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리뷰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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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예술협회 창립전 기념식 성황 이뤄, 150점 작품전(사)한국서예술협회(회장 이종선)가 20일 오후 4시 창립기념 회원전 기념식을 열었다. 이 전시는 중국의 난정서회와 국내에서 국악신문, 월간길벗, 월간서예, 월간서예문인화 등이 후원했다. 20일부터 26일까지 1주일간 한국미술관(인사동 대일빌딩 2층) 전관에서 창립 회원전을 개최한다. 국한문 전 서체에 걸쳐 한국서예의 전모를 볼 수 있는 150여 점의 작품이 다양하게 전시가 되어 서예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7월 10일 서울시로부터 사단법인 설립허가를 받은 한국서예술협회의 목적사업의 일환으로 열리는 첫 번째 행사이다. 한얼 이종선 회장은 인사말에서 "한국서예술협회는 우리서예의 전통계승과 서예 발전을 통해 국민문화의 질적 향상에 기여하고자 창립하였다. 서예의 본연을 지켜 전통을 계승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서예의 발전을 선도해 나가고자 한다. 본 협회는 이를 위해 서예인재의 발굴과 회원들의 창작활동을 돕는 실질적인 방법을 모색해 나갈 것이다. 기존 서예단체와는 다른 선명한 길을 가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서예술협회는 오거서루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창립하였다. 서단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전기가 필요하다는데, 뜻을 모아 결성되었다. 회원들도 이들의 문하로 구성되어 있다. 협회 측은 "오늘 창립전을 첫 걸음으로 앞으로 뜻을 같이 하는 역량이 있는 서예가들의 참여를 기대하며, 회원의 구성도 폭을 넓혀 나가고, 참신하고 진취적인 협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특히 회원의 권익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사)국제서예가협회 회장 정도준 회장은 축사에서 "12월의 끝자락, '한국서예술협회'가 서예 법인단체 창립을 공식 선언하는 창립전을 연다는 소식에 서예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반가운 벗을 만난 듯 기쁩니다. 한국 서단은 광복 이후 혼란과 정체기, 성장과 다양화를 거치며 수많은 협회와 학회가 생겨나고 또 사라졌다."며"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서단발전과 인재육성에 기여하지 못하여 많은 아쉬움이 있었다. 이런 때에 '한국서예술협회'의 창립은 차세대 한국서예를 이끌 대안으로서 기대가 크다. 창립 주체의 면면을 볼 때 기존의 단체와는 다른 역할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특히 정회장은 "노자에 '合抱之木 生於毫末 九層之臺 起於累土 千里之行 始於足下'라 하여 아름드리 큰 나무도 아주 작은 씨앗에서 싹이 트고, 9층의 누각도 한 무더기 흙을 쌓는 데에서 시작하며, 천 리의 길도 발밑에서 시작된다."라는 말을 인용하여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주)국악신문 기미양 대표이사는 축사에서 "특히 ㈜국악신문에 '우리 노래 사설(辭說)의 서예화'로 국악계에 큰 자극을 주시더니, 금년부터는 아리랑 사설을 소재로 하여 국악인들의 자긍심을 돋궈 주시는 한얼 이종선님이 앞장 서신다니 더욱 기대가 큽니다. 국악신문 매주 수요일마다 연재를 통해 서체의 다양함에서 맛보는 미학적 감동은 물론이고, 그 탁월한 사설의 인문학적 풀이에서 큰 영감을 받고 있습니다." 며 "우리 국악신문 독자들은 이번 창립전 출품작품에서 서예의 세계와 아름다움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함께하겠습니다"라고 전했다. 한국서예술협회 강은영 회원은 "붓을 잡은지 햇수로 5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수업을 제대로 다 채우고 나가지 못했다. 이번 창립전을 위해 뜨거운 여름날부터 열심히 작품을 완수했다."며 "선생님께서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 당일 수업에서 한시나 한글 시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국문학적 내용과 감상에 대해 충분히 강의를 해주신 다음에서야 붓을 잡게 하신다." 며 "그런데 그 많은 시 작품을 줄줄 외우신다. 얼마나 읽고 숙지를 하셨는지 놀랍다. 한얼 선생님 서체는 그래서 운율이 살아서 움직인다. 한참 바라보면 제 각각의 서체가 소리를 내면서 나에게 말을 건낸다. 서체는 시가 되고, 이어 노래가 되어 들리기 시작한다."라고 전했다. 가족과 함께 온 회원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자신의 서예작품을 설명하면서 자랑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러면서 요새 사라져가는 학교앞 서예학원 실태에 대해 아쉬워했다. "손주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데, 요즈음 애들에게는 인기가 그리 많지는 않다"라고 아쉬워했다. 한 관람객은 "한국을 방문한 외국 관광객들에게 인사동에 오면 한번 들려야 할 코스로 소개하고 싶다. 한글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서예를 배우고 싶다"라고 전했다. 이번 회원전은 서예를 시작한지 5년 정도 되는 회원들로부터 원로 작가까지 함께한 전국 단위 회원전으로 서예계에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작가의 시각과 해석에 따라 표현되는 다양한 한글의 조형미에 대한 인기는 해외 한국문화 홍보원(한국문화원) 서예교실 프로그램 운영에서 입증이 되고 있다. 