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27 (토)
봄길 정호승(鄭浩承, 1950~ )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A spring Road Even where a road...
출처:https://blog.naver.com/withflower5/222213044169 설날 윤극영(尹克榮, 1903~1988)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저고리 아버지와 어머니 호사 내시고 우리들의 절받기 좋아 하셔요 우리집 뒤 뜰에는 널을 놓고서 상 들이고 ...
눈 이불 이만유(1953~ ) 추위와 목마름에 청보리 쩔쩔맬 때. 하얀 눈 소복 내려 솜이불 덮어주네. 따뜻한 이불 안으로 파고드는 보리싹. 추천인:기미양(아리랑학회 연구이사) "이번 눈이 마지막 눈이겠지라며 손바닥으로 하얀 눈을 받다가 문득 며칠 전 선물로 받은 시 한 편을 떠 올렸다. ‘청보리’의 청신한 색감이 금방 기분을 밝게 한다. 혹시 지금 들녘을 지나는 이가 있다면, 살포시 눈이불 들어 ‘보리싹’에 ...
새롭지 않은 새해의 시 이동순(李東洵/1950~ ) 새해가 왔는가 미처 맞이할 겨를도 없이 불쑥 들이닥친 길손처럼 새해는 와 버렸는가 어제 방구석에 쌓인 먼지도 그대로 내 서가의 해방기념시집의 찢어진 표지 그 위를 번져 가는 곰팡도 아직 못 쓸고 있는데 새해는 불현듯 와 버렸는가 파헤쳐 놓은 수도공사도 끝내지 못했는데 태어나리라던 아기예수도 아직 태어나지 않았는데 여지껏 나무에 대룽대룽 매달려 애잔한 잎들은 팔랑이는데 못다 쓴 원고뭉치...
새해의 노래 김기림(金起林/1907~?) 역사의 복수 아직 끝나지 않았음인가 먼 데서 가까운 데서 민족과 민족의 아우성 소리 어둔 밤 파도 앓는 소린가 별 무수히 무너짐인가? 높은 구름 사이에 애써 마음을 붙여 살리라 한들 저자에 사무치는 저 웅어림 닿지 않을까 보냐? 아름다운 꿈 지님은 언제고 무거운 짐이리라. 아름다운 꿈 버리지 못함은 분명 형벌보다 아픈 슬픔이리라. 이스라엘 헤매이던 2천년 꿈 속의 고향 시온은 오늘 돌아드는 발자국 소리로 소연코나. 꿈...
그랬다지요 김용택(金龍澤/1948~ )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사는게 이게 아닌데 이러는 동안 어느새 봄이 와서 꽃은 피어나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러는 동안 봄이 가며 꽃이 집니다 그러면서, 그러면서 사람들은 살았다지요 그랬다지요 추천인:김연광(민족음악연구원 이사) "이맘때쯤이면 기억나는 시. 누군가가 그립다. 만나고 싶다. 또 꽃이 지기 전에!”
개세가(慨世歌) 목은 이색(牧隱 李穡/1328∼1396)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 있어 갈 곳 몰라 하노라 추천인: 이한구(시조연구회 회원) 며칠 전 해질녘 폭설로 갈길 몰라 했다. 문득 포근한 눈, 매화를 티우는 살폿한 눈이 그리워졌다. 선조의 시조 한 수가 입김과 함께 흘러나왔다.
[국악신문] 사진:기세택 새해 첫 기적 반칠환(1964~ )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뱅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 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채로 도착해 있었다. 추천인:김삼목(국악신문 자문위원) 어디에서, 어떤 속도로, 어떻게 왔는지. 기특하게도 우리는 한날한시에 도착했다. 그리고 우리는 같은 선에서 한날한시에 출발한다. 이것은 분명 기적이다. 2012년 교보문고 ...
새해의 기도 이성선(李聖善/1941~2001) 새해엔 서두르지 않게 하소서 가장 맑은 눈동자로 당신 가슴에서 물을 긷게 하소서 기도하는 나무가 되어 새로운 몸짓의 새가 되어 높이 비상하며 영원을 노래하는 악기가 되게 하소서 새해엔, 아 아 가장 고독한 길을 가게 하소서 당신이 별 사이로 흐르는 혜성으로 찬란히 뜨는 시간 나는 그 하늘 아래 아름다운 글을 쓰며 당신에게 바치는 시집을 준비하는 나날이게 하소서 추천인:박승찬(...
다시 겨울 아침에 이해인(李海仁/1945~ ) 몸 마음 많이 아픈 사람들이 나에게 쏟아놓고 간 눈물이 내 안에 들어와 보석이 되느라고 밤새 뒤척이는 괴로운 신음소리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 12월 눈오는 겨울아침, (사진: 러시아 동포 3세 스텝핀 블라디미르(Степин Владимир/한국명:이미르) 내가 듣고 내가 놀라 잠들지 못하네 힘들게 일어나 창문을 열면 나의 기침소리 알아듣는 작은 새 ...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바라보는 산 2020.01.30.(사진:기찬숙) 눈 윤동주(1917~1945) 지난밤에 눈이 소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진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 추천인:황정수(세종시 한누리국악원 원장) "그제 어딘가에 첫눈이 왔단다. 아마 그 곳은 추웠나 보다. 이제 내 사는 곳도 추워지겠네. 그러면 나는 포근하겠지?”
초겨울 편지 김용택(金龍澤/1948~ ) 앞 산에 고운 잎 다 졌답니다 빈 산을 그리며 저 강에 흰눈 내리겠지요 눈 내리기 전에 한 번 보고 싶습니다 추천인 김도형 교수(다큐 ‘다시 부르는 아리랑’ 감독) "눈은 모든 것을 가린다. 그리고 그 위에 기억을 새긴다. 눈 위에 그릴 그 첫 기억은 아마도 보고 싶은 이일 것이다. 매년 첫 눈을 기다리며 몸살을 앓는 이유일 것이다.”
첫 눈 이정하(李禎夏/1962~) 아무도 없는 뒤를 자꾸만 쳐다보는 것은 혹시나 네가 서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그러나 너는 아무데도 없었다. 작가: 우정훈 낙엽이 질 때쯤 나는 너를 잊고 있었다. 색 바랜 색처럼 까맣게 너를 잊고 있었다. 하지만 첫눈이 내리는 지금, 소복소복 내리는 눈처럼 너의 생각이 싸아하니 떠오르는 것은 어쩐 일일까. 그토록 못 잊어 하다가 거짓말처럼 너를 잊고 있었는데 첫 ...
다 못 쓴 시 유재영 (1948∼) 지상의 벌레 소리 씨앗처럼 여무는 밤 다 못 쓴 나의 시 비워 둔 행간 속을 금 긋고 가는 별똥별 이 가을의 저 은입사(銀入絲)! 추천 정현조(남북아리랑협의회 회원) "시를 써오는 사람으로서 남의 시를 읽다 환호하기도하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하고, 영감을 얻기도 한다. 얼마 전 읽은 윤재영 선생의 ‘다 못 쓴 시’를 읽고 절망했다. 나는 이 시처럼 일물일어(一物一...
가을의 기도 김현승(金顯承/1913~1975)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추천인:이창구(남북국악교류추진위 간사) 晩秋! 어린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