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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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시위]<8> 최나타샤.강상용, 사도광산 절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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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시위] <7>이수진, 사도광산 유네스코 아리랑과 함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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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시위]<6>이혜솔, '사도광산' 유네스코 아리랑과 함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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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시위] <5> 정은하 전국아리랑전승단체협의회장, 사도광산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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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시위]<4>김희은, 유네스코 사도금광, '아리랑'과 함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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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시위]<2> 유네스코 사도금광, '아리랑'과 함께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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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시위] <3>남은혜. 유네스코 사도금광, 아리랑과 함께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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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산소(山所) 및 납골장과 수목장국중성(정읍 향토사가) 산소(山所)란 ? 산소라 하면 조상의 묘지를 이르는 말로서 묘지의 본 뜻을 말 한다면, 묘지의 봉분은 흙무덤인데 이는 풍수상 땅속에 흐르는 생기(生氣)는 흙을 몸으로 삼기 때문에 흙무덤을 높여 쌓아야 생기를 많이 받는다는(乘氣生)데에 본 뜻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가 가장 강하게 뭉쳐있다는 곳은 산이라 하여 묘를 산에 모셨다는 뜻에서 산소라 하였다는 해석이다. 산소라 하면 조상 대대로 이어오면서 가계 혈통을 이어온 구심점이었으며 효(孝)의 상징이었고 전통문화의 근원이었다 할 것이다. 농토를 기업으로 하여 선영의 산소를 지켜온 것은 우리의 전통적인 생활모습이었다. 농사가 생업의 전부였던 그 시절에는 자손들은 부모슬하에서 농사에 전념 하는 것이 평생의 업이었다. 장성하여 가정을 갖게 되면 부모가 나누어 주는 분깃에 따라 분가하여 자립하였다. 이같이 부모는 언제나 없이 자손들을 품안에 두고 보살핌으로 가정의 화목과 평안을 이끌어 온 그 선친과 선영을 모셔온 저 산소가 있는 곳이 우리의 터전이었고 우리의 고향 이었던 것이다. 그러했던 고향은 일찍부터 젊은이들은 도시로 나가고 외부에서는 공단시설이 들어와 대내외적으로 섞이고 바뀌다보니 어느덧 옛 고향이라는 정서는 사라지게 되었다. 한편 부모를 떠나 고향을 등지다보니 섬겨오던 선영의 산소는 은연중 멀어지게 되고 효행마저 소홀해져가는 세월은 흘러 드디어는 그때 그 세월에 비하여 오늘에 와서는 아직 살아있는 부모도 남에게(시설)맡기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다 보니 돌아가신 뒤의 저 산소는 무슨 의미가 있을가?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받기 위해서 베푼다던가? 그래서 우리는 부모로부터 받은 혜택을 부모에게 못 갚고, 자식에게 갚는다 했다. 납골장 그동안 장례문화의 개선책으로 종래의 봉토 분묘에서 납골장으로 변화 되면서 가족묘지의 형태들이 많이도 달라져 왔다. 이에서 납골장(葬)과 납골당(堂)은 다른 개념이다. 납골장은 화장한 유골을 석탑이나 석실에 봉안함을 말하고 ,납골당은 화장한 유골을 일정장소에 보관 유치하는 곳을 말한다. 그래서 화장장의 총칭의 개념은 납골(納骨葬)이라 하겠다. 원래 납골장의 시원은 불가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것인데 이는 불타(佛陀)의 유체(遺體)를 다비(茶毘:화장)를 치르고 나서 그 유골을 석탑을 지어 봉안하였다는 데에서 기원한 장법이었다. 그에 따라 불교의식을 통하여 일반에서도 일부 화장풍습이 있어 왔으나 양속을 해친다하여 매장법이 존속되어 왔던 것이다. 90년대에 들어 납골장이 권장되면서 이제는 일반화 된 것 같다. 어떤 묘지에는 수십 기의 비석만 세워 있는 데가 있고, 석탑을 지어 주위를 공원으로 조성한 데가 있는가하면 땅을 파고 반 지하 형으로 하여 지붕을 흙으로 덮은 유골탑등 다양한데, 기존의 분묘도 석재물로 사각을 둘러 있는 데가 많아졌다. 그런데 한번 설치된 석재는 몇 천년이가도 영구히 남을 것인데 저와 같이 산지마다 석재 구조물이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온 산천이 석재는 천지가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없자않다. 이같이 일반 종문이나 가족 묘지들은 각기 다른 양상으로 늘어나는데 이는 개인 소유지에 따르면 전국적이고 산발적이다. 그리고 납골당은 아직 납골 묘 또는 수목장으로 가기 전의 대기실 같은 곳이겠는데, 이는 각자의 유골함을 벽면의 칸막이 선반에 번호순대로 층층이 진열되어져 있는데 이는 마치 아파트 층을 상상케도 한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흙집에서 살 때는 무덤도 흙집이더니 아파트 문화에서는 무덤도 아파트를 닮았다는 풍자도 있다. 그러나 종전의 묘지하면 유현(幽玄)하고 음습한 분위기였는데, 그와는 달리 납골묘지는 기념탑 같은 분위기에서 선영을 기리며 추억을 기념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참배할 수 있는 성소의 엄습함이 있다. 수목장 종전의 묘지라는 개념 하에 서는 인생종말의 구역으로 인식이 되어 왔으나 보다는 생전에 선호하는 선경이요 낙원으로 모신다는 의미에서 아름답게 정원을 꾸미거나 그만한 자연 경관으로 모신다는 뜻에서 출발한 것이 수목장이겠다. 납골당과 수목장은 다 같은 화장장 이지만 납골장은 집(탑)을 지어 그 안에 유골을 봉안하는 반면 수목장은 나무밑에 유골을 뿌리거나 도자기 유골함을 묻는다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수목장은 그 나무에 영혼을 의탁하는 관계이기도 하므로 한편 그 나무의 건강여부에 따라서는 그 영혼에 대한 안부의 표징이라는 의미에서도 자손들로 하여금 자주 돌아보게 되는 성묘의 의미는 납골장보다 우리의 정서에 가깝다고 하겠다. 수목장의 기원은 성경에서도(창35:8)야곱의 모친의 유모 드보라의 죽음을 상수리 나무밑에 장사지내고는 그 나무 이름을 ‘탄식의 나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사회에 수목장이 인식되기는 90년대 초에 전 고려대 교수가 생전에 자기 죽음의 기념수를 남겼다는 계기와 아울러 필자의 졸저(꽃과 나무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에도 수목장을 제안한바 있었다. 이 같이 기념수를 정하여 수목장으로 모신다면 후손들에 대대로 이어지는 성수로서의 대 물림이 될 것이며, 그런 의미에 서는 수목장은 굳이 선산이 아니어도 내집 정원이면 어떠랴. 