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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헌의 고서이야기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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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헌의 고서이야기 27

  • 특집부
  • 등록 2021.03.10 07:30
  • 조회수 1,732

 

                                               박대헌 고서점 호산방 주인완주 책박물관장

 

           끝나지 않은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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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73] 난고문학관 소장 김병연 가짜 글씨, 「선생부지하」 시문

 

 

지금까지 난고문학관 소장 김병연 친필 관련 자료 넉 점의 진위에 관해 살펴보았다. 이들 중 선생부지하」 「금강산」 「반휴서가는 김병연의 친필이 아닌, 최근에 만들어진 가짜 글씨로 결론 내릴 수 있다. 또 김병연의 친필 간찰 영인본이라 하는 내우혜서난고 김병연이 아닌 김병연과 동명이인의 글씨를 영인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세간에는 김병연의 친필이라고 소문난 글씨가 종종 나돌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과문한 탓인지 그의 친필이라고 생각되는 필적을 아직 한번도 만나 보지 못했다. 그렇게 많은 시를 지었으면서도 그의 친필이 아직까지 한 점도 발견되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 까닭은 평생 방랑생활로 생을 마감한 김병연의 생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김병연의 친필은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설령 그의 친필이 세상에 존재한다 하더라도 앞에서 설명한 객관적인 요소를 모두 증명해 보이지 않고는 그의 친필로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자료의 고증은 냉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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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74] 난고문학관 소장 김병연 가짜 글씨, 「금강산」 시문

 

 지금까지의 사실을 통해, 모든 역사 연구는 정확한 기록과 자료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이처럼, 역사란 기록이다. 또 기록은 역사가 된다. 그러나 그릇된 기록이 그릇된 역사를 만드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이러한 내용의 논문을 발표하자, 20031217일자 강원도민일보사설에는 난고문학관의 가짜 김삿갓 친필이란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방랑시인 김삿갓이 묻혀 있는 영월에 어렵사리 문을 연 난고문학관의 그의 친필 넉 점이 가짜라는 주장이 제기돼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가짜를 주장한 이가 한국 고서 연구의 권위자이고, 사석도 아니고 고서연구에 논문을 게재하면서 밝힌 것이니까 이를 영월군 관계자의 말처럼 모두 철저한 고증을 거친 진품이라며 가볍게 일축하긴 어렵다. 난고문학관 측이 일부러 가짜진짜라고 이제껏 속이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문학관 측, 즉 영월군이 친필 넉 점을 사들이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누가 위작을 진품인 것처럼 속였거나, 가짜를 진짜로 잘못 알고 영월군에 납품하는 실수 또는 고의가 있었을 것이다. 그 경위를 밝혀내 잘못됐으면 시인하는 것이 지금 이 불을 끄는 최선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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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75] 난고문학관 소장 김병연 가짜 글씨,  「내우혜선」 간찰

 

가짜를 제기한 이는 "김병연(김삿갓)의 위작 글씨가 버젓이 난고문학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은 그에 대한 모독이며 우리 문화의 수치라고 폭로 배경을 밝혔다. 그의 말처럼 가짜가 사실이라면, 지역문화를 발굴하고 계승 발전시켜 보려던 지역 역량이 비웃음당한 꼴이다. 그보다, 지역주민들이 누려 보려던 지방문화 향수 그리고 지역의 문화정서에 대한 문화사기꾼들의 폭력이다. 어떻게 만든 난고문학관인지, 그리고 들어간 수십억 원이 누구의 돈인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더구나 난고문학관의 명예가 곤두박질하는 것은 물론 김삿갓의 고장답게 적어도 그의 친필 몇 점을 갖추어 놓았다고 자랑하던 지역주민의 긍지가 먹칠당하는 이 지경을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의 작품을 문학관이 소장하기까지 나름대로 고증과 조언을 받는 과정이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 과정에서 있었던 누구의 안목이나 전문성을 비방하거나 원 소장자의 컬렉션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또한 가짜를 주장한 이가 인용한 문헌자료나 그의 안목에 대해 무조건 동의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대원군과 추사를 조심하라는 말이 명언이 되다시피 하고 있는 고문서·고미술품 시장의 흑막에, 전문성이라고는 없는 지자체가 덜컥 걸려든 건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추사의 글씨 오십 퍼센트가 위작이라는 말이 공공연한 마당에 김삿갓 글씨라고 진품만 돌아다닐 리는 없다. 난고문학관의 친필이 그 시장에 떠도는 가짜라는 것이 이번 논란의 핵심이다. 그러니까 문제의 친필 입수 경위를 밝히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역의 문화실추를 회복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까막눈일 수밖에 없는 지방의 박물관과 미술관들을 봉으로 삼고 있는 고문서·고미술품 거래 관행에 경종의 계기이기 때문이다.

