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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硏究會)와 김초향1933년 판소리 명창들이 중심이 되어 산조명인(散調名人)·경서도소리명창·민속무용의 명인들을 규합하여 판소리·남도잡가·창극·산조·민속무용·경서도소리 등 한국전통음악의 공연 및 전수를 목적으로 모인 단체이다. 1933년 5월 10일에 당시 여류명창 김초향(金楚香)의 발의로 서울 관훈동에 있던 김초향의 집에 송만갑(宋萬甲)·김창룡(金昌龍)·이동백(李東伯)·정정렬(丁貞烈)·한성준(韓成俊) 등 판소리명창을 중심으로 한 여러 민속악인들이 모여 창립하였다. 연구회는 만들었으나 사무실을 마련하지 못하였으므로 1935년 서울 익선동에 있던 당시 여류명창 박녹주(朴綠珠)의 집에 모여 대책을 논의하고, 박녹주의 주선으로 전라남도 순천의 독지가 김종익(金鍾益)의 후원을 받아 그 해에 익선동에 큰 한옥을 마련하여 사무실을 차렸다. 당시 참가한 명인·명창들을 보면 송만갑·이동백·김창룡·정정렬·김연수(金演洙)·정광수(丁珖秀)·김준섭(金俊燮)·김초향·박녹주·김여란(金如蘭)·임소향(林少香)·김소희(金素姬)·박초월(朴初月) 등이었고, 김재선(金在先)·정원섭(丁元燮)과 같은 명고수(名鼓手), 강태홍(姜太弘)·박종기(朴鍾基)·한주환(韓周煥)·박상근(朴相根)·신쾌동(申快童)·정남희(丁南希) 등의 산조명인, 오태석(吳太石) 등 가야금병창명인, 한성준·박소군(朴素君)과 같은 무용명인(舞踊名人), 김연승(金演承)과 같은 경서도소리명창 등이다. 연구회는 여러 가지 공연에 참가하였고, 1935년에는 창극단체를 조직하여 그 해 봄에 정정렬 편곡으로 창극 「춘향전」을 창립기념작품으로 서울동양극장(東洋劇場)에서 공연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에 힘입어 조선성악연구회 창극단은 대구·부산·진주·광주·전주·함흥·평양·마산·충무·여수·목포·대전·청진·사리원·개성 등지의 전국 주요 도시를 순회공연하며 성황을 이루었다. 김초향(金楚香, 1900-1983)은 경북 대구(현재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20세기 전반에 활동한 판소리 여성 명창이다. 성명을 김초향(金初香)이라고 기록한 문헌도 있다. 12세(1911)부터 대구에서 가곡을 배웠고, 14세에 서울로 올라와 이동백(李東伯, 1866-1949), 김창환(金昌煥, 1855-1937), 정정렬(丁貞烈, 1876-1938), 송만갑(宋萬甲, 1865-1939) 등에게 소리를 배웠다. 14세에 장안사의 전속기생으로 들어가 판소리 몇 대목을 배우고, 바로 극장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공연으로 적지 않은 인기를 끌었던 그는 당시 『매일신보』에 연재되었던 기획 기사 〈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에 소개되기도 했다. 30대 초반까지 무대에서 판소리 공연을 하고 레코드에서 음반을 취입하는 등 활발히 활동했다. 32세 때, 조선음률협회에서 박록주(朴綠珠, 1909-1979)·박월정(朴月庭)·김초향의 특별공연으로 기획한 삼대여류명창회(三代女流名唱會)에서 단가 〈장부한〉과 〈소상팔경〉, 〈춘향가〉 중 '사랑가', 〈흥보가〉 중 '흥보 집터 잡는 대목', 〈심청가〉 중 '화초타령' 등을 불렀다. 34세에 조선성악연구회 창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는데, 그의 익선동 자택에서 조선성악연구회가 발족했으며, 창립 초기에는 그곳이 연구회 건물로 사용되었다. 결혼 후 국악계를 떠나 은거했다. 단가 〈운담풍경〉(Okeh 12100 短歌 雲淡風景 金楚香 鼓韓成俊), 〈춘향가〉 중 '박석티'(Victor 빅타-大衆盤 KJ1075 春香傳 박石틔(上) 金楚香 伴奏빅타-朝鮮樂團), 〈심청가〉 중 '범피중류'(Columbia 40081-A·B 沈淸傳 泛彼中流(上)·(下) 金楚香), 〈흥보가〉 중 '흥보 집터 잡는 대목'(Okeh 12107 興甫傳 興甫집터닥는데(上)·(下) 金楚香 鼓韓成俊), 〈적벽가〉 중 '삼고초려'(Regal C174-A·B 三國誌 三顧草廬 (一)·(二) 金楚香 鼓韓成俊·Regal C175-A·B 三國誌 三顧草廬(三)·(四) 金楚香 鼓韓成俊) 등을 유성기 음반으로 남겼다. 성음의 억양이 지나치고, 일구 일절에 편벽의 힘을 쏟아 전체적으로 부자연스럽다는 평이 있었다. 이화중선(李花中仙, 1899-1943)과 대비되는 창법을 구사했다고 하는데,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창법보다는 격정적으로 질러내는 창법을 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흥보가〉를 장기로 삼았으며, 〈춘향가〉 중 '사랑가'도 잘 불렀다. 강태홍(姜太弘, 1894-1957)과 함께 〈운담풍경〉을 작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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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가야금 병창 중요무형문화재인 향사(香史) 박귀희 명창우리나라 최초의 가야금 병창 중요무형문화재인 향사(香史) 박귀희 명창(1921∼1993) 박귀희 명인의 고향인 경북 칠곡군은 2012년 향사 박귀희 명창 뮤지컬(연희 창극)을 제작·발표하고, 전국가야금병창대회도 열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칠곡군에서 호국평화공원과 연계하여 향사 박귀희 명창 기념관을 건립하여 국립전통예술고 유품전시관으로부터 유품을 확보하여 전시할 계획이다. 평생을 국악발전에만 쏟은 국모 박귀희가 있었기에 우리 국악은 체계를 잡고 많은 발전을 이룩했다. 국악을 통해 우리 문화의 초석을 다진 향사 박귀희의 숭고한 예술정신을 기리기 위해 고향 칠곡에서는 칠곡향사아트센터의 개관을 앞두고 고인의 유품 기증이 이어지고 있다. 칠곡군 관계자에 따르면 칠곡향사아트센터 내 박귀희 명창 전시실 조성을 위해 고인의 유품을 기증받은 결과 약 160여 점에 달하는 유품을 수집했다고 밝혔다. 고인이 설립한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구 국악예술학교)를 비롯하여 고인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다수의 유품을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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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제무형유산영상축제-우리는 언제나 태평성대를 기원한다우리는 언제나 태평성대를 기원한다 TV만 틀면 안 좋은 내용의 뉴스들이 나온다. 이러한 난세에 우리의 안녕을 바라며, 과거의 우리 선조들이 태평성대를 기원했던 방법인 태평무를 소개하고 동작한다. 태평무의 역사와 특징을 사료와 전공자의 실제 시연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우리의 안녕을 염원하는 방식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 정신과 태평을 기원하는 마음은 같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끝맺는다. #무형유산유튜브공모전 #영상축제공모전 #국제무형유산영상축제 #우리는언제나태평성대를기원한다 http://iiff.i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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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제무형유산영상축제--30년대 판소리 트랙12020국제무형문화유산영상축제 코로나로 각종 전통행렬이 취소돼 30년대 판소리를 활용해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보았다. 1935년 '새타령' 음원은 국악음반박물관이 2003년에 최초로 복각, CD음반으로 제작 공개하여 여러 방송, 인터넷상에 다양한 경로로 많이 복제 배포된 바 있다. 전통행령은선왕조를 창건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 봉안행렬을 참고 했습니다.봉안이란 신주(神主)나 화상을 받들어 모시는 것을 말한다. 1688년 숙종 14년에 서울 영희전의 태조 어진을 새로 모사하기 위해 전주 경기전의 태조어진을 서울로 모셔갔다가 다시 전주로 모셔오는 과정을 재현하는 모습이다. #무형유산유튜브공모전 #영상축제공모전 #국제무형유산영상축제 #30년대판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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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명작다큐] 카레이스키150 3편 “오딧세이-기나긴 여정”KBS 다큐 [KBS Documentary] 명작다큐 카레이스키150 3편 "오딧세이-기나긴 여정”(2014.08.29 방송) 3편 '오딧세이-기나긴 여정'은 러시아공영방송 RTR의 여자 앵커 고려인 5세 마리나 김의 1인칭 시각으로 강제이주 이후 현재까지의 고려인들의 역사를 살펴본다. 러시아 공영방송 RTR의 고려인 앵커우먼 마리나 김 -마리나 김은 고려인 5세다 올해 33세인 그녀는 러시아 공영방송 RTR의 기자이자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 중이다. 취재능력과 빼어난 미모로 러시아를 대표하는 저널리스트로 성장중이다. -마리나 김은 2차세계대전 참전 베테랑들을 취재하던 중 우연히 1918년생인 고려인 2세 정상진을 만났다. 정상진은 소련 태평양한대 소속 해병대원으로 1945년 8월13일 청진항 상륙전에 선봉대로 참전했다. 