 전북대학교 국악과 교수중앙대학교 국악교육대학원 교수, 부원장, 원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학장 민속악회 시나위 회장중앙대학교 국악연구소 소장한국국악음향연구소 대표한국디지털국악연구회 회장 전북문화재 위원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단 한국위원, TF 위원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문화체육관광부 정책자문위원현) 중앙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주요작품 및 예술활동 [작품]<작곡> 국립무용단 '부운', 88올림픽축전 '청산녹수', 현대무용 프랑스 '바뇰레' 참가곡 등 <창극> '정읍사', '춘향전', 칸타타 '천리' 등 7편 <관현악곡> 국악가요 '사랑굿', 풍물협연곡 '상쇠' 등 100여곡 [저서]<경기 도당굿>, <서용석 대금산조보>, <전라 좌우도 풍물굿> 등 5편 황병기 (재임기간 : 2006.01.01 ~ 2011.12.31)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단국대학교 명예음악박사평양 범민족통일음악회 참가 서울전통음악연주단 단장국립국악관현악단 4대 예술감독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강사미국 워싱턴주립대 강사이화여자대학교 강사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미국 하버드대 객원교수연세대학교 특별초빙교수문화재전문위원서울 90송년통일음악회 집행위원장국악의해 조직위원회 위원장문화재관리국 문화재위원국악축전 조직위원회 위원장광복60주년기념문화사업 추진위원장사단법인 한국작곡가협회 부회장이화여대 음악대학 명예교수유니세프 문화예술인 클럽 음악부문 특별대표대한민국예술원 회원(부회장 역임)ARKO한국창작음악제 추진위원장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 상훈 KBS 전국국악콩쿨 최우수상공보부제정 국악상한국영화음악상공연예술평론가협의회 올해의 예술인상중앙문화대상백상예술상 음악상한국영화평론가협회 음악상방일영 국악상은관문화훈장호암상대한민국예술원상일맥문화대상후쿠오카 아시아문화상만해문예대상 주요작품 및 예술활동 [작품]숲, 침향무, 비단길, 미궁, 밤의 소리 등[저서]<깊은 밤, 그 가야금 소리><가야금 선율에 흐르는 자유와 창조><오동 천년, 탄금 60년><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논어 백가락> 원일 (재임기간 : 2012.03.12 ~ 2015.03.10) 추계예술대학교 국악과 졸업중앙대학교 음악대학원 작곡과 졸업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단원국립무용단 음악감독국립국악관현악단 5대 예술감독2017-2018 여우락 페스티벌 예술감독화엄음악제 총감독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음악감독2019 전국체육대회 개·폐막식 총감독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작곡과 교수21세기 한국음악프로젝트 음악감독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통예술위원회 위원예술의전당 자문위원국가무형문화재 제46호 대취타 및 피리 정악 이수자월드뮤직그룹 ‘푸리(PURI)’, 아방가르드 그룹 ‘어어부 프로젝트’, 한국음악앙상블 ‘바람곶’ 현) 경기도립국악단 예술감독 상훈 국립국악원 전국국악경연대회 대상한국무용협회 서울무용제 음악상한국문예진흥원 신세대 최우수 작곡가 선정대종상 영화음악상 4회 수상(‘꽃잎’,‘아름다운 시절’,‘이재수의 난’,‘황진이’)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음악상춘사 영화음악상문화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인상 작곡 부문KBS국악대상 작곡상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 음악 부문 선정시사저널 선정 ‘대한민국 차세대리더 음악부문 1위(2011~2012) 주요작품 및 예술활동 [작품]대취타 易, 바르도 K, 신뱃놀이, 춤 바람 난장 등[저서]음악적 발상의 원천으로서의 굿동해안 진오귀굿 중 장수굿의 짜임새와 장단구조 : 청보장단을 중심으로 임재원 (재임기간 : 2015.10.01 ~ 2018.03.28)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졸업한양대학교 대학원 석사졸업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학 박사 졸업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20호 대금정악 이수자 국립국악원 단원(대금)KBS국악관현악단 수석단원(대금)목원대학교 한국음악과 교수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부학장대전시립연정국악원 제4대, 제6대, 제8대 지휘자 국립국악관현악단 6대 예술감독KBS국악관현악단 운영위원장국립국악원 자문위원한국국악학회 이사현) 국립국악원 원장 서울대학교 국악과 교수 대금연구회 이사장 정농악회 회원 국립국악관현악단 1995년 창단된 국립국악관현악단은 국립극장 전속단체입니다. 