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화)

마을에서 전승하고 있는 서산 박첨지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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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전승하고 있는 서산 박첨지놀이

서산시 음암면 탑곡리 마을사람들 보존

  • 김하늘
  • 등록 2020.11.18 10:50
  • 조회수 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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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박첨지 놀이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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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첨지놀이 바가지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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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곡리 '서산 박첨지놀이 출연진'. 왼쪽 위부터 오른쪽 아래로 배길선(상제. 북, 꽹과리), 손경순(스님. 징), 이태수(박첨지. 꽹과리), 최준석(명노. 홍동지. 소경), 송재환(동생. 평양감사), 서화석(작은마누라), 이옥하(큰마누라), 김경창(태평소), 송명옥(산받이, 장구).

 

인간=즐거움 추구, 놀이를 통해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

살아있는 모든 것은 즐거움을 추구한다. 유희(遊戲), 즐거움을 추구함에 있어 짐승과 식물 등 인간 이외의 것들은 본능에 따른다. 하지만 인간은 본능을 초월한 (자유)의지로 스스로를 제어하며 유희의 정도를 조절한다.

놀이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사회적 즐거움 중 하나다. 본능을 초월한 자유의지로 상대를 고려하며, 상대와 함께 즐거움을 찾는다. 인간은 놀이를 통해 사회성을 기르고 타고난 성정 및 기질의 외연을 확장하여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놀이야말로 인간이 자유의지로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이다.

충남 서산에 박첨지놀이가 정착한 시기는 1920년대로 추정된다. 지금의 탑곡리 고양동(음암면 탑곡리)마을 주민들이 첫 공연을 시작했는데 일제강점기 일본의 문화말살정책에 의해 중단됐다. 이후 1950년대 들어 재개됐다.

서산 박첨지놀이는 남사당패로부터 전승됐을 가능성이 높다. 600여 년 전 고려시대부터 기원하는 놀이라는 속설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유구한 역사적 전통문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놀이는 1920년대 당시 탑곡리 마을주민이었던 주연산이 남사당패 출신 유영춘에게 인형제작법, 놀이방법, 관련재담 등을 배워 놀이형태로 재구성했다. 1954년 주연산으로부터 놀이를 배운 김동익이 마을주민들에게 전수함으로써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놀이는 탑곡리 사랑방 마루 및 마을회관 등을 중심으로 격년에 한 번씩 공연을 하다가 1980년 중반부터는 매년 추석을 전후로 정례화 됐다. 1990년대 들어 서산문화원이 중심이 돼 서산박첨지놀이보존회를 구성하고 지역축제에서 시연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는 탑곡리에 서산박첨지놀이 전수관이 건립돼 보존 및 전승에 노력하고 있다.

국내유일 마을전승 인형극, 보물로서의 가치 탁월

서산박첨지놀이는 2000년 1월 11일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됐다. 마을전승 민속인형극으로서는 국내 유일무이한 보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국가가 나서 관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중요무형문화재는 특별관리 한다. 분라쿠라는 인형극은 일본예술문화진흥회를 비롯해 국가적인 지원을 받아 지금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문화재로 자리를 잡았다.

문화재보유자 및 단체에게는 적지 않은 지원금을 보조해 문화재를 전승·보존·발전시키는 일만을 전담토록 한다. 지방자치단체는 해당 지역에 연고를 두고 있는 문화재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해 알뜰히 살피고 특별지원을 한다. 국내외 주요인사는 물론 외지관광객들이 지역을 방문하면 상설공연장에서 공연을 하며 자랑을 일삼는다. 이렇듯 일본의 무형문화재는 국가적 지원을 받아 나날이 발전해 왔다.

중국의 그림자극 역시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뒤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화유산이 됐다. 이 극은 현재 시각적 이미지 강조, 새로운 창작방법 시도 등을 통해 중국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서산박첨지놀이를 보존하고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학자들은 일본과 중국, 인도 등의 사례를 들며 문화유산을 지키고 보존하려는 각국정부의 노력에 방점을 찍는다.

반면 서산박첨지놀이는 지자체 차원에서 일부 지원을 받는 정도에 그친다. 중앙정부는 물론 국민들도 이 놀이를 잘 모른다. 재원이 부족해 홍보가 부족했던 점도 아쉬움 중 하나다. 제대로 홍보하고 제대로 된 공연장을 만들어 운영하면 박첨지놀이야말로 는 서산을 대표하는 수익형 관광상품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서산 박첨지놀이는 지역의 공동체의식을 확장하는데도 매우 중요한 마중물 역할을 한다. 공동체의식은 인간이 사회성을 기르는데 필수조건이다. 공동체의식 확장이라는 조건은 사회성이 결여된 오늘날 청소년들의 교육, 나아가 건조해진 현대인들의 정서회복에도 도움을 준다.