유럽 국가에 주재하고 있는 몇몇 한국문화원에서 한류 프로그램 인기와 함께 서예교실이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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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군홍, 80여 년 걸려 우리에게 온 화가그림 한 점이 시선을 붙잡았다. 젊은 어머니가 아들을 품에 안은 모습이었다. 남편은 이 그림이 마지막이 될 줄 모르고 북으로 가버렸다는 설명이 있었다. 그렇게 임군홍(1912~1979) 화백과 첫 대면을 했다. 1950년 작품이다. 화가가 남긴 마지막 작품이다. 그해 화가는 북으로 넘어가면서 가족과 영영 이별했다. 기자는 그림 속 두 살배기 아이에게서 슬픔을 느꼈다. 7월 27일부터 두 달간 열리는 ‘임군홍 전’을 준비 중인 압구정동 예화랑에서 74세의 장년이 된 그를 만났다. 아들은 그림의 전후 사정을 어머니와 7살 위 형에게서 들어 "그랬구나”라고 느낄 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있을 리 없었다. 부재에서 오는 그리움이나 서러움 같은 건 달리 내비치지 않았다. 들은 이야기와 사진, 그림들로 아버지의 이미지를 줄곧 그려온 까닭이었을 것이다. 백부로부터 아버지의 소년 시절을, 어머니로부터는 청년 시절의 이야기를 듣곤 했다. 백부는 동경 유학까지 갔던 화가 지망생이었으나 집안의 결혼 강요 탓에 의기를 꺾었던 사연을 안고 있어 더욱 화가 동생의 불행을 가슴 아파했다. 임군홍은 김환기, 이인성, 이중섭, 박수근 등 20세기 초반의 대가들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으나 조명을 받지 못했다. 박수근처럼 그도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했다. 주교공립보통학교 시절 미술교사였던 김종태1906~35와 윤희순1902~?의 지도를 받으며 그림에 눈 떴고, 졸업 후 치과병원에서 기공사로 일하면서 경성양화연구소에서 약간의 수업을 받은 게 미술 공부의 전부였다. 김종태는 야수파 화풍을 보이며 1926년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 ‘자화상’으로 입선한 후 이듬해 ‘포오즈’로 특선을 차지하여 연이어 여섯 차례에 걸쳐 특선을 차지한 스타 화가였고, 윤희순 역시 평론가로도 활동한 유명 미술인이어서 임군홍의 기초를 탄탄하게 잡아주었다. 특히 몇 번의 붓질로 대상의 아웃 라인을 잡는 건 스승 김종태의 기법과 꼭 닮았다. 일본에서 들여온 미술잡지들을 통해 인상파와 야수파, 표현파들의 그림을 살피는 것도 공부였다. 임군홍은 1931년 선전에 유화 ‘봄 스케치’로 입선한 후 1936년 ‘여인 좌상’으로 다시 입선하고 이듬해에 ‘소녀상’으로 또 입선한다. 이후부터 1941년까지는 풍경화로 해마다 입선을 거듭한다. ‘소녀상’은 사귄 지 1년 된 결혼 전 아내를 모델로 삼아 그렸다. 연이은 입선 후 그는 아내에게 비취반지를 선물한 후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의 아내는 반지를 낀 손을 곧게 펴 자랑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행복한 시기였다. 간호사이던 아내 홍우순(1915~1982)과는 치과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만나 열애 끝에 결혼했다. 홍우순은 현재 가수이면서 화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솔비의 이모할머니이다. 1938년까지 3회의 동인전과 한 차례 개인전을 가졌다. 이즈음 본명인 수룡(水龍)을 버리고 군홍(群鴻)으로 활동한다. 나머지 두 아들도 이름을 득용(得龍), 점용(點龍)으로 지었을 만큼 유가의 집안임을 자부했던 부친의 뜻을 저버린 셈이었다. 자신이 집착한 용을 마다하고 기러기를 택한 아들의 결정을 탐탁하게 여기지는 않았을 듯싶다. 혹시 ‘군계일홍(群鷄一鴻)’의 뜻이었다면 수긍해 주셨을까. 임군홍은 1939년 돌연 중국행을 택한다. 결혼을 앞두고 돈을 벌 생각으로 광고디자인 사업을 병행하던 중이었다. 넓고 큰 중국 시장에서 빠른 승부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서울에서 만주와 북경을 거쳐 호북성 무한에 터를 잡았다. 최고 번화가인 화루가(花樓街)에 회사를 차려 사진 인화, 광고, 인테리어 사업을 전개했다. 조선인 서화가들이 중국에 남긴 작품들을 찾아서 파는 일도 했다. 간송 전형필(1906~1962)도 수집 차 여러 번 그의 가게를 찾아오곤 했다. ‘꽃으로 단장한 거리’라는 매력적인 이름의 거리는 미감을 중시하는 화가와 잘 맞았을 것이다. 실제 임군홍은 이 거리의 풍경들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화루가 골목의 풍경을 담은 그림에 등장하는 간판의 ‘照相放大’가 ‘사진 인화 확대’라는 뜻이라고 일러주자 임 선생의 차남 임덕진(1948~ )씨가 환하게 웃으며 좋아했다. "덕분에 그 가게가 아버지 회사였음을 알게 됐다”라는 것이다. 임 화백은 그렇게 주변 풍경들에 마음을 주며 하나씩 그려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재래시장의 정육점을 담은 풍경화는 1941년 선전에 입선했다. 1946년 귀국할 때까지 사업과 그림을 병행했다. 이 시기 사업으로 바쁜 와중에서도 그린 그림들 가운데 기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금성 연작이었다. 묘하게도 그는 기자가 북경특파원으로 주재하던 시절 자주 찾았던 장소에서 자금성을 그렸다. 다름 아닌 자금성 뒤 경산(景山)이었다. 궁궐 옆에 북해 호수를 만드느라 퍼올린 흙으로 조성한 인공산으로서 우리 창덕궁 후원처럼 명 황제 일가의 휴식처였다. 명明 말기 대기근과 관리들의 수탈에 반발해 반란을 일으킨 이자성이 자금성으로 진격해 오자 겁을 집어 먹은 숭정제는 뒷산으로 달아난다. 한참 자금성을 부감으로 내려다보다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판단해 마침내 나무에 목을 매단다. 황제로서는 처절한 최후였다. 