선영을 성수(聖樹) 밑에 모셔두고 그 옆에 유훈이나 좌우명 하나쯤 세운다면 후대에 실전(失傳)할 염려도 없을 것 이며, 항상 살아있는 저 나무의 생동감은 후손이 전해 받는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세상사는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순환법칙이라 했거늘, 영혼이야 넋이야 얼인 그것은 항상 내 안에 있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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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시위]<1>고시수, 유네스코 사도금광, 아리랑과 함께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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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한민족체험수기 대상, '3대에 걸친 어머니의 약속'(3부)KBS라디오 한민족방송은 '제23회 KBS 한민족 체험수기 공모전'의 성인 부문 대상에 러시아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시의 박영자 씨(1951년생)를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중국·러시아·독립국가연합(CIS) 등의 조선족·고려인·사할린 한인 등이 응모했고, 이 가운데 6개 부문 22명을 선정해 발표했다.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소속 한국어 교사로 활동하는 박 씨는 일제강점기 외할아버지가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에 끌려왔다가 다시 일본으로 이중 징용을 당해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하고 타국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찾아가는 가족사를 담은 '3대에 걸친 어머니의 약속'으로 상을 받았다. 박씨는 "강제징용 역사를 지닌 사할린 한인들의 가슴에 쌓인 이산의 아픔을 위로하는 상"이라며, "이중징용으로 일본 탄광에 끌려갔다가 사할린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 현지에 묻히신 외할아버지에게 이 상을 바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다음은 수상작을 3부로 나누어서 3부를 연재한다. 일본 땅에 묻히신 외할아버지를 찾다 (3부 편) 언제나 일본 외할아버지 사시던 곳에 가보나라는 소원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제주 진외가집에서 외할아버지는 종전 이후 재혼도 하지도 않고 혼자 아들을 키우시다가 오사카에서 돌아가셨다고 알려 주었다. 1990년 한러수교 이후 한국의 친척들과 연락도 계속해 왔는데 세월이 바쁘다 보니 일본에 묻힌 외할아버지의 묘를 찾을 생각만 가슴에 담고 가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2019년 어느날 페이스북에서 낯선 외국 남자가 친구하자는 신청이 들어와서 페친이 되었다. 한국말로 답변을 했더니 그분이 사할린 한인 역사와 나의 가족사에 관심을 보였다. 자신도 일본에서 태어난 제주도 출신 재일동포 2세로 살고 있다고 하며, 나의 제주도 출신 부모님이 사할린에 강제동원 되었다가 이중징용된 가족사에 대해 가슴 아퍼했다. 일본 친구는 30여 년 간직하고 있던 외삼촌의 연락처를 달라 하시고 오사카에 계신 외삼촌 댁에 전화해 보겠다고 하셨다. 기적처럼 외삼촌 댁 전화번호와 주소는 바로 연락이 되었다고 한다. 외삼촌은 12년 전에 별세하셨고, 외숙모는 살아 계시다고 전해 주었다. 이 소식을 받고 나는 이틀 동안 설움이 북받쳐서 울고 또 울었다. 다시 이틀이 지나 오사카에 사시는 얼굴도 모르는 외숙모 집 전화번호를 떨리는 손으로 두드렸다. 제주도가 고향인 재일교포 외숙모는 한국말을 잘 못하셔서 일본말을 섞어가며 오랫동안 가족 얘기를 해주셨다. "언제가 올 너의 소식을 기다렸다. 내일 당장 오라. 보고 싶다"라고 울먹이셨다. "외숙모님! 외삼촌을 못 만난 것이 마음이 아퍼요. 더 일찍 연락을 하는 건데 사는 것이 힘든 시기라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가는 것이 러시아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내일이라도 가고 싶지만 준비를 해서 연락을 드리고 가겠습니다.”라고 전하고, 석달 후 비행기를 타고 오사카로 찾아갔다. 드디어 낯선 땅에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의 묘앞에서 큰절을 올렸다. "할아버지, 엄마 대신 제가 70년 만에 찾아왔습니다. 너무 늦었지만 오늘에서야 엄마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외할머니가 평생 그리워 하시던 아버지를 손녀인 제가 찾았어요. 마지막 유언을 엄마 대신 제가 지켜 드렸어요. 이제 슬퍼하지 마세요. 편히 쉬세요” 먼저 생전에 만나지 못하고 헤어진 부녀간의 영혼을 위로해 드렸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죽을 때까지 그리워 하던 오라버니(나의 외삼촌)의 묘앞에서 모자간의 영혼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 이 순간부터 나는 눈만 감아도 우리 외가 가족이 얼마나 슬프게 살아오셨는지 이제는 뼈저리게 알 것 같다. 아버지를 그리워 하던 딸(어머니), 아들을 그리워 하던 어머니(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제주도에 남겨두고 온 딸을 만나셨으리라. 외할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만나셨으리라. 나는 이제서야 돌아가신 엄마의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나) 엄마! 이제 편안히 잠드소서..... 나는 이 글을 남기면서 내가 누구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게 되었다. 우리 4대에 걸친 가족사는 사할린에 사는 손자에서 손자로 대대로 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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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대한민국전통춤대상,대한민국전통춤4대명무상 시상양종승 (한국전통춤협회 부이사장 및 학술연구위원장) 창립 10주년을 맞이한 사단법인 한국전통춤협회 제10차 정기총회 및 대한민국전통춤대상, 대한민국전통춤4대명무상, 공로패, 표창장 등의 시상식이 2022년 1월 26일(수) 오전 11시부터 2시간 동안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총회 참석자는 이길주(이사장 및 전북무형문화재 호남산조춤 보유자)을 비롯한, 채상묵(상임고문,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보유자), 정명숙(고문, 국가무형문화재 살풀이춤 보유자), 최선(고문, 전북무형문화재 호남살풀이춤 보유자), 김온경(고문, 부산광역시무형문화재 동래고무 보유자), 조흥동(고문,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및 서울시무형문화재 한량무 보유자), 김숙자(고문,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김매자(고문, 창무예술원 이사장), 이병옥(자문위원, 용인대 명예교수), 김연자(상임위원, 전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부이사장), 이춘자(상임위원, 국가무형문화재 태평무 수석이수자), 한혜경(부이사장, 십이체장고춤보존회 이사장), 양종승(부이사장 겸 학술연구위원장, 샤머니즘박물관 관장), 김은희, (부이사장, 밀양검무보존회 