박첨지놀이는 남사당 ‘꼭두각시놀이’의 영향을 받아 오랜 기간 존속했다. 이후 주연산, 김동익 등에 의해서 서산지방 고유의 문화적 특질을 살린 민속인형극으로 거듭나 자리매김했다.

박첨지놀이가 크게 변질되지 않고 존속된 이유 중 하나는 크게 바꾸지 않으려는 충청도 사람들의 기질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서산은 불교문화(마애삼존불)가 만개했던 지역으로 인형극에 당시 불교문화가 그대로 녹아있다. 박첨지놀이의 둘째거리인 피조리거리(피조리거리의 특징은 연애하는 젊은이들을 꾸짖는 박첨지가 그들과 더불어 춤을 춤으로써 인간적인 동질성을 함께한다는 것임)가 생략되고 그와 관련된 어떤 인물도 연행되지 않는 점, 목수들이 ‘공중사’라는 절 짓는 거리에서 절을 부수지 않고 존립시키는 점, 평양감사 장례식 장면에서 불리는 상여가가 현재 서산 탑곡리의 장례 때 부르는 소리와 같다는 점 등이 서산과 서산불교문화의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이렇듯 서산박첨지놀이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 공동체의식을 매우 중히 여긴다. 집단을 위해 조화가 강조되는, 집단의 조화를 통해 마을의 공동체의식을 확장해나가는 것이 바로 박첨지 놀이의 특징이며 면면히 이어오는 서산 문화의 매우 중요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이 놀이는 현재 서산시 음암면 탑곡리 마을사람을 중심으로 보존되고 있고 전문 연희패와 달리 인원의 제한을 두지 않는다. 놀이에 관심이 있는 마을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함으로써 공연을 하는 사람이나 구경하는 사람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공동체의식을 갖도록 만든다.

유람 좋아하고 축첩만 일삼는 박첨지 비판

서산박첨지놀이를 기록한 채록본은 현재 김동익과 허영호의 것이 있다. 김동익채록본에 따르면 박첨지의 놀이의 전체 연행은 1막, 2막, 3막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1막은 박첨지의 팔도 유람기, 박첨지와 큰마누라의 상봉, 박첨지 큰마누라와 작은마누라의 싸움 등의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제2막은 평안 감사의 매사냥과 평안 감사의 장례식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제3막은 절 건축을 위한 시주소식, 그에 따른 스님의 시주 부탁이 주 내용이다.

김동익 채록본은 연행의 전 과정을 세밀하게 기록하지 않고 전체연행의 핵심적인 내용만을 정리했다. 이 역시 충남 서산인들의 정서를 닮아있다.

이와는 달리 허용호의 채록본에서는 박첨지놀이를 20장면으로 구분해 세밀하게 묘사했다. 제1장 박첨지의 팔도유람, 제8장 평안감사의 꿩 사냥을 위한 홍동지의 길 닦기, 제17장 공중사 짓기, 제20장 등장인물 단체 춤에 이르기까지 서산박첨지놀이의 완성도를 더했다.

이렇듯 세 마당 스무 장면으로 구성된 박첨지놀이는 역시 과거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과 유사해 같은 계통의 유구한 역사성을 보존하고 있다. 하지만 남사당패 등 떠돌이 유랑패들의 놀이와 달리 마을을 중심으로 보존·전승되고 있기에 강한 연대의식이 내면에 깔려있다는 점이 색다른 특징이다.

박첨지놀이의 주요내용은 집안은 돌보지 않고 유람만 좋아하며 축첩(畜妾)을 일삼는 박첨지에 대한 가족들의 비판이다. 구성원들은 이야기를 통해 박첨지의 무책임과 축첩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해학적 웃음거리를 만든다. 축첩은 비윤리적인 것이며 마침내 집안을 무질서하게 만드니 공동체를 훼손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김동익의 채록본 제2막, 허용호의 채록본 제8장에 나타난 평안 감사의 매사냥과 평안 감사의 장례식 마당에서는 양반과 평민 간 불평등, 즉 신분적 특권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을 드러낸다.

3막인 절 건축을 위한 시주소식 그리고 스님의 시주 부탁장면에서도 신분적 차별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다. 평안감사의 횡포로 시력을 잃게 된 소경이 불공에 힘입어 눈을 뜨게 된다는 내용은 심청전 설화와 비슷하지만 백제 및 서산의 불교문화를 닮아 가슴에 맺혔던 한을 여지없이 풀어낸다.

