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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이 걸어 온 길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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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국악신문이 걸어 온 길 29

전문지로서의 편집진용 확립(10)

  • 특집부
  • 등록 2021.04.12 10:31
  • 조회수 191,647

문화재청 이소라 위원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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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음악연구소(민음연) 이소라 소장, 우리나라 최고 농요 연구가라는 칭호가 따른다. 70여권의 저서와 2017년 문화재청에서 문화훈장(농요 연구)을 수여받았다. .

 

2000년대 들어 국악신문편집(자문) 위원의 수가 늘었다. 기존 4명 내외에서 6명 내외로 확대된 것이다. 이는 국악신문의 편집 방향의 변화를 의미한다. 예컨대 2003120일 자 제126호 판권에는 이소라 김명자 양종승 김연갑 김승국 김종철 6인이 표기된다. 이 중에 이소라와 김연갑은 민요연구 전문가이고, 양승종은 무속연구 전문, 김명자 김승국 김종철은 국악정책 연구 분야 전문가이다. 이 중 주목되는 분야가 민요 분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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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이소라 민족음악연구소장은 코로나 이후에도 민요 향유자를 찾아 가는 현장 연구의 교과서라는 칭호를 빋고 있다.

 

이 시기는 ‘mbc민요대전이란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아 대중들에게 토속민요의 가치를 알렸고, 아리랑이 국내외에서 조명을 받는 상황이기도 했다. 이 같은 국악으로서의 민요를 주목하게 하는데 자극을 주고 제도권에 관심을 갖게 한 데에는 이소라 위원(당시 문화재청 상임 전문위원)의 기여가 컸다. 이에 따라 이 위원의 참여는 국악신문이 전국 토속 민요판에 관심을 확대시켜 주었다. 이번 회에서는 이 위원에 대해 살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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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에 당시 70세 전후되는 전국 각 읍면의 도민들을 방문하여 사라져가는 농요 등 전래민요를 집중적으로 녹음하였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보충 녹음과 연구를 계속하여 50여권의 저서와 1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전래민요를 보존하고 한국학의 기초를 닦는 일에 기여하였음.”


이소라 위원에 대한 각주(脚註)이다. 간명하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민요학 연구자임을 입증한다. 현장 음원이 첨부한 50여권의 전문 서적과 관련 논문 발표, 이는 한국학의 기초를 닦은 것일 뿐 아니라 민요의 학술적 가치를 인식시킨 성과이다. 국악 전공자라는 내적 조건과 문화재청 상근 전문위원이란 외적조건이 뒷받침된 것이다.


이 위원에게는 두 가지 직함이 쓰인다. 하나는 문화재청 상임 전문위원이고 또 하나는 민족음악연구소(민음연) 소장이다. 전자는 1983년부터 근무한 문화재청(문화재관리국) 소속의 각종 조사 보고서 상의 전문위원 이소라(李素羅)’라는 직함이고, 후자는 1985년부터 1992년까지 발간한 韓國農謠1-5(玄岩社/民俗苑 刊) 같은 저작활동과 <민요권의 의미>(2003. 1회학술 세미나 발표) 같은 행사의 주관처로서의 나요당(羅謠堂) 이소라 소장’이라는 직함이다. 청주대학 등의 교수나 Arizona State University 등의 교환교수는 물론, 이를 포괄하여 세계적인 민속음악 전문가라는 직함도 있다.


특히 해외에서의 한국 민속음악 전문가로서의 활동은 이 위원만의 활동상으로 국가적 보상이 따라야 할 업적이다. 예컨대 1994년 개최한 아태음악학회 주최의 <한국과 일본의 교창식 모노래에 관한 고찰>(The study about the rice-planting songs of Korea and Japan), 2002년 필리핀국립대학 주최 <A Sharing of Musical Parts as a Manifestation of Cooperation and Joint Work in Korea>(A Search in Asia for a new theory of music] University of the Philippines. Center for Ethnomusicology), 2009년 워싱턴 DC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주관 <아메리칸 인디언 구전 연구와 CD제작>에 참여한 업적은 한국의 음악학 수준을 세계에 알린 연구이다.


이 같은 성가는 이 위원의 전문가로서의 공력이 뒷받침해 주었다. 경기여고 졸업, 서울 법대 법학과 졸업(법학사), 이후 다시 서울음대 작곡과에 편입하여 수학하고 서울음대 대학원에서 석사,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에서 예술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에 병행하여 7개 국악기와 춤과 성악까지 사사했다. 해금(강사준), 해금(김흥교/김영재/최태현), 거문고(이오규), 가야금(홍원기), 장고(박병천), (이동안), 봉산탈춤(김유경), 여창가곡(홍원기/이석재), 가곡(전효준) 등을 사사하며 수학했다. 또한 한국정악원 풍류단에서 연주자로도 참여하였다. 이는 앞에서 제시한 50여 권의 저술과 100여 편 논문의 질적 보장을 담보해 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보상은 값지다. 1992KBS국악대상 출판상을 수상했다. 1996년에는 경기여고 동창회가 수여한 열매상을 받았다. 그리고 2014년에는 민요분야 상으로 최고의 권위를 갖는 월산 임동권 학술상을 받았다. 이 같은 수상은 그간의 공적에 비하면 미약하기도 하다. 앞으로 국가와 학계의 보상이 따를 것으로 기대한다.


이소라 편집자문 위원은 2000년대 전반기 국악신문과 함께 했다. 국악 전문지로서의 전문성을 높이고, 정론지로서의 위상을 높이는 데 힘을 더해준 국악신문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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