회장), 임현선(부이사장 겸 공연기획위원장, 전 대전대 교수), 손병우(부이사장, 전 예원예술대 교수), 오은희(부이사장 겸 교육연수위원장 및 사무총장, 전 서울예술대 교수), 황희연(부이사장, 생태문화나눔 대표), 강신구(상임위원, 풀뿌리문화연구소 대표), 이정희(상임이사, 경기도무형문화재 경기시나위춤 보유자), 김경란(상임이사, 서울교방 대표), 정성숙(상임이사, 전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이사장), 김미란(상임이사, 국가무형문화재 태평무 이수자), 윤미라(상임이사, 경희대 교수), 김경숙(이사, 한국의 집 예술감독), 권영심(이사, 한국전통춤연구회 회장), 김기화(이사, 한국춤교육연구회 대표), 임수정(이사, 경상대 교수), 박은하(이사, 십이체장고춤보존회 수석부이사장), 안덕기(이사, 한예종 무용원 교수), 강연진(이사, 경기도무형문화재 경기검무 이수자), 정경화(이사, 국가무형문화재 태평무 이수자), 이지은(이사, 전 경기도립무용단 차석), 김성연(이사, 서울예술단 단원), 한지윤(이사, 하늘무용학원장), 조혜정(이사, 국가무형문화재 살풀이춤 이수자), 김형신(이사, 국가무형문화재 종묘제례악 일무 이수자), 백수연(이사, 국가무형문화재 종묘제례악 일무 이수자), 김승애(이사, 대구광역시무형문화재 살풀이춤 이수자), 이용덕(이사, 국가무형문화재 태평무 이수자), 최지원(이사, 전북무형문화재 호남살풀이춤 전승교육사), 김선영(감사, 아트디자인랩 대표), 김정원(부산광역시 지부장), 빈주연(밀양시 지부장), 임미례(용인시 지부장), 정도겸(천안시 지부장) 등이다. 지난 한 해를 결산한 후, 신년 사업을 인준하고 새 임원에게 임명장을 수여하였다. 이어, 대한민국전통춤대상, 대한민국전통춤4대명무상 및 공로패와 표창장 시상식이 이어졌다. 전통춤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원로 무용가 및 중견 무용가를 대상으로 그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전통춤대상 및 4대명무상을 수여해 온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전통춤협회가 수여한 대한민국전통춤대상은 제1회 강선영, 이매방 제2회 김진홍, 최선, 제3회 김백봉, 제4회 김문숙, 제5회 이현자, 제6회 은방초, 한순옥. 제7회 조흥동. 제8회 김정녀 그리고 제9회 김온경이 수상하였다. 대한민국전통춤4대명무상은 2020년 한영숙상 이애주, 강선영상 이명자, 김숙자상 김운선, 이매방상 김정녀가 수상하였으며, 2021년 강선영상 고선아, 이매방상 채상묵이 수상했고, 10주년을 맞이한 2022년에는 한영숙상 정승희, 김숙자상 이정희가 수상하였다. 격년으로 수여되는 4대명무상은 2023년에 강선영상과 이매방상이 시상될 예정이다. 창립 10주년을 맞이하여 협회 발전에 이바지한 이병옥, 양종승 정성숙에게 공로패가 수여되었고, 사무팀장으로 2년간 소임을 맡았던 김문희에게는 표창장이 수여됐다. 돌이켜 보면, 전통춤 관련자들은 한국전통춤협회 창설 이전까지는 한국무용협회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러다 2012년 7월 7일 채상묵(위원장), 김정녀, 한혜경, 양종승, 김은희, 진유림 등 6인에 의해 '한국전통춤협회 창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그동안 궁중정재를 제외한 전통춤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학습과 보존 그리고 발전을 위한 탐색이 본격화된 것이다. 이 시기는 전통춤에 대한 무보가 만들어지고 그에 대한 영상 또한 제작되면서 학습 형식과 체계에 대한 변화의 열풍이 본격화되고 있었다. 국외적으로도 지구촌의 각 민족은 자국이 전승해 온 전통춤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여 세계인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인류문화로 발돋음 하는데 열정을 올리고 있었다. 전통춤에 대한 이러한 국내외적 동향은 한국 전통춤 관련자들에게 시대적 사명감을 드높이기에는 충분하였다. 협회는 창설된 지 4년 9개월이 지난 2017년 4월 6일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사단법인 인가를 받았다. 한국전통춤협회는 전통춤의 무대공연을 통해 살아 숨 쉬는 예술적 미학 세계를 가늠했다. 또한, 전통춤 계승자와 지도자를 위한 연수회 개최 그리고 학술적 탐구와 발전을 위한 전통춤 학술세미나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며 춤 예술의 힘으로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펼치기 위해 노력을 힘차게 추진해 왔다. 그 내용은 보면 다음과 같다. 공연기획위원회는 협회 소속의 원로 및 중견 무용가의 전통춤 정기공연을 개최하였다. 창립공연을 시작으로 6회 정기공연까지는 '한국전통춤협회 정기공연'이라는 주제로 개최하였으나, 2019년부터는 명칭을 '대한민국전통춤문화제'로 개칭하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13 한국전통춤협회창립공연 (국립국악원 예악당, 3월 9일-10일) 2014 한국전통춤협회정기공연 (국립국악원 예악당, 3월 8일-9일) 2015 한국전통춤협회정기공연-人舞不二 (국립국악원 예악당, 3월 21일–22일) 2016 한국전통춤협회정기공연-傳神寫照 (국립국악원 예악당, 3월 15일–16일) 2017 한국전통춤협회정기공연-萬波息笛 (나루아트센터 대극장, 4월 22일-23일) 2018 한국전통춤협회정기공연-舞香心善 (국립국악원 예악당, 3월 10일-11일) 2019 대한민국전통춤문화제 (국립국악원 예악당, 3월 2일–3일) 2021 2020대한민국전통춤문화제 (국립국악원 예악당, 3월 6일-7일) 2021 대한민국전통춤문화제 (서울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 11월 5일-6일) 교육연수위원회에서는 무용 지도자와 학생 그리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전통춤 보급과 저변확대를 위해 전국전통춤연수회를 개최해 오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회 전국전통춤연수회 (선화예술고등학교 무용실 진선홀) 2013년 8월 2일-4일 이매방류 승무 (채상묵), 십이체장고춤 (한혜경) 제2회 전국전통춤연수회 (선화예술고등학교 무용실 진선홀) 2014년 8월 2일-3일 호남산조춤 (이길주), 김숙자류 도살풀이춤 (이정희) 제3회 전국전통춤연수회 (선화예술고등학교 무용실 진선홀) 2015년 8월 1일-2일 강선영류 태평무 (양성옥), 박병천류 진도북춤 (임수정) 제4회 전국전통춤연수회 (세종문화회관 3층 종합연습실) 2016년 7월 30일-31일 이매방류 승무 (채상묵) 제5회 전국전통춤연수회 (선화예술고등학교 무용실 진선홀) 2017년 2월 4일-5일 이매방류 승무 법고 (채상묵), 진주교방굿거리춤 (김경란) 제6회 전국전통춤연수회 (서울의전당 서울예술단 연습실) 2017년 8월 5일-6일 이매방류 살풀이춤 (김은희) 2017년 8월 12일-13일 박병천류 진도북춤 (염현주) 제7회 전국전통춤연수회 (선화예술고등학교 무용실) 2018년 1월 13일–14일 강선영류 태평무 (임현선), 이매방류 살풀이춤 (진유림) 제8회 전국전통춤연수회 (경희대학교 무용실) 2018년 8월 4일–5일 최희선류 달구벌입춤(윤미라), 박병천류 진도북춤(황희연) 제9회 전국전통춤연수회 (상명 아트홀) 2019년 8월 3일-4일 이매방류 살풀이춤 (김은희), 버꾸춤 (서한우) 제10회 전국전통추연수회 (상명 아트홀) 2020년 8월 24일-25일 장고춤 (이길주), 송범류(황혼) 산조춤 (손병우) 제11회 전국전통춤연수회 (코로나19로 인해 미개최) 학술연구위원회에서는 주기적으로 전통춤 관련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고, 그 결과물로 '한국전통춤협회 학술총서'를 발간하고 있다. 2012년 12월 22일(토) 서울 동숭동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개최된 제1회 학술세미나는 "전통춤의 전개와 현황, 전승적 갈래 그리고 전통춤의 새로운 개념 및 범위 그리고 의미와 역할"이라는 주제로 행해졌다. 2014년 9월 20일 (토) 서울 동숭동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개최된 제2회 학술세미나는 "한국 전통춤 개념과 범위 그리고 전승현장 및 현안"이란 행해졌다. 