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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들의 티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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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들의 티타임

저녁 산책길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유난히 푸른 밤, 진각국사 혜심(眞覺國師 慧諶·1178~1234)의 시가 떠올랐다. ‘바위산 높고 높아 깊이를 알 수 없네, 그 위에 높은 누각 하늘 끝에 닿았네. 북두칠성으로 은하수 길어다 차 달이는 밤, 차 끓이는 연기가 달의 계수나무를 감싸네.’ 얼마나 별이 가득하면 북두칠성으로 은하수를 길어올까. 이런 위트 있는 감성을 만날 때면 나지막한 읊조림을 나 혼자 들은 것 같은 공상에 빠지곤 했다.

 

마지막으로 차를 우려 마신 게 언제였더라. 찻잎이 놀라지 않을 정도의 따뜻한 물을 부으면 여린 잎의 연녹색 향기에 마음이 풀어졌다. 전시 개막이 다가올 즈음이면, 여는 문마다 상자가 쏟아지는 꿈을 꿨다. 집에 가지 못하고 앓던 날, 친구도 사무실에서 앓고 있었다. 자신을 탈탈 털어 일한 뒤 쉽게 회복되지 않는 이들이 형광등 아래서 희미하게 웃었다. 하나를 끝내고 다음 일을 시작하기 전, 어떻게 다시 힘을 냈는지 매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환자들의 티타임이네하며 우린 차를 건넸다. 약 기운에 어지럽다는 친구는 현자들의 티타임으로 잘못 들었다. 그런 곳이 있으면 꼭 불러 달라고, 현명한 이들이 차를 마시며 건네는 말을 듣고 싶다 했다. 어느 시절의 흔적과 지나간 자취를 찾다 보면 이들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고요한 공간에 머물고 싶어진다. "전시실 곳곳에 우리를 위한 티타임이 준비되었다면 어떨 것 같아? 누군가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면.”

 

과하지도 소란스럽지도 않은 그런 온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은하수 길어 차 달이는 밤, 그곳의 풍경은 알 수 없지만 향기가 나는 곳을 따라갈 때의 두근거림을 전시에 담고 싶었다. 어떤 공상은 전시 공간에 실현되었다. 하지만 푸른 저녁의 차향을 좋아해줬을 친구는 곁에 없었다. 늘 현명한 이들의 티타임에 가고 싶다고 하면서 약속을 잡지 못했던 일이 아쉽다. 박물관의 초대가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란다. 혼자 외롭게 있지 말기를. 망설이고 주저하기에 가을날은 너무 짧았다.(정명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