이 경산에서 바라보는 자금성 풍경이 압권이다. 2km에 달하는 궁궐 전각들의 황금색 기와들이 일제히 햇빛을 반사하는 모습은 장관이다. 왜 산 이름에 ‘경치 경景’ 자를 붙였는지 절로 이해가 되는 곳이다. 기자도 수시로 이곳에 올라 고궁을 내려다보면서도 단 한 번도 싫증을 낸 적이 없었다. 임 화백의 고궁 그림을 보면서 그는 왜 이곳을 그렇게 여러 번 올랐을까, 의문을 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북경에 살고 있던 게 아니라 1,250km 떨어진 무한에 살면서 수시로 이곳을 찾기란 보통의 꽂힘이 아니고선 힘들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북경의 아이콘이기도 하지만, 숭정제의 비극이 깃든 역사가 서린 곳인 데다, 자금성의 미감을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포인트라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 않았겠나, 짐작한다. 임 화백은 자금성 네 귀퉁이에 3층 높이로 서 있는 누각들에도 시선을 주었다. 공사 설계자가 디자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지 못해 전전긍긍하다 누군가의 "여치 조롱에서 힌트를 얻어 그대로 지었다”라는 후일담이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건축물이다. 역시 조형미 덕에 세련된 미감이 감지되는 건축물이다. 임 화백은 천자天子의 상징인 천단天壇도 여러 번을 찾아 다양한 이미지를 화폭에 옮겼다. 이 시기 베이징을 자주 찾던 그는 저명한 일본인 화가들인 야자키 치요지(矢崎千代仁, 1872~1947), 우메하라 류자부로(梅原龍三郞, 1888~1986)와 교분을 쌓는다. 각각 제국미술회 회원과 동경미술대학 교수를 지낸 이들이다. 그들 역시 자금성과 천단을 그린 점으로 미루어 현장에서 함께 작업하다 서로 사귀게 된 것으로 짐작된다. 야자키는 파스텔화로, 우메하라와 임군홍은 유화로 대상들을 묘사했다. 야자키는 임군홍의 초상화를 그려주었을 정도로 친했다. 1946년 서울로 돌아온 임 화백은 ‘고려광고사’라는 광고·디자인·인쇄 회사를 차려 사업을 계속했다. 서울의 첫 디자인 회사였다. 사업은 원만했으나 좌우 충돌이 극심하던 시기였다. 1947년 그는 용공분자로 몰린다. 좌익계 남편 안막과 동반 월북한 무용가 최승희를 운수부(국토교통부)에서 주문받은 신년 달력에 올린 탓이었다. 별생각 없이 최승희의 지명도만을 생각했던 그는 자신에게 찍힌 ‘용공’ 낙인에 좌절한다. 1948년 옥에서 풀려났지만 혼탁한 해방공간에서 더 이상 남한에 있을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일단 피신해야겠다는 생각에 택한 북한행이 가족과의 돌이킬 수 없는 결별이 되고 말았다. 자신이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 까닭이었는지 임 화백은 갓 태어난 둘째 아들에게 지극한 애정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인 ‘가족’에도 두 살배기 아들은 엄마 팔에 안겨 잠들어 있다. 7살 많은 형은 뛰어노느라 빠졌고, 동생에게 엄마를 빼앗긴 두 살 터울의 누나는 한 곁에서 뾰로통한 표정이다. 탁자 위에는 중국에서 가져온 물품들이 늘려 있다. 임 화백이 좋아했던 독일제 맥주 컵은 꽃을 꽂아 정물화에 여러 번 등장하고, 램프와 도자기, 항아리 등도 애용하던 소품들이었다. 그가 떠난 후 생활고를 겪던 모친이 시장에 내다 팔면서 모두 사라졌다. 둘째의 초상화 앞에서 기자는 먹먹해졌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 낡은 액자를 뜯고 그림을 끄집어 내려하자 또 한 장의 그림이 뒤에 붙어 있었는데 고양이 그림이었다는 설명 때문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살배기를 두고 가면서 아버지는 아들의 초상화 뒤에 수호신을 숨겨 놓았던 것이다. "고양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을 지켜본다”라는 원모심려(遠謀深慮)의 마음을 길 떠나는 아버지는 비장의 그림으로 대신했다. 꽁꽁 묶여 보관돼 오던 임군홍 화백의 그림 120여 점이 그린 지 80여 년만에 우리에게 제대로 공개된다. 전시를 기획한 김방은 예화랑 대표는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그의 천재성이 조명되고, 일반이 접하기 쉽도록 기념관이 건립됐으면 좋겠다”라는 희망을 말한다. 73년 전 아버지가 숨겨둔 수호신 덕에 아들은 드디어 아버지의 작품을 세상에 선보일 수가 있게 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임덕진 씨는 "아버지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늘 아버지의 숨결을 느껴왔다”라고 말한다. ‘고양이 수호신’은 ‘가족을 향한 아버지의 지극한 보살핌’의 다른 이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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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21c한국음악프로젝트, ‘매간당’, 대상![류기자의 현장]국내 최대 창작국악 경연대회인 ‘제16회 21c 한국음악프로젝트’ 영예의 대상은 ‘초면인 세계에 눈뜨다’라는 곡으로 출전한 ‘매간당’팀이 차지했다. 대상 수상자에게는 국무총리상과 상금 1500만원이 수여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재)국악방송이 주관, 국립국악원이 후원하는 ‘2022 국악 창작곡 개발 - 21c한국음악프로젝트’는 올해로 16회를 맞으며, 본선 경연을 지난 9월 15일(목) 저녁 7시,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진행됐다. 경연은 국악방송 TV, 라디오,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대상 수상팀인 ‘매간당’은 황재인(작곡), 유예진(거문고), 이다현(가야금), 김서연(대금), 이혜리(아쟁, 징), 김솔림(해금, 정주)으로 구성되었으며, 魅衎黨(매혹할매, 즐길간, 무리당)의 뜻을 갖는다. 