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목)
기찬숙/아리랑학회 이사
세계적 유명한 노래에는 재미있고, 감동적이고, 반드시 의외의 사연이 담겨져 있다.
역사 깊은 나라의 국가(國歌/National Anthem)가 그렇고, 성가(聖歌) ‘놀라운 은총’(Amazing Grace)을 들 수 있다. 전자는 영국 국가 ‘God Save the Queen’이 대표적이다. 많은 연방국가(聯邦國家)의 국가(國歌)와 세계 여러 나라 국가 제정(制定)에 영향을 주었다. 한 때 미국과 독일에서도 이를 국가로 사용한 적이 있다. 또한 오스트리아 등 많은 나라에서 ‘왕실 찬가’로도 불리고 있다.
God Save the Queen
God save our gracious Queen
Long live our noble Queen
God save the Queen
Send her victorious
Happy and glorious
Long to reign over us
God save the Queen
(하느님, 저희의 자비로우신 여왕폐하를 지켜 주소서
고귀하신 저희의 여왕폐하 만수무강하게 하사
하느님, 여왕 폐하를 지켜 주소서
여왕 폐하께 승리와
복(福)과 영광을 주소서
저희 위에 길이 군림케 하소서
하느님, 폐하를 지켜 주소서)
영국의 국가적 행사나 국제경기에서는 반드시 이 국가를 부른다. 그런데 단 한 사람은 이를 부르지 않는다.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여왕이다. 이유는 군주를 찬양하는 노래이기 때문에 군주 자신은 부르지 않고 침묵한다. 또한 국가 의례에서 전체 6절 중 제2절은 잘 부르지 않는다. "국왕 폐하의 적들을 변방으로 흩으사/ 패배하도록 하소서”라는 가사가 전쟁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널리 불리는 노래이지만 부르지 않는 이가 있다는 사실과 부르지 않는 가사가 있다는 사실이 의외이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영적(靈的)인 국가(國歌)”로 불리는 세계적인 기독교 성가이다. 영국 성공회 사제 존 뉴턴(John Newton/1725~1807)이 가사를 썼고, 작곡가는 미상이며 스코틀랜드 민요에서 기원했다는 설이 있다. 원래 영국에서 탄생했지만 1789년 미국에 소개된 후 널리 18세기 후반부터 국가적 신앙 부흥운동에 대유행을 했다. 이후 미국 남북전쟁(1861~1865) 때도 남북을 가리지 않고 전쟁으로 상처받은 자를 치유하는 노래로 쓰였다. 20세기 들어서 많은 가수에 의해 6천여 번이나 녹음되어 대중음악적으로도 유명하다.
2015년 이 노래가 금세기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있었다. 6월 26일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에 의해서 크게 부각되었다. 백인 청년이 총기를 난사해 클레멘타 핑크니(Clementa Pinckney)목사를 비롯해 9명이 숨지는 비극이 발생했다. 추도식에서 미국 대통령은 "인종 문제는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다시 침묵에 빠진다면 그것은 핑크니 목사의 죽음에 대한 배신”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침묵이 흘렀고, 얼마 후 낮은 목소리로 찬송가 〈놀라운 은총〉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에 추도객 모두가 기립하여 함께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숨진 9명의 이름을 차례로 읊었다. 이 장면은 전 세계에 알려져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Amazing Grace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I once was lost
but now I'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놀라운 은총이여! 나같이 타락한 자에게도
구원의 손길 내리시는 다정한 음성!
나는 버려진 자식 그러나 지금은 집을 찾았네!
눈 뜬 장님이었으나 지금은 보이네
나를 두려움에 떨게 하신 그 은총이
두려움을 도로 거두어주셨네)
이 놀라운 노래의 작사 배경은 역설적이다. 1748년 노예무역선이 엄청난 폭풍에 휩쓸려 전복 직전에 놓였다. 이 절박한 순간을 맞자 노예업자는 생전 처음으로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배는 기적처럼 폭풍우에서 벗어났다. 제2의 삶을 살게 된 노예업자는 그 감동과 감사를 노래로 불렀고, 신앙심을 갖게 되었다. 그가 바로 성공회 사제 존 뉴턴이다. 결국 가장 성스러운 이 성가의 작사자는 가장 악마적인 사람에 의해 작사된 노래인 것이다.
