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6 (화)

[연재소설] 흙의 소리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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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흙의 소리 23

  • 특집부
  • 등록 2021.02.11 07:30
  • 조회수 1,389

흙의 소리

 

 

이 동 희

소명 <3>

"주례周禮에 보면 예법 제사의 일을 맡아 하던 춘관春官의 태사太師가 육률六律과 육동六同을 관장하여 음양의 소리를 합하였는데

육률은 십이율十二律 가운데 양성에 속하는 여섯 가지 음 황종黃鍾 태주太蔟 고선姑洗 유빈蕤賓 이칙夷則 무역無射이며 육동은 음성에 속하는 여섯 가지 음 협종夾鍾 중려仲呂 임종林鍾 남려南呂 응종應鍾 대려大呂이다.

박연은 소리의 종류를 설명하고 상주를 계속하였다. 물론 글로 써서 올리는 것이고 한자 한자 정성이 깃들어 있었다.

"대개 두병斗柄(국자모양의 북두칠성 자루가 되는 세 별)이 십이신十二辰을 운행하되 왼쪽으로 돌게 되는데 성인이 이를 본떠서 육률을 만들고 일월은 십이차十二次로 모이되 오른쪽으로 돌게 되는데 성인이 이를 본떠서 육동을 만든 것입니다. 육률은 양이니 왼쪽에서 돌아서 음에 합치고 육동은 음이니 오른쪽으로 돌아서 양에 합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대사악大司樂이 천신天神에게 제사지낼 때에는 황종을 연주하고 대려로써 노래하여 합치고 지지地祗(지신)에게 제사지낼 때에는 태주를 연주하고 응종으로써 노래하여 합치고 사망四望(해 달 별 바다)에 제사지낼 때에는 고선을 연주하고 남려로써 노래하여 합치고 산천에 제사지낼 때에는 유빈을 연주하고 함종으로써 노래하여 합치고 선비先妃에게 제향祭享할 때에는 이칙을 연주하고 소려로써 노래하여 합치고 선조에게 제향할 때에는 무역을 연주하고 협종으로써 노래하여 합치게 하였으니 양률陽律은 당하堂下에서 연주하고 음려陰呂는 당상堂上에서 노래하여 음양이 배합되어 서로 부르고 화답한 뒤에야 중성中聲이 갖추어지고 화기가 응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고대의 제도에 가까워 악을 사용할 때에는 모두 합성合聲을 사용했고 당나라에 이르러서도 악의 제도가 지극히 상실詳悉하여 오직 제사 때에만 아래에서 태주를 연주하고 위에서 황종을 노래하였는데 그 때 조신언趙愼言이 황종을 고치어 응종으로 하기를 청한 것은 합성을 사용하자는 말이었습니다. 대개 태주는 양이니 인방寅方에 위치하고 응종은 음이니 해방亥方에 위치하는데 인과 해가 합치게 되는 것은 두병이 해의 달에는 일월이 인에서 모이고 인의 달에는 일월이 해에서 모여 좌우로 빙빙 돌고 교대로 서로 배합하여 서로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른 달에도 그러하여 각기 그 합함이 있는데 이로써 성인의 제도에 음과 양을 취합하여 당상과 당하에서 반드시 합성을 사용하였으니 중성을 갖추고 음양을 고르게 하여 신과 사람을 화합하게 한 것이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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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작화 : [연재소설] 흙의 소리 23

 

하나 하나의 미세한 음계와 음가 그리고 고대로부터 시대를 꿰뚫고 있는 음악의 해박한 이론과 우주 일월성신 신과 인간을 아우르는 철학적 이치를 낱낱이 늘어놓고 있었다. 모르면 몰라도 그보다 더 명석하고 조리있게 얘기할 사람이 또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언제나 신이 삼가 생각하건대하고 겸손하게 자락을 깔고 고하였다. 혹여 너무 아는척을 한다고 본 뜻을 감하는 염려도 하였으리라.

조신언은 당나라 때 인물이다. 뒤의 제악祭樂 무인舞人 악공樂工 등에 관한 얘기에서도 등장한다. 같은 시대 사람 조신언은 숙부 방간의 사위로, 왕의 전지傳旨가 있다고 사모詐謀하여 여흥으로 귀양을 가는데 동명이인이다.

일부러 그렇게 쓴 것 같지는 않은데 생소한 어투가 많다. 일상적인 말과 전문적인 표현과는 달라야 하는 것도 맞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의 한문 문장을 의역도 해보지만 딱딱하고 유연하지 못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전혀 다른 줄기의 이야기이지만 조선 사람이 중국말인 한문을 쓰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어려운 것인가. 이해하는 것도 그렇지만 쓰기도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공부의 태반은 그런 언로에 쏟아부었던 것은 아닌가. 아악 창제의 일등공신 박연이 뒷날 세종의 한글 창제 용비어천가 제작에도 헌신하게 된다. 백성을 향한 왕과의 동행이었다.

상소 글 내용으로 돌아와서, 상실은 내용을 자세히 안다는 것인데 그렇게 연결이 잘 안 되어 그대로 쓴다. 괄호 안에 설명을 넣기도 했다. 자꾸 가지가 벋는다.

"그런데 당나라에서 사에 제사지낼 때에는 노래와 주악이 모두 양성이어서 성인이 악을 나눈 뜻에 어긋남으로 선유先儒들이 이를 그르다고 한 것은 옳습니다. 우리 조선의 제향하는 음악은 모두 아가雅歌를 사용한 것은 바르고 악을 사용하는 법에서는 의논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악장樂章 38와 십이율 성통례聲通例를 주자로 인쇄하여 10으로 만들어 본시本寺(봉상시)에 비장하여 이름을 조선국악장朝鮮國樂章이라 하고 발문에 본조本朝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악이라고 하였으나 그 성음의 높고 낮음과 가시歌詩의 차례와 순서가 모두 공인工人들이 초록해서 쓴 그릇된 것으로서 오랜 것일수록 더욱 본래의 취지를 잃었으니 신명의 지성에 교접하는 것이 못됩니다.”

조선국악장에 대해서 문제점을 조심스럽게 지적하고 있었다. 상소는 끝없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