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아리랑칼럼 24다시 읽는 ‘Song of Ariran’(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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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칼럼 24
다시 읽는 ‘Song of Ariran’(6)

  • 특집부
  • 등록 2021.02.14 15:52
  • 조회수 19,304

 기찬숙/아리랑학회 연구이사

 

유네스코 아리랑로고.JPG
아리랑은 2012년 12월 5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었다. 현재 하나의 노래 아리랑은 현재 남과 북, 중국 3국에서 각각 국가무형문화재로 등록 되었다. 

 

김산은 님 웨일즈에게 같은 곡조의 다른 곡명을 달아 세 편을 불러주었다. 앞 편에서 제시한 ‘아리랑’(Song of Ariran) ‘옥중가아리랑’(Prisoner's ballad of Ariran) ‘아리랑연가’(Love song of Ariran)이다. 적어도 1937년 이전 이렇게 시제(詩題)를 달리하여 아리랑을 재구성하여 부른 이, 특히 옥중을 쓸 수 있는 인물은 김산 밖에는 없다. 1932년 최영한(崔永翰)이 아리랑을 소재로 한 민요시의 부각을 말하며 "조선에서 조선 정조를 잘 표현한 작품이 있다면 그것은 민요일 것이다. 조선문학의 정화이며 조선 시가의 원류이다.”라는 민요론, 게다가 1930년대 신민요는 "시인 자신의 개성을 죽이고 민요의 정신에 입각하여 지은 노래라는 1930년대 말 고종옥(高晶玉)의 신민요론을 뛰어 넘어 시대의 노래로 불리는 아리랑의 진면목을 보여 준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저의 아리랑론, 즉 김산의 아리랑 이식은 저항성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연히 조선조말 조정의 무능함과 이에 더해진 일제의 제국주의적 침략성에 대한 철저한 저항인 것이다.

 

김산이 님 웨일즈에게 각인 시킨 SONG of ARIRAN첫 면의 아리랑에서 "망명과 투옥과 국가적 굴욕을 담은 오래된 전래민요라고 그 성격을 선명하게 제시했다. 여기에서의 망명과 투옥, 그리고 국가적 굴욕이란 1937년으로부터 300여년 전이니 조선조 말로부터 일제의 침략기(Because it is beautiful and tragic it has been the favorite song of all Koreans for three hundred years.) 저항한 노래라고 한 것이다. 당연히 저항은 탄압을 동반함으로 슬프고 비극적인 처지의 노래라고 했다. 책 첫머리에서부터 이러한 성격을 분명히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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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SONG of ARIRAN」 출간을 처음으로 알린 서평지 '문학의 토요리뷰' www.arirangnara.com (사진제공:김산연구회(기미양)) 

 

"이 애끓는 노래가 한국의 모든 감옥에서 메아리 쳤다. 이윽고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리랑을 부를 수 있는 최후의 권리는 누구도 감히 부정할 수 없었다. ‘아리랑은 이 나라 비극의 상징이 되었다.”(Every Korean prison echoes with these haunting notes, and no one dares deny a man's death-right to sing it at the end. The ‘Song of Ariran’ has come to symbolize the tragedy of Korea.)

 

그러나 비극에 머무른 노래가 아님도 분명히 했다. 저항의 그 끝에서 극적인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새로운 가사를 통해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노래는 죽음의 노래이지 삶의 노래는 아니다. 그러나 죽음은 패배가 아니다. 수많은 죽음 가운데서 승리가 태어날 수도 있다. 이 오래된 아리랑에 새로운 가사를 붙이려는 사람도 있다.”(It is a song of death and not of life. But death is not defeat. Out of many deaths, victory may be born. There are those of us who would write another verse for this ancient "Song of Ariran.)

 

그래서 그 희망을 쟁취하기 위해 극한 저항을 노래한 아리랑을 위험한 노래로 규정하여 위험한 사상만큼이나 위험하다며 탄압하였다.(The Japanese are almost as afraid of ‘dangerous songs’ as of ‘dangerous thoughts’.) 김산의 이러한 저항정신은 단순한 정치학적 약소국으로서의 저항이 아니다. 당연히 문화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이 자리하고 있어 문명사적 정당성을 갖고 있었다.

 

"우리 한반도는 언제나 일본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일본으로 혹은 시베리아에서 남쪽으로 진출해 나가기 위한 디딤돌이 되어 왔다. 수백년 동안 한국은 북방문화의 중심지였는데, 오랑캐들이 중국을 침략하는 길에 언제나 한국에 침입하여 한국의 아름답고 개화한 도시와 농촌을 황폐하게 만들어 버렸다.”(Our little peninsula has always been a stepping stone from Japan to China and back again, and from Siberia to the south. She was for hundreds of years the center of culture in the north, and every barbarian invasion passed over on its way to China, devastating Korea's fair cities and fields of civilization.)

