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화)

당진 기지시줄다리기(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 민속축제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진 기지시줄다리기(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 민속축제

  • 김하늘
  • 등록 2020.11.18 11:11
  • 조회수 558
2019-04-03_13;57;42_1972년_기지시줄다리기_모습.jpg
1972년 기지시줄다리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당진 기지시줄다리기(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 민속축제는 500여 년의 역사와 전통 속에 이어온 변천사로 주목을 받고 있다.

보통 줄다리기 문화는 벼농사 재배권 마을에서 대부분 행해지던 민속놀이지만 기지시줄다리기의 경우 기지시(機池市)라는 지명에서도 줄틀을 보관하는 연못이 있는 시장마을이었다. 농경문화와 해양문화, 난장문화가 접목되면서 타 지역의 줄다리기와 달리 독특한 형태로 발전해 왔다.

기지시줄다리기의 유래에는 다양한 주장이 있다. 
기지시 시장이 예덕보부상이 서울로 오가던 길목에 있었던 탓에 300여 년 전부터 한 달에 장이 12번이나 섰을 정도로 기지시 줄난장은 호황을 이뤘다.
기지시 시장이 발달하면서 내포지방의 교통 요지였던 기지시에 난장을 세우고 시장 활성화를 위해 줄다리기를 했다는 설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 한다.

오늘날 기지시줄다리기 민속축제에 쓰이는 줄인 암줄과 수줄은 각각 무게 20톤, 길이 100미터, 직경 1미터가 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지만 기지시줄다리기에 사용되는 큰 줄이 처음부터 이렇게 컸던 것은 아니다.

이에 맞춰 농경사회에서 작게 만들던 줄은 참여인원이 증가함에 따라 인근 안섬 지역에서 닻을 만들던 방식을 도입, 발전시키면서 지금의 줄틀을 이용해 다른 지역과 같은 두 줄 꼬기가 아닌 당진 기지시만의 세 줄 꼬기 방식의 큰 줄을 탄생시켰다. 
 

 

500여 년 전 기지시 지역에 큰 재난이 닥쳐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터가 센 땅의 지기를 눌러주기 위한 행위로 줄다리기를 발전시켰다.

 

수상(水上)편과 수하(水下)편이 겨루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데 수상이 이기면 나라가 태평하고 수하가 이기면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승부에 연연하기 보다는 참가자 모두의 화합과 안녕을 기원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