유구한 역사 속 개발되고 전승되어온 한국 고유의 국악기로 편성된 국립국악관현악단은 50여명의 전속 연주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내외 저명한 작곡가 및 지휘자들을 영입해 다양한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전통 음악을 뿌리에 둔 현대적이고, 동시대적인 음악 활동과 한국의 정신과 정체성을 담은 사운드를 통해 전 세계 관객과 공감하는 음악회, 감동을 전하는 연주단체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초대 단장 박범훈, 2대 단장 한상일과 3대 예술감독 최상화, 4대 예술감독 황병기, 5대 예술감독 원일, 6대 예술감독 임재원을 거치면서 거둔 성과를 기반으로 현재 김성진 예술감독(2019.4.1~현재)을 주축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국악관현악단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고 있습니다. Prev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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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별 민요① 서도(황해도, 평안도) 민요 콧소리를 섞어 떨며 애수적이고 감상적이다. <몽금포 타령>, <수심가>, <영변가>, <긴 아리> 등 ② 경기민요 가락이 맑고 부드러우며 경쾌하고 서정적이다. <늴리리야>, <도라지 타령>, <아리랑>, <풍년가> 등③ 동부 민요 태백산맥 동쪽에 위치한 강원도, 함경도, 경상도 지방의 민요다. 동부 민요는 해당하는 지역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어서 같은 동부 민요라도 각 지방에 따라 노래하는 방법 등이 약간씩 차이가 있다. - 강원도 민요 높은 음에서 낮은 음으로 내려오는 구조가 많고 애절하며 순박하다. <정선 아리랑>, <강원도 아리랑>, <한 오백 년> 등- 경상도 민요 쾌활하고 활동적이며 억양이 강하다. <밀양 아리랑>, <옹헤야>, <쾌지나 칭칭 나네> 등④ 남도민요 격렬하게 떠는 음과 꺾는 음을 사용하며 가락이 구성지다. <농부가>, <육자배기>, <강강술래>, <진도 아리랑> 등 ⑤ 제주민요 제주도 지방 특유의 방언을 사용한다. <오돌또기>, <해녀가>, <이야옹 타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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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속민요 ( 土俗民謠 )사설이나 가락이 극히 소박하고 향토적인 토속민요는 지역적인 차이가 심하여 고개 하나 내 하나 건너도 가락이 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대개 노동요(勞動謠)·부녀요(婦女謠)·동요(童謠)로 전하는 토속민요를 예컨대, 경상도 "모내기"·전라도 "김매기"·제주도 "해녀노래"·경상도 "메나리"·각 지방의 "상여소리" 등이다. 지방의 사람이 부르는 노래의 총칭이 토속민요이다. 이 말은 근래 전문 민요가수나 민요명창이 무대나 방송을 통해서 부르는 창민요 또는 통속민요의 대칭어로 쓰인다.토속민요는 지방의 특성에 따라서 농사 관련의 노래 또는 고기 잡는 노래, 혹은 장례를 치를 때 부르는 노래 등 여러 갈래의 노래로 구성된다. 공통적인 특징은 그 지방의 향토색깔이 짙은 토리 즉 음악적 이디엄(idiom)을 지내고 있다는 점이다. 사투리처럼 토속민요의 음악적 특징은 지방마다 서로 다르다. 각 지방민요의 음악적 특징을 우리말로 '토리'라고 한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모찌는소리"는 중중모리장단에 맞추어 노래하는 점에서는 서로 공통적이다. 그렇지만 경상도 "모찌는소리"의 선율은 메나리토리로 됐고, 전라도 "모찌는소리"의 선율은 육자배기토리로 되어 서로 다르다. 이렇듯 경기민요의 음악적 특징을 경토리라고 하고, 황해도민요나 평안도민요를 포함한 서도민요(西道民謠)의 음악적 특징을 수심가토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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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요연구회 (韓國民謠研究會)설립 당시의 회장: 안비취(安翡翠), 회원: 안비취·이소향(李素香)·묵계월(墨桂月)·김옥심(金玉心)·이은주(李銀珠), 고문: 정득만(鄭得晩)·이창배(李昌培)·김순태(金順泰)였다. 1975년 한국민요연구회 주최로 이은관민요발표회를 개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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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京畿民謠)1975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되었으며, 당시 이경옥(李瓊玉, 예명 묵계월)·이윤란(李潤蘭, 예명 이은주)·안복식 (예명 안비취) 명인이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있다. 2020년 현재 보유자는 이춘희(李春羲)이다. 경기잡가는 서울 문(門) 안과 근교의 장인, 밭장이, 한량(閑良) 출신 소리꾼들에 의하여 전승 발전되어 왔다. 특히 서울 만리재에서 청파(靑坡)에 이르는 일대의 소리꾼들이 잡가를 잘하였다 한다. 이들은 겨울에 파를 기르는 움집을 크게 만들었는데, 그 안에 소리방(房)을 꾸미고 여기에 둘러앉아 장고 장단에 맞추어 소리를 하였다.잡가(雜歌)란 가곡(歌曲)이나 가사(歌詞)와 같은 정가(正歌)에 상대되는 속가(俗歌)라는 뜻으로 쓰였으나, 오늘날에는 속가 가운데 약간 긴 통절형식(通節形式)의 좌창(坐唱)을 잡가라 하며, 그 가운데 긴잡가는 느린 장단으로 된 십이잡가(十二雜歌)를 말한다. 잡가 명창으로는 속칭 추조박(秋曺朴)이라는 조선 말의 3인을 꼽는다. 즉 기교에 뛰어난 추교신(秋敎信), 성대를 잘 타고난 조기준(曺基俊), 잡가로 이름이 높던 박춘경(朴春景)이다. 그 가운데서도 박춘경이 잡가를 많이 짓고 잘 불렀다 한다. 이들의 뒤를 이어 한인호(韓仁浩)·주수봉(朱壽奉)·최경식(崔景植)·박춘재(朴春載)와 같은 명창들이 나왔고, 다음으로는 이창배(李唱培)·김순태(金順泰)·최정식(崔貞植)·이진홍(李眞紅) 등이 활약하였는데 이들의 후배인 안복식(安福植:예명 安翡翠)·이경옥(李瓊玉:예명 墨桂月)·이윤란(李潤蘭:본명 李銀主) 등은 나중에 기능 보유자로 인정받았다.