한자어 그대로 음악과 퍼포먼스, 현대음악적 요소를 활용하여, 새로운 멋과 소리를 가진 다채로운 매력의 국악을 선보여 관객들을 즐겁게 하고자 한다. 수상곡인 ‘초면인 세계에 눈뜨다’는 악기와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으로, 악기에 대한 새로운 방식의 탐색을 전통악기를 통해 자신만의 색깔로 구현해냈다. 이전에 없던 그들만의 연주방식과 곡의 흐름은 강렬한 독주 같기도, 때로는 조화로운 협주를 듣는 듯, 독특한 음악적 각인을 경험하게 했다. 이들은 수상소감에서 "예상치 못했던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하고,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라고 감격과 기쁨을 표현했다. 수상 훈격과 수상팀은 다음과 같다. 대상(국무총리상) : 매간당 ‘초면인 세계에 눈뜨다’ 금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 소리꽃가객단 ‘제be노정기’ 은상(국립국악원장상) : 구이임 ‘나븨’ 은상((재)국악방송사장상) : 피리밴드 저클(JC Crew) ‘가위바위보!’ 동상((재)국악방송사장상) : O(오) ‘0(영)’, 반쯤 핀 꽃 ‘반쯤 핀 꽃’ 장려상((재)국악방송사장상) : 오프로드 ‘듄’, 여완x케빈 ‘달에게’, 이러리-저고리 ‘풀어라!’, 줄헤르츠(JUL Hz) ‘블루(Blue)' 2차에 걸친 예선을 거쳐 선발된 총 10팀은 작곡·연주·문화예술기획 분야의 전문가 멘토링을 거쳐 본선 경연에서 한층 더 다져진 실력으로 풍성한 무대를 선보였다. 각 팀들은 음악적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연주구성과 깊이 있는 음악적 통찰력으로 시대를 주도하는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또한, 작년 대상 수상팀인 ‘창작아티스트 오늘’의 축하공연으로 경연의 열기는 한껏 더해졌다. ‘21c한국음악프로젝트’는 지난 15년간 총 130곡의 창작곡, 16장의 앨범을 발표해오며, 신진음악인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해마다 전통음악에 현대적 감성을 담아,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국악창작곡을 선보이며, 전통음악의 새로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 것은 물론, 국내외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류 열풍에 힘을 보태고 있기도 하다. 대회의 주요 앨범으로는 ‘난감하네’, ‘풍류도시’, ‘바람과 함께 살아지다’ 등이 있고, 배출한 작곡가는 심영섭, 최덕렬, 홍정의 등이 있으며, 에스닉팝스룹 락(2007), 불세출(2007), 앙상블 시나위(2008), 숨(2009), 고래야(2010), 헤이스트링(2017), 서도밴드(2018), 경로이탈(2019) 등의 그룹들 또한 이 대회 출신이다. 또한 이번 대회는 류형선(작곡가, 21c한국음악프로젝트 초대 예술감독), 김영대(문화연구자, 음악평론가), 방수미(국립민속국악원 창극단 지도단원), 설현주((주)국설당 대표), 신대철(밴드 시나위 리더), 심상욱(전주시립국악단 예술감독 및 상임지휘자), 이슬기(가야금 연주자) 등 총 7인의 각 분야 전문가에 의해 공정하게 평가되었다. 류형선(전남도립국악단 예술감독) 심사위원장은 "오늘 이 무대에서 대중성, 전통음악이 가지고 있는 가치, 그 예술적인 가치, 독창성, 이런 것들을 다 관통해내는 어떤 천재 하나를 만난 듯한 느낌도 들었고요. ‘국악은 이래야 된다’ 라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 무한대의 자유로움 같은 것을 선사해주신 것 같아서 무척 즐거운 밤이었습니다.” 라고 심사의 소회를 밝혔다. 본선에 진출한 10팀은 아티스트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체계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 프로필 사진 및 영상 촬영과 음원 녹음을 마쳤으며, 이후 CD앨범 제작 및 국내·외 주요 음원사이트 내 수상곡 음원 유통으로 대중과 음악적으로 소통할 수 있으며, 국내·외 공연 출연 연계 등으로 지속적인 활동을 예고하고 있다. 그들의 음악적 상상력과 통찰력이 대중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게 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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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충절신 충혼 달랜 한글 악장(樂章) 발굴제47회 정선아리랑제가 15일부터 3년 만에 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된다. 15일부터 18일까지 4일간 정선공설운동장에서 대규모로 진행된다. 축제는 남면 거칠현동 七賢祠(칠현사)에서 고유제를 지내면서 시작된다. 정선출신 고려유신 전오륜을 비롯한 신안·김충한·이수생·변귀수·김위·고천우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이들이 율창(律唱) 한 7편의 시가 정선 지역인들에게 전해지면서 정선아리랑 대표사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와 같은 우국 사설이 지어졌다고 전한다. 이런 연유로 정선아리랑 시원설과 7인의 인물과 7편의 시가 언급된다. 이런 연유로 정선아리랑제는 이들의 위패를 배향한 정선 남면 거칠현동 ‘7현사’에서 제를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금년 행사에는 특별한 수서가 들어갔다. 고려 충렬신들을 기리는 ‘악장’ 일편이 낭송되기 때문이다. 이 (사)아리랑연합회 소장자료인 1936년 간행 景賢祠誌(경현사지) 제5권에 수록된 것을 이번에 발굴, 처음 사용하게 된 것이다. 악장은 조선시대 들어 궁중에서 국가행사나 잔치 등에서 행해진 장르이다. 