그는 한반도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인 유일한 한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온 노병이었다. -마리나 김은 정상진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고려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느끼면서 점차 정상진의 일생을 취재하는 과정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평양과 서울을 취재하는 마리나 김의 분단조국 체험기 -마리나 김은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평양과 서울을 차례로 취재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평양에서는 아리랑공연을 보고 유치원과 지하철 백화점 그리고 판문점을 취재하면서 북한의 속살을 살폈다. 서울을 방문하여 임진각을 찾고 세종시를 취재하고 명동과 강남에서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남북을 오가면서 분단된 할아버지의 나라에 대해 한없는 연민과 아픔을 느낀다. 3천만 한인들 중 가장 풍요로웠던 1930년대 연해주 고려인들 -1930년대 고려인의 숫자는 20만 명에 이르렀다. 소비에트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고려인의 근면성이 어울려 연해주 고려인 사회는 활기가 넘쳐 흘렸다,300개가 넘는 고려인 학교가 생기고 순한글 신문 '선봉'을 비롯하여 각종 잡지와 신문이 발간되고 한인라디오 방송국, 고려극장 등이 생겨 수준 높은 교육과 문화를 향유할 수 있었다. 학살과 강제이주 고려인 사회를 덮치다. -1937년 스탈린은 일본이 만주와 중국을 연달아 침입하자 연해주 고려인들이 일본에 동조할 것이란 판단 하에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학살한다. 지금까지 공식 발표된 학살자는 2,000여명이었으나 고려인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6,500명이 넘는다. -지도자를 처형한 후 소련 당국은 고려인 18만 명을 전원 중앙아시아 오지로 이주시킨다. 18만 고려인의 강제이주는 엄청난 시행착오를 일으키며 숱한 희생자를 낳았지만 고려인들은 하소연할 곳조차 없었다. 고려인 집단농장 폴리타젤, 시온고, 북극성 등의 눈부신 성장 -맨손으로 중앙아시아에 던져진 고려인들은 척박한 땅을 갈무리해 중앙아시아에 벼농사 재배를성공시킨다. 김병화, 황만금,김만삼 등의 헌신적인 지도와 고려인들의 협동심이 어우러져 마침내 소련 영방에서 최고의 생산성을 자랑하는 민족으로 거듭났다. -소련 최고 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가 고려인 농장을 방문하고 베트남 호치민 수상이 고려인 농장을 방문하여 모내기를 하고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이 고려인 마을 찾았다. 소련파 고려인- 북한정권을 수립하다. 해방이 되고 북한을 점령한 소련은 북한에 사회주의 정권을 세우기 위해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엘리트 500명을 북한으로 보낸다. 이들 고려인들을 소련파라 부른다. 허가이 박정해 박창옥 남일 등이 대표적인 소련파다. 그러나 이들 소련파들은 1950년 후반 김일성과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 중앙아시아로 쫓겨 난다. 또 다시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이다. 질기고 질긴 조국의 뿌리 김치, - 현재 고려인은 50만 명 정도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유라시아 대륙 20여개 국에 살고 있다. 스탈린의 한국어 교육 금지조치로 인해 고려인들은 한국말을 거의 잊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밥상에는 여전히 짐치라고 부르는 김치와 밥이 오른다. 고려인들이 있는 곳 어디나 김치 시장이 활기를 띈다. 고려인 한민족의 북방 진출의 파트너 -지난 8월16일 고려인 자동차 랠리 팀이 모스크바를 거쳐 중앙아시아 연해주 그리고 평양에서 8.15 경축행사를 한 후 개성을 통해 서울로 들어오는 대장정을 성공리에 마쳤다. 고려인들은 한국말을 모르지만 150 전 조국을 떠났던 할아버지의 나라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남북분단에 대한 한없는 아픔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명작다큐 카레이스키150" 관련 영상 보기 1편 "디아스포라 이산” https://youtu.be/n4iPCVjLR2c 2편 "레지스탕스 항전”https://youtu.be/d8Yy9iSer5w 3편 "오딧세이-기나긴 여정”https://youtu.be/WNCzzVizAMc#카레이스키#고려인#독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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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명작다큐] 카레이스키150 2편 “레지스탕스 항전” (2014.08.28 방송)KBS 다큐 [KBS Documentary] 명작다큐 카레이스키150 2편 "레지스탕스 항전” (2014.08.28 방송) 최초 발굴-100년 전 연해주 청소년 공연단 상트 페체르부르크 공연 동영상! -취재진은 러시아국립영상사진 아카이브에서 연해주 고려인 지도자이자 최재형 선생이 사비를 털어 조직한 80여 명의 한인 청소년 공연단이 매스게임을 하는 동영상을 특종 발굴하였다. -이 필름은 상트 페체르부르크에서 1913년 열렸던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탄생 300주년 축하행사에 참가한 고려인 청소년들의 공연 영상이었다. 고려인들이 러시아에 이주한지 50여 년이 되던 이 때 최재형은 고려인의 역량을 러시아 황제 앞에서 선보인 것이다. -고려인 청소년 공연단이 흰색 한복바지, 저고리를 입고 신식 모자를 쓴 채 집단율동을 씩씩하게 선보이는 장면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체코 현지 취재-체코군단과 연해주 고려인 독립군과의 무기 거래 -오스트리아는 1차세계대전 중에 식민지 체코인들을 징집하여 전선으로 보낸다. 이들 체코인들이 러시아로 도망쳐 만든 군대가 체코군단인데 그 수가 무려 7만 명이었다. 이들은 태평양을 건너 프랑스로 가기 위해 블라디보스톡으로 온다. 이때 경비가 필요했던 체코군단과 무기가 필요했던 고려인 독립군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무기구매가 은밀하게 이뤄졌다. -체코군단의 무기를 구입하기 위해 일본의 은행을 털었던 15만원(현재가치 75억 원)사건은 영화 '나쁜 놈 참한 놈 이상한 놈'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다. 15만원 사건의 주역이었던 애국지사의 후손들을 통해 15만원 사건이 가지는 의미를 짚어본다 -체코 프라하에서 취재진은 체코군단의 지도자였던 가이다 장군이 상해임시정부를 방문해서 받았던 선물의 목록을 발굴하였는데 이는 상해임시정부가 공식적으로 체코군단과 연해주 독립투쟁의 연관성을 인정하는 주요한 자료다. 상해임시정부가 가이다 장군에게 선물한 화병은 막대한 분량의 무기를 우리 독립군들에게 헐값으로 넘겨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청산리 전투의 주역 이범석 장군이 생전에 체코군단과 북로군정서가 은밀하게 대량의 무기를 구매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청산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고 증언하였다. 특히 체코군으로부터 구매한 무기를 은밀하고 신속하게 운반하기 위해서 동포들로 구성된 운반대가 수백 명 규모로 조직되어 연인원 수천 명이 이어받기로 운송한 사실들을 확인했다. 연해주 고려인 독립군 부대 일본군 7만 대군과 싸우다. -1910년 후반 10만이 넘는 연해주 고려인 사회는 한반도와 잇닿아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연해주를 기반으로 독립투쟁을 벌인다. 특히 1918년 일본군이 러시아혁명에 간섭하며 연해주와 시베리아에 7만 대군을 파병하자 연해주 고려인들은 소비에트 혁명군과 손잡고 일본군과 전면전을 선포한다. -일본군에 맞서 연해주 곳곳에서 고려인 무장독립군부대가 생겨나는데 한창걸 부대 최호림 부대, 혈성단, 독립단 부대, 솔밭관 부대, 우리 동무군, 대한의용군, 군비단 등 최대 36개 부대 4천여 명의 고려인 독립군이 연해주와 하바롭스크 주 곳곳에서 5년 동안 일본군과 치열한 무장 투쟁을 벌인다. -올가항 전투, 달레테첸스크 전투, 파르티잔스크 전투, 볼로차예프 전투 등에서 소비에트 혁명군과 연합하여 일본군과 러시아 반혁명군에게 강력한 타격을 준다. 이처럼 지속적이고 강력한 독립전쟁을 계속할 수 있었던 요인은 연해주의 10만 고려인 사회의 적극적인 군자금모집과 각종 후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연해주 고려인 항일무장투쟁의 장엄한 역사는 해방 이후 남북이 나눠지면서 남쪽에서는 반공이데올로기에 가려서 지워졌고 북에서는 김일성 중심의 무장투쟁이 강조되면서 사라졌다. 연해주 고려인 독립투쟁의 역사를 재조명하여 이들의 숭고한 투쟁을 선양해야 할 때다. 러시아 혁명의 주역이 된 고려인 -취재진은 러시아 정치사회역사 도서관에서 1921년 11월 28일 크렘린 궁에서 러시아 혁명의 최고 지도자 레닌과 이동휘 선생을 단장으로 한 고려인 대표단이 조선독립에 관해 깊이 논의한 역사적 자료를 취재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고려인들은 전폭적으로 혁명을 지지한다. 