경기잡가에는 가사(歌詞)와 같이 긴 사설(辭說)을 도드리장단이나 세마치장단으로 짠 긴잡가와 사설시조형의 긴 사설을 빠른 장단으로 짠 휘모리잡가가 있다. 긴잡가 가운데 유산가(遊山歌)·적벽가(赤壁歌)·제비가[燕子歌]·소춘향가(小春香歌)·선유가(船遊歌)·집장가(執杖歌)·형장가(刑杖歌)·평양가(平壤歌)·십장가(十杖歌)·출인가(出引歌)·방물가(房物歌)·달거리[月令歌] 등을 십이잡가라 한다. 휘모리잡가의 사설이 사설시조에 보이는 서민적인 해학으로 가득 차 있는데 비하여, 긴잡가의 사설에는 판소리의 한 대목씩을 따서 극적인 장면을 노래하거나 서정적인 내용을 담은 것이 많고 흔히 통절형식으로 되어 있다. 장단은 주로 굿거리·자진타령·세마치장단 등이 쓰이며, 5음음계의 평조선법(平調旋法)에 장·단 3도 진행이 많다. 민요의 종류로는 노랫가락·창부타령·아리랑·긴아리랑·이별가·청춘가·도라지타령·노들강변·사발가·베틀가·태평가·오봉산타령·오돌독·양류가·방아타령·자진방아타령·사설방아타령·양산도·군밤타령·풍년가·한강수타령·경복궁타령·개성난봉가·사설난봉가·매화타령·늴리리야·는실타령·건드렁타령·도화타령·사철가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노랫가락과 창부타령은 무가(巫歌)이고, 아리랑·이별가·청춘가·도라지타령·태평가·양류가·늴리리야·군밤타령 등은 발생년대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속요(俗謠)에 속한다. 양산도·방아타령·자진방아타령·한강수타령·경복궁타령 등은 선소리[立唱]에 속한다. 서도나 전라 민요에 비하여 맑고 깨끗하며, 경쾌하고 분명한 것이 특징이다.한편 놀량·앞산타령과 같이 소리꾼들이 늘어서서 소고(小鼓)를 치고 춤을 추며 부르는 것을 선소리[立唱]라 하는데 대해, 잡가는 늘어앉아서 장고의 반주로 부르기 때문에 좌창(坐唱)이라 하기도 한다. 서도나 전라 민요에 비하여 맑고 깨끗하며, 경쾌하고 분명한 것이 특징이다. 흥겹고 경쾌한 맛을 풍기고 있다. 창법에서도 급격히 떨거나 꺾거나 흘러내리는 음이 별로 많이 쓰이지 않고 있어, 명쾌한 맛을 풍기며 부드럽고 유창하며 서정적이다. 선율은 서도소리에 보이는 수심가(愁心歌) 토리에 가까우나 시김새가 서도소리보다 짙지 않고, 경기민요에 보이는 경토리[京調]가 섞여서 특이한 음조를 갖는다. 경기소리 가운데 양산도(楊山道)·방아타령·창부타령(倡夫打令)과 같은 경기민요나 곰보타령·병정타령과 같은 휘모리잡가가 흥겹고 구성진 느낌을 주는 것에 비하여 유산가·소춘향가와 같은 긴잡가는 차분하고 구수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색이다. 충청도 북부의 일부와 강원도 지방의 일부 민요들도 포함하고 있어, 중부지방 민요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전문적인 소리꾼들에 의해 불려진 통속민요와 그렇지 않은 토속민요가 있는데, <노랫가락>·<창부타령>·<방아타령>·<양산도>·<오봉산타령>·<사발가>·<군밤타령>·<흥타령―천안삼거리>·<강원도아리랑> 등의 통속민요가 잘 알려져 있다. 연주형태에 따라서는 좌창과 입창, 즉 앉아서 부르는 소리와 서서 부르는 소리로 나누어지는데, <노랫가락>·<오봉산타령>·<양유가> 등이 좌창에 속하고, <양산도>·<방아타령>·<경복궁타령> 등이 입창에 속한다. 좌창은 경기 긴 잡가식의 좌창과, 입창은 경기산타령과 같은 입창과 맥이 통한다. 일반적인 음악적 특징은 남도민요에 비해 한 글자에 여러 개의 음이 붙는 일자다음식의 선율이 많아, 가락의 굴곡이 유연하면서도 다채롭고 명쾌하다. 선법은 5음음계로 된 평조선법으로 장3도와 단3도의 음진행이 많고, 5음이 골고루 쓰이면서 주요음의 선율 골격은 완전4도를 주축으로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음조직은 같은 평조라고 하더라도 <창부타령>이나 <노랫가락>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서양음악식의 계명창법에 의한다면 솔·라·시·도·레로 불려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한강수타령>이나 <경복궁타령>에서처럼 라·도·레·미·솔로 부를 수 있는 곡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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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西道소리)직업적인 소리꾼이 불렀으며 민요와 선소리[立唱]·시창(詩唱)·잡가(雜歌) 모두를 포함한다. 서도민요는 다른 지방의 민요에 비하여 기악반주가 딸린 것이 별로 없고, 오선보로 채보된 곡도 드물다. 서도소리의 미묘한 장식음을 잘 옮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얕게 탈탈거리며 떠는 소리, 큰 소리로 길게 뽑다가 갑자기 속소리로 가만히 떠는 창법 등이 특징이다. 서도소리는 황해도와 평안도 지방, 즉 서도지역에서 전승되던 민요나 잡가 등을 말하며, 언제부터 부르기 시작하였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서도소리는 평안도 민요와 황해도 민요, 서도잡가, 한시를 읊은 시창(詩唱)으로 나눈다. 평안도 민요에는 수심가, 엮음수심가, 긴아리, 자진아리, 안주애원성 등이 있는데, 조선 전기부터 서도지방 사람들의 벼슬길이 막히자 그 설움을 푸념으로 읊은 수심가가 가장 유명하다. 평안도 소리는 일반적으로 레, 미, 솔, 라, 도의 다섯 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떠는 음인 ‘라’에서 완전 5도 내려가는 것으로 선율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대체로 사설이 길며 장단도 일정하지 않아 적당히 사설에 맞추어 치는 것이 특징이다. 황해도 민요에는 긴난봉가, 자진난봉가, 병신난봉가, 사설난봉가, 산염불, 자진염불, 몽금포타령 등이 있는데 난봉가와 산염불이 유명하다. 