이 번 발굴 작품은 기존의 한문 또는 현토(懸吐) 형이 아닌 국문 중심의 악장이면서 민간에서 행해진 작품이란 점에서 주목을 끈다. 이를 계기로 발굴 악장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고려 충절신은 이른 바 ‘杜門洞72현’으로 통칭된다. 이성계의 역성혁명으로 세워진 새 왕조에 출사하지 않고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이성계에 불복하여 두문동 만수산에 들어가 절의를 지킨 문신들을 이르는 말이다. 이들의 존재와 충절 정신이 세상에 드러나기로는 조선조 후기에 와서다. 1740년 영조 임금이 개성을 행차할 때 만수산 인근 두문동 유래를 듣고 비석을 세워주게 되고, 이을 계기로 자손들이 가승(家乘)에 수록하자 다시 정조 임금이 감탄하여 1783년 개성 성균관에 표절사(表節祠)를 세워 추모하게 되면서 부터이다. 이후 ‘두문동72賢’, ‘3隱’, ‘9貞忠’, ‘7賢’ 등의 인물 규정이 생기고, 기리는 문중의 사당 건립과 실기(實記)나 문집 등의 간행이 이어졌다. 대표적인 기록이 1809년 ‘두문동선생실기’(3권1책 목판본), 1860년 ‘화해사전’(1931년 재간), 1866년 ‘채미헌실기’(서산서원 발행), 1904년 ‘전씨관면록’9전사자본), 1934년 ‘두문동서원지, 1936년 '경현사지'(목활자본), 1956年 '전씨관면록'(鉛活字本) 등이다. 이 중에 ‘채미헌실기’와 ‘전씨관면록’은 전오륜 등 ‘정선7현’ 관련 시편이 수록되어 주목되고, ‘경현사지’는 고려 충절신을 기리는 한글 악장(樂章)이 수록되어 주목된다. 전자는 정선아리랑의 시원설과 관련 있는 시편이 수록되었다는 점에서, 후자는 민간의 한글 악장이 수록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문헌들이다. 그런데 후자 즉, ‘경현사지’에 수록된 악장 작품은 기존에 국가 행사에서 불러진 악장과는 다르게 민간 향사에서, 그것도 한글로 지어진 악장이란 점에서 큰 가치로 평가한다. 특히 실제 불려진 작품이란 점에서 음악적 논의도 필요한 작품이다. 樂章 享祀 時 擧用 麗季忠賢貞忠大節 죽어죽어 一百番 다시죽어 白骨이 塵土되고 魂魄이 잇든지엄든지 人君ᄉᆡᆼ각ᄒᆞ난 一片丹心이야 엇지끈칠쇼냐 天命이 도라가이 國事가 이미 글넛도다 王氏의 鬼神이 차라리 될지언정 李氏의 臣下난 되지 안컨네 杜門ᄒᆞ기을 甘心하여 죽은 뒤에 말지로다 深山에 드러가면 耕者를 누가 알고 陶河世上머럿시니 슬푸고 슬푸도다 潘溪水에 끄든낙수 周文王을 낙는 ᄯᅳᆺ은 무삼일고 伯夷ᄂᆞᆫ 엇드한 사람이며 나은 엇더한 사람이뇨 齊王蠋의 忠臣不事二君 말은 나도 敬服하난바라 松嶽山을 도라보니 우리 故國이 아니요 首陽山을 바ᄅᆡ보니 차마 한마음을 이질쇼냐 五柳先生淵明은 千古에 同志로다 新朝에 北面마소 二心人이 붓그럽게 高麗山이 어ᄃᆡ잇나 차자가기 願이로다 田橫島가 어ᄃᆡ잇나 차질길이 茫然하다 國破君亡아엿시니 나난어ᄃᆡ로 갈고 時代가 이미 글너시니 안이가고 무어설 求할소야 정몽주의 ‘丹心歌’를 수구(首句)로 충절을 주제로 했음을 제시하고 ‘충신불사이군’ 등의 술어로 출절의 고고함을 찬하였다. ‘新朝’, ‘高麗山’, ‘國破君亡’ 등으로 왕조의 개변이 있었음을 분명이 하고, 충절신들을 천고의 동지로 삼아 살지어라고 한탄하였다. 새로운 우국 악장인 것이다. 악장 전공인 숭실대 조규익 교수는 전화 통화에서 작품을 듣고, "조선시대 ‘용비어천가’로 상징되는 왕조 악장의 전통에서는 그 반대의 고려조 충신을 기리는 내용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라고 평가했다. 특히 조 교수는 "享祀時 擧行”이란 기록으로 실제 사용된 사실에 대해 음악 부분에 대해 흥미로운 해석을 하였다. " 그 곡조가 고려시대 또는 조선 초 민간음악과 관련을 갖고 있다면 메나리조의 중심인 정선아리랑과도 관련지어 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국가에서 사용하기 위한 악장이나 현토(한문에 토만 단 형태)악장과 다르게 한글 악장이다. 특히 "享祀 時 擧用”이란 표기와 홀기(笏記)이어 수록한 것으로 볼 때 1783년 개성 성균관 표절사(表節祠) 제향이나 1936년 경현사 제향에서 실제 불린 것으로 볼 수 있다. 15일 제47회 정선아리랑제에 맞춰 ‘7현사’에서 축제 고유제가 있다고 한다. 이 뜻깊은 행사에 충절신 향사 전통을 이어, 이 번에 곡조를 얹어 부르지는 못 하더라도 낭송으로라도 올린다면 의미가 클 것으로 보인다. 일곱 충신들의 위패 앞에서 제를 지내는 것은 충절 정신을 계승하고, 정선아리랑을 가시화 한 역사성을 기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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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특집방송..... 흥보전, 국악동요, 판소리 명창로드매일 보는 TV프로그램, 명절이라고 다른 것이 있을까? 집에서 편안하게 즐기는 프로그램일지라도, 의미 있는 가치를 전달하고자 보다 제작진의 특별한 노력이 집약된 것이 바로 특집 프로그램들이다. 올 한가위 역시 이러한 특집 프로그램들이 다양한 형태로 시청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국악방송과 KBS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9월 9일(금) KBS 1TV 낮 12:10, ‘추석 특집 제11회 국악동요 부르기 한마당’ 국악의 멋과 동심이 어우러진 국악 동요를 소개하고 보급하기 위한 프로그램. 1·2차 예선을 통과한 12팀 어린들의 국악동요부르기 경연이 펼쳐진다. 강승화 아나운서와 가수 겸 국악인 양지은, ‘누가 누가 잘하나’의 캠벨 에이시아가 MC를 맡고, 남경주(뮤지컬 배우), 난장앤판, 조수황의 흥겨운 국악 특별 공연도 선보인다. KBS 1TV ‘2022 추석장사 씨름대회(4회)’ 9일(금) 오후 2:10, 10일(토) 오후 2:00, 11일(일) 오후 3:10, 12일(월) 오후 2:10 한가위를 맞아, 태백·금강·한라·백두장사를 가려내는 모래판 위의 대전이 경남 고성국민체육센터에서 펼쳐진다. 천하장사 출신 ‘모래판의 황제’ 이태현 교수가 해설을 맡고, 한상헌, 김종현 아나운서가 중계한다. KBS 1TV 저녁 7:10, ‘추석특집다큐 쇠제비갈매기의 귀향’ 2005년 방송된 ‘안동호 쇠제비갈매기의 비밀’ 이후, 안동시에서 조성한 세계 최초 쇠제비갈매기 인공서식지에 정착한 쇠제비갈매기 가족과 안동호 주민들의 아름다운 공존 이야기를 다룬다.