고려인들이 혁명을 열렬히 지지한 이유는 계급타파와 민족차별철폐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일본군과 싸우는 소비에트 정부의 정책이 조선독립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에 대한 고려인의 입장을 생생히 표현하고 있는 보리스 쿠스토디예프의 그림 '제2차 코민테른 대회 기념축제'라는 그림 속의 태극기를 통해 혁명의 열기와 고려인의 기대를 확인해본다. 또한 고려인 독립군 부대의 깃발과 레닌의 연설장에 태극기를 들고 참석한 고려인 대표단의 필름도 취재했다 ※"명작다큐 카레이스키150" 관련 영상 보기 1편 "디아스포라 이산” https://youtu.be/n4iPCVjLR2c 2편 "레지스탕스 항전”https://youtu.be/d8Yy9iSer5w 3편 "오딧세이-기나긴 여정”https://youtu.be/WNCzzVizAMc#카레이스키#고려인#독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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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명작다큐] 카레이스키150 1편 “디아스포라 이산”KBS 다큐 [KBS Documentary] 명작다큐 카레이스키150 1편 "디아스포라 이산” (2014.08.21 방송) 올해는 1864년 조선인이 최초로 러시아 연해주에 이주한 지 150년이 되는 해다. 이들은 연해주를 기반으로 조선말부터 한인 사회를 일궈 가다 이주 70여년 만에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했다. 갖은 역경을 이기고 지금은 러시아 모스크바, 연해주, 중앙아시아 등 유라시아대륙 20여 개국에 50만 명이 살고 있다. 이들을 고려인, 카레이츠, 카레이스키라고 부른다. 취재진은 지난 1년간 러시아 전역과 중앙아시아 5개국 및 폴란드 체코 독일 등의 기밀문서 및 영상 자료들을 집중 발굴하고,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한국 근현대사의 숨은 주역들을 발굴 취재하였다. 중앙아시아는 갈수록 자원 개발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한국과의 관계가 깊어지고 있고 이 지역 출신 카레이스키 3만 명을 포함하여 우즈벡 키르키즈인 수만 명이 한국에 취업하여 고려인 촌을 형성하고 있다. 러시아 푸틴 정부는 연해주 개발과 한반도를 연계하기 위해 2011년부터 연해주 특별 개발을 시작했다. 러시아 이주 150주년을 맞이하여 민족의 고난기에 디아스포라와 유랑의 고통에 내몰렸던 고려인들의 역사를 돌아보고 한민족의 일원인 이들과 우리가 어떤 관계를 설정할 것인가를 조망해본다. 1편 디아스포라 - 이산 특종 발굴1-고종의 시종무관 김인수 참령의 후손 100년 만에 이르쿠츠크에 나타나다. 김인수는 대한제국의 참령이자 고종황제의 시종무관이었다. 그는 러시아 국적자이기도 했다. 조선에서 황제의 통역관으로 근무하던 중 러일 전쟁이 터지자 러시아로 탈출하였다. 취재진은 이르쿠츠크서 자신들이 김인수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러시아 가족을 만났다. 이들은 김인수가 남긴 사진과 친필 편지를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보관하고 있었다. 김인수는 러시아로 탈출한 후 러시아 장교 빅토르 김으로 1차세계대전에 참전하였고 폴란드 바르샤바전선까지 참가했다. 김인수는 러시아군 대령으로 전선을 누비며 러시아 황제로부터 최고 훈장까지 받았다. 김인수의 후손들은 러시아 혁명이 발생하자 김인수 부인의 성으로 바꾸고 숨어 살았다. 특종 발굴 2 - 100년 전 폴란드 탄네베르크 전투에서 독일군 포로가 된 고려인들 1차세계대전 당시 러시아군으로 독일군에게 포로가 된 고려인들의 자료가 독일 훔볼트 대학에서 발견되었다. 그들의 생생한 자필 신상카드, 군복차림의 각종 사진들, 더구나 100년 전 우리의 노래와 수수께기 등을 담은 음반도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그들의 노래는 100년 전 우리 노래가락을 생생히 들려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이들 포로들의 정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취재진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이들은 연해주의 짜레찌예 출신의 고려인이며 구한말 일본군에 맞서 두만강 변에서 의병투쟁을 벌이다 나라가 망하자 러시아 시베리아 보병사단에 몸을 의탁했던 베테랑 전사들이었다. 이들은 1차세계대전 당시인 1914년 8월 러시아군이 독일군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던 폴란드 탄넨베르크 전투에서 독일군 포로가 되었다. 1916년 3년 째 독일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하던 중 이 기록을 남겼다. 이들 외에도 4,000명의 고려인 1차 세계대전당시 러시아군에 입대하여 독일전선에 참전한 기록들을 발굴하였다. 의병장의 5대손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다 카자흐스탄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데니스 텐은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남자피겨스케이팅 부문에서 카자흐스탄의 유일한 메달인 동메달을 획득한다. 데니스 텐은 구한말 원주 진위대 장교 출산의 의병장 민긍호의 5세손이다. 의병장의 후손이 어떻게 카자흐스탄까지 가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 데니스텐이 소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는 과정을 밀착 취재하여 그가 느끼는 할아버지의 나라에 대한 생각과 그의 동메달이 고려인들에게 주는 자부심을 살펴본다. 또한 카자흐스탄 곳곳에 흩어져 사는 민긍호의 후손들이 고려회관에 모여 데니스 텐의 메달을 응원하는 과정을 통해 고려인들의 끈끈한 친족애를 살펴본다. 동메달을 따자마자 홀로 조용히 원주를 방문하여 할아버지 민긍호의 산소를 참배하는 데니스 텐의 모습을 단독 취재했다. ※"명작다큐 카레이스키150" 관련 영상 보기 1편 "디아스포라 이산” https://youtu.be/n4iPCVjLR2c 2편 "레지스탕스 항전”https://youtu.be/d8Yy9iSer5w 3편 "오딧세이-기나긴 여정”https://youtu.be/WNCzzVizAMc#카레이스키#데니스텐#고려인#독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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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아리랑 공모전 대상 ‘애니깽 아리랑’대상의 주인공은 멕시코에 거주 중인 마리아 에우헤니아 올센 아길라르의 ‘애니깽 아리랑’입니다. 마리아의 선조는 일제 강점기에 멕시코로 이주한 조선인 노동자, 소위 애니깽 중 한명이었습니다. 그들은 힘든 노동 속에서도 조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아리랑을 불러왔고 세대를 거쳐 전승되어왔습니다. 마리아는 이주노동자의 4세 후손으로서 멕시코 유카탄 무궁화 뮤직&발레단(The Mugunghwa Ballet of Korean Music and Dances in Yucatán)의 단장을 맡아 멕시코 내에 한류를 전파하고 있다. 이번 공모전에서 그녀의 작품은 조상이 가진 한(恨)과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아리랑으로 잘 표현하였다는 심사평과 함께 대상의 영예를 차지하였습니다. - 공모형식_노래 부르기 - 공모주제_지역·전통아리랑 - 참가자_마리아 에우헤니아 올센 아길라르(Maria Eugenia Olsen Aguilar) #멕시코 #감동 #아리랑 #한국문화재재단 #공모전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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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철가(이산저산) 서편제中 - 김명곤(kim myung gon)사철가(이산저산) - 김명곤(kim myung gon) 1993년 영화 서편제中 #판소리 #서편제 #단가 #사철가 #이산저산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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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OST 국악버전 모음 (Animation OST Orchestra Ver) / 공부할 때 듣는 동양풍 음악1. 00:00 너의 이름은 OST - 아무것도 아니야 (Your Name OST - Nandemonaiya) 2. 05:53 겨울왕국 2 OST - All Is Found (Frozen 2 OST - All Is Found) 3. 08:02 명탐정 코난 OST - Hello Mr. My Yesterday (Detective Conan OST - Hello Mr. My Yesterday) 4. 13:09 짱구는 못말려 OST - 히로시의 회상 (Crayon Shin Chan OST - Hiroshi no Kaisou) 5. 16:07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 - 인생의 회전목마 (Howl's Moving Castle OST - Merry Go Round of Life 6. 21:20 달빛천사 OST - Myself (Full Moon wo Sagashite OST - Myself) 7. 26:04 알라딘 OST - A Whole New World (Aladdin OST - A Whole New World) 8. 28:46마녀배달부 키키 OST - 바다가 보이는 마을 (Kiki's Delivery Service OST - A Town With An Ocean View) 9. 