3막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온화한듯하면서도 해학적이며 해학적인 이야기 속에 강한 자신감을 표출한다. 박첨지 놀이의 3막은 서산 마애삼존불의 모습과 딱 맞아 떨어져 불교에 대한 비판보다는 불교를 통한 기적을 은근이, 그러나 내면적 강한 근성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산 박첨지놀이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45명이다. 박첨지, 박첨지 동생, 박첨지 큰마누라, 박첨지 작은마누라, 박첨지 처남 명노, 홍동지, 스님, 상제 1과 2, 목수 네 명, 평양 감사, 말, 소경, 매, 꿩, 구렁이, 홍새 두 마리, 만장꾼 열두 명, 상여꾼 열두 명 등이 등장하는 인형들이다.

이들은 모두 개성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특히 신체의 크기가 큰 차이를 보이며 비현실적인 비대칭이다. 그 중 홍동지인형이 인상적이다. 홍동지의 거대한 성기, 홍동지는 전체길이 33cm 중 얼굴이 16cm, 상반신 16cm, 하반신 27cm, 성기가 무려 30cm에 육박한다. 성기가 키의 절반을 차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연을 직접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또한 박첨지놀이에 등장하는 인형들의 재료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바가지, 소나무껍질, 칡넝쿨, 각목 등이다. 이 인형의 신체를 대충 천으로 둘둘 말아 연행자로 삼았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각각의 인물들은 떠도는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 연행처럼 일인다역이 아니라 일인일역을 맡는다. 누구라도 놀이에 관심이 있으면 참가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다.

이러한 특성은 최근에 변화한 것이다. 박첨지 놀이도 처음에는 일인다역의 연행을 했다. 하지만 전승되는 과정에서 서산 탑곡리 만의 특징, 즉 마을 공동체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마을사람들과 혼연일체 되려는 공동체의식으로 변화된 것이다. 이렇듯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변화하는 문화 역시 서산사람들만의 정서에서 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형극을 보면 서산만의 독특한 사투리에 흠뻑 빠져든다.

박첨지의 ‘박’은 인형을 박(바가지)으로 만들었다는 것에서 따왔고, ‘첨지’는 상대적으로 지체 낮은 양반 내지 나이 많은 사람을 낮잡아 해학적으로 표현했다.

지체 낮은 양반인 박첨지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된다. 등장인물은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박첨지, 얼굴에 많은 점이 박힌 큰마누라, 연지와 곤지를 찍은 작은마누라, 붉은색 몸체의 홍동지, 눈코입이 비뚤어진 처남 명노, 승복을 입고 있는 스님, 상제들, 목수들, 평양감사, 소경, 만장꾼들, 상여꾼들 외에 말·매·꿩·구렁이와 같은 동물들로 구성된다.

1막, 박첨지가 팔도강산을 유람하다 젊은 마누라를 얻어온다. 박첨지가 작은마누라에게 살림을 후하게 차려주자 마을사람들이 그를 비판하고 조롱한다.

2막, 평안감사마당은 평안감사가 민생은 뒷전이고 매사냥만하다 꿩고기를 먹고 죽게 되어 상여가 나가는 과정을 그리는 과정에서 신분에 대한 특권을 해학적으로 비판한다.

3막, 절 짓는 마당은 죽은 평안감사 가족이 시주를 걷어 공중사라는 절을 짓고 모든 중생이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마지막은 모든 연행자들이 나와 한바탕 질펀하게 춤을 추며 마무리를 한다.

박첨지놀이의 아쉬움···시대에 맞게 변화·대중화 하려는 노력 절실

서산박첨지 놀이는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전승되고 있는 전통인형극이다. 하지만 정기공연과 일부 기획공연으로만 축약돼 대중성을 잃어가고 있다.

중국의 ‘그림자극’은 풍부한 콘텐츠를 첨가하고 시각적 이미지를 강화해 대중화하려는 새로운 창작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한 노력은 영화산업과의 접목까지 고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일본의 ‘분라쿠’는 국가나 지자체의 지원을 넉넉히 받고 있음에도 변화 없는 고전의 반복적공연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서산 박첨지놀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전통예술 한 가지로만 공연되는 가운데 오는 지루함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유희의 근본을 추구하되 현대인과 공감할 수 있는 작품으로 재창작되어야 한다.

전통극은 당시를 사는 사람의 요구에 순치해야만 맥을 이어 보존할 수 있다. 서산 박첨지놀이의 전신인 꼭두각시놀이도 시대적 요구에 따라 변화했음으로 오늘날까지 살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전통의 원형보존도 좋지만 대중과 함께 공감해야할 놀이문화는 살아 움직이는 유형문화재임으로 반드시 당대인들과 함께 호흡해야 한다. 구수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아무 때나 욕설과 비속어를 사용해서도 안 된다. 현대인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에는 욕설이 없다.