황해도 소리는 평안도 소리와 함께 서도소리의 일반적인 선율형태를 나타내고 있으나 그 선율진행에 있어서는 조금 다르다. 또한 평안도 민요에 비하여 일정한 장단을 가지고 있으며, 밝고 서정적이다. 서도잡가는 서도입창에 반대되는 말로서 앉아서 부르는 소리이며, 공명가, 사설공명가, 초한가, 제전, 추풍감별곡 등이 있는데 이 중 공명가가 유명하다. 서도잡가는 긴 사설을 가지고 있으며, 장단은 노래말의 자수에 따라 불규칙적이다. 끝을 여밀 때는 반드시 수심가조로 끝나는 공통점이 있다. 서도소리의 가락은 흔히 수심가토리라고 하여 대개 위에서부터 질러내며, 위의 음은 흘려 내리고, 가운데 음은 심하게 떨며, 아래의 음은 곧게 뻗는 특이한 선율 진행을 보여주고 있어서 이들 소리를 느긋하게 부르면 구슬픈 느낌을 주게 된다. 서도소리 창법은 좀 특이한데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 뒷덜미로 당겨서 음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서도소리는 예로부터 대륙과 인접한 거친 풍토에서 북방 이민족과 함께 겨루며 굳세게 살아온 서도지방민들의 생활속에서 면면이 이어져 내려온 소리로, 노랫가락에도 그들의 생활감정이 잘 드러나 있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세부 기·예능으로 수심가, 관산융마, 배뱅이굿이 있다. 배뱅이굿은 흔히 남도의 판소리와 비교되는 음악으로, 한 사람의 소리꾼이 장구 반주에 맞춰 배뱅이 이야기를 서도의 기본 음악 어법을 바탕으로 민요와 무가, 재담 등을 섞어 해학적으로 엮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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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란 무엇인가판소리는 '판'과 '소리'의 합성어이다.문제는 ‘판’의 의미이다. 우리말에서 ‘판’의 일반적 의미는 ‘상황·장면’과 ‘여러 사람이 모인 곳’으로 나타나는데, 이를 취할 경우 판소리라는 이름은 ‘다수의 청중들이 모인 놀이판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소리는 노래의 다른 말로, 목소리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원칙적으로 판소리는 여러 시청자들을 상대로 하여 판에서 부르는 노래라고 통칭할 수 있다. 그러나 가곡, 별곡, 영산(단가) 등과 같이 옛날 놀이판에서 불리던 소리는 판소리라고 하지 않고, 판소리에 대비되는 말로서 '토막소리'라고 한다. 판소리는 이런 '판의 노래'를 범칭하지 않는다. 창자가 고수의 장단에 맞추어 서사적이고 극적인 긴 이야기를 판을 짜서 부르는 특정한 공연만을 판소리라고 한다. 판소리는 선생에서 제자에게로, 가창식 전수에서 가창식 습득으로 전승, 발전되었다. 즉, 사제전승(師第傳承) 및 구비전승(口碑傳承)에 의존해왔다. 한 작품을 익히는 데도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이 고수(북치는 사람)의 장단에 맞추어 창(소리), 말(아니리), 몸짓(너름새)을 섞어가며 긴 이야기를 엮어가는 것을 말한다. 창자가 고수의 북장단에 맞추어 서사적인 이야기를 소리와 아니리로 엮어 발림을 곁들이며 구연하는 고유의 민속악. 구비서사시이다. 판소리는 전통적으로 광대라고 불려진 하층계급의 예능인들에 의하여 가창·전승되어 왔다. 그들은 때로는 농촌이나 장터에서 노래했고, 때로는 양반·부호들의 내정(內庭)에서 연희하기도 하였다. 판소리의 유파 동편제 동편제는 운봉·구례·순창·흥덕 등지의 이쪽 즉, 전라도 동북지역에 전승되어 오는 소리제를 순조 때의 명창 송흥록(宋興祿)의 소리제에서 송광록(宋光祿)·박만순(朴萬順)·송우룡(宋雨龍)·송만갑(宋萬甲)·유성준(劉聖俊)으로 전해지는 소리제를 주축으로 한다. 그 밖에 김세종(金世宗)·장자백(張子伯), 정춘풍(鄭春風)·박기홍(朴基洪)으로 전해지는 소리제 또한 동편제의 큰 줄기를 이루었다. 동편제 소리는 비교적 우조(羽調)를 많이 쓰고 발성을 무겁게 하고 소리의 꼬리를 짧게 끊고 굵고 웅장한 시김새로 짜여 있다. 서편제 서편제는 보성·광주·나주 저쪽, 즉 전라도 서남지역에 전승되어 오는 소리제로 철종 때의 명창 박유전(朴裕全)의 소리제에서 이날치(李捺致)·김채만(金采萬)으로 전해지는 소리제를 주축으로 하고, 그 밖에 정창업(丁昌業)·김창환(金昌煥)·김봉학(金奉鶴)으로 전해지는 소리제로 큰 줄기를 이루었다. 서편제 소리는 비교적 계면조(界面調)를 많이 쓰고 발성을 가볍게 하며, 소리의 꼬리를 길게 늘이고 정교한 시김새로 짜여 있다. 중고제 중고제는 경기도·충청도지역에 전승되어 오는 소리제로 순조 때의 명창 김성옥(金成玉)·김정근(金定根)·황호통(黃浩通)·김창룡(金昌龍)으로 전하여지는 소리제와 또한, 순조 때의 명창 염계달(廉季達)·고수관(高壽寬)·한송학(韓松鶴)·김석창(金碩昌)으로 전하여지는 소리제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중고제 소리는 동편제 소리에 가까우며 고박한 시김새로 짜여 있다. 강산제 강산제는 서편제의 수령 박유전이 말년에 전남 보성군 강산리에서 여생을 보내며 창시한 유파이다. 박유전은 젊었을 때 뛰어난 기량과 목소리로 대원군의 총애를 받아 그의 사랑에 자주 드나들었는데, 그곳에 묵고 있는 많은 유생들과 친밀하게 지내게 되었다. 유생 중에는 판소리에 대한 높은 견식과 일가견을 가진 이들이 있었고, 그들이 피력한 조언을 바탕으로 창시한 것이 바로 강산제이다. 강산제는 서편제가 가지는 애절한 느낌을 지양하고 될 수 있으면 점잖은 가풍(歌風)을 조성하도록 하는 게 특징이었는데, 유학의 영향을 받아 삼강오륜에 어긋나는 대목은 삭제, 또는 수정하는 게 보통이었다. 강산제의 대표적 판소리는 '심청가'이며, 이 계통의 명창으로는 박유전, 정재근, 정응민, 박춘성, 성창순, 성우향, 조상현 등이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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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투(花歌鬪)화가투(花歌鬪): 1920년대 초부터 1940년대까지 유행하던 놀이로, 시조를 적은 종이쪽을 가지고 하는 성인여자놀이.