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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윤동주문학제] 제7회 전국 윤동주창작음악제 참가자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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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101주념기념 특별공연 창작 오페라 "열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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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to Extend Special Exhibition Military Rituals through March 28The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Director: Kim Dong-Young), an affiliate of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of Korea, is extending its special exhibition Military Rituals ? Symbol of the Joseon Dynasty’s Military Power. The exhibition will be extended beyond its original closing date of March 1 and is now open through March 28. This special exhibition opened on January 19. It offers a comprehensive overview of the military rites of the Joseon era by bringing together 176 items, including armor and helmets worn by soldiers, a diverse range of weapons, and colorful military flags. It has been met with a positive response from the public as a unique exhibition demonstrating how the dynasty was governed not only by civil officials, but also through military power and related rites. It has also been popular following a temporary closure to prevent the spread of COVID-19. *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Website: www.gogung.go.kr Visitors are required to have timed reservations to see the exhibition. Reservations can be made online on the museum’s website or at the on-site ticket office. To prevent the spread of COVID-19, the number of visitors will be limited to 100 per hour and 900 per day. To ensure a safe environment for all, the museum has the following additional protocols: individual tours only (no group visits allowed); check of face covering and temperature at entry; and maintain one-way paths in the galleries. For those unable to visit the gallery in person, the exhibition can be enjoyed online on the museum website through virtual reality (VR) content and special lectures. The exhibition can also be explored in videos of views of the installations and curator-led tours posted on the YouTube channels of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and the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 YouTube: https://www.youtube.com/gogungmuseum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YouTube: https://www.youtube.com/chluv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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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 군사의례 특별전 3.28.까지 전시 연장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관장 김동영)은 조선 왕실의 군사적 노력과 군사의례에 대해 소개하는 특별전 「조선 왕실 군사력의 상징, 군사의례」 전시 종료일을 당초 3월 1일에서 3월 28일까지로 변경해 연장하기로 했다. 1월 19일 시작한 이번 전시는 조선의 군사들이 착용한 갑옷과 투구, 무기와 다채로운 군사 깃발 등을 포함한 176건의 유물과 조선 왕실의 군사의례를 종합적으로 소개하는 내용을 통해 조선이 문치(文治)뿐 아니라 무치(武治)를 겸비한 나라였음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다가, 코로나19로 휴관 중이던 박물관이 재개관하면서 시작된 전시라 관람객들의 높은 호응과 관심이 이어져왔다. 특별전 관람을 위해서는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을 통해 사전예약을 하거나 현장에서 접수하면 된다. 다만,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하여 사전예약과 현장접수를 합하여 시간당 100명, 일일 최대 900명까지만 입장할 수 있다. 관람객은 ▲ 개인관람만 가능(단체관람 불가), ▲ 관람객 입장 시 마스크 착용과 발열 여부 점검, ▲ 한 방향으로 관람 등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관람해야 한다. *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 www.gogung.go.kr 전시실을 직접 방문하지 못하는 관람객은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에서 가상현실(VR) 콘텐츠와 특별전 연계 온라인 강연을 시청할 수 있다. 또한, 문화재청·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에서 전시 전경 영상과 전시 해설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 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 https://youtube.com/gogungmuseum * 문화재청 유튜브: https://youtube.com/chluv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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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국가무형문화재 공개행사 개최국가무형문화재의 보전과 진흥을 위해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원장 직무대리 박관수)이 지원하는 3월 국가무형문화재 공개행사가 한국문화재재단의 진행으로 전국 각지에서 펼쳐진다. 국가무형문화재 공개행사는 무형유산의 대중화와 보전·전승 활성화를 목적으로 매년 개최되고 있으며, 3월에는 전국에서 총 8건의 공개행사가 예정되어 있다. 