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로, 생명의 소중함과 감동을 선사한다. 9월 10일(토) 국악방송 국악방송 라디오 저녁 7:30, ‘2022 추석특집 라디오 창극 <흥보전>’ 민속 대명절 추석을 맞아 풍자와 해학을 곁들인 판소리 흥보가를 라디오 창극으로 재탄생시켜 신명 나고 흥겨운 시간을 선사할 예정이다. 김학용, 이광복, 이소연, 최용석, 서정금 등의 목소리 출연으로 창극 흥보전의 맛과 흥을 더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악방송 TV 오전 11:00, ‘동편제 길을 걷다 <명창로드>' (IPTV채널 : KT올레tv 251, SK브로드밴드tv 288, LG유플러스 189) 왕기석 국립민속국악원장, 정재숙 전 문화재청장, 신정일 인문학자, 소리꾼 김준수 등이 출연하여, 동편제 판소리의 역사가 담긴 명창의 옛길을 찾아 탐색하며, 우리 소리의 역사를 살펴보고, 현재 대중들에게 판소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한다. 국악방송 TV 오후 5:00 국악무대 ‘여성국극 삼거리연가 : 능수버들’(서라벌국악예술단 주관) 국악방송 TV 저녁 7:00, ‘국악콘서트 판, <우리들의 국악>’ 우리음악의 매력에 빠져 한국으로 건너 온 국악 외국인들의 무대와 국악의 미래를 이어갈 어린이들의 유쾌하고 발랄한 무대 등 다양한 출연진과 풍성한 음악 선물로 시청자들을 찾아간다. 방송인 한석준의 진행, 난시 카스트로(멕시코, 경기소리꾼), 쉬윤페(대만, 해금연주자), 빅토린 블라보(프랑스, 소리꾼), 예움전통연희단(어린이, 강령탈춤극), 박성진(탈북민, 소해금연주자) 등이 출연한다. 국악방송 TV 밤 9:00 추석특집 ‘시대창극 당신의 의미’(도립국악단 주관) KBS 1TV 10일(토)-11일(일) 밤 9:40, ‘추석 특집 4부작 한식 연대기’ 세계를 매혹시킨 근·현대 우리 한식의 위대함을 재발견하고,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이들의 생생한 증언으로 한식 100년의 기억록을 펼친다. 1부 ‘정치의 맛’, 2부 ‘여인, 백년의 밥상’이 추석 연휴에, 3부 ‘한식 주식회사’, 4부 ‘K-푸드 익스프레스’는 추석 이후 목요일에 방영된다. 배우 주상욱이 1-3부, 김규리가 2부 프리젠터를 맡는다. KBS 1TV 10일(토)-11일(일) 밤 12:20 ‘추석 특집 제주어 드라마-저승차사 강림 2부작’ 2018년 이후 꾸준히 제작된 제주어 드라마 시리즈의 일환으로, 영화 ‘신과 함께’의 모티프가 된 제주신화 ‘차사본풀이’를 각색한 드라마. 인간의 몸으로 이승과 저승을 오가게 된 저승 차사 ‘강림’의 이야기로, 제주민들의 죽음에 대한 관념과 장례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9월 11일(일) 국악방송 TV 오후 5:00 추석특집 ‘국립부산국악원 천생연분 시리즈 시즌 2 ‘붉은머리 학 이야기’’ 국악방송 TV 밤 9:00 추석특집 ‘뮤지컬 퍼포먼스 ‘아리 아라리’’(정선아리랑문화재단 주관) 9월 12일(월) 국악방송 TV 오후 5:00 추석특집 ‘마당을 나온 암탉’(국립민속국악원 주관) 추석특집 영화 모음 * 국악방송 TV 9일(금) 밤11시 ‘디아스포라의 노래: 아리랑 로드’ 10일(토) 밤11시 ‘매미소리’ 11일(일) 밤11시 ‘왕의남자’ KBS 한국방송 2TV 9일(금) 오후 11:50 ‘신의 한 수: 귀수 편’ 2TV 10일(토) 오전 10:45 ‘도굴’ 1TV 10일(토) 오후 3:15 ‘광대들: 풍문조작단’ 2TV 10일(토) 오후 9:20 ‘발신제한’ 1TV 11일(일) 오후 1:20 ‘말임씨를 부탁해’ 2TV 11일(일) 오후 10:45 ‘뜨거운 피’ 웃고 즐기는 오락 프로그램도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활력을 줄 수 있지만, 우리의 전통문화와 뿌리를 탐색하는 프로그램들 역시 다른 방식으로 삶의 활력소를 제공할 수 있다. 더 깊이, 오래 갈 수 있는 감동을 느끼는 것 또한 연휴를 슬기롭게 보내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길어지는 코로나 시대, 집에서 즐길 수 있는 현명한 문화생활이 함께 하는 연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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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무용비리대책위 "경찰수사 교수2명 직위해제하라"'조선대학교 공연예술무용과 임용 불공정 해결 대책위원회'는 1일 "광주시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교수들에 대해 심사·자문 위원 자격을 박탈한 반면, 학교측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단체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조선대 공연예술무용과 2명의 교수는 대리수업, 논문대필, 폭언·폭력, 채용 대가 등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이어 "광주시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입건된 두 교수에 대해 심사·자문 위원 자격 중지와 강사 자격 박탈을 결정했다"며 "하지만 학교 측은 지난 4월30일 문제 제기 이후 지금까지 두 교수에 대해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그러면서 "조선대는 경찰에 입건된 두 교수의 직위를 즉시 해제하고 공정한 심사 기회를 박탈당한 지원자와 학습권을 침해받은 학생들에게 즉시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아울러 "학내 불공정 행위와 채용 비리를 근절할 수 있는 근복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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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선] 세계문화진흥협회, ‘22 한복모델 선발대회’ 개최세계문화진흥협회 주관 '2022 대한민국 한복모델 선발대회'는 한복을 세계에 알리고, 한국을 대표하여 세계 각국과의 문화외교에 앞장서게 할 모델을 선발한다. 