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판소리의 비장미
‘소리꾼’은 조정래 감독이 2020년 7월 1일 개봉한 새로운 시각으로 만든 판소리라는 국악 장르를 주제로 한 음악영화다. 남원출신 국악인 이봉근씨가 주인공으로 첫 데뷔하여 스크린에 도전한 영화이다.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과 한 명의 고수(북치는 사람)가 음악적 이야기를 엮어가며 연행하는 장르이다. 장단에 맞추어 부르는 표현력이 풍부한 창(노래)과 일정한 양식을 가진 말, 풍부한 내용의 사설과 몸짓등으로 구연(口演)되는 이 대중적 전통은 지식층의 문화와 서민의 문화를 모두 녹아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소리꾼은 1명의 고수의 장단에 맞춰 서민들의 생활에서 보여주는 지역성과 양반들의 이중적 일상과 일탈을 풍자하기 위해 고사성어 표현을 빌어와서 제나름의 가사를 지어서 연행하는 즉흥 공연이다. 시대의 이야기를 담은 서사적 스토리라는 보편성과 특별한 양식의 창법으로 노래하는 전통적 특성을 담보하고 있다.
판소리는 2003년 한국 국악 장르 중 첫 번째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되었다. 판소리와 한국 전통민속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판소리와 소리꾼에 관한 수상 경력에 빛나는 한국 영화 두 편 ("서편제”와 춘향”)을 추천한다. 1993년에 출시된 서편제는 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유치한 최초의 한국 영화다. 조정래는 1998년"서편제”에서 영감을 받아 "소리꾼” 대본을 썼다고 한다. 작가는 장님 판소리꾼 송화라는 인물에서 모티브를 받았다고 보여진다. 감독은 이 영화에서 실제 판소리 가수는 고통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소리꾼, 피지배집단의 대변인
시대 배경은 영조10년. 천민출신 소리꾼 '학규'와 양반들의 삯바느질을 하며 돈을 버는 아내 '간난이' 어린 딸 '청이’와 단란하게 살고 있다. 당시 지배자들인 탐관오리들이 대리자를 앞세워 무고한 백성들을 잡아다가 인신매매를 하는데, 남편이 없는 틈에 들이닥친 집안에서 아내와 딸이 잡혀가서 간신히 딸이 도망을 하다 사고로 실명을 하게 된다. 억울함과 분노로 슬픔에 빠진 그는 한스러운 자신의 처지를 판소리로 표출한다.
사라진 아내 간난(이유리)을 찾아 나선 소리꾼 학규(이봉근), 그의 유일한 조력자 장단잽이(북 반주자) 도씨(김강현), 이웃집 '대봉'(박철민), '몰락 양반'(김동완)이 만나서 소리광대패(노래부르는 광대 공연단)를 만들고 조선팔도 유랑공연이 시작된다.
서양의 오페라와 다르게 관중은 소리꾼의 사설을 받아주는 추임새를 통해 어느새 하나가 된다. 심청이가 되고 심봉사가 되고. 춘향전이 시작되면 춘향의 어미가 되어 관리들의 폭압에 대해 저항하고, 이도령을 기다리던 춘향이가 되어 울고 시름짓는 주인공이 된다. 같이 소리를 지르고 한숨을 쉰다.
이렇게 장날 무대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웃기는 판소리는 민중의 가슴에 사회모순에 관한 저항의 불씨를 심어준다. 양반들의 자기모순을 통쾌한 풍자를 통해 실랄하게 비판하여 세상 사람들의 눈이 되고 귀가 되어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준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통렬하게 내질러 준다. 특히 비장미를 담보한 판소리는 서서히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치유의 힘이 되어주면서 전국적 명성을 얻게 된다. 조금씩 민중의 눈을 뜨게 해준다. 드디어 민중은 노래의 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소리패광대들의 노래는 세상을 조금씩 바뀌게 한다.
피폐한 조선 대중에게 권선징악 제시
학규는 그 과정에서 판소리 "심청가”를 만들게 된다. 아버지의 두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수중 왕에게 자신을 희생한 소녀 심청의 이야기이다. 가슴 아프게도 불쌍한 어린 딸은 맹인 소녀가 되지만 아름다운 목소리와 놀라운 판소리 공연을 선사한다.
‘소리꾼의 실명’이라는 주제는 다른 판소리 이야기에도 등장한다. 왜냐하면 시각 감각이 박탈되어 다른 감각이 더 강력해지게 되어 재능이 발달된 소리꾼들은 더욱 깊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된다는 설정이다. 영화의 대단원 장면에서 그는 아내를 구출하고 딸의 실명을 치유하게 된다. 타고난 음악적 재능과 명성이 가족을 구하게 된다. 한 예술가의 의지와 판소리의 예술성에 관한 아름다운 영화이다.
음악영화의 백미는 역시 음악성
민속음악을 주제로 한 영화의 배경음악과 주제가는 전통 민속음악 판소리부터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 작품을 선사한다. 일부 장면은 유명한 뮤지컬의 감동과 같은 느낌이다. 이봉근은 그 동안 국악의 관객층 다양화를 위해 ‘크로스오버’작업을 시도해 오고 있다. 전통음악을 근간으로 한 대중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와 결합을 실험하고 있다. 재즈의 스캣(가사 대신 아무 뜻 없는 후렴구를 넣어 부르는 창법)도 공부했다. 국악과 혼종된 재즈화 작업한 변주곡도 내놓고 있다.
영화 출연의 성과가 공연으로 이어진다면 국악의 저변을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작품을 통해 판소리의 고장 남원을 알리는 계기가 되고 인류무형문화유산 판소리의 위상도 다시 한번 재조명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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