다만, 코로나19의 지속적 유행과 사회적 거리두기 이행 등에 따라 부득이하게 기능 종목은 전시 위주로, 예능 종목은 무관객 혹은 최소관람 공연으로 진행된다. 정부혁신의 하나로서 코로나19로 인한 제한된 성과를 공유하고 국민이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서비스를 선제적으로 제공하고자, 무관객 공연은 행사 종료 후에 약 한 달 전후로 국립무형유산원 누리집(www.nihc.go.kr, 전승지원 통합플랫폼)에서 온라인으로 영상을 공개할 계획이다. 서울특별시에서는 총 3건의 공개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에서 ▲「제22호 매듭장」(보유자 정봉섭/3.18.~21.), ▲「제22호 매듭장」(보유자 김혜순/3.18.~20.) 그리고 성균관 대성전에서 ▲「제85호 석전대제」(3.20.) 공개행사가 진행된다. 매듭장이란 여러 가닥의 실을 합해서 짠 끈목을 사용하여 여러 종류의 매듭을 짓고, 술을 만드는 기술 또는 그러한 기술을 가진 장인을 일컫는다. 석전대제는 춘계와 추계로 나뉘어 문묘, 곧 성균관의 대성전에서 공자를 비롯한 선성과 선현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말한다. 경기도에서는 총 2건의 공개행사가 진행된다. 포천에 위치한 경기가구창작스튜디오 전시장에서 ▲「제10호 나전장」(보유자 이형만/3.27.~29.)과 ▲「제113호 칠장 」(보유자 정수화)(3.27.~29.) 연합 공개행사를 만나 볼 수 있다. 얇게 간 조개껍질을 다양한 형태로 오려 기물(器物)의 표면에 붙여 장식한 공예품을 나전칠기라고 하며, 이러한 공예품을 만드는 장인을 나전장이라 한다. 또한 칠장은 옻나무에서 채취한 수액을 용도에 맞게 정제하여 기물에 칠하는 장인을 일컫는다. 충청북도 보은에서는 ▲「제136호 낙화장」(보유자 김영조/3.19.~21./보은전통공예체험학교) 공개행사가 열린다. 낙화장은 종이, 나무, 가죽 등의 바탕 소재를 인두로 지져서 산수화, 화조화 등의 그림을 그리는 기술과 그 기능을 보유한 장인을 말한다. 경상북도 문경에서는 ▲「제77호 유기장」(보유자 이형근/3.18.~20./방짜유기촌)공개행사가 진행된다. 유기장이란 놋쇠로 각종 기물을 만드는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장인을 일컬으며 유기의 종류는 제작기법에 따라 방짜와 주물, 반 방짜 등이 있는데 그 중 방짜유기는 녹인 쇳물로 바둑알 같이 둥근 놋쇠 덩어리를 만든 후 여러 명이 망치로 쳐서 만든 그릇을 말한다. 제주특별자치도 칠머리당영등굿전수관에서는 ▲「제71호 제주칠머리당영등굿」(3.26.) 공개행사가 진행된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바람의 여신인 영등할머니와 바다의 신인 용왕에게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는 행사로서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의 전통과 주민들의 삶의 모습, 자연관과 신앙심 모두가 담겨 있어 다른 지방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이색적인 문화재이다. 국가무형문화재 공개행사는 앞으로도 매월 전국 각지에서 개최될 예정이며, 공개행사에 관한 세부 사항은 국립무형유산원 누리집(www.nihc.go.kr)을 방문하거나, 한국문화재재단(☎02-3011-2153)으로 문의하면 일정, 장소 등을 자세히 안내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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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같은 사진작품, 노상현 사진전시회 ‘Watercolors’ 개최전라남도 무안의 아름다운 바다 풍광을 담은 사진전이 3월 1일부터 3월 31일까지 인터넷 사이트 업노멀에서 온라인상으로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미묘하게 오고 가는 작가의 미술적 감각을 담은 총 12점의 사진작품으로 구성됐다. 전시된 작품에는 의도적으로 표현된 회화적인 선과 감성적으로 마감된 면의 그 안에 작가만의 독특한 시각을 얹어내고 있다. 특히 풍경을 함축적으로 드러낸 회화적 관점은 간편하고 효율성만을 염두에 둔 오늘의 여러 욕망과 모순들에 대한 작가적 해석이다. 노상현 사진작가는 "현대의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미디어 환경 변화는 예술로서의 사진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이는 현대미술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로 인해 사진은 크리에이티브의 발현 도구라는 역할을 맡게 됐다. 또한 여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는 국민들에게 이번 사진전이 위로의 도구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노상현 작가는 대학에서는 금속공예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했으며 2003년 국민대 석사학위 논문 ‘인체와 패션이 조화된 주얼리 사진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주요 전시회로는 2010년(가나인사아트센터) 개인사진전 ‘뉴욕에서 길을 잃다’, 2011년(가나인사아트센터) ‘크로스오버 crossover’, 2012년(가나인사아트센터) 망상 (delusion), 2017년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된 ‘기억들’ 등을 열었다. 주요 작품집으로는 ‘sleepwalk 노상현 in newyork(2011)’, ‘wellington 바람의도시(2013)’, ‘manhattan(201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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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제32회 전국어린이판소리 왕중왕대회 다시보기(KBS전주)과연 최고의 소리꾼 꿈나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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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정창관의 신보유람 26정창관/한국고음반연구회 부회장 ‘영산회상’은 불교의 성악곡이 기악화한 곡으로 여덟 또는 아홉 곡의 작은 곡들이 모음곡처럼 연결되어 하나의 완성된 곡을 이루는데, 작은 곡들은 생성시기가 각기 달라서 속도나 리듬구조가 다르며, 서로 변주·변화 관계에 있는 것도 있다. 15세기의 음악을 기록한 『대악후보』와 1493년에 만들어진 『악학궤범』에 기록된 ‘영산회상’은 처음에는 '영산회상불보살‘(靈山會相彿菩薩)이라는 불교 가사를 관현악 반주로 노래하던 불교음악이었으며, 또한 향악정재의 반주 음악으로 사용되었다고 전한다. 이와 같이 본래 불교의 성악곡이던 ’영산회상‘이 중종(1506-1544) 시기에 세속화하기 시작하여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가사는 없어지고 순 기악곡으로 변화한다. 현행 ‘영산회상’에는 가사로 노래하던 상령산에서 파생한 중령산, 세령산, 가락덜이가 있고 후에 추가된 삼현도드리와 그의 변주곡인 하현도드리 그리고 불교노래의 하나인 염불도드리가 있으며, 또 불교음악과는 무관한 타령, 군악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와 같이 영산회상은 상령산 한곡에서 비롯하였으나 그로부터 중령산 등이 파생되고 새로운 곡이 결합 하면서 전체 9곡에 이르는 모음곡을 완성하였다. 넓은 의미의 ‘영산회상’은 악기편성, 선율형태, 연주방법 등에 따라 현악기가 중심이 되는 ‘중광지곡’이란 아명의 ‘현악영산회상’, 관악기가 중심이 되는 ‘표정만방지곡’이란 아명의 ‘관악영산회상’, 본래의 ‘현악영산회상’을 4도 아래로 낮게 조옮김하여 변화시킨 ‘유초신지곡’이라는 아명의 ‘평조회상’ 등의 세 가지가 있다. 그리고 ‘현악영산회상’은 도드리, 천년만세(계면가락도드리·양청도드리·우조가락도드리) 등과 결합하여 ‘별곡’이라 불리는 여러 가지 형태로 연주된다. 