대한민국 최대 규모 한복모델 선발대회인 ‘왕의 귀환 2022 대한민국 한복모델 선발대회’는 2017을 시작으로 올해로 ‘6회째’를 맞이한다. 선발된 모델은 해외와 국내에서 각국 외교사절단이 참여하는 다양한 드레스쇼와 패션쇼에 참여하며 한복의 일상화와 세계화를 추진하는 국가 문화외교에 ‘민간문화 외교관’으로 기여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참가 자격은 14세 이상 여성(외국인 포함)으로 연령대별 심사가 이루어진다. 1차 심사는 서류 심사로 사진, 참여 동기 등으로 본선 진출자를 선정한다. 2차 심사는 본선대회로 서울에서 2번의 본선 외 경기, 부산, 울산, 등 총 9개 도시에서 각 지역 '1차 서류심사' 통과자를 대상으로 '2차 본선 대회'를 통해 진출자를 확정한다. 3차 심사는 결선 대회로 7월 23일 토요일 인천 파라다이스시티호텔에서 개최한다. 각 지역 본선에서 선발된 진출자들이 최종 경합하는 형태로 최소 입선 이상 확정 상태에서 경합하게 된다. 결선대회는 한복 포즈와 한복 콘셉에 따른 워킹, 표정이 주요 심사 항목이다. 시상내역과 수상자는 진/선/미 한 명씩 선발하며 상장과 트로피와 각 수상자별 상금은 500만원, 300만원, 200만원이 주어진다. 그리고 해외 대회 초청권, 항공권, 숙박권 그리고 프리미엄 한복 등이 제공된다. 또한 최우수상, 우수상, 장려상은 각 수상자별 상장이 수여된다. 또한 진/선/미 수상자는 다가오는 9월 파리 패션위크 시즌과 맞물려 세계 패션의 중심지 프랑스 파리에서 3회째 개최되는 ’글로벌 한복모델 선발대회‘에서 파이널 캣워크(무대 출연자가 객석에 접근하기 위해 설치한 통로)를 선보이며 피날레를 장식할 예정이다. 주최 측은 "부당한 방법으로 선발된 모델은 적발 시 모든 자격을 박탈하며, 본 대회에는 다시 참여할 수 없다. 또한 역대 진/선/미는 대한민국 한복모델로서 품격을 상실하는 행위를 할 경우 또는 활동하고자 하는 의지가 보이지 않을 경우 조직위에서 활동을 중지시키고 대한민국 한복모델 임명을 취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작년 ‘2021 한복모델 선발대회’ 선발자들은 국내와 해외를 넘나들며 한복의 가치를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K-팝 스타들과 함께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하였다. 높아져 가는 한국의 위상만큼 올해의 진/선/미는 누가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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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호랑이 나라’ 특별전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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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노래를 붓으로 부르다’ 한얼 이종선 書藝展"한글은 상형성象形性에 취약하기 때문에 독자미獨自美의 표출이 어렵다. 당연히 글자와 글자 행과 행의 조화기 필요하다. 글자와 행과 여백의 소통을 통해 전체를 하나로 이끄는 것이 내 작업의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글자의 가독성可讀性을 확보하며, 글감의 의미를 담아내기 위해 조형과 획에서 구사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구체화시킨다.” 우리나라 한글 서예계의 중진인 한얼 이종선의 대표 작품 ‘훈민정음 서문’의 자평 일부이다. 한글서예의 특징과 속성을 명료하게 제시한 대목이다. ‘한글서예’의 성립 자체가 한글이 전용되면서 부터이니 그 역사는 아직 백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 그만큼 작가적인 운용 여지가 많은 분야이다. 이 분야의 주역 중 일인이다.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 했던가. 2년 남짓한 연재 ‘한글서예로 읽는 우리 음악사설’ 64편에는 작가만의 작품세계가 반영되어 있다. 주요 서체인 궁체, 민체, 고체와 한문 행초서체와 예서, 호태왕비체의 필의筆意를 더해 자, 행간을 자유롭게 운용하며 균형을 이루는 질량분활법을 잘 드러냈다. 이는 한글에 한자가 섞인 우리 노래 시조·가곡·잡가의 다양한 변격을 탁월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우직하고 질박한 우리 노래의 속성을 고저장단은 물론 시김새 까지도 표현한 듯하니, 이동식 대기자가 표현했듯 "글씨로 눈으로 우리 선인들의 노래를 들려준~”(본지 11월 28일자) 것이다. 국악신문 2020년 09월 20일자 제1회 작품 ‘가곡원류’ 소재 시조 ‘梅影이~’로부터 2021년 11월 24일자 제64회 안민영의 ‘어리고 성긴 가지~’ 까지 64편 중 52편이 선별, 전시하게 되었다. 서예 전문 화랑인 백악미술관 3층 전시실에서 일주일간 열린다. 작품은 노래로 또는 율창律唱으로 가까이 할 수 있는 대가 열성(列聖)에서 명공석사(名公碩士)는 물론 기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작가의 명작이다. 물론 잡가 ‘처세가’ 같은 뛰어난 무명씨의 작품도 있다. 글감은 대체적으로 잘 알려진 가집인 청구영언·가곡원류·남훈태평가·해동가요·교주가곡집 소재 선정작이다. 전시작의 형태도 다양하다. 우연욕서偶然欲書로 좋은 글귀를 만나 불현듯 글씨가 쓰고 싶어 붓을 들었는데 마땅한 종이가 없어 옛 서책의 남는 종이에 쓴 잔지여묵殘紙餘墨도 있어 손바닥 크기에서 2메타 남짓한 크기도 있다. 바탕지도 다양하다. 장지는 물론, 최고급 냉금지, 다양한 문양지, 시전지, 중국산 선면 문양지까지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1953년 경기도 용인 출생이다. 