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기찬숙/아리랑학회 연구이사
현재 지역 아리랑 상황 중에서 명칭상으로는 존재하지만 지역 보존회가 없어 전승이 단절된 아리랑이 있다. 경북 봉화군(奉化郡) ‘봉화아리랑’이다. 대한민국 경상북도 북부에 있는 군으로 군청 소재지는 봉화읍이고, 행정구역은 1읍 9면이다. 영화 ‘워낭소리’의 무대이기도 하다. ‘산수유 마을’과 춘양목(春陽木)으로 유명하다. 이 지역의 이름을 갖는 아리랑이다.
지금도 유튜브를 통해 검색하면 만정 김소희(晚汀 金素姬/1917~1995) 선생과 그의 두 제자인 안숙선과 신영희 등이 부르는 ‘봉화아리랑’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선율은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는 ‘상주아리랑’이다. 다만 사설이 다음과 같이 ‘상주아리랑’과는 다르다.
봉화아리랑 (김소희 작사)
긴소리
아리랑 아리랑 아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남녀 후렴)
이고개를 넘어가면 내고향이 저기건만/ 어이 허여서 못가는고
그리운 고향산천 언제돌아가서/ 이가슴에 맺친한을 풀어볼까
못보아 한이요 못잊어원수다/ 응어리진 이가슴을 어이할꼬
잦은소리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하루가고 달이가고 해가빠꿔도/ 한번간 부모형제 왜못보나
가고지고 허는사람 어서보내고/ 오고지고 허는사람 반겨주세
원수로다 원로다 원수로다/ 38선 네가 바로 원수로다
아리랑 아리랑 아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긴소리와 잦은소리의 각각 3절 사설과 후렴이 각각 다르게 구성된 형식이 ‘상주아리랑’과 동일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 이런 동일 곡에 두 가지 곡명과 두 가지 사설의 있게 된 것인가? 이 ‘상주아리랑’과 ‘봉화아리랑’의 관계를 추적해 온 김연갑(아리랑학교 교장), 정창관(유튜브 ‘정창관의 아리랑’ 운영자), 배경숙(영남민요연구회 회장) 3인의 기록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1988년 초, 당시 문화공보부에서 88올림픽을 기념하여 ‘Korea Arirang'을 카세트로 제작했다. 이 때 김소희 선생의 ’상주아리랑‘을 수록했다. 이후 상업적인 정식 음반(8903-G24)으로 발매된 것은 1989년 3월 성음스튜디오에서 녹음하고 1991년 11월 발매한 ’상주아리랑‘이다. 그리고 1994년 초 김소희 선생이 봉화군수로부터 ’봉화아리랑‘ 작창에 대해 의뢰를 받아 8월경 서울에서 녹음을 하였다. 그 녹음 음원은 ’상주아리랑‘과 같은 선율이며, 곡명은 ’봉화아리랑‘이었다. 사설은 위의 6절 사설이다. 그런데 봉화군수(박승호)는 사설이 지나치게 민족사적이어 봉화군과는 동떨어져 새 사설에 의한 재녹음을 하게 되었다. 그 사설은 급히 군 공무원 대상 공모를 통해 마련하였다. 카세트테잎 <봉화아리랑>에 수록된 6절 사설은 다음과 같다.
봉화아리랑(공모 사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삽재고개 넘어간다(후렴)
태백영산 우뚝 솟아 그 정기 이어받고/천삼백리 낙동강 원류가 여기로다
명륜당 훈장소리 학동선잠 깨우고/봉양리 베틀노래 흥겹게 들리누나
사미에 세운정자 풍광도 좋고요/산송이 복수박은 천하의 일미로세
백천계곡 열목어야 너만 어찌 한가하냐/청옥산 꾀꼬리가 함께 놀자 하는구나
청량산 육육봉에 바위마다 깃든 전설/갈래천 맑은 물에 은어 떼 뛰어 논다
성운에 이는 구름 단비를 가져와서/골매산정 좋은 들에 해마다 풍년일세
명륜당, 복수박, 청량산, 청옥산 같은 유적지와 지역 특산품을 사설에 반영하였다. 아리랑을 통해 지역을 알리고 싶은 소박한 애향정신이 반영되었다. 그리고 후렴에서 일반적인 ‘아리랑고개’ 대신 봉화군 소재의 ‘삽재고개’로 대체했다. 이 지역을 알리고픈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카세트 테잎으로 제작은 되었지만 배포되지도 못하고 보급도 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곡조가 순수 창작이 아니고, 이미 제작된 ‘상주아리랑’의 곡조라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봉화아리랑’은 두 가지 사설이 있음에도 정작 봉화지역에서는 불려지지 않고 녹음에 참가한 제자들이 방송이나 공연에서 전자의 사설 ‘봉화아리랑’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상주아리랑’과 ‘봉화아리랑’의 선후 관계를 혼동하여 ‘봉화아리랑’이 ‘상주아리랑’이 되었다고 하지만, 위의 두 가지 사설이 아닌 '상주아리랑' 사설을 부르며 '봉화아리랑'이라고 하는 것도 오류이다. 정리하면 "1988년에 김소희 선생 작창 ‘상주아리랑’이 1994년 같은 곡조에 의한 ‘봉화아리랑’이 제작되었으나 전승되지 않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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