 

이러한 자긍심에서 김산은 아리랑을 중국의 항일전선의 동지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불러주며 인식시켰다. 그리고 그들의 동의를 얻어냈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모두에게 가르쳐 주었다. 조선의 민요 아리랑. 우리는 이 노래를 부르고 모두 울었다. 중국 사람들은 이 노래가 아주 마음에 들어서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I taught everyone to sing the song I loved best-the old Korean Song of Ariran, and we all wept after we had sung this. The Chinese liked it very much and said they would never forget it.) 특히 감옥의 일본 간수에게 까지도 아리랑을 인식시켰다. 1930년말 북경 경찰에 체포되어 일본에 넘겨져 유치장 머물던 날, "이곳에서 또 다시 아리랑고개를 넘어 간다”(Here I climb again the hills of Ariran.)라고 벽에 쓰고 일본 간수가 조선인 공산당 혁명가임을 알고 인터네셔날가을 불러달라고 했을 때 대신 아리랑을 불러주었던 사실이 있다. 그 절망적인 순간의 대화에서조차 아리랑을 언급하였다.

 

"오늘 같은 날에 내가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오직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게 뭔데요?"

 "조선에서 아주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는 죽음과 패배의 노래입니다. 아리랑이지요."

나는 이 노래의 의미를 말해 주었다. 그리고 황량한 갈색 벌판을 바라보고 광동코뮨과 해륙풍을 생각하면서 낮은 소리로 아리랑을 불렀다

그는 대단히 감동하여서 이제까지 들은 노래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고 칭송을 했다.

 

"당신 부인도 이 노래를 알고 있습니다. 조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대로 이 노래를 알고 있지요

만일 부인이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으면 당신은 부인에게 새 옷을 사주고 친절히 대해주지 않고는 못 배길 것입니다."

"나는 이 노래를 절대로 잊지 않겠어요.”

 

유치장에서의 일본 간수와의 아리랑 교류, 얼마나 극적인가. 아리랑만이 가능한 상황이다. 이는 아리랑의 대동성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어제의 북방문화의 중심지 문명국 조선이 오늘의 중국과 일본의 소용돌이에서 슬픈 노래이지만 언젠가는 상생의 노래로 부를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 준 것이다.

 

SONG of ARIRAN속의 아리랑은 저항성(抵抗性), 대동성(大同性), 상생성(相生性)을 지닌 노래인 것이다. 이는 곧 아리랑이 지닌 정신으로, 이 때문에 아리랑은 보편 가치를 지닌 노래이다. 바로 김산이 발견한 이 영롱한 아리랑정신은 그의 투철한 혁명성 못지않은 빛나는 유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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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김산의 아리랑. 기획:아리랑학회. 음반해설:김연갑/기미양, 소리:김영임. 나레이션 :김연갑(한국어)/김수희(영어), 발매:신나라

 

SONG of ARIRAN은 김산(金山/1905~1938)으로 표기된 장지학(張志鶴) 또는 장지락(張志樂), 가명 장지락·리철암·류정화·한국류·류허·한산으로 쓴 인물의 생애와 그가 지닌 혁명정신과 그가 지닌 아리랑 정신이 무엇인가를 기록한 값진 책이다.

 

주인공 김산은 사회주의 혁명가·항일독립투사·아나키스트·국제주의자·민족주의자라는 다양한 평가를 받는 문제적 인물이다.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공산혁명이란 민족해방운동의 한 이념적 무기로서 인식하는 과정과 마르크스주의 이론 자체 차원이 아니라, 일본제국주의의 독점적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정치적 실천 활동(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을 동시 추구)에 목적을 갖게 되었음을 대변해주는 인물이다. 만주·북경·광동 지역에서 조선 독립운동의 한 방편으로 중국공산당에 입당, 활동하였기에 늘 일제의 눈을 피해 활동해야 했다.

 

아시아의 제국주의적 광풍을 중국 공산당 혁명 성공의 결과로 조선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활동하였다. 중국 공산당의 일원이지만 결코 "작은 약소국 조선이 흘린 피가 결코 물에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소금처럼(like salt in water)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각오를 견지하였다. 이에 의해 조국에서 일제를 물리치고 새로운 질서에서 평화롭게 동아시아 국가로 함 산다면 모든 종교와 이념이 지극히 도달해야 할 상생의 실천인 것이다.

 

이러함에서 3.1운동으로 조국을 떠나기 전부터 인식한 아리랑의 속성을 주목하여 담론화 하며 절실한 동지로 삼았다. 그 결과 아리랑에 대한 혁명적 해석, 혁명을 견인하는 극한적 극복의 노래로 입론하여 함께하였다. 그리고 인간적 교류의 처지에서 불의에 저항하나 크게 하나 되어 대동하고, 끝내는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 상생의 질서를 실천하는 노래임을 SONG of ARIRAN에서 외쳤다.

 

김산은 아리랑정신의 지혜로운 발현자이며, 동시에 아리랑정신의 투철한 실천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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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을 국내 최초 초역 연재한 잡지 '신천지 ' www.arirangnara.com (사진제공:김산연구회(기미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