노장적 삶을 살고 있는 성정대로 ‘한얼’과 ‘醉月堂’을 호로 쓰고 있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으로 유농서회惟農書會를 주재하고 있다. 불교방송개국기념비, 고려대학교 100주년기념관비 등의 금석문을 남겼고, 국립현대미술관,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성균관대학교, 한글학회, 김대중기념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언제부터 인지도 모르게 늘 그 모습으로 있어 왔던 자연스러움에 나는 더 애착을 느낀다. 이것이 전통에 바탕을 둔 서예 미학을 기본 조건으로 하여 나의 작품이 진행되는 이유이다.” 작가의 서예에 대한 서론緖論이며 자신만의 작품세계에 대한 서론書論이다. 이에 기반한 작가의 한글궁체와 흘림, 한문 전서와 예서, 국한문 혼서의 폭넓은 작품세계를 감상하는 귀한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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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객석에서] 가을 하늘, 바다보다 푸르네가을 하늘이 바다보다 푸르다. 세종대왕을 길벗 10월호가 표지로 반기며 가을 정취를 담은 소식들을 전한다. 한글 관련 이야기를 시작으로, 특별화보는 도쿄 패럴림픽에서 사투를 벌이며 경기를 치른 선수들의 표정을 실었다. 피스메이커에서는 창경궁에서 출발해 ‘거리의 천사들 섬김의 집’에서 1박을 하고 최전방 갓바위 마을을 거쳐 봉오동 삼거리를 지난 뒤 비래바위를 바라보는 만산동계곡을 향한 여정을 담았다. 실린 사진은 청명한 하늘과 짙은 녹음으로 상쾌함을 전해주고, 윙크하는 나무조각상은 우습기도 하다. 유익하고 재미있는 사진과 이야기들도 많다. 오늘은 힐링투어 ‘용머리 해안과 하멜’, Poem ‘허수아비’를 소개한다. # 용머리 해안과 하멜표류기, 산방산과 추사 김정희 ‘하멜표류기’가 발간되기까지 하멜에 얽힌 이야기와 용머리 해안과 산방산을 소개하였다. 용머리 해안에 들어서기 전에 만난 것은 스페르웨르호 상선 모형의 하멜상선전시관이다.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이 일본으로 가던 중 난파돼 표착한 곳이 용머리 해변이다. 선원 64명 중 생존자 36명은 조선에서 13년간 억류 생활을 하였다. 서울로 호송 된 뒤 전라도 여러 곳으로 분산 수용되고 탈출하기 까지 억류 생존자는 16명이었다. 8명은 탈출하고 2년 후 조선 정부의 인도적인 배려로 나머지 8명도 석방되어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하멜은 조선에서 13년간 억류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기록하여 ‘하멜표류기’를 완성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대한 깊은 인상과 풍부한 경험을 잘 살려 기록하였다.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린 최초의 책으로 사료적 가치도 높다. 1980년 한국과 네덜란드는 우호증진을 위해 산방산 해안에 ‘하멜기념비’를 세우게 되었다. 용머리는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이다. 약 100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형성되었다. 오랜 기간 파도에 화산체가 깎여나간 형태가 마치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닮아 용머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최근에 이곳을 방문한 바 있다. 파도가 심해 입장 불가로 돌아서야 했지만, 용머리 해안을 처음 마주 하였을 때는 7년 전이다. 당시엔 만조나 파도가 심하면 제한이 있는 것조차 몰라 쉽게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이번에 세 번째인데 처음 와 본 동생이 해안 길을 걸어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우리는 해안 길 너머를 한참 바라보며 사진 속에 남겨두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해안 길에서 올려다 본 것은 산방산이다. 정상은 푸른 난대림이다. 유일한 회양목 자생지이기도 하다. 1966년 천연기념물 제182-5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산방산에 얽힌 전설과 설화도 많다. 남서쪽 기슭에 있는 산방굴은 제주도에 유배된 추사 김정희가 즐겨 찾던 곳이라고 한다. 용머리해안 근처에는 추사관과 추사적거지가 있다. 추사는 55세 되던 해 제주도 귀양살이를 하게 되고, 위리안치(圍籬安置)형을 받아 울타리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8년 3개월의 제주 유배생활에서 ‘추사체’를 완성하고 ‘세한도’를 남겼다. 힘들고 외로웠을 것이다. 그 때도 가을 하늘은 푸르지 않았을까. # ‘허수아비’ 정직한 신념, 긍정과 인내 가을이 깊어갈수록 벼는 노랗게 익는다. 초록빛 벼를 지키는 시 ‘허수아비’ 읽었다. 어릴 적 보았던 허수아비가 떠올라 반가웠다. 참새는 멀찌감치 달아났나보다. 허수아비의 얼굴과 옷이 깨끗하다. 황금빛 열매로 맺게 하는 정직한 신념을 소망하며, 시인 서성환의 시를 읊어본다. 허수아비 아름다운 혼들의 녹색 합창 흥겹게 어우러지는 빛나는 벌판 생명의 신비를 모두운 힘찬 함성들이 열매로 맺히는 활기로 가득하다 고된 사역 속에서도 패배를 모르는 정직한 신념들이 영그는 초록빛 바다 모가지 팬 벼처럼 우리의 불굴의 소망이 떼비둘기같이 함께 솟구쳐 오른다 아직 다 이룬 것 아닌데 가야 할 길 멀어도 이룬 꿈 바라보는 기쁨 마음에 넘쳐 즐거운 마음으로 동화되어 간다 인생을 긍정하고 인내로써 황금물결 환상에 손짓하며 나아가는 웃고만 서 있는 사나이 허수아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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