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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이 걸어 온 길 3

기사입력 2020.09.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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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신문 사장 김호규의 김병섭’(2)

     

     

                  국악신문 특집부

     

      

    네이버를 비롯한 모든 포탈 싸이트 검색에서 김병섭’을 치면 설장고 명인 김병섭은 검색되지 않는다. 그러나 김병섭 류 설장구라고 치면 검색이 된다. 이는 김병섭의 존재는 장구잽이로만 존재한다는 것이 된다. 돌려 말하면 가정도, 자식도 내치고 오직 장구에만 미쳐 살았다가 된다. 한편 이 시대 일부 잽이들의 삶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평소 김호규의 어떤 발언에서도 부친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역시 부인(고 최경자)의 구술자료 어디에서도 남편에 대한 정을 표현한 대목은 없다. 국악신문 유일의 기사인 사진작가 정범태의 연재물 명인(名人)’ 국악신문 제41(19960618일자)에도 가족관계 같은 사생활은 기술되지 않았다. 해적이(연보) 조차 정리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회에 제시된 해적이도 본 보가 처음 작성한 것이다.

     

    김호규의 김병섭은 설장구 명인이다. ‘설장구란 판굿에서 우두머리 장구잽이(명인)가 나와 다채로운 가락과 춤으로 솜씨를 보이며 하는 연행으로, 장구놀이 중 으뜸이란 말이다. ()장구, ()장구라고도 말하는 이유이다. 호남 지역 설장구 춤 중에서 김병섭 류 설장구는 다스름·휘모리·동살풀이·굿거리·삼채·연풍대로 구성되어 독자적인 유파를 이루었다. 장구가락과 발디딤을 베 짜듯이 잉어걸이엇부침엮음살이 등에 소삼과 대삼의 음양배합으로 엮어 최고의 장구놀음으로 표출했다. 고대 농악에서 비롯된 장구춤이 김병섭에 이르러서는 독자적인 타악음악으로 다듬어져 예술로 승화되었다.

     

    1984년 한국일보사와 국립극장이 주최한 명무전에서 최막동·백남윤·유지화 그리고 김병섭이 선보인 장구춤에서 김병섭의 무대는 돋보였다. "섬세하고 화려하고 드라마틱했다. 시인 이승하의 시집 <박수를 찾아서>에 수록된 김병섭의 설장구도 이 명무전의 감동으로부터 기억되고 있다. 이후 작고하는 1987년까지 많은 제자들이 형성되어 김병섭 류라는 유파를 형성하였다.

     

    현재 유튜브 채널에는 비록 흐릿한 화면이지만 풍부한 김병섭 설장구 품새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2002년 제자들이 개최한 제1회 설장구보존회 정기발표회 동영상 김병섭 류 완판’(15)이 올라 있다. 그 외 윤용준·한승철·박철선 등이 이 류를 계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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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신문 유일의 '김병섭' 기사: 사진작가 정범태의 연재물 ‘명인(名人)’ 제41호(1996년 6월 18일자)

    김병섭의 설장구

     

                                     이승하

     

    지 애비 죽고나서부터 장구를 쳐?

    장구 가락 베를 짜듯

    발놀림 연속무늬를 놓듯

    신바람이 나서 쳤단 말이여?

     

    우도(우도)농악 이어 받아

    엇붙임 장단으로

    좌를 때리고 우를 아우르면

    세상은 음양이 어울려 잘 돌아가더라고이?

     

    나라 빼앗겼을 땐

    구성지게 구정놀이

    나라 되찾을 땐

    흥겨웁게 덩덕궁이

    장구 하나에서 세상 살아가는

    흥이 솟구치고 멋이 우러나서

     

    아니, 그래 늙은 설장구

    지 에미 죽은 날도 장구를 처?

    치고 싶은데 못치고 않았으면 미쳐?

    색동 끝동이 달리 붉은 쾌자를 입고

    골수가 울리도록 치면

    세 살 먹은 애도 춤이 나온다고이?

     

    김병섭의 설장구에 대해서는 논문 1편과 단행본 한 권이 있다. 김병섭의 설장구 세계는 앞으로 다양한 국면에서 논의가 확장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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