좁은 의미의 ‘영산회상’은 ‘중광지곡’이란 아명의 ‘현악영산회상’을 의미한다. 합주를 할 경우 주로 가야금, 거문고, 단소, 대금, 세피리, 장구, 해금의 세악합주 형태로 편성되고 경우에 따라 양금이 포함되기도 하지만 악기의 편성은 아주 탄력적으로 구성한다. 상령산, 중령산, 세령산, 가락덜이, 상현도드리, 하현도드리, 염불도드리, 타령, 군악 총 9곡이 모여 이루어진 대규모 모음곡 형식의 악곡으로 느리게 시작해 점차적으로 빠르게 진행하는 한국 전통음악 한배 흐름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음반은 ‘현악영산회상’ 9악장(상령산~군악)을 대금 독주로 담았다. 유홍 대금 연주자의 첫음반이다. 연주자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를 졸업하고 런던대학교 SOAS 민족음악학과에서 Performance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정가악회 창단 멤버로 활약(2001~2007)하였으며 현대음악의 중심지인 독일 베를린에서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김중섭, 박환영, 임재원, 서용석 명인을 사사하였으며 2018년에는 사야국악상을 수상하였다. 이 음반도 사야국악상 수상을 기념하여 사야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출반한 것이다. 유홍이 연주하는 ‘영산회상’에서 저취와 평취의 따뜻하면서 묵직한 음색을 맛볼 수 있으며, 서서히 빠르게 변화하는 장단에 맞춰 움직이는 유려한 가락과 섬세한 호흡을 느낄 수 있다. 독주라 영산회상의 가는 길이 훤히 보여 좋다, * 관련 음반 : http://www.gugakcd.kr/music_detail.asp?cd_num=GGC-20040&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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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영재국악회 아리랑친구들 아리랑동동 '밀양아리랑'서울 국립극장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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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 보이의 아리랑' 헌정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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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문화예술 취업 박람회 개최, 문화예술 직업을 잡자문화체육관광부(장관 황희, 이하 문체부)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대표 김도일, 이하 예경)와 함께 3월 8일(월)부터 11일(수)까지 "2021 문화예술 취업 박람회 - ‘문화예술 잡(JOB)’으로 가자!”를 개최한다. 이번 박람회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예경 유튜브와 공식 누리집(www.artjobgo2021.com)을통해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예술 분야의 다양한 기업 정보 제공 및 온라인 취업 상담 지원 올해로 6회째를 맞이한 ‘문화예술 취업 박람회’에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53개 기업이 참여한다. 공식 누리집에서는 행사 참가자들에게 참여 기업에 대한 자세한 소개와 채용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물론 댓글로 양방향 상담을 지원한다. 예경 유튜브에서는 ‘실시간 취업정보(Live 취업정보)’를 운영한다. 취업 정보를▲ 공공기관,▲ 창업 초기 기업(스타트업), ▲ 공연장, ▲ 축제 운영,▲ 뮤지컬·연극 분야, ▲ 전시기획, ▲ 기초·광역문화재단 등 총 7개 부문으로나누어 관련 기업 대표자 또는 실무자들이 참여해 기업과 취직에 대한 실질적인 이야기를 나눈다. 실시간 질의응답을 통해 구직자들의 궁금증도 해소한다. 예술 분야 현업 종사자의 취업 비법 공유 올해 박람회에서는 53개 참여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취업 정보뿐만아니라문화예술 분야의 다양한 일자리와 직무도 소개하고 구직자들의 취업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공연장 운영 전문가 김성규 세종문화회관 사장, 뮤지컬 기획·제작 전문가김지원 이엠케이(EMK)인터내셔널 대표, 미술작품 경매 전문가 손이천 케이옥션 수석경매사 등은 ‘현장 전문가 특강’에 참여해 문화예술 기획·유통 각 직무의 정보와 필요 역량을 알려준다. 최근 취업에 성공한 선배의 취업 비법과 직무·진로 정보를 공유받는 ‘선배에게 듣는 문화예술 잡(JOB)이야기(토크 콘서트)’도 이어진다. 지난해 예경의 ‘예술매개자 성장지원 사업*’을 통해 취업에 성공한 교육생과 공공기관 취업에 성공한 현업 종사자들이 생생한 취업 후기와 성공담을 이야기한다. * 예술매개자 성장지원 사업: 예술 전공생 등 예술 분야 예비종사자를 대상으로 현장 실무교육과 현장 실습을 지원해 차세대 종사자를 육성하는 사업 온라인 면접을 통해 7개 기업에서 9명 실제 채용 예정 특히 ㈜데일리뮤지엄, ㈜연극열전, ㈜열매컴퍼니, ㈜오르아트, ㈜오픈월, ㈜워킹하우스뉴욕, ㈜코리아나매니지먼트 등 7개사는 3월 11일(목) 온라인 면접을 통해 직원 총 9명을 채용한다. 구직 희망자들은 2월 23일(화)부터 3월 2일(화) 오후 6시까지 공식 누리집에 사전 신청해야 한다. 서류심사 합격자들에게는 면접 전에 전문가들이 자기소개서 첨삭과 면접 지도를 지원한다. 문체부 정책 담당자는 "올해 박람회가 기업과 구직자를 연결하고 직무 이해와 진로 탐색의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인력 채용의 장이되길 기대한다.”라며 "문화예술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능력 있는 구직자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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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이 걸어 온 길 23국악신문 특집부 최초의 국악 평론가 정범태 정범태 선생을 우리나라 최초의 국악평론가라고 하면 의아해 할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70년대 활동한 원로 국악인들은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그는 이미 70년대 우리가 꺼내지 못할 말을 대놓고 했던 인물이다. 바로 "권번은 음악천재들이 다니는 줄리아드 음대이고, 당골은 대대로 예능인을 배출하는 예능 패밀리다”라는 말을 당연시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은 이들이 이 말에 동의하지만 당시로서는 이를 자신있게 전거를 들어 입증 해낼 사람은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선생이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귀명창이며 국악역사를 꿰는 이론가라는 사실을 적어도 명무 한영숙선생이나 가야금 명인 성금연선생이나 또한 명창 박귀희 선생은 인정했던 것이다. 이 분들은 정선생이 국악 공연장에 나오면 "운동 나왔어요?‘라고 인사를 하는 처지였다. 이 말은 춘향가 어사출도 대목에서 낌새를 채고 먼저 도망가는 눈치 빠른 인물인데, 명인들 사이에서는 국악전반을 훤히 알고 있는 이를 말하기도 한다. 이렇듯 정선생의 평론가적 능력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정선생의 야사적(野史的) 국악계 입문 동기는 이렇다. 1951년부터 지리산 파르티잔 토벌작전에 기록사진을 찍는 문관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다. 종군기자처럼 전투현장을 따라다니며 전과(戰果)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임무였다. 