32:33 약속의 네버랜드 OST - 이자벨라의 자장가 (The Promised Neverland OST - Isabella's Lullaby) 10. 34:57 모아나 OST - How Far I'll Go (Moana OST - How Far I'll Go) 11. 37:30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ST - 어느 여름날 (The Spiriting Away Of Sen And Chihiro OST - One Summer's Day) 12. 41:12 겨울왕국 2 OST - Show Yourself (Frozen 2 OST - Show Yourself) 13. 45:45 이누야샤 OST - 시대를 초월한 마음 (Inuyasha OST - Affections Touching Across Time) ♪ MP3 파일: http://flowmusic.kr ♪ MP3 File: http://flowmusic.kr/english 음악・그림・영상 : 플로우뮤직 사용한 악기는 25현 가야금, 거문고, 대금, 해금, 아쟁, 피리, 단소, 소금, 태평소, 장구, 북, 꽹과리, 양금, 징입니다 Music・Illustration・Video : Flow Music The instruments I use are 25 Strings Gayageum, Geomungo, Daegeum, Haegeum, Ajaeng, Piri, Danso, Sogum, Taepyeongso, Janggu, Buk, kkwaenggwari, Yanggum, and Jing which are Korean traditional instru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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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나는 고려인이다’ : 무편집 30분 풀영상주최 : 고려인인문사회연구소,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주관 : (사)고려인마을, 광주문화재단, 광주전남연구원, 호남대학교LINC+사업단, 카자흐스탄 고려일보 후원 : 고려인동행위원회, 광주광역시교육청, 재외동포재단, 광주광역시사회복지사협회, 도경건설 문의 : 고려인인문사회연구소, 010-4617-0783 / 062-961-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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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urn of an "Angbuilgu” Sundial, the Epitome of Joseon Scientific Technology and Reflection of the King’s Love for the People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지난 상반기 미국의 한 경매에 출품된 조선 시대 해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晷)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최응천)을 통해 지난 6월 매입해 17일 오후 2시 국립고궁박물관(관장 김동영)에서 공개한다. 문화재청은 지난 1월 이 유물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였고 유물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검토, 국내 소장 유물들과의 과학적 비교분석 등을 진행하였으며, 코로나19로 인해 3월부터 6월까지 수차례 경매가 취소되고 연기되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 8월 마침내 국내로 들여오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앙부일구’는 ‘하늘을 우러러 보는(仰, 앙) 가마솥(釜, 부) 모양에 비치는 해 그림자(日晷, 일구)로 때를 아는 시계‘ 라는 뜻으로, 조선 시대 과학 문화의 발전상과 통치자의 백성을 위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이번에 환수된 앙부일구는 18세기에서 19세기 초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지름 24.1㎝, 높이 11.7㎝, 약 4.5㎏의 무게를 지닌 금속제 유물이다. 정확한 시간과 계절을 측정할 수 있는 조선의 우수한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동시에, 정밀한 주조기법, 섬세한 은입사 기법, 다리의 용과 거북머리 등의 뛰어난 장식요소를 볼 때 고도로 숙련된 장인이 만든 높은 수준의 예술작품임을 알 수 있다.유교 국가에서 ‘관상수시(觀象授時, 하늘을 관찰하여 백성에게 절기와 시간을 알림)’는 왕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였다. 앙부일구는 백성을 굽어 살피는 애민(愛民) 정신을 담아 만든 조선 최초의 공중(公衆) 시계로, 세종 대부터 조선 말까지 제작되었다. 세종대왕은 앙부일구를 처음으로 만들어 백성들이 시간을 읽을 수 있도록 종묘와 혜정교(惠政橋, 지금의 서울 종로1가)에 설치한 바 있었다.현대 시각체계와 비교했을 때도 거의 오차가 나지 않으며, 절후(節候,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눈 기후 표준점), 방위(方位), 일몰시간, 방향 등을 알 수 있는 체계적이고 정밀한 과학기기다.이러한 높은 가치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과학 기기류는 기록으로만 전하는 것이 많으며, 이와 유사한 크기와 재질의 앙부일구는 국내에 불과 7점만 전하고 있다. 환수된 앙부일구는 서울의 위도에서 정확한 시간을 읽을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이제 고국의 하늘 아래로 돌아와 비로소 정확한 시간을 알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환수가 가지는 의미는 더욱 뜻깊다. 이번에 돌아온 앙부일구는 앞으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관리되며 자격루, 혼천의 등 기타 과학 문화재들과 함께 연구, 전시, 보고서 출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계획이다. 특히, 언론공개 다음 날인 18일(수)부터 12월 20일(일)까지 박물관 내 과학문화실에서 모든 국민에게 특별 공개할 예정이다.문화재청은 코로나19로 인한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부혁신과 적극행정의 하나로 성공적인 환수를 한 앙부일구를 동력으로 삼아 앞으로도 소중한 국외소재문화재 발굴과 환수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Return of an "Angbuilgu” Sundial, the Epitome of Joseon Scientific Technology and Reflection of the King’s Love for the People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Administrator Chung Jae-suk) will be making an Angbuilgu- a sundial from the Joseon Dynasty -available to the press at the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Director Kim Dong-young) at 2 PM on November 17. This sundial went on auction in the United States and was purchased this past June by the Overseas Korean Cultural Heritage Foundation (Chairman Choi Eungchon).Under the authority of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the Overseas Korean Cultural Heritage Foundation collected information about this sundial last January and conducted a close research and investigation of the item, including scientific analysis for comparison with other metal sundials housed in Korea. The scheduled auction of the sundial was postponed several times from March to June due to the COVID-19 pandemic, but it was finally brought home to Korea in August.The classical Chinese characters comprising the term "Angbuilgu” respectively mean "looking up at the sun”(仰, ang), "cauldron”(釜, bu), "sun”(日, il), and "shadow”(晷, gu), which together indicate "a sundial that tells time by the shadow of the sun cast over its cauldron-shaped body.” Angbuilgu sundials testify to the advanced science of the Joseon period and are symbolic of the Joseon king’s love for the people.The returned Angbuilgu sundial is believed to have been produced between the eighteenth and early