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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흙의 소리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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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흙의 소리 11

흙의 소리

 

 

 

이 동 희

 

 

 

 

빈 터 <5>

그런 집념의 나날을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보냈다. 정말 꽃이 피는지 잎이 지는지 모르고 지냈다. 다른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오로지 한 점과 같은 목표를 향하여 숨을 쉬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박연은 생원시에 급제를 하였고 다시 성균관의 유생으로 들어가 그보다 더 힘들고 어렵게 계속 학업을 닦기 시작하였다. 영동 향교 유생의 배움이 소학이라고 하였다면 성균관 유생의 배움은 대학이었다. 가르침도 달랐고 물음도 달랐다. 임금(태종)이 지켜보는 가운데 궁전 뜰에서 아부제악이 연주되고 관로의 출발을 축하받던 꿈과 같은 향연은 잠시고 다시 진사과에 과거 시험을 치뤄야 했다. 하루 속히 급제를 하여야 했다. 욕심이 아니고 이땅의 대장부로서-언젠가부터 그는 그 크고 넓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었다-마땅히 가져야 할 욕망이었다. 부모님과 조상님 그리고 스승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집에서 이틀밤도 자지 못하고 돌아와 성균관에 입학, 엄격한 거재居齋생활을 하였다.

유생들은 생원 진사들이었다. 전국에서 모인 선비들이었다. 교육내용은 향교에서 배운 것의 연장으로 유학儒學의 경서와 한학漢學이었다. 대학 중용 논어 맹자 시경 서경 주역 춘추 예기가 그 중심이 되어 있었고 교육방법은 교수의 전체적인 강의보다도 개별적 지도에 치중하였다. 각 유생이 전날 공부한 바를 토대로 하여 학관學官(교수)의 질의에 응답하게 하고 이것이 고사考查였다. 그 결과가 만족할 경우에 다음 진도를 나갔다. 다시 말하지만 교수의 강의에 의한 것이 아니고 스스로 익히고 터득한 자학自學에 의하여 얻은 지식을 문답식 고사를 통하여 성적을 발휘하고 평가하였던 것이고 개개인의 성적을 표준삼아 진도를 결정하였던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독서에 의한 강학講學과 제술製述을 중요한 학과목으로 삼았다. 읽고 배운 바를 활용케 하고 문장을 다듬어 생각한 바를 정확히 발표하는 작문의 능력을 연마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시를 짓고 논문을 써서 발표하였다. 그것이 교과였으며 고사였다. 제술은 매월 3회 부과하였다.

 

흙의소리11회.JPG
이무성 화백의 작화 : [장편소설] 흙의 소리 11

 

아침 식사가 끝나고 학관들이 명륜당에 나와 앉으면 유생들이 예를 갖추겠다는 뜻을 아뢴다.

-

그 때 북소리가 울린다. 한 번 숙연하게.

북소리에 맞추어 유생들이 뜰에서 차례로 들어와 학관을 향해 읍례揖禮를 한다. 그런 뒤 유생들은 각각 재앞에 모여 서로 마주 보고 읍한다. 매일 정중하게 예를 갖추는 것이다.

다음으로 유생들이 앞으로 나아가 일강日講을 청하고 학관은 상하의 재에서 각각 한 명을 뽑아 배운 것을 외게 한다.

일강에 통한 자는 초록해 두었다가 세말에 1년의 분수를 통고하여 식년문과式年文科의 강경講經점수에 가산해 주도록 하며 불통한 자에게는 종아리를 때리는 벌을 가한다. 초달楚撻이다. 편달鞭撻과는 조금 뜻이 다르다.

- -

이윽고 북이 두 번 울리면 유생들이 책을 가지고 선생 앞으로 나가 수업을 받는다. 땡땡땡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을 치는 것이 아니라 북소리를 울리는 것이다.

교수는 먼저 어제 배운 것에 대하여 질문을 한 뒤에 오늘 수업에 들어간다.

"많이 배우기를 힘쓰지 말고 깊고 넓게 탐구하고 연정硏精에 힘쓰도록.”

박연은 초달 대신 늘 그런 지적을 받았다. 다음 진도를 나가기를 원하였지만 도무지 앞으로 나가지 않고 뒤로만 갔다. 그것이 불만인 것을 선생은 표정만으로 잘 알고 말하는 것이다.

"와 부로도 나타내 보고. 정이 있어야 하고 흥이 들어야 돼.”

"명심하겠습니다.”

학관은 새 진도로 시경에 대하여 설명하고 발문하였다. 춘추 시대의 민요를 중심으로 하여 모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된 시집이다. 황하강 중류 중원 지방의 시로서 주나라 초부터 춘추春秋 시대 초까지의 시 305편을 수록하고 있다. 본디 3,000여 편이었던 것을 공자가 311편으로 간추려 정리했다고 알려져 있고 오늘날 전하는 것은 305편이다. 시경은 풍세 가지 내용으로 분류된다. 풍은 여러 나라의 민요로 주로 남녀간의 정과 이별을 다룬 내용이 많다. 는 공식 연회에서 쓰는 의식가儀式歌이며 송은 종묘의 제사에서 쓰는 악시樂詩이다.

아는 무엇이며 의식의 노래란 또 무엇인가.

아악雅樂에 대하여 박연이 제술할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