이 때 경찰 지리산 전투사령부가 남원경찰서 자리에 있었고, 육군 백선엽사령부는 남원농업학교 자리에 있었다. 이 두 곳의 파르티쟌 토벌작전 현장에 때마다 오가야 했다. 그래서 일이 없는 날이면 군경 간부들이나 지역 유지들과 어울려 요정출입을 자주 하게 되었다. 당시 남원 지역에는 남선관, 부산관, 김천관, 춘향각, 방림원 등이 이름난 요정인데 여기에는 전국의 내노라는 명인 명창들이 어려운 전쟁통 말기를 의탁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소리의 고장답게 풍악이 넘쳐나고 있었다. 정선생은 총각인데다 전쟁통이지만 영관급 군인과 총경급 경찰이나 알만한 지역 유지들과 함께 출입하여 대우를 받는 인물이 되었다. 이 중에 정선생이 자주 출입하는 곳이 요리와 풍류로 이름이 난 남선관(南鮮館)이었다. 남원읍에 있으며 입구에는 큰 소나무가 있고, 전형적인 한옥형태인 ‘ㅁ’자 기와집이었다. 그런데 정선생이 말로는 풍류가 마음에 들어 간다고는 하지만, 기실은 이곳 기생인 성향순이란 여인 때문이었다. 전하기로는 미색은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단가를 비롯한 소리는 정선생을 유혹할만 했다고 한다. 이 여인이 정선생의 첫사랑으로 다가왔다. 정선생으로서나 성향순으로서나 며칠에 한번씩 기관총 소리와 대포의 포연에 놀라는 상황에서 언제 어떤 일로 생을 마감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상황에서 서로에게 필요했고, 그럴만한 청춘의 시절이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전쟁통에서도 사랑은 꽃 피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서서히 몸과 마음을 가까이 해가고 있던 어느날, 연인이 정선생에게 매달려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바로 오빠가 ‘빨갱이’에게 부역했다는 죄로 구속이 되었다는 것이다. 오빠를 구해달라는 하소연을 해 온것이다. 당시 남원지역에서 이런 혐의로 구속되는 사례는 흔한 일이었다. "밤엔 공산당, 낮엔 자유당”이란 말 대로 양쪽에서 공격하는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사랑을 피워가는 첫사랑의 가족인지라 이런 처지는 피부에 닿은 일이 되었다. 정선생은 여러 방도를 찾았다. 군경 간부를 통해 사정을 했다. 일이 발생한지 10여일이 지나서야 오빠에 대한 정보가 잡혔다. 다행히 족청계열에서 파악하기로는 누명을 쓴 것이란 것이다. 결국 다리를 놓아 조경위라는 상훈부 경찰의 도움으로 자신이 보증을 서는 것으로 석방을 시켰다. 이 일로 정선생은 여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 깊은 환대를 받았다. 순창군 순창읍 인계면 섬진강 상류에 자리잡은 70여호 되는 마을에서 살만큼 사는 집으로 보였다. 그런데 방에 들어서니 가야금이 세워져 있고 징 장고 북이 놓여있었다. 이름난 당골집안이었던 것이다. 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근동에서는 외삼촌 등과 함께 삼재비 음악으로 소문이 난 집안이었다. 여인은 이를 굳이 내색하지 않았으나 정선생은 속으로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미 이 일대 당골네가 음악적으로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계보나 조직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이 날 출소한 오빠도 만나고 음식도 후하게 대접을 받았다. 이 일이 있고나서 둘 사이는 더 가까워졌다. 곧바로 소위 ‘기생살림’을 차리게 되었다. 관례대로라면 금은으로 된 장신구는 물론 집안 가구며 살림살이를 해 주어야 하는데, 전쟁통에 객지살이 문관이 그렇게 할 처지가 못 되었다. 이런 사정으로 정선생은 명분상으로는 국악인을 애인으로 둔 당골집안 동간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민족음악이 태동하는 국악 속에 살게 된 것이다. 이 덕에 정선생은 누구 못지 않는 당골네들의 변(은어)에 능통했고, 춤 음악을 알게 되고, 동작과 행위에 리듬과 절도와 멋이 스며야 제대로 된 풍류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국악인들의 모습을 사진기로 찍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쉴 틈만 나면 전북 일대의 굿판이며 소리판이며 춤판을 물어물어 찾아 다녔다. 그래서 누구 보다 먼저 박초월 명창 모친이 유명한 ‘봉안지무’임을 알게 되었고, 지무의 무가가 판소리요, 무악이 민속악의 본향임은 물론, 이를 잘하는 세습무는 동간이라야만 뛰어난 패밀리가 된다는 사실도 깨우쳤다. 그러다보니 "팔도 동간(同間) 따지고 보면 안 걸리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계보는 세습당골로 연결되는 구조라는 것도 구체적으로 파악했다. 동간이란 말은 같은 세습무 사이라는 말이고, 이에 대비되는 말이 비가비(非甲)로 갑(세습무)이 아니면서 갑인 체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동간의 세계를 그때나 지금이나 이해하기가 쉽지가 않다. 이를 정선생은 아주 쉽고, 구체적으로 피력한 바 있다. 정선생의 구술에 기반하여 문화인류학자 박정진 교수가 엮은 전기 「발가벗고 춤추는 기자」(화당, 1998)에 한 대목이 그것인데,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동간은 혼인을 할 때 여자 집에 청혼이 들어오면 남편 될 사람이 무얼하고 있는가를 묻는다. 남편이 소리광대면 청혼 말이 오가고 거의 혼사를 정할 무렵에는 바느질과 음식을 잘 가르친다. 한편 남편이 될 사람이 무업에 종사하면 필연코 아내가 될 사람은 굿음악(굿 바라지)를 해야 하기 때문에 굿(어정) 학습을 가르친다. 특히 남편이 될 남자가 큰아들인 경우는 대다수가 시어머니가 하는 무업을 물려받기 때문에, 부인이 될 여자의 친정에서는 일년 후 혼사를 하기로 결정하면 친정 어머니나 혹은 일가 친척의 숙모나 친척 중에서 굿을 잘하는 사람이 심혈을 기울여 어정학습을 가르친다." "새며느리를 들인 신랑집은 식구들이 다 모여서 새아기의 어정학습을 방안놀음에 붙여 들이면서 오디션을 본다. 여기서 시아주버니는 피리를 불고, 시동생이 젓대를 불고, 시당숙이나 친척 중에 장고를 치며 시어머니가 징을 친다. 가족놀음을 통해 새아기의 어정학습을 평가한다. 열두거리 굿 중에 가장 친정에서 자신있게 하던 대목을 한 두 거리를 해보라고 시켜 본다. 첫째 청(목소리의 키)을 듣는다. 상청이냐, 중청이냐, 하청이냐를 판별한 후 대개 중청으로 굿을 시작한다. 둘째 발림을 본다. 굿을 하면서 지전든 신칼을 흔들면서 가벼운 춤을 추는 것을 발림(제스처)이라고 한다. 가족들이 모여 새 식구의 굿을 듣고 덕담을 나누며 칭찬을 한 후-청 좋고 발림 좋고 태도 좋고 나무랄데가 없네. 다음 어정 때는 바로 어정판에 서게-라고 합격을 시킨다.” 정선생은 이미 70년대 우리나라 국악계의 계보를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한 인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선생을 우리나라 제1호 국악평론가라고 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정선생이 국악신문에 연재하며 기록한 명인 명창들의 혈연적이고 정서적 접근한 계보와 에피소드는 소중한 '국악의 역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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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미니 다큐멘터리 시리즈 ‘한국의 인류유산’ 방영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사장 정성숙)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활용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한 인류무형유산 미니 다큐멘터리 시리즈 ‘한국의 인류유산’ 20부작을 3월 1일(월)부터 5월 4일(화)까지 매주 월·화 오전 11시 50분 KBS 1TV를 통해 방영한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활용’ 사업을 통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 종목 공연과 이를 소재로 한 창작작품 공연을 지원하고 있다. 