nineteenth century. It measures 24.1 centimeters in diameter and 11.7 centimeters in height and weighs around 4.5 kilograms. The use of elaborate metal casting methods, refined silver inlay decoration, dragon and turtle head designs on the legs, and other features attest to advanced level of science and artistry measuring seasons and time in Korea at the time, and render it a high-quality work of art produced by skilled artisans.In ancient Confucian states, the king would observe the celestial bodies in order to inform the people of solar terms and the correct time. This was considered one of the most important royal duties, and Angbuilgu sundials were designed to serve this aim, thus reflecting the king’s love for the people. Angbuilgu sundials were the first public chronographs produced in Joseon, dating from the reign of King Sejong through the late Joseon period. King Sejong commissioned the first Angbuilgu sundials and ordered them mounted in front of the Jongmyo Ancestral Shrine and Hyejeonggyo Bridge (present-day Jongno 1-ga) so that people could know the time. Angbuilgu sundials make little time difference when compared with certain modern time standards. They are accurate and systematic scientific instruments that can inform users about the subdivisions of the seasons (a climatological standard based on 24 divisions of the year), bearings, sunset time, and directions.Despite their high value, few scientific instruments from the Joseon period managed to be preserved and are known today only through historical records. Only seven of these large metal Angbuilgu sundials exist in Korea. The retrieved Angbuilgu sundial only gives the correct time when it is calibrated for the latitude installed at Hanyang (Seoul). The return of the Angbuilgu sundial is indeed meaningful as it has finally been returned to its home country and can again give the correct time.The National Place Museum of Korea will take care of the Angbuilgu sundial and utilize it along with other scientific cultural properties such as the Jagyeongnu water clock and Honcheonui armillary sphere for research, exhibition, publications, and other diverse purposes. This Angbuilgu sundial will be displayed to the public at a special exhibition held in the Science Culture Gallery of the museum starting Wednesday, November 18, the day following the press viewing.Despite the many difficulties imposed by the COVID-19 pandemic,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successfully retrieved this Angbuilgu sundial as part of its contributions to the Government Innovation and Active Administration campaigns. Spurred by this achievement,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will continue to make sincere efforts to discover and retrieve precious Korean cultural heritage currently residing ab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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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 기지시줄다리기(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 민속축제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당진 기지시줄다리기(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 민속축제는 500여 년의 역사와 전통 속에 이어온 변천사로 주목을 받고 있다.보통 줄다리기 문화는 벼농사 재배권 마을에서 대부분 행해지던 민속놀이지만 기지시줄다리기의 경우 기지시(機池市)라는 지명에서도 줄틀을 보관하는 연못이 있는 시장마을이었다. 농경문화와 해양문화, 난장문화가 접목되면서 타 지역의 줄다리기와 달리 독특한 형태로 발전해 왔다.기지시줄다리기의 유래에는 다양한 주장이 있다. 기지시 시장이 예덕보부상이 서울로 오가던 길목에 있었던 탓에 300여 년 전부터 한 달에 장이 12번이나 섰을 정도로 기지시 줄난장은 호황을 이뤘다.기지시 시장이 발달하면서 내포지방의 교통 요지였던 기지시에 난장을 세우고 시장 활성화를 위해 줄다리기를 했다는 설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 한다.오늘날 기지시줄다리기 민속축제에 쓰이는 줄인 암줄과 수줄은 각각 무게 20톤, 길이 100미터, 직경 1미터가 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지만 기지시줄다리기에 사용되는 큰 줄이 처음부터 이렇게 컸던 것은 아니다.이에 맞춰 농경사회에서 작게 만들던 줄은 참여인원이 증가함에 따라 인근 안섬 지역에서 닻을 만들던 방식을 도입, 발전시키면서 지금의 줄틀을 이용해 다른 지역과 같은 두 줄 꼬기가 아닌 당진 기지시만의 세 줄 꼬기 방식의 큰 줄을 탄생시켰다. 500여 년 전 기지시 지역에 큰 재난이 닥쳐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터가 센 땅의 지기를 눌러주기 위한 행위로 줄다리기를 발전시켰다. 수상(水上)편과 수하(水下)편이 겨루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데 수상이 이기면 나라가 태평하고 수하가 이기면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승부에 연연하기 보다는 참가자 모두의 화합과 안녕을 기원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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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전승하고 있는 서산 박첨지놀이인간=즐거움 추구, 놀이를 통해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살아있는 모든 것은 즐거움을 추구한다. 유희(遊戲), 즐거움을 추구함에 있어 짐승과 식물 등 인간 이외의 것들은 본능에 따른다. 하지만 인간은 본능을 초월한 (자유)의지로 스스로를 제어하며 유희의 정도를 조절한다.놀이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사회적 즐거움 중 하나다. 본능을 초월한 자유의지로 상대를 고려하며, 상대와 함께 즐거움을 찾는다. 인간은 놀이를 통해 사회성을 기르고 타고난 성정 및 기질의 외연을 확장하여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놀이야말로 인간이 자유의지로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이다.충남 서산에 박첨지놀이가 정착한 시기는 1920년대로 추정된다. 지금의 탑곡리 고양동(음암면 탑곡리)마을 주민들이 첫 공연을 시작했는데 일제강점기 일본의 문화말살정책에 의해 중단됐다. 이후 1950년대 들어 재개됐다.서산 박첨지놀이는 남사당패로부터 전승됐을 가능성이 높다. 600여 년 전 고려시대부터 기원하는 놀이라는 속설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유구한 역사적 전통문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이 놀이는 1920년대 당시 탑곡리 마을주민이었던 주연산이 남사당패 출신 유영춘에게 인형제작법, 놀이방법, 관련재담 등을 배워 놀이형태로 재구성했다. 