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신문TV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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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2019년 제19회 명창박록주전국국악대전제19회 명창박록주전국국악대전 판소리 명창부 본선 제19회 명창박록주전국국악대전 판소리 고등부 본선 제19회 명창박록주전국국악대전 판소리 신인부 본선 제19회 명창박록주전국국악대전 현악 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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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문화예술 지원! "2020 문예진흥기금" 설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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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동현의 서도민요연곡곽동현의 서도민요연곡 2019년 6월 25일 웃는얼굴아트센터 공연 배치기-연평도난봉가-사설난봉가를 엮어 편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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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씨구TV] 강원도 정선 깊은골의 노래; 함광선의 정선아리랑 [Korean Soul Music; 한민족의 소리]강원도 정선 깊은골의 노래; 함광선의 정선아리랑 [Korean Soul Music; 한민족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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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이어가는 밀양북춤 하보경, 하용부(밀양북춤-하용부.행사:임수정전통춤판_동동(動動). 일시: 20130604, 장소:국립국악원 우면당, 출연:하용부, 원본소장처 : artskoreatv.com) 북춤이란 주로 북을 몸에 걸치고 북을 치면서 춤을 추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춤으로 밀양북춤과 진도북춤이 있으며, 각 지역을 대표하여 명인 명무들이 명작무로 추는 북춤 등도 있다. 밀양북춤이 끈을 어깨에 걸어 손으로 북을 잡고 한 손으로 북을 치며 추는 춤이라면 진도북춤은 어깨와 몸에 북을 고정시켜 두 손으로 북채를 들고 추는 춤이다. 밀양백중놀이는 옛날부터 밀양에서 전래되어 오는 갖가지 민속춤인 양반춤, 병신춤, 범부춤, 오북춤 등을 줄거리로 한 머슴놀이의 일종이다. 이는 농촌에서 힘겨운 세 벌 논매기를 끝내고 칠월 백중날을 전후하여 용날[辰日]을 택해 머슴들이 풍년을 비는 뜻으로 농신農神에 대한 고사를 지낸 다음 호미씻이를 할 때 여흥으로 여러 가지 놀이판을 벌여 온 데서 비롯된 놀이이다. 따라서 밀양북춤은 다섯 사람의 춤꾼이 북을 울러 메고 나와 북춤을 추는 오북춤을 말한다. 이 중 수북(설북, 우두머리 북꾼)이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여 독립적으로 보여 주는 외북놀음(외북춤)이 있어 오늘날 홀춤으로서 밀양북춤을 연행하기도 한다. 오북춤은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북을 치면서 나와 다섯 사람이 중앙으로 모여 원이 되고 다시 원 선상으로 돌아가면서 북을 친다. 또 북잽이들은 원의 중심부로 들어가 제자리에서 힘차게 북을 한 번 친 다음 빠른 장단으로 다섯 번 북바퀴를 치고 이어서 북 가죽을 다섯 번 치는 등 힘차고 멋있는 북가락이 이어진다. 이렇게 하여 북잽이들은 회무回舞하면서 원 밖으로 돌아오고 여기서 모든 잽이가 장단을 멈춘 가운데 북잽이들만 자진가락으로 흥을 일으킨다. 이것을 북울림이라 하는데 처음에는 북울림을 쳐서 흥을 돋우기도 한다. 북울림을 한 다음 둥글게 돌아가며 북을 힘차게 치고 나서굿거리장단으로 너울거리며 춤을 추고 까치걸음, 걸어나가기 등 갖가지 허튼춤을 춘다. 다시 자진모리장단에 둥글게 돌아가며 원 안으로 향하여 힘차게 가락을 치며, 북울림을 한 다음 뒤풀이로 어울림가락을 치며 신명을 돋우고 덧배기로 돌다가 북울림을 하고 퇴장하는 순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이 춤의 대표적인 춤사위는 황산학사위, 도듬새, 오른팔 날개펴기, 두루거리 변형, 자진걸음, 까치걸음, 덧배기사위, 북배김 등이 있으며, 동작 구성은 다음과 같은 형태로 정리해 볼 수 있다. 1.