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정범태가 남긴 국악계 에피소드
1970년대만 해도 판소리와 초기 명창들의 더늠이나 사승관계나 공력 정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책은 1940년에 발간된 정노식(鄭魯湜, 1891~1965)의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와 1966년 발간된 박헌봉의 「창악대강」(昌樂大綱) 정도이다. 이런 정황에서 70년대 명인명창들의 선대와의 관계 등을 살필 수 있는 자료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이 시기는 순전히 발품으로 남도지역을 다니며 ‘째비’와 ‘비갑이’의 관계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얽키고 설킨 관계를 알기는 쉽지 않다. 이 시기 이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를 갖고 있는 이는 정범태 선생이 유일했다. 당사자 중에도 밝은 이가 있긴 하지만 이 들도 자신과 관련된 동호간 주변 정황은 알아도 전반적인 관계는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정황에서 정선생은 남도 무업 집안의 정보는 값진 것이었다. 그래서 이 시기 정 선생 남긴 에피소드는 다른 곳에서는 얻기 어려운 정보이다. 국악신문에 연재된 일련의 기사도 그래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정선생이 자주 한 말이 있다. 필자도 10여년전 인사동 ‘이문설렁탕’집에서 설렁탕을 함께하며 들은 말인데, "뭐니뭐니 해도 당골네는 동혼간여야 족보가 있는 것이고, 화류계에서는 예능보다 이팔청춘이 무기고, 화류계 출입 한량은 남의 돈으로 대접받는 이가 진짜 한량이다”라는 말이다. 이런 말은 실제 만나보고 겪어보아 체험적으로 느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말이다. 이제 제시하는 에피소드는 실속 있는 것들이다.
# "갑(甲)이 아닌데도 갑인 척하는 것을 비가비라고 한다. 비가비라고 해서 모두 세습당골만 못하다고 할 수는 없다. 뛰어난 이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권삼득 명창을 들 수 있다. 또한 해방 후 남원의 한량으로 불린 박춘광 역시 비가비다. 북으로 기능보유자가 된 김명환(金命煥)도 비기비다. 구례 출신 김무규(金茂圭)도 선비광대로 비가비였다.”
‘권삼득 제비가 설렁제’라는 말이 있듯이 권삼득제·덜렁제·권마성제라고 특화하여 말 할 정도로 독특한 더늠을 가진 명창 권삼득이 비가비란 점은 의외이다. 대단히 특출난 인물임을 알게 하는데, 당골 출신이 아니어도 좋은 선생과 공력으로도 명창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런 점을 정 선생은 강조하여 여염한 소리꾼들을 격려하였다.
# "명창의 길을 택한 광대는 소리공부를 마친 후 우선 소리를 평가 받기 위해서 부호의 회갑잔치나 고희잔치에 이름 난 명창을 따라 놀음청에서 선을 보이게 된다. 여기서 잘 한다고 평가를 받으면 다음 기회에 그 사람을 천거하게 된다. 이렇게 되어 관헌에 알리고 아전들이 알면 관가에 일이 있을 때는 수시로 초대된다. 이것을 광대들은 ‘놀음 난다’고 한다. 놀음청에서 제아무리 소리를 잘하는 광대라도 소리를 듣는 순간에는 아무개 명창 칭호를 듣지만 놀음이 끝나면 ‘하게나’ 또는 ‘하소나’ 등의 반말을 듣게 된다. 이 꼴이 못 마땅한 광대는 놀음청에 서지 않고 포장굿이라도 창극단을 만들어 지방 순회를 하면서 여러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인기를 독차지하며 살아가는 길을 택한다. 창극단의 박후성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구한말에서 일제초기 소리꾼들의 두 가지 길, 천시 받기 보다는 힘들어도 대중을 상대로 한 광대를 선택하는 이유를 말 했다. 다음은 2, 30년대 권번 동기(童妓)의 데뷔 과정을 보여준다. 30년대를 기준으로 한다면 명월관(明月館), 국일관(國一館), 식도원(食道園) 등이 대표적인 요리집으로 대개 이름 있는 권번의 동기가 첫 무대로 서는 곳이다. 소리를 통과한 동기에게 남은 주문과 합격 요건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 "자 이번에 손을 한번 벌려 보아라(춤을 춰 보란 말이다). 그러면 눈치 빠른 고인(악사)들은 춤 반주로 들어간다. 그 때 살풀이 한 자락쯤 추어 보이면 좌중에선 알아본다. 춤을 잘 추게 되면 좌중에선 종합 품평을 하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쏟아진다. 얼굴 잘 생겨서 한합이요, 소리 잘해서 이합이요, 춤까지 곁들이니 삼합이 맞아 떨어지는 군아. 기대 해 볼만 한 재목이군아.”