전통춤의 개념 및 의의, 영역, 형식 등을 시대적, 장르별, 역사적, 지역적, 형식적, 계파별, 기능적 등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더불어 한국 전통춤 전승현장의 현안과 문제점 그리고 미래 전망에 대해서도 논의되었다. 2019년 1월 12일 (토) 개최된 북한강 연수원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삼봉리 192-2)에서 개최된 제3회 학술세미나는 "전통춤 4대 명무의 예술적 가치 및 위상"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20세기 중후반 전통춤 계승자 역할을 올곧게 한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한영숙, 강선영, 김숙자, 이매방 등 4대 명무가 남긴 전통춤의 예술적 가치를 조명하고 무형문화재적 가치를 탐구한 것이다. 이 학술대회는 '대한민국전통춤4대명무상 제정 및 예술제'에 대한 학술자료 확보 차원에서도 필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22021년 12월 4일 (토) 은평역사한옥박물관 대강당에서 개최된 제4차 학술세미나는 "한국 전통춤의 춤사위"라는 제목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전통춤의 춤사위 종류, 형태, 구조, 의미 고찰 및 체계적 분류 및 기록화를 위한 것이었다. 학술세미나 결과물을 다듬어 한국전통춤협회 학술총서 '전통춤의 흐름과 전승현장' (2015)과 '전통춤 4대 명무 한영숙·강선영·김숙자·이매방' (2019)이 발간하였다. 한국전통춤협회는 어언 지간 창립 10년을 맞이하면서 미래를 향한 전통춤의 체계적 보존과 전승은 물론 사회교육, 홍보진흥, 학술연구, 인재양성, 공연기획, 국제교류를 위해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지난 시간의 발자취를 더듬고 앞으로의 또 다른 10년을 내다보는 시점에 선 협회의 2022년 총회는 그 어느 때보다 의미가 남달랐다. 전통춤은 한민족 예술의 모체이자 시원이면서 민족의 영혼과 사상을 담아 꽃 피어온 문화의 핵심이다. 문화와 예술의 힘으로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세상을 바꾸어 가고자 뜻있는 전통춤 지도자들이 모여 결성된 사단법인 한국전통춤협회가 어느덧 창립 10주년을 맞이한 것은 그동안 헌신적으로 협력해 온 임직원과 회원 및 각 지부장이 빚어낸 슬기와 지혜의 결과이다. 전통춤 뿌리를 붙들고 보존과 계승 그리고 진흥과 발전을 주도하여 온 지난 시간이 헛되지 않고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한민족의 정서와 사상 그리고 철학이 담긴 모든 춤을 잘 챙기고 다듬어 전통춤 발전에 박차를 가할 것을 다짐한 한국전통춤협회 창립 10주년 행사는 전통문화예술 발전의 한 획을 구축하는 의미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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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악협회와 유네스코, ‘불구부정’의 두 장면찻잔 속의 향기 나는 물은 더럽지 않다. 이 물이 버려져 하수구에 이르면 깨끗하지 않은 물이 된다. 다시 이 물이 땅에 스며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물은 더럽지 않다. 이런 관점의 이동을 ‘불구부정(不垢不淨)’이란 말로 표현한다.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고 풀이하지만. 처한 곳에 따라 가치와 성격이 달라진다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다음의 두 상황도 이런 경우가 아닐까 한다. # 사단법인 한국국악협회는 지난 1월 13일 서울고등법원 민사재판부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이로써 27대 이사장 선거는 무효가 되었다. 이에 대해 한국국악협회는 지난 1월 19일 ‘입장문’을 냈다. "절체절명의 위기로 사단법인 한국국악협회는 부끄러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라는 고백했다. 그리고 "2012년 이후 당시 이사장과 집행부는 정회원 승인 없이 협회를 운영해 왔던 것”이라며 전임 집행부에 책임이 있음을 밝혔다. 나아가 당시 부이사장이 출마하여 낙선한 분(이용상)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니 ‘황당’하다고 하였다. ‘입장문’은 이를 공론화하고자 한 것이다. 이런 주장은 소를 제기한 시점이거나 적어도 1심 패소에 직면해서라면 호소력이 있지만 항소심까지 패소한 이후이니 의미가 없다. 더욱이 항소심 막바지에 수습위원회가 결성되어 합의를 종용하였음에도 불응한 상태이니 더욱 호응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입장문’에서 매우 긍정적이고 주목되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그것은 이번 판결을 수용한다고 한 사실과 이의 결과로서 전면적인 개혁에 대한 의지가 담겨있다는 점이다. "한국국악협회는 현재의 위기를 딛고, 새로운 체제로 다시 태어나 구습의 허물을 벗겨내고 새 도약의 한국국악협회로 거듭나는 환골탈태(換骨奪胎)할 것을 약속한다.(중략) 한국국악협회는 백만 국악인들과 함께 노력할 것이다.” 분명하게 개혁 의지를 표명한 것은 분명하다. 나아가 매우 진보적인 개혁 의지를 내보이기도 하였다고 본다. 즉, ‘입장문’의 "내부 여러 문제도 민주적인 절차가 필요하고 한 명 회원의 소리도 귀 기울여야 하는 현실”이란 대목이다. 이는 전 조직의 수평적 관계 설정과 실질적인 전승 주체인 전국 170여 개 지부에 의무와 권리를 부여하여 의사결정에 참여하게 한다는 획기적인 발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 12월 5일 결성되어 중립적인 위치에서 양측의 합의로 쟁송을 끝내자고 호소한 수습위원회 4차의 성명서 개혁 방향과 일치하는 것이다. 매우 긍정적인 입장 표명이다. 그런데 문제는 개혁의 주체이다. ‘입장문’의 맥락상으로는 한국국악협회가 개혁의 주체인 듯하지만, 과연 ‘현 이사장과 이사회’가 또는 ‘한국국악협회 집행부’가 주체가 될 수 있는가이다. 왜냐하면 당선 이후 개혁의지를 보이지 않다 한정된 자격만을 가지게 된 피고측 입장에서 주체로 나선다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주체에 따라 개혁의 원천인 명분과 정당성의 담보 여부가 결정된다. 그 주체는 소송 당사자가 아닌, ‘수습위원회’여야 한다. 수습위원회는 ‘양측은 항소심 판결을 무조건 따르고 개혁에 함께하라’고 권유한 성명서를 발표함으로서 법적·제도적 권한 이상의 정당성을 확보하였다. 한국국악협회가 한정적인 권한을 가진 입장에서 발표한 ‘입장문’일지언정 ‘환골탈태’를 표명한 것은 수습위원회와 개혁 방향이 일치한다. 이런 사실에서 개혁은 정당성이 있는 수습위원회를 통한 완성해야 한다. # 최근 일본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눈물로 아리랑을 불렀던 니가타(新瀉)현 사도(佐渡)시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일단은 내각의 제지를 받았다고 하지만, 2024년으로 미뤘다는 것이지 포기한 것은 아니어서 논란은 계속될 듯하다. 유네스코와 인류 문화유산, 그리고 아리랑을 생각해 본다. 유네스코(UNESCO)는 1997년 제29차 총회에서 산업화와 지구촌화 과정에서 급격히 소멸하고 있는 무형문화유산을 보호하고자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제도’(Masterpieces of the Oral and Intangible Heritage of Humanity)를 채택했다. 