첫 박에 북을 크게 치고 북채 든 팔을 옆으로 들어 올리면서 매 박자마다 걸어 나가는 춤사위. 2.첫 박에 북을 치고 오른발을 들어 주면서 제자리에 정지한 채 오른팔을 머리 위로 돌려 주는 춤사위. 3.매 박자마다 북을 치며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도는 춤사위. 4.북채로 북통을 치면서 토끼 뛰듯이 잔발뛰기를 하는 춤사위. 5.다섯 사람이 각기 북을 마주 붙이고 북을 매 박자에 5번 치고서 다시 북바퀴를 5번 친 후 자진가락으로 맺는 춤사위. 6.맺음 다음에 풀어 주는 형태로써, 오른발을 들고 뒤로 물러나오며 북채를 머리 위로 올려 매 박자마다 한번씩 돌리는 춤사위. 복식은 흰 바지저고리를 입는데,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붙이고 머리에 수건을 매며 맨발로 춘다. 장단은 휘모리-자진모리-굿거리-자진모리-휘모리 순으로 다양한 장단을 사용하여 신명을 돋운다. 사용 악기는 주로 타악기들로 꽹과리, 징, 장고, 북, 물장고, 사장고, 나발 등이다. 이 가운데 물장고와 사장고는 이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적인 악기이다. 물장고는 입구가 넙적한 독에 물을 담고 그 위에 바가지를 엎어 놓고 두 손으로 바가지를 두드려 장단을 맞추는 것이다. 사장고는 장독 뚜껑 두 개를 각각 장고 가죽으로 씌우고 가운데를 나무로 틀을 짜서 간격을 맞춘 것이다. 나발은 농촌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 긴 대롱의 끝에 소라고동 같은 쇠판을 벌여 놓은 모양을 한 악기이다. 밀양북춤의 대가인 하보경은 1980년에 밀양백중놀이가 국가무형문화재 제68호로 지정되면서 보유자 인정을 받았으며 오북춤에서는 수북으로 활동하였다. 현재 하보경의 대를 이어 손자인 하용부과 제자인 김상용, 박동영 등이 전승하고 있다. 특징 및 의의 오북춤은 밀양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춤으로, 토속적이고 민속적인 놀이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는데 농악에서 추는 대북놀이에 비해 한결 즉흥적이고 어깨놀림이 유연하며 북잽이들이 원형을 이루어 춤을 추되 큰 보폭과 대담한 동작으로 남성적인 춤을 선보이면서, 간간히 북을 어르는 무태는 매우 힘이 있고 멋들어진, 독특한 멋을 자아낸다. 마치 징을 칠 때 큰소리를 내면서 파동으로 여음을 남기듯 북춤도 첫 박에 힘을 모아 튕기듯이 그 힘이 파동을 그리면서 풀어 나가는 형태라 할 수 있다. 오북춤의 의미는 오행五行과 오기五氣가 순조롭고, 오체五體가 경건하며 오곡五穀이 풍성해 오복五福을 누릴 수 있도록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행은 음양학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 원기元氣를 뜻하는 것으로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를 의미한다. 오기는 다섯 가지하늘의 기운을 뜻하는 것으로 비오고, 볕 나고, 춥고, 덥고, 바람이 부는 것을 의미한다. 오체는 사람의 온몸을 의미하며 오곡은 다섯 가지 곡식으로 쌀, 보리, 조, 콩, 기장을 의미한다. 오복은 다섯 가지 복을 뜻하는 것으로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어진 덕을닦는 것), 고종명考終命(천명을 다 살고 죽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오북춤에서 오五의 의미는 전통적인 민간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어원의 본질적인 원형은 풍작을 기원하는 신앙적 제의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오북춤은 휘모리장단, 굿거리장단, 자진모리장단등 세 가지 장단으로 구성되는데 춤은 엇박이 없이 철저하게 장단박자에 일치한다. 모든 춤동작이 다 크다는 점과 오른손과 오른발, 왼손과 왼발이 같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특이하다. 어느 지점으로 한 발을 던져 동작을 맺고 제자리에서 양손으로 어깨춤을 추며 어르다가 그것을 풀어 가는 배김사위 형태가 주된 춤사위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밀양북춤은, 양반들에 대한 서민들의 애환을 풍자와 익살을 부려 시름을 달래고 갖가지 개성있는 춤으로 밀양백중놀이에서 행하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즉흥성과 신명이 가장 잘 어우러진 춤이다. 