내용시조가 카드에 올려져 사용되었던 놀이로 일명 ‘가투(歌鬪)’라고도 한다. 1920년대 초부터 1940년대까지 유행하였다. 이 놀이는 윤태오(尹泰五)가 경영하던 불선사(不羨舍)에서 1922년에 『가투』를 발행한 데 이어, ‘경성여자기독교청년회’가 주최한 ‘새봄 첫머리 현상 가투대회’(1926.2.25.)를 조선일보사가 후원함으로써 구체화되었다.『조선일보』는 1926년 1월 5일자 3면에 「자미 잇는 가투노리-조선뎍 취미를 본위로 한-」이라는 해설을 싣고, 이후 14회에 걸쳐 「가투에 실린 시조 백수」를 분재하였다. 이 행사를 제1회로 하여 조선일보사가 후원한 가투대회는 1940년 1월 13일에 제12회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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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홀(唱笏)소리창홀(唱笏)소리: 홀기(笏記)를 부르는 것. 홀기(笏記)를 창(唱)하는 것. 창홀(唱笏)과 독축(讀祝)을 잘 하려면 문장의 뜻을 잘 알아서 자구를 옳게 띄어야 하고 글자의 고저를 알아야 한다. 사성(四聲)중 상성(上聲)과 거성(去聲)은 높은 자라 높고 길게, 평성(平聲)은 낮은 자라 낮고 짧게, 입성(入聲)은 높은 자이나 문장에 따라 높거나 낮게 창(唱)을 한다. 이 소리가 메나리조라는 사실에서 우리 음악의 근원을 메나리조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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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민요] 인간문화재 이은주 명인 약력이은주 (1922-202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예능보유자 1922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출생 1936 원경태 선생께 가사, 시조, 잡가 사사 1939 인천홍명극장 명창대회 1등 ‘수심가’ 1939 경성방송국 데뷔 ‘소춘향가’등 1946 대한국악원 민요부원 1947 서울중앙방송국 전속 민요부원 1947 고려레코드사 음반 취입 1949 서울중앙방송국 팔도민요취입 1954 킹스타, 신세기, 도미도, 오아시스, 유니버셜 ~1962 레코드사 유성기 음반취입(약 80여장취입) 1955 단성사 명창대회 1등 1958 청구고전성악학원 강사 1962 한국민요연구회 초대이사취임 1963 한국민요연구회 재일동포 위문공연 1969 제4회 TBC(동양방송) 명인명창대회 1등 1969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 후보지정 1975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 지정 1975 이은주 경기창 연구원 개원 1991 KBS 국악대상 특별공로상 수상 1992 고희 기념 ‘바람 한자락 소리한자락’공연(호암아트홀) 1992 미국 뉴욕 카네기홀 및 LA 윌셔에벨홀 한 흑 친선문화축제공연 1993 대한민국 옥관문화훈장 수상(대통령 표창) 1996 이은주 소리인생 60년 기념공연(국립극장) 2000 이은주의 12잡가 전집 음반 발매 2001 이은주 팔순기념 ‘태평가’ 공연 (국립극장) 2005 국악협회 ‘10인의 명인’에 선정 2006 소리의 맥 시리즈 ‘소리연’음반 발매 2006 ‘소리연85’ 공연 (국립국악원) 2006 11. 조선일보사주최 ‘방일영 국악상 수상’ 2007. 9 ‘天傳의소리’ 음반 발매 Lee, Eun-Joo / Vocalist. Holder of Gyonggi Minyo National Intangible Cultural Asset Lee Eun-Joo was born in 1922, in Yangju-gun, Gyonggi province,South Korea. At her age of 13, she started to learn Korean traditional vocal music such as Si Jo, Gasa, Jap Ga under the maestroWon, Kyung-tai. In 1939, she began to appeal public attention as a promising vocalist as she won the first prize from the vocal contest hosted by Incheon Hong-myung theater and had successful debut concert through Kyungsung Broadcasting Company. Since then, she continued to develop her career as the best singer of the days as she grabbed the title of top singer at the most powerful and authorized contests for Korean traditional folk songs named Dansung-sa competition, and TBC Contest in 1955 and in 1969. Between 1954 abd 1962, she had led her busy and smooth schedules appearing Radio programmes and contracting with famous recording companies. With that result, she had released about 80 recordings from the Koryo Record, King star, Oasis, Shinse-gi, Universal labels, which ranked the most case of that times. Lee Eun-Joo, who has widely been