다음은 굿판의 상황, 경기굿과 남도굿의 악기 편성의 차이를 알려 준다.
# "전라도 무악에 아쟁이 끼어든 이유는 바로 가장 슬픈 계면조를 잘 끄집어 낼 수 있는 까닭이고 경기 무악은 담백하여 징을 많이 쓰질 않는다. 전라도는 징, 장구 등 타악기만 있으면 되지만 -여기에 구음이 보태지면 흥이 나고 넌실(발림, 춤)이 제대로 풀린다.-경기는 징과 장고로는 굿이 안된다. 최소한 피리, 젖대, 해금 등의 관악기와 장고는 갖추어야 한다. 서울의 새남굿(시킴굿) 중 자진함이 나오는데 그 음악은 새미클라식에 속하는 고급스런 것이다. 전라도 한량들은 굿판에 끼어들어 징이나 장구로 굿바라지를 할 수 있으나 경기도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굿음악은 전문가가 아니고는 구분이 쉽지 않는 분야이다. 70년대 이만큼의 차이를 밝힌 것은 직접 굿판을 함께하지 않고서는 대비시킬 수 없을 것이었다. 오늘의 관점으로도 이 정도의 에피소드는 별것이 아닐지 모르지만 당시로서는 20여년 간이나 굿판을 체험한 정 선생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것이다.(계속)
1897년 8월 13일 ‘대조선 개국 505회 기원절 경축식’에서 계관시인 윤치호가 작사한 무궁화노래(찬미가 제10장)가 처음 발표된 독립관 전경. 현 애국가의 원형 ‘...
경기검무 경기검무(京畿劍舞)는 서울 및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전통 악기의 반주에 맞춰 칼을 들고 휘두르며 추는 춤 및 그 기술을 보유한 사람을 의미한다.경기검무는...
대구아리랑 한얼 이종선 (2024, 한지에 먹, 48× 45cm) 금호강 밝은달이 휘영청 떠오면 가신 님 그리워서 내 못살...
지난 회에서 가곡과 시조의 차이를 이야기하였다. 가곡은 5장 형식, 시조는 3장 형식으로 구성되었다고 설명하였다. 현재 불려지는 전통가곡의 효시는 고려가요인 ‘정과정’이라는 곡이라...
4월 18일부터 20일, 남산국악당에서 아트플랫폼 동화의 모던연희극 ‘新칠우쟁론기’가 펼쳐졌다. [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지...
[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봄비가 촉촉이 땅을 적시는 4월,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지 6개월이 된 채치성 예술감독님을 만났다. 그는 국악방송 사장, KBS 국악관현...
2024 쿼드초이스_틂 (사진=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 나승열) [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대학로극장 쿼드의 ‘쿼드초이스’...
지난 4일, 국립국악원은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KBS국악관현악단,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관현악단 118명으로 구성된 연합 관현악단 무대 ‘하나되어’를 국...
칠순을 넘어서는 길목에서 중견작가 김경혜(영남이공대 명예교수) 작가의 열번째 작품전이 오는 16일부터 25일까지 10일간 대구시 중구 슈바빙 갤러리에서 열린다.전시되는총 50여 개...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관현악시리즈 III ‘한국의 숨결’이 KBS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 박상후의 지휘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펼쳐졌다. (사진=국립국악관현악단...
한상일(1955~) 대구시립국악단 예술감독 및 상임지휘자는 국악에 입문한 지 올해로 60여 년을 맞는다. 때 맞춰 지난 1월 25일 서울문화투데이 신문에서 선정하는 제15회 문화대...
[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지난 3월 22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서울시국악관현악단 2024 명연주자 시리즈 ‘공존(共存)’ 무대가 펼쳐졌다. ‘명연주자 시리...
[국악신문 정수현 전문기자]=지난 12일부터 22일, 국립정동극장은 대표 기획공연 사업 ’창작ing’의 두 번째 작품, 소리극 ‘두아:유월의 눈’을 무대에 올렸다. ‘두아:...
한국을 대표하는 음곡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라는 노래다. 각종 스포츠 대회나 정상회담 만찬회 등 공식 행사에서는 어김없이 연주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