인류무형문화유산을 소재로 원형 공연과 창작공연이 펼쳐지는 ‘위대한 유산, 오늘과 만나다’ 등 무형문화유산 활용 전통문화 콘텐츠를 선보이며 인류무형문화유산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다큐멘터리 ‘한국의 인류유산’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을 시작으로 판소리, 아리랑, 처용무 등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 인류무형문화유산 속에 담긴 역사적, 자전적 이야기를 발굴하고, 이를 고품질(UHD) 영상으로 제작해 세계가 인정한 대한민국 무형문화유산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전달한다. 특히 제작에 참여한 한국방송공사(KBS) 공사 창립 기획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과 만나게 돼 전통문화유산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인식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구전을 통해 전해 내려온 무형문화유산이 사라지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진 것은 그 속에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의 교감, 전수를 위한 굵은 땀방울, 맥을 잇기 위한 간절함 등 각각의 유산에 담긴 ‘결정적 한 장면’이 우리 유산을 그저 옛것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유산으로 만드는 숨을 불어 넣는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정성숙 이사장은 "이번에 제작된 인류무형유산 미니 다큐멘터리는 이야기를 통해 전달될 수 있도록 기획됐다. 대중에게 인류무형유산의 가치를 더욱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3월 1일 첫 방송되는 ‘한국의 인류유산’은 총 20부작으로 5월 4일까지 매주 월, 화 11시 50분 KBS 1TV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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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주년 3.1절 맞아 정기휴무인 궁&능도 개방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본부장 나명하)는 오는 제102주년 3.1절(월요일)을 맞이하여 월요일이 정기 휴무일인 덕수궁과 창덕궁, 창경궁, 조선왕릉들을 코로나 19 방역지침을 준수하여 특별 개방한다. 참고로, 궁궐과 왕릉들은 문화재보호와 관람환경 정비를 위해 일주일에 하루씩 정기 휴무를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이번 3.1절 특별개방 조치는 코로나 19로 지친 국민에게 나무숲 등 쾌적한 자연환경이 잘 어우러진 궁궐과 조선왕릉을 위로와 치유의 공간으로 제공하기 위한 취지다. 3.1절에도 관람료는 유료이지만, 장애인·국가유공자·다자녀가족의 부모·임산부와 보호자 1인 등과 그리고 만24세 이하와 만 65세 이상은 무료이다. 참고로, 코로나19 방역을 위하여 실내 관람시설 및 안내해설은 운영하지 않으며, 고궁의 경우 경복궁은 전년대비 평균 관람객 수의 20% 수준, 창덕궁·덕수궁·창경궁·종묘는 30% 수준으로 일일 관람인원을 제한하여 운영하고 있다. 창덕궁 후원 관람은 사전 예약이 필수이며, 기타 궁·능의 자세한 관람요금과 관람시간은 궁능유적본부와 각 궁·능 누리집을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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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MBC ] 국창 임방울의 쑥-대머리 [다큐프라임][광주MBC ] 국창 임방울의 쑥-대머리 [다큐프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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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첫 '온쉼표', 한·러 수교 30주년 '언택트 음악회'세종문화회관(사장 김성규)의 대표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천원의 행복 '온쉼표'가 3월 2일 한·러 수교 30주년 기념 '언택트(Untact) 교류 음악회'로 2021년의 첫 문을 연다. 2007년부터 시작한 '온쉼표'는 클래식, 뮤지컬, 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1000원에 관람할 수 있도록 해 시민들에게 문화 나눔의 가치를 실현하고 공연장 문턱을 낮춘 프로그램이다. 14년간 관객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 공연은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양국의 문화예술 교류 활성화를 위해 기획됐다. 코로나19로 해외 연주자들의 내한이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러시아 연주자의 현지 공연 녹화 중계와 한국 연주자의 실연 무대를 접목한 ‘시대 맞춤형 공연’으로 진행된다. 이번 '온쉼표'는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양국의 문화예술 교류 활성화를 위해 기획됐다.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연주자들의 내한이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러시아 연주자의 현지 공연 녹화 중계와 한국 연주자의 실연 무대를 접목한 '시대 맞춤형 공연'으로 진행한다. 서울 공연에는 소프라노 서선영, 테너 김동원, 바리톤 김인휘 등과 러시아 바리톤 그리고레프 안드레이가 출연하며, 연주는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 장윤성)이 맡는다. 러시아 민속곡 연주에는 '두브라바 콰르텟(Dubrava Quartet)'이 함께한다. 영상으로 녹화 중계될 러시아 공연에는 볼쇼이 오페라 극장의 주역 소프라노 아나스타샤 소로키나, 테너 막심 파스터, 베이스 니콜라이 카잔스키가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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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천원의 행복 ‘온쉼표’…대중, 플라잉, 연극, 뮤지컬 등 총 15개 공연 go on클래식, 연극은 물론 플라잉, 대중콘서트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매달 1~2회에 걸쳐 저렴한 가격에 만나볼 수 있는 ‘온쉼표’가 관객들과 만난다. 지난 14년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2021 천원의 행복 ‘온쉼표’(이하 ‘온쉼표’)는 세종문화회관(사장 김성규)의 <한·러수교 30주년 언택트 기념음악회> 무대를 시작으로 프로그램의 문을 연다.<한·러수교 30주년 언택트 기념음악회>은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양국의 문화예술 교류 활성화를 위해 기획됐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연주자들의 내한이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러시아 연주자의 현지 공연 녹화 중계와 한국 연주자의 실연 무대를 접목한 '시대 맞춤형 공연'으로 진행된다. 2021년 ‘온쉼표’는 영국, 홍콩, 이탈리아 등 총 6개국 기관·단체와의 협업을 통해 해외 교류 활성화에 기여하며 다양한 콘텐츠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5월 온쉼표 <2021 K-Music Showcase with Sejong Center>는 신진 아티스트 발굴 및 해외진출 지원을 위해 영국, 스페인, 벨기에 등 총 3개국의 재외한국문화원과 함께 기획했다. 