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기찬숙/아리랑학회 이사
독일 노래 ‘소나무(O tannenbaum)’의 곡조가 북한에서는 대표적 항일혁명가 ‘적기가(赤旗歌)’의 곡조로 불리고 있다. 어떤 목적을 위해 새롭게 개사가 되어 북한에서 ‘존엄 높게’ 불리게 된 연원을 들춰보고자 한다.
1920년대 초 영국에서 ‘레드 프래그(The red flag)'로 번안되어 저항적 노동가로 불렸다.
그리고 1930년대 중반 일본으로 건너가 사회주의 민중 혁명가 ‘아카하타노 우타(赤旗 歌)’로 불렸다. 원래의 3박자를 4박자로 바꾸고 7.5조로 개사를 하여 대유행을 했다. 이로부터 만주 독립운동 진영에서 이를 ‘적기가’로 번역하고 항일의 노래로 개사하여 불렀다. 해방 후에는 북한에서 이어 부르게 된 것이다. 하나의 곡조가 다섯 나라 독일, 영,국 일본, 조선, 북한에서 개사되어 불렸던 것이다.
이와 함께 살피게 되는 노래가 또 하나 있다. 스코트랜드(애란)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이다. 영국을 거쳐 유럽에서 지명도를 얻자 극동지역 한국, 일본으로도 전파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애국가’(윤치호작사 무궁화가/애국가)의 곡조로, 일본에서는 ‘석별의 정’으로 개사되어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초등학교에서 ‘졸업식 노래’로 불리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서양식으로 표현하면 콘트라팍투어(Kontrafaktur)이고, 우리식으로 하면 ‘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노가바)이다. 전자는 마르틴 루터 종교혁명 시기 종교적 가사를 민요나 대중음악 곡조에 얹어 빨리 전파시키기 위해서 발현된 것이다.
후자는 우리나라에서 비전문음악인 운동권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이념과 정서를 쉽게 담아 표현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찾아낸 노래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곡에 대한 정보나 지식 없이 가사 중심으로 불러온 번안가요이다. 그럼에도 일반적으로 모국어로 부르는 노래이니 당연히 ‘우리 노래이지’라고 여긴다. 초기 애국가를 올드 랭 사인 곡으로 부른 것이다.
그런데 1946년까지 대부분 민중들은 원래의 애국가 곡조로 알고 있었다. 사실 노래의 출처를 알려고 하는 의문도 없던 시대적 산물이었다. 근대화에 기인한 서구음악 수용의 유연성 현상에서는 제한적 한계이지만 민중들의 노래 부르려는 강한 의지가 곡조의 형식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디어가 곧 메시지’이듯이 선택된 노래의 곡조는 가사 못지않은 강력하고 전파력 강한 메시지가 된다. 이를 실증하는 것이 ‘아리랑’이다. 이 때 ‘아리랑’이란 1926년 나운규 감독의 영화<아리랑>의 주제가로 탄생한 오늘의 ‘본조아리랑’이다. ‘민족영화 제1호’로 호명되는 영화의 주제가이다. 역시 대중성에서 압도할만한 노래이다.
한 옥타브 안에서 선율, 리듬, 박자가 조화롭게 꾸며내는 3박자 왈츠풍, 세마치장단이다. 여기에 명료한 2행 후렴에 2행 3음보의 사설을 갖춘 '후렴구+1절 ' 구조의 공식어구 형식을 정형화 시켰다. 아리랑 명성의 강력함과 노래 형식의 용이성이 ‘아리랑 노가바’를 하나의 독립 장르로 구축하게 했다. 이른바 ‘선전가’의 개사곡이다.
아리랑 곡조의 개사곡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시기는 1930년대 중반이다. 근대화의 공시매체 메시지 유통이 필요했던 시절이었다. 우선 선전가로서 분명한 기능을 한 것은다음의 세 가지 예를 들 수 있다.
하나는 1930년 ‘종두선전가’(種痘宣傳歌) 전단지이다. 종두는 천연두 또는 우두를 말한다. 전염병 치료제로 일본을 통해 유입된 주사(注射)에 대한 두려움을 ‘종두보다야 무섭겠냐’라고 선전하는 노래이다. 각 지역 경찰서를 통해 보급되었는데 이 자료는 당시 강원도 이천경찰서가 배포한 전단지에 수록된 자료이다. "호열자 염병에 예방주사/마마 홍역엔 우두넛키// 천하에 일색인 양귀비도/마마 한 번에 곰보된다” 천연두의 무서움이 주사에 비길 수 있느냐며 평생 ‘곰보’로 살지 않으려면 주사를 맞으라는 국가적 강권이다. 후렴은 영화 주제가 아리랑이고 당연히 곡조도 같다는 것을 알수 있다.
둘은 조선일보 1931년 1월 7일자를 통해 등장한 ‘문자보급가’이다. 당시 브로나드운동의 일환으로 신문사 주관으로 시작된 농촌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한글운동이다. 이 문자보급가의 곡조가 ‘流行 아리랑曲’이라는 기록에서 이 시기 유행하던 영화주제가 아리랑을 말하는 것이다. 아리랑고개를 ‘문맹’(文盲)으로 표현하여 넘어가야만 한다고 권고한다. "아리랑고개는 별고개라오”라고 해 놓고 더 높은 고개가 있는데, ‘이 세상 문맹’이라고 했다. 이어서 대명천지 전기불이 들어와 밤에도 훤한 세상에 ‘눈뜨고 못봄’이 웬일이냐고 한탄한다. 그리고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라고 후렴을 불러 문맹도 고개처럼 넘길 것이라고 격려한다. 어깨 두드리며 함께 넘자는 청유형 문자보급 노래이다.
셋은 1935년 충북 중원군 상모면 온천리 수안보 온천(水安堡 溫泉)의 선전가이다. 위의 두 가지는 계몽적 성격인데 비해 이는 상업광고적 선전가이다. 당시 전국적으로 알려진 충남 온양온천만이 아니라 수안보온천은 3만년의 역사가 깊은 온천이라는 사실을 알리려는 목적인 듯하다. "문경의 새재를 넘어스면/ 충북의 령천인 수안볼세// 정든님 모시고 이 온천하며/ 조령의 엣일을 차저보자”라고 지명과 역사를 내세웠다. 역시 후렴은 주제가 아리랑과 같고, 곡조를 ‘아리랑曲’으로 하여 본조아리랑임을 알 수 있다.
최근 세계를 멈추게 하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서울에서 ‘아리랑코로나’가 출현했다. 사단법인 왕십리아리랑보존회에서 발표한 것으로 1950년대 ‘코로나택시’의 유행을 빗대어 코로나택시는 타봤지만 코로나19는 탈 수 없다는 풍자적 표현이다. 후렴과 곡조를 본조아리랑으로 부르고 있다.
시대적 요청에 의한 필연적 출현이다. ‘밈(Meme)’아리랑의 후렴과 곡조가 1930대에서 지금까지 지속적인 자기복제(自己複製, self-replication)의 결과에서 새로이 창출된 것이다. ‘아리랑 노가바’와 ‘아리랑코로나’의 출현은 아리랑이 특별한 노래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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