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목)
신재효는 본관이 평산(平山)이요 자는 백원(百源)이며 호가 동리(桐里)로, 순조 11년(1812) 11월 6일 전북 고창에서 관약방을 하던 신광흡의 1남 3녀 가운데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73세(1884, 고종21년)를 일기로 태어난 집에서 태어난 날짜와 똑같은 날 다시 이 세상을 떠났다.
중인 출신인 아버지 신광흡은 경기도 고양에서 살다가 서울에서 직장(直長)을 지냈는데, 고창현의 경주인 노릇을 하였다. 경주인은 서울에 머물면서 자신이 담당한 지역의 연락 사무를 대행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신광흡은 경주인의 자리에 있으면서 재산을 모았는데, 이 재산은 그의 아들 신재효가 고창에서 향리로 활동하는 데 든든한 기반이 되었다. 뒤에 신광흡은 고창에 이주하여 관약방을 하기도 하였다.
신재효의 어머니는 나이 40이 넘도록 아들을 얻지 못하다가 정읍에 있는 월조봉에 치성을 드려 신재효를 얻었다고 한다. 신재효는 회갑이 되던 해(1872)에 내장산 영은사의 법당을 중수하였을 때 그 법당의 상량문을 써준 것으로 보아 이 절이 그의 탄생을 빌었던 곳으로 여겨진다. 영은사는 한국전쟁 때 불에 타 없어졌고 이 터에 새로이 내장사가 세워졌다.
부모는 나이 들어 얻었으니 효도하라는 뜻으로 이름을 재효라고 지었는데, 신재효는 부모의 이러한 뜻에 어긋나지 않게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신동으로 소문날 정도로 재주가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글은 아버지로부터 주로 배웠는데, 그의 아버지 신광흡이 종 7품 벼슬인 직장을 했으며 관약방을 경영한 것으로 미루어 아들에게 공부를 가르칠 만큼의 소양은 충분히 갖추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신재효는 철종 3년(1852)에 고창 현감으로 부임한 이익상 밑에서 이방을 지냈고, 이어서 호장까지오른 뒤 은퇴했다. 고양에서 살았던 아버지가 고창에 내려와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재효가 향리의 우두머리격인 호장에 올랐다는 것은 그가 남다른 재능과 함께 현실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났음을 말해준다. 호장에서 퇴임한 뒤인 고종 13년(1876)에는 고창현감으로 부임한 유돈수로부터 그 동안의 업적에대해 위로를 받을 정도로 고창에서 대단한 신망을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가 죽은 뒤에 여러 향반들이 만장을 써 보낸 것으로 보아, 고창의 향리나 서민들과 신분을 넘어선 폭넓은 교유를 맺었다. 현재 고창현의 관아가 있었던 모양성 안에는 향리 출신의 신재효와 그의 아버지 신광흡의 유애비(遺愛碑)가 세워져 있다.
신재효는 이미 40대 전후에 곡식 1천 석을 추수하고 50 가구가 넘는 세대를 거느린 부호가 되어 있었다. 신재효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치산의 지혜와 근면성, 성실성 등 그의 남다른 노력의 결과에 의해서였다. 물론 부친의 물려준 유산이 치산의 기반이 되었을 것임은 물론이다. 그가 재산을 모으고 관리하기 위하여 견지했던 근검 절약의 생활 철학은 그가 남긴「치산가」에 잘 나타나 있다.
신재효는 모은 재산을 쓸 줄 모르는 졸부가 아니었다. 병자년(1876)의 대흉년에는 아끼면서 모은 재산을 굶주린 재해민을 돕는 데 아낌없이 썼다. 이때 그는 사람들이 아무 대가 없이 물질적인 신세를 지면 의타심이 생긴다면서 비록 헌 옷가지나 걸레라도 가져와서 곡식과 바꾸어 가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물건에 표시를 해두었다가 후일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갚으러 온 사람들에게는 원래의 곡식만을 받고 그보관물을 다시 돌려주었다고 한다.
신재효가 아량이 넓고 매우 인간적이었음을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일화도 전해온다. 어느 날 밤 도둑이 신재효의 침방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는 당황하지 않고 부드러운 말투로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이도리에 어긋나는 일임을 타이른 뒤, 돈 1백 냥을 주면서 남을 해치지 말고 바른 사람으로 착하게 살아갈 것을 당부하였다. 얼마 뒤 그 도둑은 1백 냥의 이자까지 내놓으며 과거의 잘못을 뉘우쳤다. 그러자신재효는 그럴 수 없다며 도둑이 착한 사람이 된 것을 칭찬하며 되돌려보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신재효는 자신이 근무하던 관아인 형방청의 건물을 중수하는 데에 돈을 시주하였고, 경복궁의 복원 사업에 원납전으로 5백 냥을 헌납하였다. 특히 광대의 양성과 후원에는 전 재산을 기울였다.
그는 굶주린 백성을 구휼한 공으로 가선대부의 포상을 받았고, 경복궁 재건을 위한 원납전 희사의 공으로 고종 15년(1878)에는 통정대부라는 품계와 절충장군 용양위 부호군이라는 명예직을 받기도 하였다.
신재효가 전 재산을 털어서 판소리에 몰두하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추정할 수 있다.
우선 조선 후기에는 경제적으로 안정을 누리게 된 계층이 예술 집단의 후원자를 자임하는 현상이 있었는데, 신재효의 판소리에 대한 관심도 이러한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생산적인 유흥에 몰입하였으며, 뚜렷한 현실 인식을 갖추지 못하였다. 그러나 신재효는 판소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개작한 사설에서 자신의 현실 인식을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역사를 위한 동력을 발휘하였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향리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판소리를 지원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는 향리로서 각종 연회에 판소리의 연창자를 포함한 가객과 기녀를 동원하는 일을 주선하였을 것이고, 또 고창현에 소속된 당시의 예능인들과 자주 만나게 되었을 것이다. 이때 그는 직업상 판소리의 연창자들과 접촉하고 그들의 소리를 들으면서 점차 판소리에 심취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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