참고문헌 무형문화재지정조사보고서 제138호 밀양백중놀이(정병호·박진주,중요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16,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80), 밀양백중놀이의 춤사위(강혜숙, 한국민속학16, 한국민속학회, 1983), 부산·경남 향토무용총론(김온경, 한국평론, 1991), 한국민속무용연구(김온경, 형설출판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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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서울아리랑페스티벌 개최, 김덕수 사물놀이 ‘세계랑아리랑’ 개막서울특별시와 (사)서울아리랑페스티벌조직위원회가 공동주최하는 2015서울아리랑페스티벌이 10월 10과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펼쳐진다. 아리랑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2013년 시작해 올해로 3회를 맞는 서울아리랑페스티벌은 광복70주년을 기념해 ‘우리 심장에 아리랑이 뛴다’를 주제로 역대 최대 규모의 아리랑 판을 벌일 예정이다. 올해 페스티벌은 제1회 서울아리랑상 시상식과 2015서울아리랑페스티벌로 나눠 진행된다. 서울아리랑상은 아리랑의 문화사적 가치 발전과 창조적 확산을 위해 올해 제정한 상으로, 아리랑을 국내 최초로 서양식 음계로 채보해 세계에 알린 호머 B. 헐버트 박사(Homer B. Hulbert, 1863~1949)를 수상자로 선정했다. 시상식은 10월7일 오전11시 광화문 KT올레스퀘어 드림홀에서 진행되며, 미국 애리조나에 살고 있는 헐버트 박사의 손자 브루스 헐버트가 유족 대표로 나와 상을 받는다. 본격적인 페스티벌 행사는 아리랑을 테마로 다양한 음악적 접근을 시도하는 ‘세계랑 아리랑’으로 시작된다. 10일 오후 3시 김덕수 명인이 이끄는 김덕수패사물놀이의 문굿과 길놀이로 문을 여는 ‘세계랑 아리랑’은 국내 최정상의 안숙선 김덕수 명인, 오스트리아 4인조 색소폰 재즈밴드 색소포의 환상적인 콜라보레이션과 스페인 플라멩코 연주단체인 후안 카르모나 셉텟이 연주하는 플라멩코 진도아리랑, 우리 아리랑처럼 전국민적 사랑을 받는 세계의 민요를 선보일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의 무대, 전 출연진의 서울아리랑 합창 등으로 꾸며진다. ‘세계랑 아리랑’에서 선보일 사물놀이 판굿과 색소폰이 어우러진 판소리와 재즈의 만남, 해외 뮤지션들이 아리랑을 자신들의 색깔로 빚어낼 연주는 아리랑의 음악적 가치를 세계음악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작업으로 주목할 만하다. 아리랑과 일렉트로닉 록비트의 만남도 이뤄진다. 인기 디제이와 국내 최정상 록밴드가 참여하는 일렉트로닉 DJ 록 페스티벌 ‘춤춰라 아리랑’(10일 오후 7시30분~10시30분)은 강렬한 록비트에 몸을 맡긴 채 젊음의 열기를 발산할 수 있는 역동적인 무대다. 화려한 영상쇼와 더불어 온라인을 통해 전세계로 생중계될 ‘춤춰라 아리랑’은 광화문광장을 콘서트장삼아 스탠딩 형태로 진행된다. 출연진은 인기 연예프로그램 ‘비정상회담’으로 잘 알려진 DJ 줄리안, ‘더티 섹시 비주얼 밴드’ 컨셉으로 팬심을 저격한 록밴드 장미여관, 실력파 사이키델릭 록밴드 국카스텐, 복고풍 사운드를 뽐내는 ‘시간여행 걸그룹’ 바버렛츠 등으로 화려하다. 전 출연진은 그룹 특유의 색깔이 돋보이는 레퍼토리들과 함께 저마다 새롭게 해석한 아리랑을 다양하게 선보인다. 우리 고유의 전통예술공연 무대도 풍성하다. 광화문 북측광장 연희무대에서 진행되는 ‘연희랑 아리랑’(10일 오전 11시부터)은 지난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농악’을 비중있게 조명하기 위해 경기·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지역의 대표적인 농악인 웃다리농악 구미선산무을농악 좌도농악을 선보인다. 이와 함께 지난 2년간 서울아리랑페스티벌에서 큰 인기를 모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 남사당줄타기의 앙코르공연과 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 봉산탈춤, 중요무형문화재 제82-라호 남해안별신굿 등이 펼쳐진다. 남해안별신굿은 광화문광장에서 처음 공연되며, 진도씻김굿이나 동해안별신굿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람기회가 흔치 않은 남해안별신굿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민 참여로 만드는 행사도 마련된다. 열정과 끼가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 가능한 ‘전국아리랑경연대회’가 대표적이다. 