recognized one of the best and renowned singer in the nation, in 1975, finally, had been designated the title of the national intangible cultural asset number 57, in the field of Gyonggi minyo. She had received a medal for distinguished services from KBS Grand Awards for traditional music in 1991 and also had been decorated the jade crown Order of Culture from the government in 1993. In 1996, she had given the 60th debut anniversary concert and also had her 80th anniversary concert at the National theater in 2001. In 2006, Bang Il-Young Foundation of Chosun Daily News conferred the Grand Award to Lee Eun-Joo and praised her successful music life for about 60 years as a master of vocalist in our days. In 2000, she released the completion CD for 12 Jap Ga under her own name, and in 2006, introduced new CD named Sori yeon. In 2007, she is expecting another new CD called Chun-Jeon, which means the Sounds from the Heaven. [음반] 이은주의 <천전의 소리> 가사 : 1. 달거리 月齡歌 네가 나를 볼 양이면 심양강(尋陽江) 건너와서 연화분(蓮花盆)에 심었던 화초 삼색도화(三色挑花) 피었더라 이 신구 저 신구 잠자리 내 신구 일조낭군(一朝郎君)이 네가 내 건곤(乾坤)이지 아무리 하여도 네가 내 건곤이지 정월이라 십오일에 망월(望月)하는 소년들아 망월도 하려니와 부모 봉양 생각세라 이 신구 저 신구 잠자리 내 신구 일조낭군이 네가 내 건곤이지 아무리 하여도 네가 내 건곤이지 이월이라 한식(寒食)날에 천추절(千秋節)이 적막이로다 개자추(介子推)의 넋이로구나 면산에 봄이 드니 불탄 불 속잎 난다 이 신구 저 신구 잠자리 내 신구 일조낭군이 네가 내 건곤이지 아무리 하여도 네가 내 건곤이지 삼월이라 삼짇날에 강남서 나온 제비 왔노라 현신(現身)한다 이 신구 저 신구 잠자리 내 신구 일조낭군이 네가 내 건곤이지 아무리 하여도 네가 내 건곤이지 적수단신(赤手單身) 이내 몸이 나래 돋친 학(鶴)이나 되면 훨훨 수루루루룩 가련마는 나아하에 지루에 에도 산이로구나 안 올림벙거지에 진사상모(眞絲象毛)를 덤벅달고 만석당혜를 좌르르르 끌며 춘향(春香)아 부르는 소래 사람의 간장(肝腸)이 다 녹는다 나하에 지루에도 산이로구나 경상도 태백산(太白山)은 상주(尙州) 낙동강이 둘러 있고 전라도 지리산(智異山)은 두치강(豆治江)이 둘러 있고 충청도 계룡산(鷄龍山)은 공주(公州) 금강(錦江)이 다 둘렀다 나아하에 지루에 에도 산이로구나 좋구나 매화로다 어야 더야 어허야 에 디여라 사랑도 매화로다 (以下굿거리 장단) 인간 이별 만사중(萬事中)에 독수공방(獨守空房)이 상사난(相思難)이란다 좋구나 매화로다 어야 더야 어허야 에-디여라 사랑도 매화로다 안방 건넌방 가루다지 국화 새김의 완자문이란다 좋구나 매화로다 어야 더야 어허야 에-디여라 사랑도 매화로다 어저께 밤에도 나가 자고 그저께 밤에는 구경 가고 무슨 염치로 삼승(三升)버선에 볼 받아 달람나 좋구나 매화로다 어야 더야 어허야 에-디여라 사랑도 매화로다 나 돌아감네 에헤 나 돌아감네 떨떨거리고 나 돌아가노라 좋구나 매화로다 어야 더야 어허야 에-두견이 울어라 사랑도 매화로다 2. 집장가 執杖歌 집장군노(執杖軍奴) 거동을 봐라 춘향(春香)을 동틀에다 쫑그라니 올려매고 형장(刑杖)을 한아름을 듸립다 덤석 안아다가 춘향의 앞에다가 좌르르 펄뜨리고 좌우 나졸(邏卒)들이 집장(執杖) 배립(排立)하여 분부(吩付) 듣주어라 여쭈어라 바로바로 아뢸말삼 없소 사또안전(使道案前)에 죽여만 주오 집장군노 거동을 봐라 형장 하나를 고르면서 이놈 집어 느긋느긋 저놈 집어 는청는청 춘향이를 곁눈을 주며 저 다리 들어라 골(骨) 부러질라 눈 감어라 보지를 마라 나 죽은들 너 매우 치랴느냐 걱정을 말고 근심을 마라 집장군노 거동을 봐라 형장 하나를 골라 쥐고 선뜻 들고 내닫는 형상(刑狀) 지옥문(地獄門) 지키었던 사자(使者)가 철퇴(鐵槌)를 들어메고 내닫는 형상 좁은 골에 벼락치듯 너른 들(廣野)에 번개하듯 십리만치 물러섰다가 오리만치 달려 들어와서 하나를 드립다 딱 부치니 아이구 이 일이 웬 일이란 말요 허허 야 년아 말 듣거라 꽃은 피었다가 저절로 지고 잎은 돋았다가 다 뚝뚝 떨어져서 허허한치 광풍(狂風)의 낙엽이 되어 청버들을 좌르르 흘터 말고 맑은 구곡지수(九曲之水)에다가 풍기덩실 지두덩실 흐늘거려 떠나려 가는구나 말이 못된 네로구나 3. 형장가 刑杖歌 형장(刑杖) 태장(笞杖) 삼(三)모진 도리매로 하날치고 짐작(斟酌)할까 둘을 치고 그만 둘까 삼십도(三十度)에 맹장(猛杖)하니 일촌간장(一寸肝臟) 다 녹는다 걸렸구나 걸렸구나 일등춘향 (一等春香)이 걸렸구나 사또 분부(使道吩付) 지엄(至嚴)하니 인정(人情)일랑 두지 마라 국곡투식(國曲偸食)하였느냐 엄형중치(嚴刑重治)는 무삼일고 살인도모(殺人圖謀) 하였느냐 항쇄족쇄는 무삼일고 관전발악(官前發惡) 하였느냐 옥골최심 무삼일고 불쌍하고 가련(可憐)하다 춘향 어미가 불쌍하다 먹을 것을 옆에다 끼고 옥 모퉁이로 돌아들며 몹쓸 년의 춘향이야 허락 한 마디만 하려무나 아이구 어머니 그 말씀 마오 허락이란 말이 웬 말이오 옥중에서 죽을망정 허락하기는 나는 싫소 새벽 서리 찬 바람에 울고 가는 기러기야 한양성내(漢陽城內) 가거들랑 도련님께 전하여 주렴 날 죽이오 날 죽이오 신관사또(新官使道)야 날 죽이오 날 살리오 날 살리오 한양낭군(漢陽郎君)님 날 살리오 옥 같은 정갱이에 유혈(流血)이 낭자(狼藉)하니 속절없이 나 죽겠네 옥 같은 얼굴에 진주 같은 눈물 방울방울방울 떨어진다 석벽강상(石壁江上) 찬 바람은 살 쏘듯이 드리불고 벼룩 빈대 바구미는 예도 물고 제도 뜯네 석벽(石壁)에 섰는 매화(梅花) 나를 보고 반기는 듯 도화유수묘연(挑花流水渺然)히 뚝 떨어져 굽이굽이굽이 솟아난다 4. 