1954년 주연산으로부터 놀이를 배운 김동익이 마을주민들에게 전수함으로써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놀이는 탑곡리 사랑방 마루 및 마을회관 등을 중심으로 격년에 한 번씩 공연을 하다가 1980년 중반부터는 매년 추석을 전후로 정례화 됐다. 1990년대 들어 서산문화원이 중심이 돼 서산박첨지놀이보존회를 구성하고 지역축제에서 시연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는 탑곡리에 서산박첨지놀이 전수관이 건립돼 보존 및 전승에 노력하고 있다.국내유일 마을전승 인형극, 보물로서의 가치 탁월서산박첨지놀이는 2000년 1월 11일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됐다. 마을전승 민속인형극으로서는 국내 유일무이한 보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국가가 나서 관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일본의 경우 중요무형문화재는 특별관리 한다. 분라쿠라는 인형극은 일본예술문화진흥회를 비롯해 국가적인 지원을 받아 지금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문화재로 자리를 잡았다.문화재보유자 및 단체에게는 적지 않은 지원금을 보조해 문화재를 전승·보존·발전시키는 일만을 전담토록 한다. 지방자치단체는 해당 지역에 연고를 두고 있는 문화재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해 알뜰히 살피고 특별지원을 한다. 국내외 주요인사는 물론 외지관광객들이 지역을 방문하면 상설공연장에서 공연을 하며 자랑을 일삼는다. 이렇듯 일본의 무형문화재는 국가적 지원을 받아 나날이 발전해 왔다.중국의 그림자극 역시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뒤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화유산이 됐다. 이 극은 현재 시각적 이미지 강조, 새로운 창작방법 시도 등을 통해 중국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서산박첨지놀이를 보존하고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학자들은 일본과 중국, 인도 등의 사례를 들며 문화유산을 지키고 보존하려는 각국정부의 노력에 방점을 찍는다.반면 서산박첨지놀이는 지자체 차원에서 일부 지원을 받는 정도에 그친다. 중앙정부는 물론 국민들도 이 놀이를 잘 모른다. 재원이 부족해 홍보가 부족했던 점도 아쉬움 중 하나다. 제대로 홍보하고 제대로 된 공연장을 만들어 운영하면 박첨지놀이야말로 는 서산을 대표하는 수익형 관광상품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서산 박첨지놀이는 지역의 공동체의식을 확장하는데도 매우 중요한 마중물 역할을 한다. 공동체의식은 인간이 사회성을 기르는데 필수조건이다. 공동체의식 확장이라는 조건은 사회성이 결여된 오늘날 청소년들의 교육, 나아가 건조해진 현대인들의 정서회복에도 도움을 준다.박첨지놀이는 남사당 ‘꼭두각시놀이’의 영향을 받아 오랜 기간 존속했다. 이후 주연산, 김동익 등에 의해서 서산지방 고유의 문화적 특질을 살린 민속인형극으로 거듭나 자리매김했다.박첨지놀이가 크게 변질되지 않고 존속된 이유 중 하나는 크게 바꾸지 않으려는 충청도 사람들의 기질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서산은 불교문화(마애삼존불)가 만개했던 지역으로 인형극에 당시 불교문화가 그대로 녹아있다. 박첨지놀이의 둘째거리인 피조리거리(피조리거리의 특징은 연애하는 젊은이들을 꾸짖는 박첨지가 그들과 더불어 춤을 춤으로써 인간적인 동질성을 함께한다는 것임)가 생략되고 그와 관련된 어떤 인물도 연행되지 않는 점, 목수들이 ‘공중사’라는 절 짓는 거리에서 절을 부수지 않고 존립시키는 점, 평양감사 장례식 장면에서 불리는 상여가가 현재 서산 탑곡리의 장례 때 부르는 소리와 같다는 점 등이 서산과 서산불교문화의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이렇듯 서산박첨지놀이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 공동체의식을 매우 중히 여긴다. 집단을 위해 조화가 강조되는, 집단의 조화를 통해 마을의 공동체의식을 확장해나가는 것이 바로 박첨지 놀이의 특징이며 면면히 이어오는 서산 문화의 매우 중요한 가치라고 할 수 있다.이 놀이는 현재 서산시 음암면 탑곡리 마을사람을 중심으로 보존되고 있고 전문 연희패와 달리 인원의 제한을 두지 않는다. 놀이에 관심이 있는 마을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함으로써 공연을 하는 사람이나 구경하는 사람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공동체의식을 갖도록 만든다.유람 좋아하고 축첩만 일삼는 박첨지 비판서산박첨지놀이를 기록한 채록본은 현재 김동익과 허영호의 것이 있다. 김동익채록본에 따르면 박첨지의 놀이의 전체 연행은 1막, 2막, 3막으로 나뉘어져 있다.제1막은 박첨지의 팔도 유람기, 박첨지와 큰마누라의 상봉, 박첨지 큰마누라와 작은마누라의 싸움 등의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제2막은 평안 감사의 매사냥과 평안 감사의 장례식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제3막은 절 건축을 위한 시주소식, 그에 따른 스님의 시주 부탁이 주 내용이다.김동익 채록본은 연행의 전 과정을 세밀하게 기록하지 않고 전체연행의 핵심적인 내용만을 정리했다. 이 역시 충남 서산인들의 정서를 닮아있다.이와는 달리 허용호의 채록본에서는 박첨지놀이를 20장면으로 구분해 세밀하게 묘사했다. 제1장 박첨지의 팔도유람, 제8장 평안감사의 꿩 사냥을 위한 홍동지의 길 닦기, 제17장 공중사 짓기, 제20장 등장인물 단체 춤에 이르기까지 서산박첨지놀이의 완성도를 더했다.이렇듯 세 마당 스무 장면으로 구성된 박첨지놀이는 역시 과거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과 유사해 같은 계통의 유구한 역사성을 보존하고 있다. 하지만 남사당패 등 떠돌이 유랑패들의 놀이와 달리 마을을 중심으로 보존·전승되고 있기에 강한 연대의식이 내면에 깔려있다는 점이 색다른 특징이다.박첨지놀이의 주요내용은 집안은 돌보지 않고 유람만 좋아하며 축첩(畜妾)을 일삼는 박첨지에 대한 가족들의 비판이다. 구성원들은 이야기를 통해 박첨지의 무책임과 축첩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해학적 웃음거리를 만든다. 축첩은 비윤리적인 것이며 마침내 집안을 무질서하게 만드니 공동체를 훼손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김동익의 채록본 제2막, 허용호의 채록본 제8장에 나타난 평안 감사의 매사냥과 평안 감사의 장례식 마당에서는 양반과 평민 간 불평등, 즉 신분적 특권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을 드러낸다.3막인 절 건축을 위한 시주소식 그리고 스님의 시주 부탁장면에서도 신분적 차별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다. 평안감사의 횡포로 시력을 잃게 된 소경이 불공에 힘입어 눈을 뜨게 된다는 내용은 심청전 설화와 비슷하지만 백제 및 서산의 불교문화를 닮아 가슴에 맺혔던 한을 여지없이 풀어낸다.3막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온화한듯하면서도 해학적이며 해학적인 이야기 속에 강한 자신감을 표출한다. 박첨지 놀이의 3막은 서산 마애삼존불의 모습과 딱 맞아 떨어져 불교에 대한 비판보다는 불교를 통한 기적을 은근이, 그러나 내면적 강한 근성으로 기대하고 있다.서산 박첨지놀이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45명이다. 박첨지, 박첨지 동생, 박첨지 큰마누라, 박첨지 작은마누라, 박첨지 처남 명노, 홍동지, 스님, 상제 1과 2, 목수 네 명, 평양 감사, 말, 소경, 매, 꿩, 구렁이, 홍새 두 마리, 만장꾼 열두 명, 상여꾼 열두 명 등이 등장하는 인형들이다.이들은 모두 개성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특히 신체의 크기가 큰 차이를 보이며 비현실적인 비대칭이다. 그 중 홍동지인형이 인상적이다. 홍동지의 거대한 성기, 홍동지는 전체길이 33cm 중 얼굴이 16cm, 상반신 16cm, 하반신 27cm, 성기가 무려 30cm에 육박한다. 성기가 키의 절반을 차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연을 직접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또한 박첨지놀이에 등장하는 인형들의 재료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바가지, 소나무껍질, 칡넝쿨, 각목 등이다. 이 인형의 신체를 대충 천으로 둘둘 말아 연행자로 삼았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각각의 인물들은 떠도는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 연행처럼 일인다역이 아니라 일인일역을 맡는다. 누구라도 놀이에 관심이 있으면 참가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다.이러한 특성은 최근에 변화한 것이다. 박첨지 놀이도 처음에는 일인다역의 연행을 했다. 하지만 전승되는 과정에서 서산 탑곡리 만의 특징, 즉 마을 공동체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마을사람들과 혼연일체 되려는 공동체의식으로 변화된 것이다. 이렇듯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변화하는 문화 역시 서산사람들만의 정서에서 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형극을 보면 서산만의 독특한 사투리에 흠뻑 빠져든다.