11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소리, 몸짓, 연희 3개 부문으로 나눠 ‘아리랑’을 부르거나 연주, 아리랑을 사용한 춤·무예·난타 등의 퍼포먼스, 탈춤·농악·전통연희로 자웅을 겨루는 자리다. 축제무대와 연희무대, 열린시민공원 무대 등 3곳에서 진행되는 부문별 경연을 통해 금, 은, 동상 수상팀을 가리고, 각 부문의 금상 수상 3팀은 폐막공연 무대에서 다시 겨뤄 대상팀을 뽑아 시상할 예정이다. 2015서울아리랑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는 11일 광화문광장 일대를 아리랑 대동놀이로 물들일 ‘판놀이길놀이’다. 우리 옛 전통놀이 중 개방성과 어우러짐이 두드러지는 대동놀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판놀이길놀이는 이날 오후 5시부터 2시간 동안 광화문광장 일대 세종대로 네거리 양방향 10차선 차량통행을 전면통제하고 진행된다. 구간은 1.3km. 전국아리랑경연대회 3개 부문 참가자 1천여명을 비롯해 한국춤협회 500명, 취타대, 육사관악대, 3군사령부 의장대, 안동차전놀이보존회, 경기민요보존회, 각종 악기동호회, 학생과 시민 등 총 4천여명이 참가한다. 판놀이길놀이에는 경복궁 앞에서 출발하는 취타대와 80여개 전통깃발 행렬이 광화문광장으로 합류하고, 지게 모양의 등채 2대를 둘러메고 나오는 안동차전놀이보존회, 길쌈놀이, 북청사자, 퍼레이드조형물공모전본선진출작품 등 시각적으로 풍성한 볼거리들이 대거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춤협회와 조직위가 공동개발한 아리랑춤을 4천여 참가자들이 플래시몹으로 첫 선을 보일 예정이다. 축제기간 중 광화문 북측광장과 세종로공원 무대에서는 아이를 동반한 가족단위의 참가자들을 위한 ‘아이랑 아리랑’이 펼쳐진다. 판소리구연동화 ‘이야기세상’, 탈 만들기와 탈춤배우기, 아리랑부채 만들기, 박스아트, 페이스페인팅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아리랑을 부르거나 연주하면 참가자 이름으로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1만원씩 기부되는 ‘뽐내라 아리랑’도 진행된다. 윤영달 조직위원장은 "서울아리랑페스티벌 3차년도를 맞아 서울아리랑상 제정, 아리랑춤 개발, 옛 대동놀이를 재해석한 판놀이길놀이¸ 퍼레이드조형물공모전 개최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마련했다”면서 "아리랑을 비롯해 가장 한국적인 문화 콘텐츠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서울아리랑페스티벌 현장에 나와 우리 문화의 멋과 맛을 발견하고, 배우고, 즐기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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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감내게줄당기기 동군과 서군의 기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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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위도띠뱃놀이'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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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두계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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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회밀양아리랑대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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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춤 선보이는 권경도 명예보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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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백중놀이, 권경도 할머니의 익살스런 범부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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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태 작, 1976년 ‘설장고 명인 김병섭’김병섭 선생은 장고 하나로 한국농악판에서 최고의 기량을 인정받았던 명인이다. 1921년 정읍시 북면에서 태어나 김학순에게 설장고를 배워 우리나라 최고의 설장고 명인으로 올라섰던 김병섭은 어려운 형편 때문에 운명적으로 농악과 만나게 됐다.