박첨지놀이를 보존하고 계승해야할 연행자(배우)도 필요하지만 이를 연구하는 학자도 필요하다. 놀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논리와 이론에만 치우쳐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남이 써놓은 자료만 가지고 주무르는 문헌연구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놀이’라는 무형문화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답을 현장에서 찾아야 한다. 현장을 중심으로 해야만 학술적 사고의 확대와 장르의 예술적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현장이론이 토대가 되어야만 놀이의 현대화가 이루어진다.

전통놀이는 현대화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변화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전통극이 동시대인들과의 소통을 통해 길이 보존 계승되려면 학문적 이론이 뒷받침돼 좌표를 설정해 주어야 한다. 현장을 통해 시대를 읽고 시대에 맞는 문화적 환경의 변화를 이론으로 제시해주어야 할 과제가 학자들에게 있다.

서산박첨지놀이의 연행자(배우)의 고령화···젊은 후계자 모색 필요

서산박첨지놀이전수관은 현재 서산시 탑곡리에 있다. 배길선(상제,북,꽹과리) 손경순(스님,징) 이태수(박첨지,꽹과리) 최준석(명노,홍동지,소경) 송재환(동생,평안감사), 서화석(작은마누라) 이옥하(큰마누라) 김경창(태평소) 송명옥(산받이,장구)이 현재 놀이의 출연진이다. 이들은 서산탑곡리 박첨지놀이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고령이며, 후계자도 마땅치 않다.

이들은 공연을 통해 박첨지놀이의 맥을 잇고 있다. 전수관이 생긴 다음부터는 전수관에서 공연을 하고 필요시 외부공연도 한다. 탑곡리 전수관에는 박첨지놀이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여러 행사도 펼친다. 특히 서산은 물론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 및 체험프로그램은 상당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유년기의 경험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들 중 서산박첨지놀이를 전수하는 배우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전통 그대로의 것만을 유지하는데 만족해서는 안 된다. 대중적 호응을 얻기 위해 놀이의 구성과 형식을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 대중적 호응을 얻지 못하면 놀이를 계승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고 현재의 출연진들이 죽고 나면 놀이도 사라지게 될 위기에 놓인 것이 현실이다.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가 유희, 즉 즐거움의 추구라면 박첨지놀이야말로 우리민족, 특히 서산사람들에게 오랜 세월 즐거움을 선사해왔을 것이다.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는 매개로서의 박첨지놀이가 보존에 그치지 않고 계승 발전되려면 과거의 박첨지 놀이가 그랬듯이 지금의 박첨지놀이도 현대에 맞게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가 나서 유지하고 계승해야

과학기술, 전통과 문화 등이 완만하게 변화했던 과거와 달리 현대의 환경은 격류처럼 요동치며 급변하고 있다. 전통연희작품들이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시간적, 문화적, 환경적 여건을 만들 여유가 없는 것이다. 특히 대중매체와 통신의 발달은 전통놀이뿐만 아니라 공연생태계 전체를 뒤흔들어 자생하기 힘든 구조적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전통극’더러 스스로 살아남으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전통극이 국가적 문화유산이라면 국가가 나서서 유지하고 계승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일본은 분라쿠를 비롯해 와쇼쿠, 노가쿠, 구미오도리 등을 유지하고 계승하기 위해 적지 않은 지원과 더불어 전통의 재창작을 통해 현대인들과 공감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이러한 문화재를 세계에 내놓고 자랑하기를 일삼는다. 중국 역시 그림자극이나 쿤취 등을 국제사회에 내놓고 문화의 우수성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도 적지않은 무형문화유산이 있다. 서산과 가까이 있는 기지시줄다리기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서산박첨지놀이 역시 잘만 포장해 발달시키면 유네스코 등재도 충분히 가능한 유산이다.

명실 공히 우리는 일본보다 문화유산이 풍부하다. 그런데 많은 유산들이 감추어져 있다. 감추어진 유산은 서서히 소멸돼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과거 수많은 민족들의 언어가 그랬다. 그 소중한 언어유산이 지금은 사라지고 흔적조차 없다. 감추어진 우리의 무형문화재를 발굴해 보존하고 계승하는 작업은 당연히 국가가 해야 한다. 하지만 선진외국에 비해 그 노력이 자못 아쉽다.

서산박첨지놀이는 대중화시킬 여지가 무척 많다. 사람들과 소통하며 즐거움을 추구하기에 너무 좋은 ‘꺼리’다. 특히 박첨지놀이는 현대인들과 소통하는데도 모자람이 없는 주제다. 박첨지놀이가 현대에 맞게 재창작돼 선보인다면 사람들은 이 놀이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즐거워할 것이다.

박첨지놀이를 대중화시켜 국민들을 즐겁게 하고 나아가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만드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고령화된 탑곡리 ‘박첨지사람들’을 이어 젊고 유능한 ‘박첨지사람들’을 만드는 일에 국가 및 지자체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디트news24 최종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