이 때 마련된 ‘아리랑상’(Arirang Prize)은 이 제도의 일환이며, ‘아리랑’은 이 제도의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그리고 2012년 우리는 ‘아리랑, 한국의 서정민요’로, 2년 후 북한은 ‘조선민요 아리랑’으로 각각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로써 아리랑이 유네스코라는 국제적 권위로부터 인류 보편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사실에서 흐뭇해하였다. 그러나 등재 10년을 맞는 오늘에 와서는 유네스코의 권위에 대해 결을 달리하게 되고 말았다. 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2012년 아리랑 등재 심사 기간에 문화운동 단체의 "남북 합의로 공동 신청하겠다”고 한 제안을 무시한 사실이다. 이 때문에 2년 후 각각 다른 국명, 다른 이름으로 등재하여 ‘아리랑 분단’을 시키고 만 것이다. 아리랑이 한민족의 노래라는 사실과 상징성을 고려하라는 주장을 배려했다면 ‘아리랑 통일’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당사국이 합의하면 공동 등재를 수용한다는 유네스코 정신을 위배한 것이기도 하다. 다음 역시 유네스코가 큰 실망을 준 사례이다. 바로 2015년 강제노역의 역사를 가진 하시마섬(端島) 군함도를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한 사실이다. 서구와의 기술 교류를 통해 비서구 국가 최초의 산업화를 이뤘다는 점을 내세워 지정했는데, 조선인 113만 명에서 146만 명을 강제노역시킨 소위 ‘갈등 유산’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한 문화단체는 명동 유네스코 한국본부 앞에서 "아리랑 등재 유네스코, 군함도 문화유산 등재 반대”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일본은 "한국인 강제노역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정보센터 설립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유네스코는 "한국이 우려하는 점을 유네스코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를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 의제문에 반영할 것"이란 조건을 달아 등재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과 유네스코는 등재 후 위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도 등재 취소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일본은 역시 반인도 범죄가 이루어진 강제노역 시설로 '제2의 군함도'로 불리는 나가타현 '사도금광'을 2023년 6월 등재를 겨냥하고 신청하려 하였다. 이에 대해 우리는 즉시 1940년대 한국인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Against their will)’ 동원되어 가혹한 환경하에서 ‘강제로 노동한(Forced to work)’ 사실을 들어 등재를 반대하게 되었다. 일본 내각은 이런 반대에 부담을 느꼈는지 1월 20일 전략상 물러서 신청을 자진 취소하였다. 20여년 간 회비를 가장 많이 내는 회원국이란 일본의 자만심, 이를 거부하지 못하는 유네스코의 처사는 인류 보편가치를 공인하는 권위를 스스로 훼손한 것이다. 이제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의 가치도, 또한 아리랑의 남북 공동 재등재의 명분도 약화되었다. 당연히 유네스코의 권위가 실추된 것에 따른 것이다. 같은 유산을 담은 그릇의 퇴색으로 그 빛이 흐려졌다. ‘수습위원회의 개혁’ 그리고 ‘유네스코 아리랑’, 신년 들어 마주한 불구부정의 두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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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문뜩, 두 숙제를 떠 올리다# 어제 무조건 만나는 형으로부터 무조건 오라는 전화를 받고 참석한 자리. 여기서 문득 묻어두었던 숙제를 떠올렸다. 문익환 목사님과 이애주 교수님에 관한 얘기다. 1989년 4월, 일본 조총련 자료 전문 서점 ‘레인보우’에서 연락을 받았다. "문목사가 김주석과 아리랑에 관한 대화를 했다는 소식입니다. 자료가 오면 챙겨 놓을 테니 일본 오면 꼭 들려요.” 나는 세상이 ‘방북’ 사건으로 소용돌이 속이었는데, 북에서 나올 아리랑 자료와 문목사가 귀국하면 아리랑 대화 내용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겠다는 생각만 갖게 되었다. 이후 1년여 후, 일본에서 확인한 자료의 요지는 이렇다. "통일 후 국가(國歌)는 아리랑 선율로 하자. 그 가사(歌詞)는 서로 준비하자” 이후 북측이 새로 작사한 가사는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하였다. "저기 저산이 백두산이라지/ 동지섯달에도 꽃만 핀다” 그러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목님으로부터 당시 대화의 배경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 북측 자료에서도 확인하지 못했다. 이 배경에 대해서는 내 숙제 중 하나이다. # 1999년 3월, 정선군 여량에서 아리랑 판이 벌어졌다. 한완상, 이애주, 김대환, 김선풍, 김정, 김길자, 기미양 등이 함께한 판이다. 당시 그 판에서 얻은 것은 이애주 교수의 선언이었다. "내가 우리 춤을 추고 가르치는데, 아직 ‘아리랑춤’을 찾아내지 못했다. 다음 이런 아리랑 판에서 꼭 아리랑춤을 선보이겠다.” 이후 이 교수와 정역(正易)과 영가무도(詠歌舞蹈)에 관한 논의를 하며, 고구려 벽화 등에서 얻은 영감으로 ‘아리랑 몸짓’을 찾아 내자고 호언하였다. 그리고 ‘아리랑몸짓’으로 바꿔 하상역의 ‘삼도탐요’ 내용을 주고받으며 실마리를 찾고자 했다. 그런데 지난 해 너무도 일찍 가셨다. 어제 모임에서 한 소리꾼이 이교수를 언급하여 잠시 내려놓은 숙제를 떠 올리게 했다. 어제, 저녁 모임이 나의 아리랑 숙제 풀기를 독려했다. 문틈으로 격렬한 눈발이 보인다.(김연갑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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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김예지 초선의원, 시각장애인과 안내견(犬) ‘조이’와 함께 107건의 법안 발의김예지 초선의원, 시각장애인과 안내견(犬) ‘조이’와 함께 107건의 법안 발의를 했다. 이중 20건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첫해인 2020년에만 50건을 대표 발의했다. 보조견 출입 거부 사유를 대통령령으로 명확히 해서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는 내용의 장애인복지법 일부 개정 법률안(일명 조이법)을 비롯해 장애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선택 의정서 비준 촉구 결의안’이 드디어 본회의에서 통과됐고 대통령 재가까지 거쳐 비준을 앞두고 있다. 김예지의원의 국회입성 계기는 이렇다. "처음 한 의원의 전화를 받았을 때는 국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해달라는 의뢰인 줄 알았다.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한참 하다가 영입 제안을 하셨다. 그날은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고, 그 후 오래 생각하지 않고 ‘하겠다’고 했다. 장애계에 여러 이슈가 있는데 장애 유형만 해도 15~16가지 된다. 당사자가 아니면 알지 못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 그러니 ‘이런 게 필요하니까 발의해주세요’ ‘이런 법안이 개정됐으면 합니다’라고 말씀드려도 주목받는 이슈가 아니다 보니 빨리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기회가 왔으니 선·후배, 동료들을 생각해서 장애계를 대표하는 심부름꾼으로 왔다.” ‘선천적 장애인은 의지가 약하다’…. 