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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흙의 소리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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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흙의 소리 15

  • 특집부
  • 등록 2020.12.17 07:30
  • 조회수 661

흙의 소리

 

이 동 희

 

 

<1>

곧고 바르게 넓은 길을 가는 것이다. 한시도 쉼 없이 주저하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그것이 누구라 하더라도, 앞만 향하는 것이다. 늘 인의의 길을 잊어본 적이 없지만 대장부가 됐든 졸장부가 댔든 앞만 보고 대도를 걷는 것이다. 왜 무엇을 위하여 그러느냐고 누가 있어 묻는다면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고 무슨 논리는 없다. 선인들 현인 성인들의 가르침대로 실행을 하는 것이다. 거기에 어긋남이 없이 자신에게 부끄러움이 없이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는 것이다. 서두르지 않고 욕심내지 않고 행하는 것이다.

벼슬길에 오르면서 스스로 다짐한 것이다. 아직 미관 말직이지만 모든 직무에 황공한 마음으로 임하고 성실하게 모든 힘을 다하였다.

문학의 청이라고 할까 명을 받고도 천직으로 생각하여 받들었다. 그에게 내려진 운명이었고 사명이었다. 당한 대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 생각되지만 그만큼 큰 각오를 가지고 대처하는 것이다. 그가 배운 대로 보고 겪은 대로 아는 대로 말하는 것이다. 가르침이란 아는 것을 일러주는 것이고 줄 수 있는 것을 다 쏟아 주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배우는 것이다. 그것 가지고 안되고 그의 능력이 부족하면 솔직하게 자인하면 될 것이다. 그때 가서 방법을 찾으면 될 것이고 그건 그때 가서 할 일이다. 당장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이런 과감함이랄까 뻔뻔함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그 전후의 이야기이지만 강가의 작은 빈터를 생각한 이후 그의 목표는 벼슬이 아니고 영화가 아니었다. 고관대작이 되어 권력을 누리며 금의환향錦衣還鄕하는 것이 아니고 괴나리봇짐을 지고 낙향落鄕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초라한 행색이 아니었으면 하였다. 가족을 위하여서였다. 가서 피리도 불고 퉁소도 불면서 시도 쓰고 막걸리도 한 잔씩 하고그런 것이 바램이었다. 자나 깨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문득 문득 언덕에 오를 때나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때 떠올리는 것이고 그럴 때마다 마음이 평화로웠다. 능력이나 실력의 한계에 부딪힐 때가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의 상황에서였다. 아련한 꿈이었다.

언젠가 세자와 궁을 나가 숲을 거닐며 그의 꿈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도 그렇게 얘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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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작화 : [장편소설] 흙의 소리 15

 

 

 

"아니 그게 정말인가요?”

"스승이 거짓말을 하면 안 되지요.”

"그래도 그렇지. 너무 보잘 것 없는 것을 바라는군요.”

"그래 보여요? 그럼 됐네요.”

그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느닷없이 피리를 꺼내어 불기 시작하였다. 은은하고 향수 어린 가락이었다.

그동안 정신없이 바빴고 절박한 시간을 보내며 피리를 만질 겨를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었지만 늘 허리춤에 피리를 끼고 다녔던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 생각해도 소리가 의외로 괜찮은 것 같았다. 이상하였다. 그리고 세자는 황홀한 표정으로 찬사를 보내고 감탄을 하는 것이었다.

"아니! 그런 재주가 있었어요?”

"듣기가 좋았다니 다행이네요.”

박연은 간간이 피리와 퉁소를 불었고 그러기에 앞서 세자가 청하였다. 그렇게 되면서 그동안 갖고 있던 재주랄까 기량으로서가 아니고 더욱 연마한 소리로 다듬었고 그러기까지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새 차비로 경서와 사서를 밤늦게까지 탐구하였고 글을 썼고 글씨를 썼고 그에 못지않게 소리에 대하여 음률 음악에 대하여 공부를 하고 배웠다. 장악원도 자주 드나들었고 명인들도 만났다.

세자에게 시와 음악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먼저 일상생활에 대한 것으로, 가령 북송北宋의 유학자 장사숙張思叔 좌우명 남송南宋의 유학자 범익겸范益謙 좌우명을 외고 실천하게 하고서였다.

말을 반드시 충실하고 신의 있게 하라. 행동은 돈독하고 공경스럽게 하라. 음식은 절도 있게 먹어라. 글씨는 반듯하게 써라. 용모는 단정하게 하라. 옷매무새는 깨끗하게 하라. 걸음걸이는 편안하게 하라. 거처는 조용하게 하라. 일은 계획을 세워서 시작하라. 말을 하였으면 반드시 실천하라. 늘 덕성을 견지하라. 허락은 신중히 하라. 착함을 보면 기뻐하라. 나쁨을 보면 내 병처럼 미워하라.

장사숙은 이 열네 가지 덕목을 자리 귀퉁이에 써 붙여놓고 아침저녁으로 보고 경계하노라고 하였다.

세자는 유학자의 좌우명을 이내 딸딸 외었다. 凡語必忠信 凡行必篤敬물론 한자로였다. 그리고 말하였다.

"이런 것들은 실천하기 힘들지만 어렵지는 않아요.”

"그래요?”

"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