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연재소설] 흙의 소리 20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소설] 흙의 소리 20

  • 특집부
  • 등록 2021.01.21 07:30
  • 조회수 1,539


흙의 소리

 

 

이 동 희

<6>

왜 그런가. 예란 무엇이고 악이란 무엇인가. 몇 번 얘기한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살펴본다. 이것으로 새 나라 새로운 정치가 시작되었으며 그 중심에 박연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대표적인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어찌해서 그렇게 되었던가. 그가 말하고 얘기했다기보다 가르쳤던 것이 그에게 되돌려졌고 그 이론을 실천하도록 명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의 핵심 알맹이가 무엇이었던가. 그것을 말해보고자 한다.

예기禮記는 유교의 경전이다. 주례周禮 의례儀禮와 함께 삼례라 하고 많은 경서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오경五經의 하나이다. 그 중에서도 으뜸으로 친다. 동방의 여러 나라 문물 관습 제도 등을 실천과 경험을 통하여 만든 책들이다. 진시황의 분시서焚詩書 갱유생坑儒生 이후 한무제가 유학을 관학으로 삼으면서 나오게 되었는데 삼황오제 시대의 고례경古禮經과 학기學記 악기樂記 월령月令 제법祭法 200여 편이나 되는 학설을 집록한 것이다. 공자와 그 후학들의 술이부작述而不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거치면서 편찬 저술된 것이다. 유구한 역사적 시간을 통하여 지적 삶의 지표가 된 기록으로 사서四書 중의 대학大學 중용中庸도 이 가운데 한 편이다.

예의 이론과 실제를 논하고 있는 경전이다. 경이란 길이란 뜻이다. 시대의 길 역사의 길을 밝히는 책이다.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이며 이치이다. 마당에 작대기가 넘어져 있으면 바로 세워놓아야 하며 길바닥에 돌멩이가 굴러다니면 치워 없애야 하는 것이다. 임금 자리를 뺏기 위해 형제간에 칼부림을 하는 것은 어떤가. 성경이다 법경이다 코란이다 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사는 지혜를 밝혀주는 책이다. 부모를 공경하라, 도적질 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천국에 올라가고 피안으로 들어가고 영원히 죽지 않고 살기를 바라는 것은 이상이거나 욕심이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부귀는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요 천국은 기대하기 어렵고(富貴非吾願 帝鄕不可期)도연명은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살며 읊었다. 무릎 하나 들일 방이지만 이 얼마나 편한가(審容膝之易安)……

사람의 욕심이란 한이 없다. 평야같이 넓은 땅을 가지고도 성이 안 차 걸떡거리는 사람이 있고 한 뙈기의 밭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한 사람이 있다. 몸뚱이 하나 가릴 집이 있고 어지가 있는 것만도 대견한 선비가 있다.

자꾸 가지가 벋고 있는데 예기는 예를 깨닫고 인간다운 도덕성을 확립하는 경서이고 고려시대나 조선 초기에도 그런 고래로의 예도정치를 시행하고자 하였지만 세종 초기에 그러한 요구가 팽만하여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도 예이지만 그 중심에 악이 있었다. 악이란 무엇인가. 그에 대해서도 다시 더 말해보고자 한다. 앞에서 말한 이유에로이다.

 

난계-흙의소리20.JPG
이무성 화백의 작화 : [장편소설] 흙의 소리 20

  

예기의 악기편樂記篇에 구체적으로 악의 의미를 늘어 놓았다.

군자왈君子曰 예와 악은 잠시도 몸에서 떠나서는 안 된다. 악을 이루어서 마음을 다스리려면 온화하고 정직하며 자애롭고 믿는 마음이 새로운 모습으로 생겨난다. 그러면 즐겁게 되고 마음이 즐거우면 편안해지고 편안하면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천성에 맞게 되고 또 그러면 신과 통하게 된다.

악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예는 밖에서 움직이는 것이고. 음악은 화를 극진히 하고 예는 순을 극진히 한다. 마음속이 화평하고 겉모양이 유순하면 백성들이 그 얼굴을 우러러 보고서 서로 다투지 않으며 덕의 빛이 마음속에서 움직이면 백성들은 명령을 듣지 않을 수 없다. 바른 도리가 밖으로 들어나면 백성들은 받들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고왈故曰 예악의 도를 이루고 그것을 들어서 천하를 다스리는 데 둔다면 무난의無難矣.

악으로 천하를 다스리면 어렵지 않다고 하였다. 예기의 요절들이다.

악기에는 그밖에 금과옥조 같은 삶의 이치 정치적 논리가 밝혀져 있었다.

악은 즐거운 것이다. 사람의 성정 가운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음악은 성음聲音으로 나타나고 움직임과 고요함에서 형태가 나타나는 것이니 이는 사람의 도리이다. 음악에는 형태가 있을 수 없고 그 소리로 하여금 즐겁지만 방탕하지 않고 악장은 조리가 있지만 틀에 박히지 않는다. 그러하니 굽고 곧고 번잡하고 순수하고 맑고 탁하고 그 곡절과 변화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며 방탕한 마음과 사악한 기운이 범접하지 못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이 종묘宗廟 안에 있어 군신 상하가 함께 들으면 화합하고 공경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악은 하늘과 땅의 명이라고 하였다.

고을이나 마을에서 어른과 아이가 함께 들으면 화합하고 한 가정에서 부자와 형제가 함께 들으면 화목하고 그러므로 악은 조화로움을 얻고 사물에 따라 음절을 만들고 여러 가지 악보를 이루어 부자와 군신을 화합하게 하고 만민을 친하게 하여 따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와 송의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넓어지고 무무武舞를 익히면 용모가 장엄해진다. 그 소리와 곡조 리듬의 변화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나는 것이 가지런하게 되는 것이고 그러므로 악은 천지지명天地之命이다.

하늘과 땅의 지상명령이며 하늘의 소리 땅과 흙의 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