박첨지의 ‘박’은 인형을 박(바가지)으로 만들었다는 것에서 따왔고, ‘첨지’는 상대적으로 지체 낮은 양반 내지 나이 많은 사람을 낮잡아 해학적으로 표현했다.지체 낮은 양반인 박첨지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된다. 등장인물은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박첨지, 얼굴에 많은 점이 박힌 큰마누라, 연지와 곤지를 찍은 작은마누라, 붉은색 몸체의 홍동지, 눈코입이 비뚤어진 처남 명노, 승복을 입고 있는 스님, 상제들, 목수들, 평양감사, 소경, 만장꾼들, 상여꾼들 외에 말·매·꿩·구렁이와 같은 동물들로 구성된다.1막, 박첨지가 팔도강산을 유람하다 젊은 마누라를 얻어온다. 박첨지가 작은마누라에게 살림을 후하게 차려주자 마을사람들이 그를 비판하고 조롱한다.2막, 평안감사마당은 평안감사가 민생은 뒷전이고 매사냥만하다 꿩고기를 먹고 죽게 되어 상여가 나가는 과정을 그리는 과정에서 신분에 대한 특권을 해학적으로 비판한다.3막, 절 짓는 마당은 죽은 평안감사 가족이 시주를 걷어 공중사라는 절을 짓고 모든 중생이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마지막은 모든 연행자들이 나와 한바탕 질펀하게 춤을 추며 마무리를 한다.박첨지놀이의 아쉬움···시대에 맞게 변화·대중화 하려는 노력 절실서산박첨지 놀이는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전승되고 있는 전통인형극이다. 하지만 정기공연과 일부 기획공연으로만 축약돼 대중성을 잃어가고 있다.중국의 ‘그림자극’은 풍부한 콘텐츠를 첨가하고 시각적 이미지를 강화해 대중화하려는 새로운 창작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한 노력은 영화산업과의 접목까지 고려되고 있는 실정이다.반면 일본의 ‘분라쿠’는 국가나 지자체의 지원을 넉넉히 받고 있음에도 변화 없는 고전의 반복적공연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서산 박첨지놀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전통예술 한 가지로만 공연되는 가운데 오는 지루함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유희의 근본을 추구하되 현대인과 공감할 수 있는 작품으로 재창작되어야 한다.전통극은 당시를 사는 사람의 요구에 순치해야만 맥을 이어 보존할 수 있다. 서산 박첨지놀이의 전신인 꼭두각시놀이도 시대적 요구에 따라 변화했음으로 오늘날까지 살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전통의 원형보존도 좋지만 대중과 함께 공감해야할 놀이문화는 살아 움직이는 유형문화재임으로 반드시 당대인들과 함께 호흡해야 한다. 구수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아무 때나 욕설과 비속어를 사용해서도 안 된다. 현대인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에는 욕설이 없다.박첨지놀이를 보존하고 계승해야할 연행자(배우)도 필요하지만 이를 연구하는 학자도 필요하다. 놀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논리와 이론에만 치우쳐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남이 써놓은 자료만 가지고 주무르는 문헌연구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놀이’라는 무형문화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답을 현장에서 찾아야 한다. 현장을 중심으로 해야만 학술적 사고의 확대와 장르의 예술적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현장이론이 토대가 되어야만 놀이의 현대화가 이루어진다.전통놀이는 현대화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변화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전통극이 동시대인들과의 소통을 통해 길이 보존 계승되려면 학문적 이론이 뒷받침돼 좌표를 설정해 주어야 한다. 현장을 통해 시대를 읽고 시대에 맞는 문화적 환경의 변화를 이론으로 제시해주어야 할 과제가 학자들에게 있다.서산박첨지놀이의 연행자(배우)의 고령화···젊은 후계자 모색 필요서산박첨지놀이전수관은 현재 서산시 탑곡리에 있다. 배길선(상제,북,꽹과리) 손경순(스님,징) 이태수(박첨지,꽹과리) 최준석(명노,홍동지,소경) 송재환(동생,평안감사), 서화석(작은마누라) 이옥하(큰마누라) 김경창(태평소) 송명옥(산받이,장구)이 현재 놀이의 출연진이다. 이들은 서산탑곡리 박첨지놀이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고령이며, 후계자도 마땅치 않다.이들은 공연을 통해 박첨지놀이의 맥을 잇고 있다. 전수관이 생긴 다음부터는 전수관에서 공연을 하고 필요시 외부공연도 한다. 탑곡리 전수관에는 박첨지놀이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여러 행사도 펼친다. 특히 서산은 물론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 및 체험프로그램은 상당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유년기의 경험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들 중 서산박첨지놀이를 전수하는 배우가 나올 수도 있다.하지만 전통 그대로의 것만을 유지하는데 만족해서는 안 된다. 대중적 호응을 얻기 위해 놀이의 구성과 형식을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 대중적 호응을 얻지 못하면 놀이를 계승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고 현재의 출연진들이 죽고 나면 놀이도 사라지게 될 위기에 놓인 것이 현실이다.인간의 궁극적인 목표가 유희, 즉 즐거움의 추구라면 박첨지놀이야말로 우리민족, 특히 서산사람들에게 오랜 세월 즐거움을 선사해왔을 것이다.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는 매개로서의 박첨지놀이가 보존에 그치지 않고 계승 발전되려면 과거의 박첨지 놀이가 그랬듯이 지금의 박첨지놀이도 현대에 맞게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국가가 나서 유지하고 계승해야과학기술, 전통과 문화 등이 완만하게 변화했던 과거와 달리 현대의 환경은 격류처럼 요동치며 급변하고 있다. 전통연희작품들이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시간적, 문화적, 환경적 여건을 만들 여유가 없는 것이다. 특히 대중매체와 통신의 발달은 전통놀이뿐만 아니라 공연생태계 전체를 뒤흔들어 자생하기 힘든 구조적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전통극’더러 스스로 살아남으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전통극이 국가적 문화유산이라면 국가가 나서서 유지하고 계승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일본은 분라쿠를 비롯해 와쇼쿠, 노가쿠, 구미오도리 등을 유지하고 계승하기 위해 적지 않은 지원과 더불어 전통의 재창작을 통해 현대인들과 공감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이러한 문화재를 세계에 내놓고 자랑하기를 일삼는다. 중국 역시 그림자극이나 쿤취 등을 국제사회에 내놓고 문화의 우수성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우리의 경우도 적지않은 무형문화유산이 있다. 서산과 가까이 있는 기지시줄다리기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서산박첨지놀이 역시 잘만 포장해 발달시키면 유네스코 등재도 충분히 가능한 유산이다.명실 공히 우리는 일본보다 문화유산이 풍부하다. 그런데 많은 유산들이 감추어져 있다. 감추어진 유산은 서서히 소멸돼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과거 수많은 민족들의 언어가 그랬다. 그 소중한 언어유산이 지금은 사라지고 흔적조차 없다. 감추어진 우리의 무형문화재를 발굴해 보존하고 계승하는 작업은 당연히 국가가 해야 한다. 하지만 선진외국에 비해 그 노력이 자못 아쉽다.서산박첨지놀이는 대중화시킬 여지가 무척 많다. 사람들과 소통하며 즐거움을 추구하기에 너무 좋은 ‘꺼리’다. 특히 박첨지놀이는 현대인들과 소통하는데도 모자람이 없는 주제다. 박첨지놀이가 현대에 맞게 재창작돼 선보인다면 사람들은 이 놀이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즐거워할 것이다.