총 6개 인디밴드의 무대를 쇼케이스 형식으로 사전 제작, 5월 중 온라인을 통해 국내외 송출. 또한, 영국 남서부 지역인 콘월에서 6월 개최 예정인 G7 정상회담(6.11~13) 시기에 맞춰 아리랑TV 글로벌 채널을 통해 영국에 방영될 예정이다.이외에도 8월 마지막 주부터 9월 초까지 2주간 세종문화회관 전체 공간에서 펼쳐지는 홍콩위크@서울과 협력하는 <아름다운 사람들 Special Stage>는 사회공헌자와 문화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온쉼표’ 공연의 객석을 할당하여 초대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확대 시행하여 해외 우수 공연을 관람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12월에는 이탈리아 '예술과 기술혁신의 만남‘ 우승 작품 <사계>를 초청하여 실감형 클래식 라이브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국악서커스 <하루>가 오는 8월 온쉼표로 또 다시 관객과 만난다. 작품 개발을 통해 우수 콘텐츠를 발굴하고자 2020년 ‘온쉼표’ 자체제작 공연으로 선보였던 <하루>는 지속적인 개발과 유통을 통해 무대화할 예정이다.올해 ‘온쉼표’를 통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제작공연 또한 2작품이 준비되어 있다. <아파트 2021>(7.7~8 S씨어터)는 한국인에게 중요한 척도가 되어버린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삶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2인 가극으로,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인 음악감독 류재준 작곡, 남인우 연출, 문하연 작가가 삶의 터전에서 재산 증식의 수단이 되어버린 아파트의 사회적 모순을 유쾌하게 풍자한다. 서울시극단과 협력 제작하는 <고전이 전래전래(가칭)> (11.23~24 M씨어터)는 오세혁 작가, 문삼화 연출이 참여하며 서울시극단 연수단원들의 출연을 통해 신진아티스트들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2021 ‘온쉼표’는 장르, 시간, 장소 다양화를 통해 전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는 점도 주목 받고 있다.4월 온쉼표 <필 더 클래식 Feel the Classic>은 평일 낮 브런치 콘서트를 선보임으로써 공연과 강의의 에듀테인먼트적인 요소를 결합. 관객들이 유휴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기획했으며, 5월 온쉼표 <키즈 오페라>는 가족 및 어린이들이 공연에 대한 접점을 확대하고 향후 공연에 대한 관심도 증대 및 선순환 구조의 확장을 위한 발판 마련할 예정이다.위드코로나 시기에 높아진 문화격차 해소 및 문화접근성 강화를 위해 대체공연이 아닌 계획단계에서부터 온라인 콘텐츠를 선보이는 On’쉼표 브랜드도 개발할 예정이다. 2021년 온쉼표 프로그램 중 총 3건의 공연을 영상화하여 온라인 콘텐츠로 선보인다. 앞서 언급한 <한·러수교 30주년 언택트 기념음악회>와 <2021 K-Music Showcase with Sejong Center>가 ;On‘쉼표 프로그램의 일환을 진행된다. 3월 온쉼표 <올림#콘서트 ‘인생은 뮤지컬처럼’>은 오는 6일 무관중 온라인 생중계 공연으로 전수경, 정성화, 최재림의 무대를 온라인을 통해 만나 볼 수 있다.더욱 새롭고 더욱 다채로운 무대로 관객과 만나는 2021 천원의 행복 ‘온쉼표’ 프로그램은 매달 초 세종문화회관 온쉼표 홈페이지(happy1000.sejongpac.or.kr)를 통해 신청할 수 있으며 2021년 연간 일정도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문의 02-399-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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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단상. 애국가, 그것은 민중의 선택이었다!3년 전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남북이 함께 기념한다며 소란을 떨던 것을 생각하면 금년은 거의 적막한 기념식 분위기이다. 현실 정치 상황과 코로나19에 지배당한 결과인 듯하여 씁쓸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번 3.1운동 102주년을 맞아 그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정중히 기념식을 가져야 한다. 1919년 3월 1일, 종로2가 탑골공원 팔각정에서는 오후 2시를 넘기면서 청년 정재용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고, 한 시간 뒤인 3시쯤에는 인사동 태화관에서는 한용운 등 29인이 모여 선언서를 낭독함으로서 만세운동을 시작했다. 한일병합조약 무효와 한국 독립을 만천하에 선언한 것이다. 이로서 대한제국의 백성이긴 하지만 일제의 황국신민이 아닌 자유·평등·주권·평화를 위해 행동하는 세계시민이 되었음은 물론, 상해 임시정부를 수립하게 하여 제국에서 민국으로, 군주정에서 공화정으로, 드디어는 전통에서 현대로 대 전환을 맞이하게 한 것이다. 이로부터 4월 초순까지 70여일 동안 전국과 해외 동포사회에서 1450여회에 106만여명이 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 당연히 진압 과정에서 일경에 의해 600여명이 사망하고, 1만 4천여명이 체포, 구금되었다. 그럼에도 만세운동은 거세게 전국 곳곳으로 확대되어 갔다. 이 때의 시위 형태는 대체로 다음의 순으로 진행되었다고 파악된다. ‘학교나 교회 앞마당, 마을 입구 공터 등의 ‘최초 집결→ 주동자의 독립선언서 낭독→ 지역 유지들의 연설→ 만세 3창→ 노래 제창→ 조선독립만세 등의 구호 제창→ 시장통 등을 향한 행진→면사무소 등의 재집결’ 시위의 결집력을 높이고 대오를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노래가 필요했다. 그래서 ‘노래 제창’에는 학교에서는 애국가와 교가와 독립운동가가 불렸고, 교회 집회에서는 찬송가와 애국가류가 불렸다. 또한 시장통아나 면사무소 앞에서의 대규모 재집결시에는 애국가와 독립운동가는 당연하고 미리 전단으로 배포한 노래가 불리기도 했다. 목포 정명여학교 시위에서는 "터젔고나 터졌고나 조선독립성~”으로 시작되는 ‘독립가’가 불렸다. 대개 교사나 선교사 같은 지도자가 있는 시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전북 고창군 고창면 시장통 3월 19일 시위에서 독립선언서와 독립가가 배포된 예가 있는데, 계획한 지도자가 있었던 상황이다. 그동안 발굴된 관련 기록을 통해 볼 때 구체적으로 가사와 곡조가 밝혀진 것은 학교 교가류, 애국가류, 찬송가류, 독립운동가류를 포함하여 10여종에 이른다. 이 중에 전국적이고도 보편적으로 불린 노래는 애국가이다. 1897년 7월 서대문 독립관(獨立館)에서 개최된 제505회 조선 개국기념 경절회(慶節會)에서 불린 윤치호(尹致昊) 작사 ‘무궁화가’(Song National Flower)에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의 후렴과 곡조를 계승한 것, 바로 오늘의 "동해물과 백두산이~”의 4절 노래이다. 이는 1907년을 전후하여 유포된 윤치호 역술(譯述) 「찬미가」 소재 ‘Patriotic Hymn 14’(제14장 애국 찬미가)로 개성의 한영서원과 호수돈 여학교를 비롯한 주요 지역 미션스쿨에서 불리기 시작한 노래다. 감리교 신자인 윤치호의 애국적 찬송가의 한 편으로 작사한 것이 1910년대에 이르러 국내는 물론 중국 간도 명동학교에서도 불리게 되었다. 