김병섭은 자신의 나이 열 한 살 때 자신의 형이 수리조합에서 돈을 빌어서 농악기를 장만하면서 농악을 접하게 된다. 당시 최고의 명성을 날렸던 김학순을 스승으로 사흘 만에 기본가락을 배울 만큼 김병섭은 타고난 재능을 보였다. 김병섭은 사흘 만에 기본가락을 웬만큼 터득할 만큼 배우는 속도가 빨랐기 때문에 김학순 씨도 김병섭의 타고난 재주에 놀랐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나흘 만에 작파(作破)할 수밖에 없었다. 손자가 장고를 배운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할아버지의 호령이 떨어졌기 때문에 김병섭은 몰래 숨어서 사흘 동안 배운 가락을 혼자서 연습을 해야만 했다.대동아 전쟁 때 일본인에 의해 싱가포르 함락 기념축제에서 장고잽이로 나서기도 했던 김병섭은 열일곱 살이 되던 해에 징용에 끌려 나가 아오지 탄광에서 스물다섯 살 때에 해방을 맞았다. 해방이 되자 마을마다 농악을 다시 쳤고 서울에서는 농악경연대회도 열렸다. 특히 일본군은 당시 정읍농악단의 명성을 알고 기념축제를 하라고 악기를 내주기까지 했으며 정읍마을 농악대회를 불러모아 굿을 하라고 해서 장고를 신나게 쳤다는 기록도 보여 당시 정읍농악의 인기가 우수성이 얼마나 높았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이승만 정권시절 그는 새로운 삶을 맞는다. 이승만 정권은 농악을 장려, 해마다 농악경연대회를 열었고 재주 있는 잽이 들은 이곳 저곳에 불려 다니면서 솜씨를 뽐냈다고 한다. 당굿이며, 풍장이며, 걸궁이 쉼 없이 이어졌고 잽이 대접도 푸짐해졌는데 이 때 그의 솜씨는 최고의 주가를 올리게 된다. 이 시기에 정읍을 중심으로 전북 일원에서 그의 가락은 가장 높은 경지의 수준을 보여주게 된다.이렇게 한창 장고잽이로서 유명해졌을 때, 남원국악원이 우리나라 처음으로 여성들로만 구성된 여성농악대를 만들었다. 이 여성농악대가 순회공연을 하면서 성공을 거둑자, 흥행만을 목적으로 한 여성농악대들이 여기저기서 만들어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결국 남자들은 찾아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자 남자들은 농악을 배우려고 하지도 않고 김병섭은 그러한 여성농악대만을 지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여성농악대는 처음부터 농악의 원형과는 관계없이 흥행만을 노렸기 때문에 변질된 농악이 되어버렸고 그나마 여성농악대가 자취를 감추자 전통농악은 맥이 끊기고 말았다, 그 후 전국민속경연대회가 생겨나서 자유당 때 하던 농악경연대회를 그곳에 합류시켰다고 한다. 1956년 전국농악대회에서 정읍농악으로 개인상을 수상하며 중앙무대에서 집중적인 조명을 받기 시작한 김병섭은 1963년과 1964년에 개최된 제4회와 제5회 전국 민속경연대회에서 정읍우도농악이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하며, 1956년에 이어 1964년 서울에서 열린 제5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설장고로 개인상을 수상해 명인반열에 오르게 된다.그러나 이 전국민속경연대회는 원형보존보다는 우선 눈에 잘 띄게 하는 것이 관심을 더 쏟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그나마 부분적으로 남아있던 여러 지방의 특색 적인 농악의 원형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고 생전에 몹시 애석하게 생각했다고 한다.김병섭은 정읍을 벗어나서 1968년부터 서울 생활을 시작한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김병섭을 서울로 불러들인 사림이 바로 한국인이 아닌 평화봉사단원로 활약했던 미국인이라는 사실이다. 이 미국인은 김병섭의 장고솜씨를 보고 그에게 매달려 서울로 불러들였다고 한다. 그때 김병섭은 식구들을 고향에 둔 채로 올라와 서울 안국동에서 미국인들과 함께 기거하면서 미국인과 동료들에게 장고를 가르쳤다.서울로 올라온 후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던 김병섭은 그의 명성에 걸맞게 한양대와 서울예고, 선호예고 등에 나가 후학들을 지도하며 동암동에 있던 김병섭 농악연습소에서 본격적으로 제자들을 양성하기 시작한다.