박첨지놀이를 대중화시켜 국민들을 즐겁게 하고 나아가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만드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고령화된 탑곡리 ‘박첨지사람들’을 이어 젊고 유능한 ‘박첨지사람들’을 만드는 일에 국가 및 지자체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디트news24 최종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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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롭스크아리랑 앙상블 단원하바롭스크아리랑앙상블(예술단) 1 박 춘자 2 김 석복 3 이 명순 4 김 양순 5 조 선희 6 정 리따 7 김 알라 8 박 선자 9 정 순희 10 이 유리 11 안 옥자 12 이 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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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lfkingMusic by Franz Schubert. Poem by Johann Wolfgang von Goethe (see below for translation). Created by Oxford Lieder: www.oxfordlieder.co.uk Taken from the album 'Schubert Year by Year': https://stonerecords.co.uk/album/schu... Daniel Norman - Tenor Sholto Kynoch - Piano Jeremy Hamway-Bidgood - Director & designer The soundtrack is taken from "Schubert Year by Year", released on Stone Records in preparation for the 2014 Oxford Lieder Festival, "The Schubert Project", and the film was created by Jeremy Hamway-Bidgood. The Schubert Project was the UK's first-ever complete performance of Schubert's songs, 10 October - 1 November 2014. The album features one song from every year of Schubert's creative life, performed by a variety of distinguished artists. The Schubert Project won a prestigious Royal Philharmonic Society Award, cited for its 'breadth, depth and audacity of programming.' Find out more about Oxford Lieder, the UK's leading promoter of song, and its annual song Festival at http://www.oxfordlieder.co.uk/ Translation: The Elfking Who rides so late through the windy night? It is the father and his child. He holds the boy, Warm and safe. Son, why do you hide your face in fear? Father, do you not see the Elfking? With his crown and train? Son, it's just the mist. Come with me, lovely child We'll play games There are flowers on the beach and My mother has golden clothes Father, can't you hear What the Elfking is promising me? Be calm, my boy -- It's only the wind in the leaves. Lovely boy, will you come with me? My daughters will wait on you My daughters will sing and dance for you and rock you to sleep. Father, do you not see The Elfking's daughters there? Son, it's the old willows shining In the moonlight. I love you -- I'm aroused by your beautiful form And if you won't come, I will take you by force Father, father, he has grabbed me. The Elfking has hurt me. The father shudders. He rides fast, the groaning boy in his arms, Anxious, he reaches the farm. In his arms, the boy is dead. (Translation by Daniel No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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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11월 2주 음반 판매순위 발표YES24 음반 판매순위(집계기간 2020.11.2~2020.11.8) 1.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 minisode1 : Blue Hour 2. 박지훈 1집 - Message 3. 태민(Taemin) 3집 - Never Gonna Dance Again : Act 2 4. 잔나비 - 잔나비 소곡집Ⅰ 5. 비투비 포유(BTOB 4U) - 미니앨범 1집 : INSIDE 6. 제이비제이95(JBJ95) - 미니앨범 4집 : JASMIN 7. 보아(BoA) 10집 - BETTER [스페셜반] 8. P1Harmony(피원하모니) - 미니앨범 1집 : DISHARMONY : STAND OUT 9. 방탄소년단(BTS) - BE(Deluxe Edition) 10. 여자친구(G-Friend) - 回:Walpurgis Night ◇11월 2주 음반 발매 소식 엘라스트 미니 2집, 이적 정규 6집이 11일 발매된다. 11월 12일 탐쓴, 스테이씨, 루시, 적재의 신보가 발매되며 11월 13일 트레저 싱글 3집이 발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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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종묘대제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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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재‘경기민요’ 이은주 명예보유자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은주(1922년생/본명 이윤란) 명예보유자가노환으로 11월 2일(월) 오후에 별세하였다. 생년월일: 1922. 10. 6. 주요경력 - 1939. 인천 흥명극장 명창대회 장원 - 1955. 단성사 명창대회 장원 - 1975. 7. 12.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 인정 - 1991. 한국국악대상, KBS국악대상 특별상 수상 - 1993. 옥관문화훈장 수상 - 2006. 방일영 국악상 수상 - 2010. 한민족문화예술대상 수상 - 2013. 7. 17.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명예보유자 인정 경기민요는 조선 후기에 널리 향유되던 잡가를 20세기 초 서울이나 평양의 근대 도시적 분위기에 맞춰 세련되게 만든 새로운 노래 양식 전체를 아우르는광의의 개념이지만,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경기민요는 ‘경기좌창’이라 불리는‘경기긴잡가’ 12곡이다. ※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1975. 7. 12. 지정) 경기긴잡가는 경기 특유의 율조로 대개 서경적 혹은 서정적인 긴사설로 비교적 조용하고 은근하며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서정적인 표현이 많은 것이특징이다. 원경태 선생에게 경․서도소리, 가사, 시조, 잡가 등을 배우며 소릿길에 입문한 고(故) 이은주 명예보유자는 경기민요 종목의 초대 보유자였던 고(故) 묵계월(본명이경옥), 고(故) 안비취(본명 안복식) 선생과 함께 경기민요 3인방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고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경기민요 초대 보유자 3인이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떠나게 되었다. 고(故) 이은주 명예보유자는 1962년부터 한국민요연구회 초대 이사 겸 부회장,한국국악협회 이사 등을 역임하면서 한국민요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으며, 1975년 이은주 경기창연구원을 개원하여 후진 양성에 힘쓰는 등 한평생 경기민요의 보전과 전승활동에 헌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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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음반] 밀양아리랑채록화사업 '밀양아리랑'CD 1 : 1. 밀양아리랑 : 감내게줄당기기 이용만. 박종우. 신명숙. 신인자. 안철수. 정재용. 최선희. 박숙자. 17:37 2. 밀양아리랑 : 새터가을굿놀이 안유환. 유시종. 신영숙. 신진기. 바희조 박정기. 김훈중. 안복자. 박희남. 박정윤. 19:43 3. 광복군 아리랑 손기복. 이재숙. 이명희. 안미정. 홍도순. 이길순. 김민애. 한옥수. 조경숙. 김분이. 추금식. 4:22 4. 어린이 밀양아리랑 이겸림. 이정원 송두배. 송지현. 유제희. 김영진. 신서원. 류수현. 이여원. 박예빈. 이지민. 2:14 총 44:00 CD 2 : 1. 밀양아리랑 : 법흥상원놀이 손기복. 이재숙. 이명희 안미정. 홍도순. 이길순. 김민애. 한옥수. 조경숙. 김분이. 추금식 20:56 2. 밀양아리랑 : 무안용호놀이 박문호 이우택. 조희윤. 김삼수. 이수자. 권효수. 오세양. 16:56 3. 밀양아리랑 : 아리랑친구들 송두배. 이경림. 송지현. 유제희. 김영진. 신서원. 류수현. 이여원. 박예빈. 이지민. 이정원. 9:52 총 4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