후렴과 제1절 가사의 애국적 내용이 응집력을 발휘하여 전국적 전파 현상을 갖게 되면서, 이런 전파 상황에서 3.1운동 기간의 시위 현장에서 민중들은 쉽게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3.1운동 현장에서 이 애국가가 불렸음은 당시 기록을 남길 수 있었던 선교사의 자료나 일제의 재판 기록, 또는 증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구체적으로 애국가가 불린 기록을 선교사 켄달(Carlton W. Kendall)의 보고서 「한국독립운동의 진상」(The Truth about Korea)에서 확인 된다. 3월 20일경의 서대문 인근 시위 기록이다. "군중들은 무장하지 않았다. 행렬은 젊은이와 학생 그리고 노인과 부녀자들로 구성되었다. 군중들은 10년간 부르지 못한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곡에 맞춘 한국의 국가(National Anthem)를 부르고 국기를 흔들며 함성을 외치며 거리를 메웠다.” 또 하나의 자료는 1923년 서재필 박사의 자전적 저술 「한수의 여정」(Hansu’s Journey)에 주인공 한수(HANSU)의 눈에 비친 3.1운동시위 현장 기술 대목이다. "군중들은 공원 밖으로 행진해 나가기 시작했고 저마다 태극기를 흔들면서 근 10년이나 부르지 못했던 국가(National Anthem)를 힘차게 불렀다. 어떤 사람들은 계속 국가를 위한 환호 소리를 연거푸 소리 질렀다. 군중 전체가 마치 자기들이 새로 다시 태어난 것처럼 기뻐 날뛰었다. 그들은 말도 없고 고개들을 숙이고 망설이는 걸음 거리에 슬금슬금 남의 눈치만 보던 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웃을 대로 웃었고 하고 싶은 말을 다했고 떠들고 싶은 대로 떠들어 댔다.” 두 기록 모두 애국가가 아닌 국가를 뜻하는 ‘National Anthem’으로 표기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다. 이 시기 앞에서 살핀 동일한 곡조, 동일한 후렴의 ‘성자신손 오백년은~’으로 시작하는 ‘무궁화가’가 있긴 했다. 그러나 이는 문헌상의 존재이고 실제 확인 되지는 않는다. 1907년을 전후 하여 ‘동해물과 백두산이~’의 애국가로 대체된 결과이다. 다음은 애국가의 의역인 ‘there national cry’로 표현된 자료이다. 당시 세브란스의전 소속 ‘브리스 자작 조사위원회’(Bryce Viscoint Investing Commission)소속 오웬스(한국명 오은수) 5월 24일 보고서 일부이다. 실제 내용은 3월 5일 오전 9시경의 남대문 일대 시위 상황이다. "3월 5일 오전 9시를 기해 큰 소요가 있었다. 철도역 대로에서 일어났는데 상점 골목에서 뛰어나온 젊은이들이 애국가를 부르며(calling out there national cry) 기차역으로 향하였다. 순간 인력거에 있던 한 남자가 군중들에 에워 쌓여 남대문으로 향하였다. 높이든 양 손에는 빨간 끈이 있었고 남대문을 지나 시가지로 들어갔다. 이 행렬을 대부분 학생들로 이루어졌고 여고생들도 참가했다. 경찰과 대치하는 행렬을 반마일이나 되었다.” 일반적인 "sang a song’으로 표기하지 않고 ‘national cry’라고 표현하였다. 이는 선교사들 인식으로 단순한 노래가 아니고 ‘국가적인 노래’라고 표현한 것으로, 이미 민중들의 정서적 공인을 받고 불리는 공공의 노래임을 인식을 한 결과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 기록은 매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음은 중국 동포사회 3.1운동 시위에서도 애국가가 불렸음을 알게 하는 기록을 본다. 3월 31일 봉천성 집안현 납석차 교회당에서 약 600명이 만세 시위상황 기록을 본다. "3월 31일 오전 10시경에는 약 600명이 모였고, 그 중에는 100여 명의 부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오에 납석차의 기독교 지도자인 고종호(高鐘鎬)가 독립선언에 대해 연설하였다. 이어 애국가를 합창한 후 시위대는 태극기를 들고 ‘한국독립만세’를 외치며 부근을 행진하였다. 시위대는 압록강을 건너 국내로 진입할 것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집안현 치화보 사구령 보갑국(保甲局) 및 유수림자 순경국(巡警局)과 보갑국원들이 출동하여 제지함에 따라 오후 5시에 해산하였다.” 이렇게 3.1운동은 조선독립만세와 태극기와 애국가로 진행되었다. 국가상징 국호 조선, 국기 태극기, 국가 애국가가 자연스럽게 민중들에게 인식되었다. 이중에 국호와 국기는 대한제국기 직간접적인 제도의 공인을 받아 활용되어 왔으나 애국가는 1907년을 전후하여 기독교계 학교로부터 확산되어 비로소 3.1운동 기간에 전국적으로 불림으로서 ‘유일한 애국가’로 공인된 것이다. 이 결과로 애국가는 두 가지의 분명한 현상을 얻게 되었다. 하나는 임시정부가 국기 태극기와 함께 애국가를 국가상징으로 채택하였다는 사실이다. 임시정부는 국호 ‘대한민국’에 대하여는 논의를 하였다. 그러나 국기와 국가에 대해서는 논의 없이 채택하였다. 「임시의정원회의록」에도 관련 논의 사실이 없고, 곧바로 의전에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임시정부의 의정원 개원식 기록이다. "총의장의 사회로 개식을 선언하고 일동이 기립하야 애국가를 창한 후 국기를 향하야 최경례를 행하였다.” 이런 결과와 함께 두 번째 현상은 애국가가 일제의 탄압대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애국가를 부르거나 기록하는 것 자체를 독립운동으로 보아 탄압을 한 것이다. 이런 탄압상은 20년대 초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데, 1923년 4월에 국내에 잠입했다 체포된 임시정부 연락원들이 형무소 내에서 4월 10일의 임시정부 창립일 ‘애국가’를 불러 크게 제제를 당했다. 또한 애국가가 적힌 공책을 휴대한 학생이 구인되어 엄중한 취조를 받기도 했다. 이 중 1924년 5월 21일자 동아일보는 ‘愛國歌 사건’이란 보도에서 그 탄압상을 짐작하게 한다. "愛國歌사건으로 잡힌 로희성(盧熙星. 30), 시내 동대문 경찰서에서는 근일에 시내 종로 3정목 93번지 사는 로희성을 체포하야 비밀리에 취조 중이라 하며 시내 청진동 청진여관에서도 한명을 인치하야 취조한다는 데 들은 바에 의하면 모다 지난번 애국가사건에 관련된 것인 듯하다더라.” 기사 제목이 ‘애국가사건’으로 규정되었다. 이는 이런 사건이 매우 많았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런 애국가 탄압은 일제가 3.1운동 시위 현장의 노래라는 인식에서 강력하게 통제했던 것으로, 강점기 내내 지속되었던 것이다. 한편 1940년 애국가 역사에서 획기적인 일이 있게 되었다. 바로 중경 임시정부에서 안익태 작곡 새 곡조로 애국가를 부르게 된 사실이다. 이는 오랜 세월 외국 곡조 ‘올드 랭 사인’에서 온전한 우리 손에 의한 곡조의 애국가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안익태가 1930년 10월 초순 미국 유학길 첫 예배에서 갖게 된 감동과 비감의 애국가 연주로부터 작곡 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교회에서 자신의 장학기금 마련을 위한 예배가 있었다. 그 마지막 순서에서 첼로로 애국가를 연주하게 되었다. 당연히 슬픈 선율의 외국의 ‘올드 랭 사인’ 곡조였다. 기미가요(君が代)’만 들을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 조국을 떠나 큰 음악가의 꿈을 품고 유학 온 청년 안익태는 이 애국가 연주에서 굳게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남의 나라 곡조라니. 내가 애국가를 우리 가락으로 지어내야겠다. 내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사에 생명이 있다. 희망이 있다. 하나님이 도와주실 나의 조국이다.” 1934년 9월, 후렴 부분을 남긴 1차 작곡을 끝냈다. 그리고 이듬해 11월, 드디어 작곡을 완성했다. 미주교민 신문 신한민보에 그 감동을 담았다. "아시아 동반도의 도덕적인 대한국 애국가인 만큼 경솔히 작곡되는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과거 5년간 구심 근작 하여 약 2년 전에 처음 절은 필하였습니다만 후렴을 필하지 못하고 지나는 도중 지난 11월 사흘 어느 날 이른 아침에 실로 하느님의 암시로 후렴 전부를 근작하였습니다.” 