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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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흙의 소리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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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흙의 소리 31

흙의 소리

 

 

이 동 희

 

진출 <6>

황종은 한국의 전통음악 율명으로 첫 번째 음률이다. 낮은 음으로부터 시작하여 황종 대려 태주 협종 고선 중려 유빈 임종 이칙 남려 무역 응종 12율이며 이는 일년 열두 달에 배속시켜 양의 기운이 처음 생기는 동짓달부터 시작하여 황종은 11월 달에 해당된다. 양의 기운이 땅 속에서 움직여 만물을 소생시킨다는 의미가 있다. 방위는 자, 처음 시작의 뜻이 담겨 있는 음율이다.

율관의 길이를 재던 자를 황종척黃鍾尺이라고 하였다. 황종율관은 우주의 중심이 라 할 수 있는 황종음률의 높이를 표출해 내는 죽관의 길이는 일상적인 길이가 되고 잣대가 되고 기준이 되었다.

황종율관의 내경 속에 채워지는 기장의 양은 생활의 부피의 단위가 되고 기장의 무게는 무게의 단위가 되고 기장의 길이는 또 길이의 단위가 되었다. 그래서 황종율관은 도량형의 기준이 되었다. 황종의 높이-황종율관의 길이-를 얼마로 정하는냐의 문제는 그대로 생활의 기준이 되고 삶의 척도가 되었다.

박연의 악기 제작은 단순히 악기의 제작에 그친 것이 아니고 삶과 직결된 것이고 일상의 삶과 시간과 우주 땅의 기운이 융합된 철학이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오성을 고르고 저울로 헤아려 보고 살펴보고 한 이유가 거기 있었던 것이다.

박연의 음악적 업적 중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것이 율관 제작의 시도이다.

국악인 한명희는 먼저 인용한 난계의 업적에서 말하고 있다.

얼핏 율관 제작이라면 한갓 악기의 제작쯤으로 치부하기 일수이겠지만 기실 황종율관의 제작이란 나라의 기틀을 좌지우지하는 근원적이고도 중차대한 행위인 것이다.

그리고 박연의 음악적 공헌으로 연결되는 동양적 음악관에 대하여 말하였다.

나라가 바뀌면 음악도 바뀌는 것이다. 치세지음治世之音이니 망국지음亡國之音이니 하는 일상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은 곧 음악제도의 붕괴를 뜻하기도 했다. 난세지음亂世之音이 횡행하면 백성들의 심성이 사악해지고 사회기강이 문란해서 결국은 나라가 망한다는 논리였다. 시대적 관점이 이러했기 때문에 왕조가 바뀌면 음악 제도를 바꾸는 것이 상례였다. 망국의 음악을 새로운 왕조에서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서히 사회분위기가 안정되자 악정樂政에 관심을 기울인 세종의 치적도 이 같은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고 박연의 음악적 공헌도 같은 관점에서 보다 큰 역사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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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신문] 이무성 화백의 작화 : [연재소설] 흙의 소리 31

  

어떻든 박연은 음악의 원초이자 생활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한 틀에 12개 달린 석경, 황종율관을 정확하게 만들기 위해서 몇 차례 치밀한 시도를 하였고 그러고도 흡족한 자위를 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박연의 음악에 대한 치열한 집념이자 누구나 할 수 없는 율관 제작의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황종율관의 제작이 세종의 중요한 음악적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는 이유이다.

영동 난계국악당에 있는 편경編磬을 둘러보았다. 종묘제례악의 등가登歌에 편성된 아악 악기였다. 두 층의 걸이가 있는 틀에 경쇠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세종 때 남양에서 소리가 아름다운 경돌을 발견하게 되어 새로 만든 경은 중국의 것보다 더 아름다운 음색을 가졌고 또 그 음율도 정확하였다고 설명을 붙여놓았다. 경돌은 ㄱ자 모양으로 깎아서 만들며 두께에 따라서 음율의 높낮이가 다르다고 하였다.

이 악기를 간직하는 고직庫直이가 혹 실수하여 한 개라도 파손하였을 때에는 곤장 100대에 3년 유배라는 엄벌에 처한다는 경국대전의 얘기도 있다.

박연의 숨결이 이곳저곳에 서려있는 것이 느껴졌다.

괴나리 봇짐을 지고 여기를 떠나 문과에 급제하고 집현전 교리를 거쳐 지평 문학을 역임하다가 세종이 즉위한 후 악학별좌에 임명되어 음악의 일을 맡아보기 시작하였다. 당시 질서가 없는 악기 조율調律의 정리와 악보 편찬의 필요성을 상소하여 허락을 얻고 새로 편경 12장을 만들었다. 이 획기적인 음악사적인 사건을 정리하여 다시 말하지만 처음에 중국에서 보내온 황종을 삼분으로 조정해서 12율관을 만들었고 옹진의 기장과 남양의 석경으로 조화를 이루어 드디어 종묘조회의 악기를 갖추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해 가을 종묘의 영녕전永寧殿의 여러 제사 때 편경을 통용하게 했다.

그리고 다음 해 5월 편경과 특경特磬을 완성했다. 또 그 다음 해 여름 자작한 12율관에 의거하여 음율의 정확을 기하였다. 말 그대로의 정확을 이루는 대장정이었다.

이러구러 난계 박연은 51세 지명知命의 나이가 되었다. 하늘하늘 약하지만 부러지지 않고 강가 빈 터에 씨를 뿌리고 가꾸듯이 소걸음으로 느릿느릿 그러나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그 이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