 

그후 영월군에서는 이렇다 할 입장이나 대책은커녕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다가, 사태가 진정될 기미가 안 보이자 200425난고 김삿갓 친필 관련 진위 여부에 대한 답변을 영월군 홈페이지 등에 내놓았다. 이 사태가 알려지고 50여 일 만에 영월군의 공식입장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밝혀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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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76] 난고문학관 소장 김병연 가짜 글씨, 「반휴서가」 시문

 

여기에서 영월군은 "현재 전시된 김삿갓 친필은 총 네 종인데 원본이 두 종, 이미 공개되었지만 원본이 분실되거나 소장자를 알지 못하는 복사본과 영인본이 각 한 종 있다고 말했다. "선생부지하금강산은 친필이고, 내우혜서는 영인본, 반휴서가는 복사본이다라는 것이다. 이는 "선생부지하금강산」 「반휴서가등 세 종은 친필이고, 내우혜서한 종은 영인본이다라고 했던 종전의 주장과 다른 말이다.

 

영월군은 선생부지하시문에 대해, "정근호 선생 조부의 유품으로, 이미 KBS 진품명품프로에서 진품으로 판정된 작품이라는 사실을 내세워 친필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진품명품은 어디까지나 텔레비전 쇼일 뿐이다. 2003924동아일보사회면에 케이비에스 진품명품칠억 도자기는 가짜란 제목 하에 "KBS TV쇼 진품명품이 최근 역대 최고인 칠억 원의 감정가를 매겼던 도자기가 뒤늦게 가짜로 판명났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것은 진품명품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또한 영월군은 내우혜서반휴서가의 종이가 같은 종이라는 지적에 대해, "내우혜서는 영인본이고 반휴서가는 복사본이라며, 반휴서가에 대해서는 종전의 친필이라는 주장에서 복사본이라고 번복했다. 그러나 난고문학관 설명문에는 개관 당시부터 친필이라고 소개되어 있으며, 또 영월군은 처음부터 이것을 친필이라고 언론에 발표했었다. 그러던 영월군이 이제 와서 복사본이라고 번복하여 발표한 이유는 뻔하다.

이 두 글씨를 진본이라 증명하기 위해서는, 두 곳에 사용된 종이가 서로 다른 종이여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두 글씨의 종이가 같은 종이라면 적어도 둘 중의 하나, 또는 그 이상이 가짜가 될 수밖에 없다.

 

영월군에서는 뒤늦게 반휴서가가 친필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당초의 친필 주장을 복사본이라고 번복했다. 그러나 반휴서가는 영월군에서 처음 말한 대로 친필임에 틀림없다. 다만 난고 김병연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근래에 쓴 친필인 것이다.

 

고서화를 포함한 고미술품의 가짜 소동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것을 만드는 수법도 다양해져 전문가들도 속아 넘어가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국보 274호였던 거북선 별황자총통(別黃字銃筒)’. 19928, 해군은 경남 통영 한산도 앞바다에서 거북선 총통을 발굴해내는 개가를 올렸다. 사흘 만에 국보로 지정된 이 총통은 그러나 19966월 가짜로 밝혀졌다. 진급에 눈이 먼 한 해군대령이 골동품상과 짜고 가짜를 만들어 바다에 빠뜨린 뒤 건져낸 것이다.

 

200310월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선 성리학의 세계전에 출품될 예정이던 율곡 이이와 다산 정약용의 유묵(遺墨)이 가짜로 판명된 일이 있었다. 2005 서울 서예비엔날레의 출품작 일부가 위작 논란에 휘말려 서울역사박물관 전시장에서 철거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위작들은 각종 전시회에 출품되어, 별 탈 없이 전시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진품으로 행세하게 된다.

 

이처럼 국가 차원의 문화행정에서도 실수를 범하는데, 영월군의 행정력과 문화적 안목으로는 김삿갓 가짜 글씨를 알아내기란 애초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설령 실수가 있다 해도 고치면 되는 것이다. 17년이 지난 지금, 난고문학관에는 문제의 가짜 글씨 넉 점이 아직까지 그대로 진열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사진 7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