이렇게 발언한 한 정치인을 기억하는가. 아직도 장애라 하면 ‘다름’이 아니라 ‘비정상’으로 여기는 편견이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 뿌리 깊게 박혀있다. 이를 교정하는데 김예지의원의 활동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김의원 파이팅. 아 참, 보조견 조이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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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정명훈 지휘자를 계관 지휘자로 위촉KBS교향악단이 지휘자 정명훈(68)을 계관(桂冠) 지휘자로 임명했다. KBS교향악단은 "정명훈 지휘자를 계관 지휘자로 이달 1일 위촉했다. 악단 역사상 첫 계관 지휘자”라고 6일 발표했다. 계관 지휘자는 명예 지휘자와 같은 개념이며, 악단의 전체 프로그램을 구성하거나 이끌지는 않지만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KBS교향악단 측은 "연간 1~2차례 KBS교향악단을 지휘하며, 남북평화와 음악 꿈나무 육성 등 공헌 사업을 함께할 계획”이라고 했다. 임기는 정해져있지 않다. KBS교향악단 측은 말했다. "연간 1~2차례 KBS교향악단을 지휘하며, 남북 평화와 음악 꿈나무 육성 등 공헌 사업을 함께할 계획이다.” 굳이 ‘계관’을 쓸 필요가 있을까? 지금이 중세인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이 말을 쓴 경우가 아닌가? 독립신문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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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에서 설을 맞이한 영주귀국 사할린 2세새해 아침 인천 남동구 달맞이 마을 사할린에서 신체가 불편한 어머니(주고분, 1936년생)를 모시려고 지난 달 4일 영주귀국한 사할린 2세인 딸(김기자, 1957년생)과 사위(김정호 1958년생)을 만났다. 지난해 1월 사할린동포지원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사할린 영주귀국 대상이 직계비속까지 확대되어 한국에 올 수 있었다. 안내와 러시아어 통역은 사할린 동포 공노원(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부회장)선생이 맡아 주었다. 12년 전 대한민국에 영주귀국한 사할린 1세인 어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2세가 영주귀국을 선택하고 조국에 들어온 것이다. 두 무릎관절 수술 후 혼자 바퀴가 달린 의료기에 의지하고 거동하시는어머니는 "조국에서 그리운 우리 막내딸을 이렇게 오게 해주어서 감사하다. 매일 기도를 했다. 같이 살게 해달라고...사할린에서 남편을 여의고 한국에 혼자 나와서 살다가 오늘 아침 설날에는 떡국을 같이 먹게 되다니...꿈만 같다. 모든 것이 감사하고 미안하다. 1200명이나 신청했는데. 350명만 오게 되었다. 아직 오지 못한 분들께 미안하다."면서 딸의 손을 잡는다. "그러나 나 때문에 잘 다니던 직장과 정든 집과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들어왔다. 이 근처가 아닌 멀리 시흥에 아파트를 배정 받았다. 인천에 자리가 나면 가까운 데로 오게 해주면 좋겠다. 아직 한국말도 서툴어서 고생을 한다."면서 눈물을 짓는다. 사할린 주 유즈노사할린스크 시에서 주립 도서관에서 근무를 하다가 이주한 김기자씨는 "가장 시급한 것은 정착 프로그램과 메뉴얼이다. 아직 준비가 안된 것으로 안다. 한국말이 서툴어서 동네 마트에 가서 물건을 구입하는 것도 힘들다. 시흥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3번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 타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대답을 받기 힘들다. 아직 한국 사람들과는 전혀 소통이 안된다. 우리가 한국말이 잘 안나오니까. 우선 한국말부터 배우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리고 빠른 정착을 위한 자원봉사자의 손길이 필요하다." 라고 말했다. 사할린에서 오기전 사할린주한인협회(박순옥)가 주관한 설명회에서는 지자체에서 파견된 자원봉사자가 일정 기간 동안 도와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일제는1938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인을 회유와 강제로 사할린으로 끌고 가서 탄광과 산에서 강제 노역을 시켰다. 해방 후 조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억류되어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채 식민백성이라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 일부는 러시아 국적을 포기하고 무국적이란 표식을 받고 어려운 삶 속에서 살아왔다. 1990년 한러수교가 시작되면서 영주귀국 사업으로 사할린 동포들 일부가 한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하여 전국 25개 지역에서 지자체의 보살핌을 받고 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월 '사할린 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시행했다. 이 법에는 지원 대상을 기존 동포 본인과 배우자, 장애자녀에서 직계비속 1인과 그 배우자까지 확대하고 이들에 대한 지원을 국가 책무로 규정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사할린동포와 그 가족 91명은 지난달 27일 이 법에 근거해 처음으로 한국에 입국했다. 동포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존감을 굳건히 하기 위해서 정착을 위한 사할린 동포들만을 위한 특별한 기본 매뉴얼이 시급하다고 본다. 예를 들면 그들이 가장 시급한 것이 한국어 배우기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지역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활동을 어떻게 시작 할 것인지 체계적으로 전개가 되어야 한다. 우선 교육을 받은 자원 봉사자들이 나서서 도와 주어야 한다. 당장 필요한 부분부터 면담을 통해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한다. 정부는 영주귀국을 원하는 사할린동포들을 순차적으로 모두 고국으로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고국으로 돌아오신 동포들이 편안히 생활할 수 있도록 세심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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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투고] 한 트로트 팬이 보낸 ‘담 너머에도 봄은 오는가!’저 너머에서, 같은 팬으로 만나(난생처음) 같은곳을 바라보며(오로지) 같이 응원하고(열렬히) 같이 사랑하고(아낌없이) 같이 할 수 있음에(날마다) 마냥 행복했던 순간들이, 우리에게도 그런시절(순수한)이 있었지요... 그럼에도, 이렇게 시위트럭까지 동원되어 오프라인으로 확장된것의 대하여 이를 염려하시는분들도 계실줄 알지만, 저 역시도 이런상황까지 이르게 된점을 매우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록 당장은 뼈를 깎는 고통이 따를지언정, 자생 팬덤의 합당한 권리를 찾고 자생팬덤을 견고하게 지키기 위한 자생팬덤의 튼튼한 기반을 다지고 건강하고 성숙한 팬덤문화를 주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 진행 될 시위트럭은, LED 전광판을 탑재한 스마트 트럭에 메시지를 담아 방송국과 소속사앞으로 전달될 것 입니다. 