그의 가락은 전라우도 농악 즉 정읍농악의 진수를 가장 잘 표현하는 명인으로 추앙 받을 만큼 튼튼했다. 혼자서 할 때는 설장고와 둘이 할 때는 쌍장고라 하는데, 그의 장고잽이놀이는 느린굿거리, 활발한 동살풀이, 구성진 구정놀이, 흥겨운 덩덕궁이, 격렬한 다르래기로 가락을 달고 맺고 풀면서 몰아간다. 김병섭은 한국 농악사에서 장고잽이로 뚜렷한 족적을 남긴 것은 전통문화유산에 밑거름이 된다. 특히 그의 장기였던 고깔 설장고는 우도농악의 최고로 꼽히는 김도삼의 제자 김학순, 백남길에게서 배운 정확한 계보를 갖고 있어서, 설장고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해온 명인 김병섭, 당시 젊은 세 사람 이정범, 전사섭, 그리고 자신을 중심으로 향토적인 가락을 발전 시켰으나 그 내용과 형식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김병섭은 자신만의 독특한 가락을 근저로 정읍농악우도농악을 전국적으로 알리는 산파(産婆)역할을 했다.김학순으로 이어졌던 설장고를 이정범이 이어받았고, 또다시 김병섭이 이정범의 전통을 이어냄으로써 정읍우도농악 설장고의 전승구조를 이어내는 가교 역할을 하게 한 인물이 설장고 명인 김병섭이다. 특히 김병섭은 설장고를 체계화하는데 큰 힘을 경주 한 것으로 확인된다. 김병섭의 장고가락을 악보로 만들기 위해 음악을 전공한 외국인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그의 음악세계가 이해가 된다. 그것을 계기로 김병섭은 점차 학구적인 쪽으로 관심을 갖게 되어 농악을 정립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울 돈암동, 동대문, 종로5가 등 여러 곳으로 농악연구소를 이전하면서 장고교습에 심혈을 기울였다.김병섭 선생은 1987년 9월 11일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폐암이라는 지병으로 사망했다. 이제 김병섭은 떠났지만, 김병섭의 고깔 설장고는 우도농악의 최고로 꼽는 김도삼 제자 김학순, 백남길에게서 배운 뚜렷한 계보를 갖고서, 설장고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해 온 명인으로서 영원히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살아남고 있다.정읍에서 배운 정읍우도 설장고를 중앙무대에 수놓고 세계적 인물들에게 가르쳤던 선구자적 예술인생은 이제 전국 각지로 펴져 나간 후학들로 꽃을 피우고 있어 김병섭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농악사 속에서 예혼(藝魂)을 불태우고 있다.김병섭은 자신의 설장고가 앞장서기만 하면 대낮의 장도 파해버릴 정도로 기량면에서 최고를 구가했던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천하의 김병섭”만이 쳐낼 수 있는 가락과 사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전에 이순을 넘겨서도 일단 설장고만 잡으면 신명을 몰아오고 놀음판은 그의 독무대가 되어 버리고 만다.판굿놀이의 변화가 다양하고 흥겨워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었던 전설적인 김병섭의 설장고가 그립다. "김병섭류 설장구보존회 정기공연 "김병섭선생 25주기 추모공연" 2013-07-26(금) ~ 2013-07-26(금) (국립국악원 발췌) 김병섭 명인 해적이 (1921~1987년) 1921년 정읍 북면 출생 1932년 (11세) 농악입문, 명인 김학순 사사 1935년 싱카포르 함락 기년 축제 참가 1938~45년 (17~25세) 함경도 명천 아오지탄광 강제징용 1945년 태평양전쟁 후 징용에서 귀향, 형과 함께 마을 농악단에서 활동 1950년 전북에서 담굿, 풍장, 걸궁에 명성을 얻다 1956년 전국농악대회 개인상 수상 1963년 전국민속경연대회 정읍우도농악 국무총리상 수상 1964년 제5회 전국민속경연대회 설장고 개인상 수상 1965년 남원국악원 여성국악단 설장고 지도 1966년 로버트 프로바인(朴巴人/메릴랜드대학 음악학교수) 외 외국인 설장고 지도 1968년 서울로 이주, 미국인 평화봉사단 설장고 강습 담당 1970년 돈암동, 동대문, 종로5가에서 <김병섭농악연습소> 운영. 한양대, 서울예고, 선화예고 학생지도 1971~87년 전라 우도농악 장고잽이 설장고, 쌍장고, 굿거리, 동살풀이, 구정놀이, 덩덕궁이, 다르래기 명인으로 전국적 활동 1975년 한양대, 서울예고, 선화예고 출강 1986년 서울국립극장 명무전 출연 1987년 (62세) 폐암으로 사망, 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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