5년 전에 결심한 ‘우리 가락’으로 애국가 작곡을 완성했음을 ‘하느님의 암시’로 돌렸다. 스스로를 격상시킨 것이기도 하지만, 암울한 현실에 민족혼을 담은 애국가를 작곡했다는 자부심의 표현이기도 하다. 안익태의 이 같은 감격은 개인만의 것은 아니었다. 미주지역 교민사회, 특히 한인 교회에서 환영하여 불렀다. 신한민보도 기사를 통해 보급운동을 벌였음은 물론 ‘대한국애국가’(KOREAN NATIONAL HYMN, EA KOOK KA)란 표제의 악보를 발행하고, ‘신애국가’ 음반을 제작하여 해외동포와 흥사단 같은 독립운동 전선에 보급을 하였다. 이런 미주지역의 반응은 교민단체 중 그 규모와 권위가 가장 큰 ‘대한인국민회’로부터 임시정부에 공식적인 사용 허가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愛國歌 新曲譜 許可. 북미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회로부터 安益泰가 作曲한 愛國歌 新曲譜의 使用 許可를 要求하였음으로 大韓民國 22년 12월 20일 國務會議 內務部로서 그 使用을 許可하기로 議決하다.” 이 같은 사용 허가 요청은 임시정부의 위상뿐만 아니라 애국가에 대한 위상도 확인시켜 준다. 동시에 허가권자인 임시정부도 당연히 이를 사용하게 되었음을 알게 한 것이다. 이 변화는 이듬해인 1941년 중경 임시정부 국군 광복군의 성립식에서 안익태 곡조의 애국가를 공식적으로 연주하게 한 것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지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임시정부에서의 안익태 신곡보 채택은 작곡가 안익태가 자신의 업적을 인정받기 위해 사용 요청을 한 것도 아니고, 더욱이 임시정부가 작곡료를 주고 위촉하여 그 결과를 받아들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당연히 청년 음악가 안익태의 순전한 애국심에 의한 작곡이고, 이의 진정성을 교민단체가 임시정부에 전해 채택되기에 이른 것이란 점이다. 이는 1906년 교육용의 ‘애국적 찬송가’의 하나로 작사한 윤치호의 ‘동해물과 백두산이~’ 가사도 마찬가지다. 누구의 작사인지도 모르게 학생들과 대중에게 전파된 사정이 그렇다는 것이다. 드디어 1945년 8월 해방을 맞았다. 마음 놓고 애국가를 소리내어 부를 수 있게 되었다. 11월 21자 ‘예술통신’은 미국에서 귀국한 김호(金乎)씨 제공의 ‘창의적이고 아름답고 웅대한 악보’를 게재하며 "미국서는 모든 국가 의식에 조선을 대표하는 때는 벌써 이 곡을 쓰고 있고 특히 조선어 방송 시간에도 쓰고 있다"는 정황 까지 전했다. 또한 10월 18일에는 김구선생이 제자(題字)를 쓴 한중영문중국판(韓中英文中國版) ‘한국애국가(韓國愛國歌)’란 악보집을 발간했다.11월 23일에는 김구 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할 때 비행기에서 한반도가 보이자 "누구의 지휘도 없이 ‘동해물과 백두산이…’의 애국가가 엄숙하게 흘러나왔다. 비행기 속 공기를 흔드는 노래 소리는 어느덧 울음 섞인 노래”로 불렸다. 그리고 12월 16일, 드디어 이뤄진 명치좌(明治座)에서의 ‘해방기념음악회’에서 이화여고생들의 합창으로 국내 초연이 이뤄졌다. 북한도 1948년 7월 8일 ‘북조선 인민회의 제5차 회의’에서 태극기와 애국가 사용 페지 결정 전까지 애국가를 불렀다. 다만 곡조는 안익태 곡이 아닌 기존의 ‘올 드랭 사인’곡이었다. 1948년 8월 15일, 서울 중앙청 광장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식이 개최되었다. 의전 순서에 따라 경찰취주악대 반주와 연합합창단과 국민의 합창으로 애국가가 연주되었다. 드디어 국가 애국가는 그 역사성과 정통성을 공인 받았다. 이로서 애국가는 적어도 대한민국 국가의 위상을 부여받은 것이다. 세계 국가사에서 전통적으로 전승되어 온 노래가 드디어 국가로 승격되는 계기는 국가적 행사에 공식적인 의전 순서에서 연주된 것이라는 사실을 견준다면 이 경우는 이의가 없는 것이다. 3.1운동 시위현장,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개원식, 중경 임시정부 국군 광복군 성립식,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수립식에서의 공식 연주, 정통성을 공인 받은 역사적인 사실인 것이다. 이상에서 살핀 애국가의 긴 여정을 통해 오늘의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를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첫째는 애국가는 나라사랑을 표현한 노래를 말 하는 보통명사이면서 동시에 대한민국의 국가(國歌)의 명칭이란 고유명사다. 이 동시성에는 두 가지을 함의 한다. 하나는 식민지와 임시정부와 미군정기를 가졌던 특수성에서 ‘애국가’와 ‘국가’의 의미를 함께 담은 것이란 점이다. 이는 우리민의 특수한 현상이다. 또 하나는 나라를 상징하는 국가 상징물로서의 국가이기보다는 나라사랑을 촉구하는 애국적인 노래로서의 기능성을 우선한다는 사실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작사자 윤치호나 작곡가 인익태 모두 개인적인 애국심에서 작사하고 작곡한 것이지, 공적 기구의 의뢰나 작품료를 받고 위촉 받아 완성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애국심의 발로라는 진정성을 지니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셋째는 오늘의 국가상징물이 되기까지는 작사자나 작곡가와 무관하게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은 애국가가 지닌 최고의 가치이며 다른 나라와 변별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그 위상과 가치를 변경하거나 재설정을 필요할 때는 이를 선택한 역사 공동체 시기 민중을 존중하여 신중해야 한다. 즉, 이를 상회할만한 새롭고 유의미한 대체 명분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다. 그 명분은 분명하다. 곧 통일에 의한 남북민의 자유로운 선택, 그 명예롭고, 위대하고, 역사적인 선택을 말하는 것이다. 3·1운동 102년을 맞는 우리의 핵심 화두는 서두에서 제시한 3.1혁명 정신 자유·평등·주권·평화여야 한다. 아직도 일제 잔재 청산 단죄와 분노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 인정하다면 작사 작곡자의 친일문제는 국가 애국가의 역사성과 정통성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친일 사실을 문제가 없다거나 문제를 삼지 말자는 것도 아니다. 국가상징물은 이를 규정한 공적 의미에 한정된다는 편협한 해석의 문제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애국가의 오늘은 역사의 고비마다 민중에 의해 자연스럽게 선택된 결과라는 사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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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쑤! 우리가락] 전주MBC2020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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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운해태TV] 동락춤 2017 아비뇽 페스티벌 공연2017년 7월 19일~25일 아비뇽 페스티벌 축제장 고객을 찾아가 흥겨운 판을 벌이는, 동락춤 공연은 '고객 감동'의 경영이념을 실천하기 위한 크라운-해태제과의 노력입니다. 공연자의 앞, 뒤로 인형을 봉(棒)에 엮어, 마치 다수의 공연자가 합을 맞춰 공연하는 듯한 움직임이 동락춤의 가장 큰 특징이다. 크라운-해태제과의 동락춤은 2017년 부터 세계 유수의 종합 예술 축제인 아비뇽 페스티벌과 애든버러 페스티벌에 참가하며 새로운 도전을 계속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