전광판에는 팬덤의 현재상황을 알리는 문구와 팬덤의 요구사항, 구호가 전시되어 소속사의 '높으신분' 이 우리팬덤에 일어난 사건사고를 명확하게 인지하게 될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소속사나 방송국을 오가는 관계자들은 트럭시위풍경을 보게되고 온라인을 통해 사진과 영상이 널리 퍼지게 되면 취재기자와 유튜버들이 현장을 찾아가기도 할 것 입니다 그렇지만, 모두가 우려하는 혹시 모를 그러한 일이 초래 되지 않도록 원만한 합의에 도달하길 우리 모두는 진정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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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한민족체험수기 대상, '3대에 걸친 어머니의 약속'(2부)KBS라디오 한민족방송은 '제23회 KBS 한민족 체험수기 공모전'의 성인 부문 대상에 러시아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시의 박영자 씨(1951년생)를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중국·러시아·독립국가연합(CIS) 등의 조선족·고려인·사할린 한인 등이 응모했고, 이 가운데 6개 부문 22명을 선정해 발표했다.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소속 한국어 교사로 활동하는 박 씨는 일제강점기 외할아버지가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에 끌려왔다가 다시 일본으로 이중 징용을 당해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하고 타국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찾아가는 가족사를 담은 '3대에 걸친 어머니의 약속'으로 상을 받았다. 박씨는 "강제징용 역사를 지닌 사할린 한인들의 가슴에 쌓인 이산의 아픔을 위로하는 상"이라며, "이중징용으로 일본 탄광에 끌려갔다가 사할린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 현지에 묻히신 외할아버지에게 이 상을 바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다음은 수상작을 3부로 나누어서 2부를 연재한다. 무국적으로 살다가신 아버지와 어머니(2부) 부친 박정환(1919년생)은 전라남도 목포 근처 작은 하의도라는 섬이다. 1944년 부친은 하의도의 한 사람과 함께 강제동원을 당했다. 사할린에서 부친은 산판(벌목장)에서 일했다. 우리 부모는 1945년 전쟁이 끝난 후 코르사코브 항구 근처에서 만나서 살림을 차렸다. 고향에 갈 수 있다는 기대를 품은 동포들은 그 당시 코르사코브에 도착하자마자 공동묘지부터 만들었다. 고향에 돌아갈 때 부모님의 유해를 가지고 가기 위해서다. 이후 사할린에 와서 산판과 탄판에서 큰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 일본 탄광으로 다시 징용을 받아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 원자폭탄을 맞고 죽어간 사람들. 사할린에 돌아왔으나 전쟁의 트라우마로 정신을 잃은 사람들, 이렇게 잃어버린 가족들 사진을 가슴에 품고 몇 년간이나 모여서 살았다. 모여서 살다가 러시아 국적을 받든지 북한 국적을 받아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두 분 다 무국적이셨다. 러시아 국적을 받으면 조금은 자유롭고 경제적 혜택도 많아서 동서들이 같이 받자고 했지만 모두 거절을 하셨다. 혹시라도 국적 문제로 고향에 돌아갈 길이 막힐지도 모른다고 불안해 하셨다. 집에서는 조선말만 사용하게 했다. 언젠가는 돌아갈 고향이 있으니 우리말을 잊으면 안된다고 야단을 치셨다. 그 덕에 우리 형제는 조선말을 가슴에 담고 살았다. 나는 1951년 코르사코브에서 맏딸로 태어난지 한 달이 되어 사할린 북부 스미르늬흐구역 오노르마을 근처 동포들만 사는 동네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유는 고향땅에서 함께 끌려 온 부친의 동서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로 산판(벌목장)에서 함께 작업을 했다. 오노르 마을에서 마침내 내 밑으로 남동생이 셋이나 연이어 태어났다. 아버지는 내 밑으로 남동생을 세 명이나 봤다고 나를 추켜 세워 주셨다. 이후 나는 8살이 되어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우리 가족은 북적북적한 스미르늬흐 마을로 이사를 했다. 거기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파란 눈을 가진 백인 러시아 사람을 봤는데, 언어도 다르고 외모도 낯설어서 놀라웠다. 그래서 아버지를 찾아 "아버지, 이곳 사람들이 왜 우리랑 달라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조선사람들이 어떻게 사할린에 오게 되었는지, 어떻게 강제징용을 당했는지, 제국주의 일본이 조선을 합병했던 당시 얘기를 그때 처음 설명해 주셨다. 나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우리 가족은 돌아갈 조국이 있고, 밀양 박씨 가문의 피를 이어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만큼 나는 나의 뿌리에 대한 강한 자부심은 ‘나’라는 존재를 당당하게 했다. 아버지 나이와 비슷한 1세 분들은 만나면 똑같이 고향을 그리워 하셨다. 당시 사할린은 고향이 같으면 서로 서로 의형제를 맺고 기념 사진을 찍어두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일이었다. 어른들은 그 사진을 앞 주머니에 항상 넣고 다니셨다. 나 죽으면 이 사진을 누군가는 고향집에 언젠가는 가져가게 될거라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죽는날까지 간직하다가 자손들에게 남겨주고 간다. 그리고 누구나 항상 밤에 라디오 수신기를 켜고 한국 방송을 기다리셨다. 혹시나 고향 소식을 들을지도 모른다면서,...우리 아버지도 한국 노래를 들으시면서 자주 우시기도 하셨다. 당시 어린 나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이해가 안 갔다. "노래가 즐거운데 왜 우시지?”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아무 대답도 안하시고. 먼 하늘만 쳐다보시디가 독한 보드카를 한잔 드시고 주무셨다. 어느덧 나는 결혼을 하게 되어 집을 떠나게 된다. 88서울올림픽 때, 어느날 부모님 댁을 찾았다. 엄마와 아버지 두 분 다 눈이 퉁퉁 부어 계셨다. 밤새도록 우셨다고... 어제 늘 듣고 있던 라디오에서 바로 아버지 ‘박정환’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셨다. 사방팔방으로 연락을 취해 사할린 동포들을 돕고 있는 일본의 변호사 타카기 켄이찌를 통해 편지로 연락을 하게 된다. 다음 해 아버지 친척의 초청을 받아서 나는 난생 처음 부모님을 모시고 일본을 통해 한국을 찾아갔다. 아버지는 3형제 중 둘째이시고, 아버지의 형과 남동생은 6.25전쟁 때 실종되셨다고 했다. 한 집안 삼형제가 뿔뿔히 헤어지게 된 것이다. 남의 나라들이 일으킨 전쟁이 만든 상처는 너무 컸다. 한국 방송에서 우리 아버지를 찾은 분은 한국에 계시는 작은 아버지의 아들과 딸이다. 소식이 주고 받다가 한국 적십자의 도움으로 우리는 어머니를 모시고 그리운 조국 땅에 발을 내렸다. 어머니는 사할린에서 일본으로 끌려간 외할아버지의 소식부터 알아보는 것이다. 우리는 아버지의 고향인 하의도, 친척들이 사는 목포, 어머니의 고향인 제주도를 다 찾아가서 친척들과 눈물 젖은 상봉을 했다. 물론 서울도 가보았다. 제주도에는 어릴 때 우리 엄마가 업어 주며 키웠다던 조카들을 만나서 가족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보자 마자 피를 나눈 형제라는 피붙이들이 나누는 뜨거운 정은 사할린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감동이었다. 