이상과 같은 노래 사연과 함께 견줄 노래가 ‘손에 손 잡고’(Hand in hand)이다. 이 노래가 우리 노래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하지만 일단은 한글 가사가 먼저 작사 되었으니 우리 노래로 보고 살펴본다. 너무나 유명한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 주제가이다. 미국, 일본, 한국에서만 1,700만 장의 음반 판매고를 올렸고, 독일, 일본, 홍콩, 스위스, 스페인을 비롯한 17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고, 올림픽 기간 중 라디오 방송 리퀘스트 1위로 명성을 얻었다. 이후 지금도 최고의 올림픽 공식 주제곡으로 꼽히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노래에 대해 잘 모른다. 우선 공식 주제가가 된 배경이다. 원래 1986년 MBC문화방송과 올림픽 조직위원회의 공모 방송에서 국민투표 결과 가수 김연자의 ‘아침의 나라에서’가 올림픽 주제곡으로 선정됐다. 그래서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하계 올림픽에서 연주되는 등 올림픽 공식 노래로 소개되었다. 그런데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너무 우리 것에만 치중하지 말고 전 세계인들이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는 논의가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세계적 음반회사를 대상으로 공모하기로 했다.
그 결과 음반 프로듀서 겸 작곡가인 조르조 모로더(Giovanni Giorgio Morode) 작곡, 작사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미학과 김문환교수가 맡고, 음반 제작 및 유통에 드는 비용을 모두 부담하기로 한 프러덕션 폴리그램사가 선정되었다. 모로더는 우리나라 노래 3000여곡을 검토하고 작곡하였다. 노래는 해외에서 ‘아리랑 싱어즈’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한국인 2세 구룹 싸운드 ‘코리아나’가 맡게 되었다. 그래서 하계 88올림픽 개막식에서 1절은 한국어, 2절은 영어로 불렸다.
Hand in hand
하늘 높이 솟는 불
우리들 가슴 고동치게 하네
이제 모두 다 일어나
영원히 함께 살아가야 할 길
나서자(제 1절)
Hand in hand we stand all across the land
We can make this world a better place in which to live
Hand in hand we can start to understand
Breaking down the walls that come between us for all time
Arirang(제2절 영어가사)
이 노래는 대단한 히트를 하여 전 세계 민주화 현장음악과 스포츠 음악으로 사용되었다. 1989년 공산권 민주화 현장의 운동가로 불렸고, 코리아나는 12월 동베를린에서 무너진 장벽을 배경으로 열창하여 주목을 받았다. 또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주제곡 선정 당시 총감독인 장이머우 감독이 "9만 8871곡의 응모작 중에서 서울 올림픽 주제곡 풍을 피하려 했으나 응모작 대다수가 서울 올림픽 노래와 유사해서 고생했다.” 라고 했다는 말이 있기도 했다. 이런 결과에서 1990년 4월 평양에서 김일성 생일을 기념하여 체코 서커스단이 공연하던 도중 연주되었는데 김일성은 이 노래를 알고 있더라는 후일담도 있다.
그런데 이 유명한 노래에 ‘Arirang’이 후렴에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드물다. 영어 가사에만 들어있는데, 이는 우리가 작곡가와 음반사와 프러덕션에 조건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를 통해 비록 외국 작곡가와 외국 프러덕션이 음반화 하였지만 원천적 소유권은 한국에 있음을 분명히 한 장치인 것이다.
세계적인 노래 ‘Hand in hand’ 속의 ‘Arirang’.
우리는 그 존재를 모르지만, 어쩌면 먼 후일 88서울 올림픽의 역사와 사연을 입증하는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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