평양가 平壤歌 갈까보다 가리갈까 보다 임을따라 임과 둘이 갈까보다 잦은 밥을 다 못 먹고 임을따라 임과둘이 갈까보다 부모동생(父母同生) 다 이별하고 임을따라 임과둘이 갈까보다 불 붙는다 불이 불 붙는다 평양성내(平壤城內) 불이 불 붙는다 평양성내(平壤城內) 불이 불 붙으면 월선(月仙)이 집이 행여 불갈세라 월선(月仙)이 집이 불이 불 붙으면 육방관속(六房官屬)이 제가 제 알리라 가세 가세 노리 놀러가세 월선이 집에 우리 놀러를 가세 월선(月仙)이 나와 소매를 잡고 가세 가세 어서 들어를 가세 놓소 놓소 노리놓소그려 직영(直纓)소매 노리 놓소그려 떨어진다 떨어진다 떨어진다 떨어진다 직영(直纓)소매 동이 동 떨어진다 상침(上針) 중침(中針) 다 골라내어 세(細)모시 당사(唐絲)로 가리감춰 줌세 5 긴 아리랑 1. 만경창파 거기둥둥 뜬배 게잠깐 닻주어라 말 물어보자 2. 우연히 저달이 구름밖에 나더니 공연한 심회를 어이 풀어볼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로 구료 아리랑 아리얼쑤 아라리로 구료 3. 이별하든 날 내어히 살었나 모질고 거친세파 어히 살어갈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로 구료 아리랑 아리얼쑤 아라리로 구료 6. 정선 아리랑 1. 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 유점사 법당뒤에 칠성단 도두 모ㅎ 고 팔자에 없는 아들 딸 낳달라고 석달열흘 노구메 백일정성을 말고 타관객리 외로히 난사람 괄세를 마오 2. 세파의 시달린 몸 만사에 뜻이없어 홀연히 다 떨치고 청려를 의지하여 지향없이 가노라니 풍광은 예와달라 만물이 소연한데 해저무는 저녁노을 무심히 바라보며 옛일을 추억하고 시름없이 있노라니 눈앞에 온갖것이 모다 시름뿐이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만주오 3. 산비탈 굽은길로 얼룩암소 몰아가는 저목동아 한가함을 지랑마라 나도 엊그제 정든임을 이별하고 일구월심 맺힌 설움 이내진정 깊은한을 풀길이 바이없어 이곳에 머무르니 처량한 초적일랑 부디 불지를 마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만주오 7. 이별가 離別歌 1. 이별이야 이별이야 님과날과 이별이야 2. 가는님을 잡지마오 다녀올때가 반갑다오 3. 인제가면 언제 오려오 오만한을 일러주오 8. 회심곡 回心曲 일심으로 정념 아하아아미 이로다 보홍오 오호 억조창생은 다 만민시주님네 이내 말씀을 들어보소 인간세상에 다 나온 은덕을랑 남녀노소가 있지를마소 건명전에 법화경이로구나 곤명전에 은중경이로다 우리부모 나비실제 백일정성이면 산천기도라 명산대찰을 다니시며 왼갖 정성을 다 들이시니 힘든남기 꺽어지며 공든탑이 무너지랴 지성이면 감천이라 부모님전 드러날제 석가제존 공덕으로 아버님전 뼈를 빌고 어머님전 살을 빌어 제석님전에 복을빌고 칠성님전 명을빌어 열달배설한후 이세상에 생겨나니 우리부모 날기를제 겨울이면 추울세라 여름이면 더울세라 천금주어 만금주어 나를곱게 길렀건만 어려서는 철을몰라 부모은공을 갚을소냐 다셧하니 열이로다 열에다섯대장부라 인간칠십 고래희요 팔십장년 구십춘광 백세를 산다해도 달로더불어 논하며는 일천하고 이백달에 날로더불어 논하며는 삼만육천일에 병든날과 잠든날이며 걱정근심 다제하면 단사십도 못사는 인생 어느하가 부모은공 갚을소냐 청춘가고 백발오니 애 달ㅍ 고 슬프도다 인간공로 뉘가능히 막아내며 춘초년년 녹이나 왕손은 귀불귀라 초로같은 우리인생 한번아차 죽어지면 다시오기 어려워라 어제오늘 성턴몸이 저녁내로 병이들어 실낱같이 가는몸에 태산같은 병이들어 부르느니 어머니요 찾느니 냉수로다 인삼녹용 약을쓴들 약효험이 있을소며 맹인불러설경한들 경덕인들 입을소냐 흔미하여 누웠을제 제일전에 진광대왕 제이에 초강대왕 제삼에 송제대왕 제사에 오관대왕 제오에 염라대왕 제육에 변성대왕 제칠에 태산대왕 제팔에 평등대왕 제구에 도시대왕 제십전에 오도전륜대왕 열시왕전 맹인사자 일직사자 월직사자 한손에는 철봉들고 또한손에 창검쥐여 쇠사슬을 비껴차고 활등같이 굽은길로 화살같이 달려들어 닫은문을 박차면서 성명삼자 불러내니 정신이 아득하여 처자의 손을잡고 만단설화 다못하여 정신차려 살펴보니 약탕관이 버려있고 지성구호 극진한들 갈목숨이 머물소냐 친구벗님 많다해도 어느친구 동행하며 일가친척 많다해도 어느일가 대신가리 구사당에 하직하고 신사당에 허배헌후 대문밖을 써ㄲ 나서니 적삼내여 손에들고 혼백불러 초혼하니 없던곡성 낭자하다 옛노인 하신말씀 저승길이 멀다더니 오늘내게 당해서는 대문밖이 저승이라 청춘이가고 백발이 올줄았으면 십리밖에다 가시성이나 쌓을걸 세상천지 동포님네 회심곡을 허소 말고 부모님께 효도하며 할일을 합시다 나하하아 헤라 헤라헤 열의열사십소사 나무관세음보살 출처:http://www.gugakcd.kr/music_detail.asp?cd_num=SRCD-15284 (정창관의 국악CD음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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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이란?국악은 예로부터 전해 오는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 한국음악·한국전통음악·한민족음악을 지칭한다 국악은 아악(雅樂)·당악(唐樂)·속악(俗樂)을 모두 포함하며, 일반적으로 전통음악과 최근의 한국적 창작음악까지를 포함하는 우리나라 음악이다. 고려 때 송나라에서 아악이 수입된 이후 당시의 음악은 아악과 이미 그 이전에 들어와 있던 당악 및 우리 고유의 음악인 속악 곧 향악의 세 가지로 구별되었다. 아악은 주로 제사에 쓰였고, 당악은 주로 조회(朝會)와 연향(宴饗)에 쓰였으며, 향악은 민간에서 우리말로 익히는 것 등으로 되어 있었다. 