다행히 우리는 일본에 홀로 남겨진 어머니의 오라버니 연락처를 받게 되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일본 땅에 묻히신 아버지의 묘지를 찾아가겠다고....엄마는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약속을 했다. 그 당시에는 일본에 친척이 있는 경우 외국방문 허가가 떨어졌지만 일본에서 친척을 찾고 방문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소비에트 정권이 무너지면서 더욱 어려웠다. 그래서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의 묘를 찾으려는 소원을 이루지 못하시고 1995년에 돌아가셨다. 다음 해 고향을 그리워하시던 아버지는 '이제 엄마도 없으니 고국으로 가고 싶다.'라는 의사를 나타내셔서 우리는 가족 모임에서 '그렇게 해드리자.'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영주귀국을 하셔서 처음에 아버지는 춘천 '사랑의집' 양로원에서 계시다가 나중에는 노환으로 재활기관인 인천 '사할린한인복지회관'으로 옮기셨다. 1년 후 나는 아버지의 건강이 염려되어 자식 된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 사할린에서 일을 그만 두고 한국으로 들어와서 여러 가지 힘든 일과 통역을 하면서 휴일마다 인천 양로원에 누워 계신 아버지를 찾아서 위로해 드렸다. 그러나 한국에 온지 5년이 지나서 출가를 한 맏딸이 출산을 하게 돼서 손녀를 돌봐주기 위해 완전히 사할린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다. 그리고 나서 2008년에 아버지께서는 조국에서 10년을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나는 아버지의 유해를 사할린으로 가져와 어머니의 묘 곁에 나란히 안치해 드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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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코로나에도 온정의 손길, 오히려 더 따뜻했다#코로나에도 온정의 손길, 오히려 더 따뜻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2020년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 중 설문 응답 기업과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기업 등 191사를 조사한 결과, 1사당 사회공헌 지출액은 136억 7685만 원으로 전년 대비 7334만 원(0.5%)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분야별로는 ‘취약 계층 지원’과 ‘교육·학교·학술’ 분야에 각각 33.8%, 24.9%로 총지출의 절반 이상이 지원됐다. 또한 ‘문화·예술·체육’ 분야(12.1%)에 이어 ‘응급·재난구호’ 분야의 지원이 4.3%로 전년 대비 약 5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코로나 사태로 소외된 취약 계층과 학습 결손이 심각했던 교육 현장, 태풍·수해 등 재난 재해로 막대한 재산 손실이 발생한 곳에 기업의 지원이 증가하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달라진 사회 분위기를 반영해 2020년 이후 신설된 기업의 사회공헌 프로그램만 70개에 달했다. 전경련은 지난해 기업 사회공헌 특징 키워드를 ‘HOPE(희망)’라고 제시하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고 희망을 추구하는 기업들의 노력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HOPE’는 Health Care(보건·의료 분야 및 관련 종사자 지원).On-tact(비대면·온라인 대면 활동).Problem-solving(사회적 문제 해결 동참).Environment(환경 친화적 사회 공헌)를 의미한다. 이상윤 전경련 상무는 이렇게 분석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건강·의료와 지속가능한 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비대면 일상의 장기화에 따른 온라인 프로그램 발굴, 지역사회가 당면한 문제 해결에 동참하려는 기업들의 대내적 의지가 반영돼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크게 늘어난 결과이다.” "우리나라 대기업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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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신간] 사랑해 크리스마스에도 사랑해베스트셀러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표지와 똑같이 귀여운 포즈로 아기가 곰돌이 인형을 번쩍 들어 올리고 있다. 그런데 이번엔 빨간 산타클로스 모자를 쓴 채, 예쁘게 장식한 크리스마스트리 앞에 서 있다.'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출간 15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특별판과 동시에 아기와 함께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고 사랑을 전하는 '사랑해 크리스마스에도 사랑해'(보물창고)가 보드북으로 새로 출간됐다.전작에 이어 13년만에 두 번째로 다시 호흡을 맞춘 두 작가의 글과 그림이 완벽한 컬래버레이션을 이루고 있어 눈길을 끈다. "부드러운 정서가 아늑하고 감성적인 독서를 하게 만든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성탄절 휴가에 아이와 꼭 붙어 지내기에 딱 좋은 책.” -〈커커스 리뷰〉 "즐거운 크리스마스에도, 귀엽고 예쁜 우리 아기에게 사랑을 전해요!"야, 앙증맞은 이 모습! 어디선가 많이 본 모습이다. 이젠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의 표지와 똑같이 귀여운 포즈로 아기는 곰돌이 인형을 번쩍 들어 올리고 있다. 그런데 이번엔 빨간 산타클로스 모자를 쓴 채, 예쁘게 장식한 크리스마스트리 앞에 서 있다. 신작 『사랑해 크리스마스에도 사랑해』는 오리지널인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의 ‘크리스마스 판’이자 표지부터 쌍둥이처럼 닮은 책이다. 베스트셀러 그림책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출간 15주년을 맞이하여 이를 기념하는 특별판(보드북)과 동시에, 우리 아기와 함께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고 사랑을 전하는 『사랑해 크리스마스에도 사랑해』(보드북)가 새로 출간되었다. 전작에 이어 13년만에 두 번째로 다시 호흡을 맞춘 두 작가의 글과 그림이 완벽한 컬래버레이션을 이루고 있어 눈길을 끈다. 기왕의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그림책이 부모가 아이에게 읽어 주는 책이었다면, 이번에 출간된 보드북 2권은 아이 스스로 장난감처럼 갖고 놀 수 있는 책이다. 이번 보드북 2권 출간을 계기로, 보물창고에선 캐롤라인 제인 처치의 〈사랑해 보드북〉 시리즈가 시작된다. 앞으로 신작 2권 『사랑해 온 마음으로 사랑해』 『사랑해 강아지야 사랑해』가 연달아 출간될 예정이다. "사랑해.”라는 말이 아무리 많이 들어도 결코 넘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마음을 끊임없이 전하는 이 귀엽고 예쁜 보드북들은 아이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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