역대의 이 모든 음악은 장악원(掌樂院)이라는 음악기관에서 관장하였는데, 1908년 12월 27일 포달(布達:궁내부에서 일반에게 널리 펴 알리는 통지) 제161호로 궁내부(宮內府)의 관제가 개정, 반포될 때 장악원의 기구가 대폭 축소되어 궁내부 장례원(掌禮院)에 부속되었고, 악사(樂事)를 책임지는 상위직의 직계로 국악사장(國樂師長) 한 사람이 있었다. 이때에는 이미 양악(洋樂)의 군악대가 해산된 뒤여서 이를 그대로 궁내부에 흡수하여 각종 신식 의전과 빈객 접대에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양악대의 악장인 양악사장(洋樂師長)과 구별하기 위해 우리 전통음악을 관장하는 국악사장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비록 직명에서이지만 국악이라는 이름이 공공연하게 사용된 것은 이 때가 처음이다. 광복 직후 재야의 국악인들은 이전의 아악사장(雅樂師長) 함화진(咸和鎭)을 중심으로 대한국악원(大韓國樂院)을 결성하였다. 이 대한국악원의 명칭에서 국악이라는 말이 다시 사용되었다. 또, 1950년 1월 16일 국립국악원의 직제 공포로 구 왕궁아악부는 국립국악원으로 개칭되어 국악이라는 말이 확립되었다. 아악이라는 말은 재래의 궁정음악 일부에 국한되지만, 국악은 아악과 민간에 산재한 민속음악 일체를 포괄할 수 있다. 국악은 현재 한국전통음악(韓國傳統音樂)과 한민족음악 등 다양한 용어로도 통용되고 있는데, 그 용어들은 범위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한국전통음악은 전통적으로 전승된 한국음악이며, 한민족음악은 우리민족의 생활 속에서 계승 발전된 음악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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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다리밟기 유근우다리밟기는 정월 대보름에 하는 놀이로 자기 나이만큼 개울가 다리를 밟으면 다리에 병이 나지 않고, 모든 재앙을 물리칠 뿐만 아니라 복도 불러들인다는 신앙적인 풍속에서 나왔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다리밟기를 하면 다리병을 앓지 않는다는 관념이 강한 것은 다리(脚)와 다리(橋)의 발음이 같은데서 생긴 민간신앙이며, 언어의 유희성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다리밟기는 답교 또는 답교놀이라고도 하며 강릉지방에서는 다리빼앗기라고도 한다. 다리밟기놀이는 양반에서부터 서민까지 구분없이 즐겼으며, 다리밟기를 할 때에는 사대문도 닫지 않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것을 알 수 있다. 옛날 장안에 있던 다리는 몇 개 되지 않아 몰려든 사람들로 혼잡해지자 양반층에서는 서민과 어울리기를 꺼려 하루 전날인 14일 저녁에 다리를 밟아 양반다리밟기라 하였고, 부녀자들은 16일 저녁에 다리를 밟았다고 한다. 무리를 지어 다리밟기를 하면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어 혼잡한 가운데 여흥으로 기분을 돋우던 것이 점차 그 성격이 변하여 놀이패가 따로 조직되면서 연희성을 띠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송파다리밟기는 뛰어난 가무가 특색이다. 다리밟기놀이는 고려 때부터 행하여졌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이며 우리민족의 생활감정이 담겨 있는 민속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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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은 전통예술의 진흥과 문화향수 기회 확대를 통한 국민의 문화 품격 향상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2007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재단 설립 허가를 받아 국악문화재단으로 출발했으며, 2009년 재단 명칭을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으로 바꿨다. 전통예술의 보급 및 저변 확대, 고품격 전통문화 콘텐츠 개발 및 전통예술의 대중화, 신진 인력 양성, 해외 교류 활동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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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종목(2020년 현재 20종목)우리나라는 총 20종목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가 되어 있다. 종묘 제례악(2001), 판소리(2003), 강릉 단오제(2005),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영산재,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처용무(2009), 가곡, 대목장, 매사냥(2010), 택견, 줄타기, 한산모시짜기(2011), 아리랑(2012), 김장문화(2013), 농악(2014), 줄다리기(2015), 제주해녀문화(2016), 씨름(남북공동, 2018) 2020년 ‘연등회(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 ’2022년 ‘한국의 탈춤(국가무형문화재 13종목 등)’, 2024년 ‘장(醬) 담그기(국가무형문화재 제137호)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추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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